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82화 (182/741)

181화

"창문 열고 옷장 문도 열고 정리하고 나오세요."

"네에."

도진의 말에 세수하고 옷까지 갖춰입은 안티체리가 늘어지게 대답하며 움직였다.

대답은 그렇게 늘어지는데 행동은 빠릿하고 빈틈이 없다.

-와, 말년 병장이 이런 건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다르네.

시청자들의 감탄 속에 안티체리가 숙소 정리를 마치고 모였다.

시크한 냉미녀 스타일에 키도 큰, 그러나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막내 설하은이 기다란 앉은뱅이 책상을 품에 안고 있다.

"자, 그럼 가요."

"응."

그렇게 안티체리를 데리고 도진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건너편 레드슈의 숙소다.

"밥 먹자, 얘들아."

"응!"

도진의 말에 레드슈가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다.

설하은이 가져온 것과 완전히 같은 앉은뱅이 책상을 두 개 붙여 펼치고 수저와 컵, 준비된 반찬 등을 세팅했다.

그동안 도진이 가스레인지에 궁중팬을 올리고 기술 좋게 고기를 볶아 내놓았으니 바로 제육볶음이다.

-와.. 때깔 고운 거 보소..

-바, 밥 가져와!

-난 이미 먹는 중. 저거 한 번 보고 밥 한 숟갈하고..

-자린고비세요?

시청자들이 침을 삼킬 만큼 클로즈업 된 제육볶음의 빛깔이 심상치 않았다.

"와……. 맛있겠다."

"잘 먹을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세요."

-ㅋㅋㅋ 그놈의 아빠 ㅋㅋㅋㅋ

레드슈와 안티체리의 멤버들 또한 수북이 쌓인 제육볶음에 특히 눈길을 주었는데, 그 상황에 도진이 말했다.

"PPL 타임입니다. 제육볶음을 포함한 된장찌개는 TJ 푸드에게 협찬받았습니다. 굽고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간편한 상태로 인터넷에서 판매 중이니 한 번 주문해서 드셔보세요. 개인적으론 괜찮았습니다. 간은 달달한 편이었네요. 감사합니다."

식탁의 음식들은 다름 아닌 간편식으로 나온 서태주네 회사의 제품이었다.

-또 피피엘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집 장사 잘하네;;

"자,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아."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물론, 도진과 심지어 김성덕까지 같이 자리해 식사를 했다.

때문에 촬영 구도가 조금 제한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리얼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커피 한 잔씩을 마주한 때에 도진이 말했다.

"좀 있다 우리집에 갔으면 하는데 어때요?"

도진의 물음에 레드슈와 안티체리보다 시청자들이 먼저 반응했다.

-오? 잠룡 하우스?

-그 유명한 잠룡 하우스?

잠룡 하우스.

도진이 명성공방과 계약하며 받은, 명장 우벽진이 리모델링한 집은 세간의 화제를 모았을 만큼 유명했다.

게다가 얼마 전 있었던 명성공방과 잠룡의 콜라보(?) 가구들로 인해 더더욱 유명세를 치렀고 말이다.

그 집 내부를 방송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채팅창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도진의 물음에 가장 먼저 답한 건 주교은이었다.

주교은에게로 시선을 향하며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게 그래도 단편이 아닌데 아무리 일상 예능이라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정돈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너희 집에서 뭐 할 건데?"

맏내 설현주가 끼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구요. 체력 단련이나 좀 시켜드릴까 해서요."

"엑?"

생각지 못했던 대답에 안티체리 쪽에서 기괴한 리액션이 나왔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운동 해야 되잖아요. 기왕 하는 거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 말대로였다.

아이돌인 이상, 아니 요즘 시대엔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자기 관리는 필수였다.

그리고 필수가 된 그 자기 관리를 도진은 자신의 지도 하에 레드슈와 안티체리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30분 뒤에 출발할 거니까 준비하고 나오세요."

그리하여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반 리얼'답게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도진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와, 숭무동 볼 수 있는 건가?

가는 길에 시청자들은 그런 기대를 나타냈다.

허나 아쉽게도 그 기대는 충족될 수 없었다.

"아시잖아요. 숭무동 내부는 허가없이 촬영 금지인 거."

그랬다.

숭무동에 사는 사람들이 사람들인지라 허가없이는 촬영이 불가했다.

