182화
-특별한 평범함을 관찰하는 특별함. '바른 엔터 걸그룹 관찰 TV'
-타인의 일상을 지켜보는 건 사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바른 엔터의 공식 너튜브 채널을 통해 방영된, 생방송을 포함한 웹 예능 1화는 도진의 예상 이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그 관심의 이유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관현 게이트의 중심에 있었던 레드슈와 안티체리, 그리고 안 그래도 유명한 후기지수인 잠룡이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볼 만했음.
-ㅇㅇ 시트콤인데 웰빙스런 맛이라고 해야 하나.
-밥 먹으면서 보기 딱 좋더라. 나물 반찬 같았음.
-나물 반찬 ㅋㅋㅋㅋ 뜬금없는데 존나 적절한 비유네 ㅋㅋ
하지만 웹 예능 방영 후의 반응에는 그 계기보다 내용 자체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사실 레드슈가 게스트로 나오면 무공이나 보여주고 개 뻔해서 채널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 근데 이번 예능 보니까 그런 뻔하고 되도 안한 컨셉질 안해서 좋았음.
-잠룡 피셜 "감빵간놈이 시킨 컨셉"이었다면서 ㅋㅋㅋ
-ㅇㅇ 본모습들은 커엽더라..
-안티체리도 진짜 의외였음. 우리집 누나인데 그게 친누나 같지 않고 예쁜 누나 같다고 해야 하나.
레드슈와 안티체리에 대한 것도 긍정적인 댓글이 많았다.
그동안 쌓였던 온갖 구설은 물론이요 안티체리는 오래 전부터 곪아 썩어들어가던 부정적인 이미지까지도 씻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얘들 순진하네. 웹 예능도 예능이고 다 홍보인데 그걸 다 믿냐.
-ㄹㅇ.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ㅋㅋㅋ
-TV서 보여주는 이미지 믿는 거 아님.
물론 긍정적인 댓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절반은 악플이다.
입에 담지도 못할 댓글들 또한 수없이 달렸다가 삭제되었다.
허나 그것은 인터넷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안타깝지만 당연한 현실이었다.
중요한 건 거기에 골몰하지 않는 것이고 더 나은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도진은 물론이고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다행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1화에 포함된 생방송에서 그런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명장면이 만들어졌다.
-누나들은 아이돌을 계속하기로 했잖아요. 겨우 노래 하나, 일이 년 하고 말 거 아니잖아요? 그러려면 회복해야죠. 내가 누나들의 손을 잡은 이상 설렁설렁 걷는 건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제대로 해야죠.
안티체리의 셋째, 은미소의 저도 모르게 움츠린 어깨를 펴 주고 고개를 들게 해 주었던 손길.
그 손길 이후로 안티체리를 향해 해 주었던 도진의 말.
주륵.
그 말에 은미소는 굳어 버린 미소를 지은 채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안티체리의 다른 멤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송이라 조금 오버하긴 했지.'
도진은 방송인 만큼 굳이 아빠라느니 딸이라느니하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 태도만큼은 언제나 그렇듯 거짓없는 진심이었다.
때문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진심으로 자신들을 생각해주는 도진의 마음을 담은 그 말에 안티체리는 눈시울을 붉혔고 그 모습은 김성덕의 최고급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시청자들의 마음 또한 흔들었다.
-아. 여기서 나도 찔끔함.
-누가 나한테 저런 말 해주면 나라도 울 듯.
그 장면만 따로 담은 클립은 폭발적인 조회수와 댓글을 자랑했다.
-김도진 알고 보니 화화공룡이 아니라 수입가위였네..
-??? 수입가위? 뜬금없이 웬 수입가위?
-스윗가이라고..
-아이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윗가잌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앞으로는 화화공룡이라 부르지 말고 수입가위라 부르자.
물론 네티즌들 특유의 드립 또한 높은 지분을 차지했고 도진을 수입가위라 부르자는 의견은 수많은 따봉을 받았다.
