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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81화 (181/741)

180화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서는 도진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성덕이 찍는다.

김성덕의 카메라에 비치는 도진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그것을 펼쳐 태블릿처럼 키우고선 '양방향 카메라 모드'를 실행했다.

그리고 섭음술로 마이크에만 잡히도록 목소리의 범위를 조절한 뒤 말한다.

"PPL 타임입니다. 오성에서 새로 나온 폴더블폰이구요. 협찬받았습니다. 이렇게 셀카용 전면 카메라와 후방 카메라를 동시에 실행해서 찍을 수 있는 기능입니다. 감사합니다."

-엌ㅋㅋㅋㅋ

-아니 PPL 타임 뭐야 ㅋㅋㅋ

난리난 채팅방은 다름 아닌 숙소 문을 노크하기 전 열었던 생방송용 채팅방이다.

문을 열어 준 소진의 무방비하면서도 귀여운 웃는 얼굴에 열광했던 그들은 이어진 도진의, 이 시기엔 아직 생소한 '대놓고 하는 PPL'에 키읔으로 채팅방을 도배했다.

그렇게 PPL을 끝낸 도진이 직접 폴더블폰을 들고 레드슈 숙소의 거실을 비췄다.

"흠. 생각보다 깔끔하죠? 반 리얼이라 그렇습니다. 제가 언제 불심 촬영하러 갈지 모르니 치워 두라고 했거든요. 말 잘 듣네요."

"야!"

"쉿. 애들 깰라."

항의하려 목소리를 높이려던 박소진이 두 손으로 제 입술을 막았다.

-뭐야. 귀엽잖아.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레드슈 원래 이 이미지 아니었잖아.

"아, 그거 지금 감빵 간 놈이 강요한 컨셉이었습니다. 원래 이렇게 좀 귀엽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감ㅋㅋㅋ빵ㅋㅋ간ㅋㅋㅋ놈ㅋㅋㅋㅋㅋ

-빠꾸없넼ㅋㅋㅋㅋㅋㅋㅋㅋ

"얘가 허우대만 멀쩡하지 속은 여린 애거든요. 그래서 놀리면 귀엽습니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카메라 렌즈에 소진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거린다.

숭무고 재학생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당찬 기세를 가진 그녀지만 본질은 열일곱 고등학생.

능글맞은 도진을 상대로는 귀여운 소녀일 뿐이었다.

"어쨌든 그동안은 좀 치우고 살라고 해도 말을 안 듣더니 역시 방송이 직빵이네요. 아이돌답습니다."

-그만 좀 까 ㅋㅋㅋㅋ

-까는 게 패시브네 ㅋㅋㅋ

-이 형도 이런 이미지 아니었던 거 같은데 ㅋㅋㅋㅋ

도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더니 좌측의 문으로 향했다.

거실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에 문이 두 개 우측에 문이 하난데 좌측의 문들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방 두 개로 이어진다.

그 중 하나의 방은 온전히 드레스룸으로 쓰고 있고 다른 하나의 방에 레드슈의 세 사람이 잔다.

"불편하진 않나요?"

김성덕의 물음에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층 침대 하나를 두고 한 명은 바닥에서 자는데 좀 불편하긴 하죠. 그래도 저는 바닥에서 자서 좀 나은 편이네요. 이층에서 자면 화장실 가려고 깨는 순간 다시 자기 힘들어지거든요."

-이건 리얼이다.

-ㄹㅇ.

-이층 침대 좋아하는 건 어린 애거나 안 자 본 사람들임. 화장실 다녀오면 진짜 잠 깨 버려서 조짐.

-불면증 있으면 절대로 복층이나 이층 침대서 자면 안 된다.

공감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진이 문 앞에 섰다.

"그럼 레드슈의 침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저 먼저요. 방송 사고나면 안 되니까 공개해도 되는 수준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아 ㅡㅡ 그건 좀.

-나도, 나도 볼 거야!

아우성을 뒤로 하고 도진은 문을 살그머니 연 뒤 내부를 확인했다.

김성덕이 그 장면을 담는 중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공개해도 되는 수준이네요."

-빨리보여줘요현기증난단말이에요

시청자들의 쇄도하는 요청에 도진이 안으로 들어서며 내부를 비췄다.