그런 것들까지도 숭무동의 '치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촬영은 철저하게 차량 내부로 한정되었다.

"와, 차 진짜 좋다. 근데 나는 적응하려면 되게 힘들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건 설현주다.

"이게 겨우 서른 밖에 안 됐으면서 벌써 적응 같은 말 하면 안 되죠. 한창때인데."

"나 어릴 때부터 기계에는 약했거든."

"큰일이네요."

"그 정돈 아닌데."

두 대의 차량, 연예인의 이동수단인 밴과 도진의 슈킨팍시 내부에 관해 소소하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금방 온 것이었다.

"규칙 준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와, 저게 숭무동 검문이구나.

-어쩐지 보는 내가 다 두근거리네.

통행증과 내부를 보여주고서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겨우 동네를 지나는데 통행증과 검문이 무언가 싶지만, 이것도 다 무공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였다.

입구를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대의 차가 멈췄다.

도진의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와아……."

"대단하네요."

차에서 내린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물론, 김성덕마저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만큼 우벽진에 의해 환골탈태한 도진네 집의 외관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 우리도 보여주셈;;

-나도, 나도 볼 거야;;;

허나 안타깝게도 주변 경관을 촬영해선 안 되기에 풍경을 공유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들의 아우성은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잠잠해질 수 있었는데, 도진의 집 현관에 들어서면서 카메라가 다시 돌기 시작한 때였다.

-와.. 쩐다..

-이게 그 '샤이닝 폭포'구나.

-아니 ㅋㅋㅋ 빛 폭포면 빛 폭포고 샤이닝 폴즈면 샤이닝 폴즈지 샤이닝 폭포는 또 뭐야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거실에 펼쳐진 '빛의 폭포'에 감탄했다.

"와! 나 저거 도진이 SNS에서 봤어!"

-오! 저게 그 꼴라보 가구구나.

이어서 주목을 받은 건 도진과 우벽진이 함께 만든 가구들이다.

구조가 단순한 선반마저 그 곡선과 마감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과연 명장과 후기지수가 공들였음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특별했다.

"오빠!"

"형!"

그렇게 방문자들로 집이 떠들썩해지자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으니 다름 아닌 도진의 동생들이었다.

-와 귀엽다.

-잠룡네 남매네.

시청자들은 도도도 도진에게로 뛰어오는 남매들을 바로 알아보았다.

도진의 SNS에서 여러 번 얼굴을 비춘 귀여운 남매 또한 어느 정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꺅! 귀엽다! 동생들이지?"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도진 오빠 동생 유진이에요. 이쪽은 호진이구요."

"응응! 반가워!"

꾸벅 인사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눈을 반짝이는 건 설현주다.

'그러고보니 보육교사 자격증 따려고 공부도 했었다고 했지.'

설현주는 어느 인터뷰에서 한때 다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육교사 자격증을 준비했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아이돌을 할 수 없다면 보육교사라도 할까 하고 말이다.

능숙하게 동생들과 친해지는 모습을 보니 미소가 지어지는 도진이었다.

"유진아. 저기 카메라 보고도 인사해."

"카메라요?"

"응응. 저 카메라 너머로 몇 천 명이나 되는 시청자분들이 널 보고 있단 말야."

설현주의 말에 유진이의 눈이 커졌다.

"몇 천 명이나요? 진짜요?"

"응. 진짜라니까. 보여줄까?"

그러면서 슬쩍 시선을 보내기에 도진이 피식 웃으며 다가갔다.

"유진아 이거 봐."

들고 있던 폴더블폰을 열어 화면을 좌우로 나누었다.

좌측엔 지금 찍히고 있는 유진이와 설현주의 모습이, 그리고 우측엔 그 화면이 고스란히 송출되는 채팅방을 포함한 화면이 나타났다.

설현주의 의도는 그것을 보고 유진이가 우물쭈물 당황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진이는 그런 의도와는 다르게 행동했다.

"안녕하세요. 김유진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오..

-뭐야.. 귀여워... 귀엽다.. 귀여운데...?

"아이돌 언니들이랑 이렇게 방송에 나오게 돼서 진짜 좋아요."

-응.. 나도 널 볼 수 있어서 진짜 좋아..

아이다운, 그러나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에 도진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러고보면…….'

유진이는 오빠인 도진이 보아도 정말 예쁘게 자랐다.