그렇게 새로운 별명을 얻은 도진에게, 여유롭게 학교를 걷는 도진에게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스쳐갔다.
'이게 그 관심이라는 건가.'
그동안 도진에게 닿는 시선은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무채색'이었다.
동경 혹은 적의가 담기긴 했지만 '일반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단 말이다.
한데 이번 웹 예능이 화제가 되면서 그 무채색의 시선에 어쩐지 색깔이 담긴 느낌이다.
낯간지럽지만 연예인 같은.
그런 관심이 도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좋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길거리의 낙엽이나 다름없었던 과거와는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도진은 마주한 소담에게 미소를 보여 주었다.
"안녕."
"응, 안녕."
기숙사를 나와 자연스럽게 함께 걷는다.
"2학기는 많이 바쁘네."
"응, 그렇네."
생각해보면 1학기 땐 소담과 정말로 찰싹 붙어 다녔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한데 2학기엔 그런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방학이 끝날 즈음과 학기초엔 곽필섭을 단죄하기 위해서였고 그 뒤로는 그 일의 연장인 '애프터 서비스' 때문에.
"미안."
도진은 저도 모르게 미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담은 예쁘게 웃으며 으으응, 하고 고개를 저었다.
"대신 내가 점심 사 줄게."
"응…… 그걸로는 안 될 거 같아."
"어, 그럼?"
소담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사 주는 거 말고 직접 해 주는 것 정도는 받아야 할 거 같아."
"아, 그런가? 하긴. 사 주는 건 정성이 부족하긴 하지. 간편식 비중이 좀 높긴 하겠지만 그럼 오늘 점심은 내가 해 줄까?"
"……응!"
소담의 그 예쁜 눈이 더 없이 반짝인다.
그 모습이 도진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안녕, 수입가위!"
"어서 와. 경영 2팀장."
오늘 첫 수업은 도진과 소담, 그리고 오대용과 주정아가 함께 듣는다.
웹 예능 1화의 반응이 좋다 보니 그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 화기애애하게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곤 진짜 상상도 못 했어."
"뭐, 나도 그랬어."
음반 작업 준비, 숙소 입주 등의 정말로 소소한 일상들을 담아 방영했다.
찍고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모두들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었다.
"이대로만 갔으면 좋겠네."
"그러게."
이대로만 해 줘도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 생각을 함께 했고 그 생각은 이루어졌다.
2화, 3화.
웹 예능은 잠깐의 돌풍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했다. 아니, 더 커졌다.
관계성이 확립되고 꾸미지 않은 모습들이 캐릭터로 자리잡으며 대중 속에 자리잡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
언뜻언뜻 준비하고 있는 앨범에 대한 장면들도 보여주는 것으로 홍보도 미리 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 관심 속에, 이윽고 작은 결실 하나가 맺어졌다.
"…행사?"
"응. 행사가 들어왔어."
행사.
아이돌의 주 수입원 중 하나.
허나 레드슈도 안티체리도 관현 게이트 이후 행사 제의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하나가 들어온 것이다.
한데 대표인 오대용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함께 있는 주정아도 마찬가지라 도진이 물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뭐, 조금."
그러면서 설명을 해 준다.
"레드슈랑 안티체리를 같이 섭외하고 싶대."
레드슈만 부르는 게 아니라 안티체리도 같이 불러 주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근데, 따로 계약하는 게 아니라 두 그룹을 한 세트로 묶어서 계약하고 700을 주겠다네."
"음……."
연신극기공과 무의 이치를 깨달아가며 머리가 트인 도진은 거기까지만으로도 오대용과 주정아가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를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행사비란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행사를 뛰는 아이돌의 '급'에 따라 책정되는 아주 객관적인 지표다.
그러니까 급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데 이렇게 두 그룹을 묶어 뭉뚱그려 보수를 지급하면, 그 보수를 엔터 쪽에서 나눠 줘야만 한다.