-?

-우리 누나 방 같은데?

-내 동생 방 아님?

내부는 정리되지 않은 이부자리와 벗어 던진 트레이닝복 등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우응……."

"도진이 왔어?"

그리고 들려오는 게으름뱅이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이층 침대에서 잠의 여운에 취해 있는 유혜진과 여은영이다.

카메라를 옆으로 향하니 하얀 다리를 빼꼼 내놓은 유혜진과 기다란 반곱슬 머리카락만 내놓은 여은영이 보인다.

"소진이는 일어났는데 너희들은 왜 아직 안 일어나고 있어?"

"오늘 쉬는 날이잖아……."

"이렇게 깨서도 이불 안에 있는 게 진짜 기분 좋아……."

-아 그건 킹정.

-고건 누구도 부정 못 하지 ㅋㅋㅋ

-근데 저 수면 양말은 뭐임?

-엌ㅋㅋ 그러네? 저거 뭐야?

시청자들이 말하는 수면 양말이란 다름 아닌 다리를 내놓은 유혜진이 신고 있는 것이다.

아직 여름의 더위가 가시지 않은 시기에 수면 양말을 신고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도진이 그것을 보며 섭음술로 말했다.

"혜진이가 무공을 익히기 전에는 수족냉증이 있었대요. 그때 수면 양말을 신던 버릇이 있어서 여름만 아니면 이렇게 수면 양말을 빼먹질 않아요. 그래서 얘가 수면 양말 매니아기도 하니까 만약 선물 보내실 거면 수면 양말 보내보세요. 가성비 좋습니다."

-가성빜ㅋㅋㅋㅋㅋ

농담을 주고받는 중에 여은영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 휴대폰 뭐야? 못 보던 건데."

"아, 촬영하려고 협찬받은 휴대폰이야."

"촬영? 아. 웹 예능. 근데 왜 그걸 펼치……."

여은영의 목소리 볼륨이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반쯤은 감겨 있던 눈동자가 커졌다.

"…아니지?"

"맞아. 참고로 생방송 중."

깜빡깜빡.

상황 파악 중을 알리듯 여은영의 커다란 눈동자가 귀엽게 깜빡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꺄아아아아악!!"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이불이 성대하게 들썩였다.

* * * *

-??? : 대본이라며! 대본이라며!!

-아ㅋㅋ 반 리얼도 리얼이라고 ㅋㅋㅋ

도진이 낄낄거리는 가운데 시청자들도 함께 낄낄거렸다.

여은영의 비명 소리와 함께 겨우 상황을 파악한 유혜진과 여은영의 몸부림은 그만큼 유쾌하고 재밌었다.

후다닥거리며 씻고 몸단장을 하는 그녀들은 도진을 지나가며 한 마디씩 불평을 던졌다.

"진짜 너무해. 이거 찍으려고 무공 쓰는 건 낭비 아니야?"

그녀들은 숭무고 재학생으로서 수준 이상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

때문에 조금의 낌새만 있었어도 이런 식의 장난에 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 이상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도진이 섭음술을 쓰고 또 자신의 존재감을 퍼뜨려 김성덕의 기척을 흩트림으로써 이렇게 완벽하게 '리얼한 장면'을 담아냈던 것이다.

도진은 유혜진의 말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는 밥 먹고 닦아도 되잖아. 이 너무 많이 닦으면 이 닳는다."

"우리 엄마 같이 말하지 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은영은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세수를 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갔다.

"여은영. 카메라 앞에선 당당해야지. 평소처럼 낯 가리면 안 되잖아."

"카메라가 아니라 휴대폰이잖아!"

"폰카도 카메라야!"

-엄마도 휴먼이야!

-ㅋㅋㅋㅋㅋㅋ 왤케 잘 놀리냐 진짜 ㅋㅋㅋㅋ

어쩐지 우당탕탕거리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레드슈는 몸단장을 마쳤다.

씻고 기본적인 화장을 하고 가벼운 옷차림의 그녀들은 눈부신 외모만 제외한다면 휴일을 맞이한 또래 소녀들과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자, 그럼 창문 열고 환기시키면서 청소하자."

"네에."

도진의 말에 따라 숙소의 창문을 열고 레드슈가 청소를 시작한다.