그리고, 연예계를 동경했었다.

당시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을 '잠룡 김도진의 신안(神眼)'으로 보고 있으니 전생에서의 유진이에 대한 기억들이 그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랬구나.'

도진의 미소에 쓴맛이 묻어나왔다.

동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작고도 힘겨운 삶을 살았었다.

유진이 또한 그것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에 묻고 말았다.

그래서 몰랐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다행히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유진이도, 이번 생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부담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도진은 이렇게 말해줄 것이었다.

'응, 얼마든지 해도 돼.'

그런 생각을 하며 도진은 미소에서 쓴맛을 지워냈다.

* * * *

"자, 그럼 연무장으로 내려갈까요?"

"네에."

도진의 인솔에 따라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지하 연무장으로 내려왔다.

연무장과 이어진 성큰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밝다.

-쩐당.. 나도 이런 지하 연무장이 있으면 열심히 수련할 텐데.

레드슈와 안티체리를 연무장의 중심에서 마주하며 도진이 말했다.

"말씀드렸던 대로 여기서 체력 단련을 할 거예요. 앞으로 일요일 제외하고 매일 세 시간씩 할 건데 공식 스케쥴이니까 거부권은 없어요."

"에에에."

그렇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반응하는 건 안티체리의 셋째 은미소다.

느릿한 거북이를 연상케하는 그녀는 거의 항상 웃는 얼굴이다.

은미소가 손을 들고 말했다.

"나는 두 시간만 하면 안 돼? 그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안티체리는 최소한의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그 수준이 높지 않은 '일반인'이다.

그런 안티체리가 숭무고 재학생이자 무림인인 레드슈와 함께 하는 세 시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돌이다보니 식단 조절과 운동은 필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운동을 '빡세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견이다.

도진은 그런 은미소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귀신처럼 움직여 그 뒤를 잡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러나 눈 깜빡하는 사이 어느새 뒤에 있어 더더욱 귀신 같은 움직임으로 은미소의 뒤를 잡은 도진의 오른손이 휘둘러졌다.

'아.'

찰나의 순간 은미소는 생각했다.

저 한 수에 우당탕 넘어지겠구나, 하고.

허나 굳이 저항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이니까 성대하게 넘어져서 이 씬을 살려보자 생각했다.

'몰락한 안티체리'는 여러 일들을 겪었고 그 안에는 인기 아이돌에겐 결코 없을 아슬아슬한 선의 대우 또한 허다했다.

이렇게 넘어져 웃음을 유발하는 일은 오히려 지극히 예능의 범주에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은인이라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안티체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도진이라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더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었으니까.

때문에 성대하게 넘어질 준비를 했던 은미소는.

슥-

"……아?"

자신의 생각과 달리 부드럽게 등을 훑는 손길과, 그 손길에 자신의 의사와 관련없이 어깨가 쭈욱 펴지고 고개가 들리는 상황에 당황해 입을 벌렸다.

그런 은미소의 뒤에 선 도진이 말했다.

"안 돼요. 오히려 안티체리는 레드슈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되거든요."

"왜?"

"안티체리는 춤선이 비뚤어졌어요. 어깨랑 등이, 목이. 자세가 밸런스가 무너졌거든요."

"……."

그것은 오랜 시간을 고개를 떨구고 움츠려야만 했던 안티체리였기 때문에.

"자세를 교정해야 해요. 그리고 누나들은 혈도랑 장기도 꽤 상해 있어요. 그것도 회복해야 해요."

뇌를 녹인다거나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지는 않았다지만 그래도 마약이다.

그것은 장기는 물론이요 혈도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술을 달고 살았으니 더더욱 내부가 상할 수밖에 없었다.

"……."

갑자기 현실을 자각시키는 도진의 말에 안티체리에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채팅창 또한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분위기에도 도진은 가벼운 걸음으로 안티체리의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누나들은 아이돌을 계속하기로 했잖아요. 겨우 노래 하나, 일이 년 하고 말 거 아니잖아요? 그러려면 회복해야죠. 내가 누나들의 손을 잡은 이상 설렁설렁 걷는 건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제대로 해야죠."

도진의 걸음은 안티체리를 마주하는 곳에서 멈췄다.

멈춰서, 안티체리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내 딸들이 그러는 거, 나는 못 보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