오대용이, 엔터에서 '레드슈는 이 정도 급이니까 얼마, 안티체리는 이 정도 급이니까 이렇게 나눌게'하고 말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광경은, 지금 두 그룹의 상황에서는 결코 유쾌할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안티체리는 가장 밑바닥, 레드슈는 그보다 한 단계 위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도 아니어서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마음이 좋지 않다
"제의한 곳이 이쪽으로는 잘 모르더라고. 게다가 좀 꼰대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렇게 계약을 하게 됐네. 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미안해, 얘들아. 미안해요, 누나들."
레드슈와 안티체리까지 모인 자리에서 오대용은 사과했다.
"아냐아냐. 행사가 잡힌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 걸."
박소진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고 주교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게다가 복잡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잖아?"
설현주가 이어 말했다.
"이건 업계 룰대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지. 너희가 조금 더 받고 우리가 조금 덜 받는 거."
"우린 공평하게 나눠도 된다고 생각……"
"아니. 그러면 안 돼."
여은영의 조심스런 말을 설현주가 단칼에 잘랐다.
설현주는 어른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일일수록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게 맞다고 나는, 우리는 생각하고 그렇게 해 왔어. 우리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주교은이 이어서 말했다.
"너희의 마음은 알아. 그 고마운 마음만 받을게. 일은 철저하게 원칙대로 처리하자."
그녀들은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일은, 특히 돈에 관련된 부분은 철저하게 원칙대로 처리해야만 나중에 떳떳하고 사람 사이에 불필요한 앙금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은미소가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빨리 위로 올라갈 테니까."
은미소의 그 긍정적이고 당찬 모습에 도진도 미소지었다.
"어휴, 진짜 기특하네요. 우리 누나들."
그리하여 화기애애한 가운데 일 이야기를 마치고 행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대망의 행사 날 도진은 직접 레드슈와 안티체리가 함께 탄 밴을 운전하여 행사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운전까지 하시니까 진짜 매니저 같네요."
김성덕의 말에 도진이 피식 웃었다.
"매니저 같다니요. 매니저 맞잖아요."
-ㅇㅇ 매니저 맞지.
-아침에 잠 깨워줘, 밥 차려서 먹여줘, 운동도 시켜줘, 멘탈 관리도 해 줘.
-? 매니저가 아니라 이 정도면 부모 아님?
-아 그래서 아빠라 부르자너 ㅋㅋㅋ
-그래서 잠룡 매니저님. 오늘 행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시청자분들이 오늘 가는 곳이 어디냐고 질문하시네요."
김성덕이 시청자들의 질문을 도진에게 전달했다.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정보였기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에 용인 쪽에 새로 공원 하나가 생겼다고 하더라구요. 거기 홍보 기념으로 축제를 하는데 초대됐어요."
-아, 거기.
-어. 거기 우리집 근천데. 언제 가면 볼 수 있나요?
"저희 도착은 일단 5시인데 행사 진행에 따라 7시 전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오, 구경가야지.
-나도 ㅋㅋㅋㅋㅋ 잘하면 우리도 방송 타는 거자너.
"오시면 사진 같이 찍어 드릴게요."
-헐ㅋㅋㅋㅋㅋ 기다려랔ㅋㅋ 지금 간닼ㅋㅋㅋㅋ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몰리진 않을 것이다.
지금 생방송 시청자 수가 오백 명 정도인데 이 중에 실제로 용인의 해당 공원에 올 수 있는 사람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을 테니까.
허나 소수라도 행동하는 팬들을 만난다는 건 레드슈와 안티체리에게 긍정적인 힘이 되어줄 것이었기에 도진은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다들 팬서비스 뭐 해 드릴지 생각해 둬요."
"네!"
활기차게 대답하는 레드슈와 안티체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밴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도진은 무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
도진의 얼굴이 낮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