"얘들아. 옷장 문도 열어야지."

"이제 날도 선선한데 굳이?"

"옷장 환기 안하면 곰팡이 생긴다."

-? 이거 우리 엄마랑 (언)니 대화 같은데?

-? 님 우리집 동생임?

"너희들 밥 예약 안 해 놨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 일어나서 하려고 했어."

"오케이. 그건 봐준다."

고개를 끄덕인 도진이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그 모습이 너무나 능숙함과 동시에 숙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 뭐지? 우리 엄마인가?

-이거 혹시 잠룡이 아니라 레드슈 숙소 돌보미세요?

"아, 쟤들이 아직 집안일이 서툴거든요. 그래서 돌보미도 겸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진짜 독립시켜야죠."

그러면서 밥이 될 동안, 레드슈가 청소를 할 동안 집안 곳곳을 확인하는데 이 모습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다.

"세탁기 돌리고 와!"

"네에."

도진의 외침에 소진이 다용도실로 갔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제 빨래 남았어."

"헹굼 다섯 번에 섬유유연제 조금 넣고 돌려."

"응."

-? 뭐지. 이거 우리 엄만데.

-아니 이거 우리 엄만데.

-님들 가족임?

환기를 하고 그 사이 청소를 하고 집안 곳곳의 확인도 끝난 도진은 현관으로 향했다.

"누나들 깨우고 올 테니까 밥상 차려 놔."

"네, 엄마."

"엄마라니. 아빠라고 해야지."

"네, 아빠."

-엌ㅋㅋㅋㅋㅋ

-뭐지. 육아 대디인가?

자연스러운 대화에 시청자들이 웃는다.

그 모습을 찍고 있던 김성덕도 웃으며 말했다.

"사이가 정말 좋으시네요."

"원래 애들은 진심으로 대해주고 돌봐주면 잘 따르는 법이죠."

-와.. 나도 그럼 잘 대해주면 잘 따라주겠네.

-주의. 잠룡이 아니면 따라하지 마시오

-나쁜 새끼야.

레드슈의 숙소를 나온 도진은 바로 정면에 있는 다른 문의 벨을 눌렀다.

띵- 동-

-들어와.

벨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도진을 맞이해 주는 건 안티체리의 리더 주교은이다.

이쪽도 꽤 무방비한 모습인데, 그러면서도 가릴 곳은 확실히 가린 차림이 '대본'의 냄새를 풍긴다.

"준비 만전이시네요?"

옷차림만 헐렁하지 메이크업마저 끝낸 모습이라 더더욱 그러하다.

주교은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쪽에서 소란을 피우는데 모를 수가 없잖아. 그리고 갑자기 주말동안은 쉬라고 하니 뻔한 일이지."

-이것이 9년차 짬..

-아이돌 9년이면 소령(진) 정도 되니 이 정도야.

산전수전에 공중전 우주전까지 겪은 9년차 아이돌 주교은다운 모습이었다.

도진은 씨익 웃으며 우측으로 시선을 향했다.

데칼코마니마냥 똑같은 구조의 숙소였기에 안티체리의 숙소는 우측에 방이 있다.

"누나들은 아직도 자는 중이겠네요?"

"응. 보이면 안 되는 건 다 잘 정리해서 치워뒀으니까 그냥 들어가면 돼."

"감사합니다."

믿고 문을 여니 과연 난장판인 침실이 드러난다.

-와. 하나도 안 신기하다!

-내 자취방 같은데.

너무나 친숙한 방에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도진이 우측의 이층 침대 앞에 앉아 이불을 두드렸다.

"일어나야죠, 누나."

"아…… 더 두드려 줘."

토닥토닥토닥.

도진이 등을 두드려주는 리듬은 마성의 매력이 있는지 그렇게 늘어진 소리가 이불 안에서 흘러나온다.

그 모습에 이불을 휙 들추니 잠옷을 아주 잘 갖춰입은 채 행복한 잠기운에 버무려진 얼굴이 드러나니 안티체리의 큰언니인 설현주다.

곱슬기가 강한 머리가 난리가 나고 얼굴도 퉁퉁 부어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심지어 도진이 폰카를 들이밀고 있음에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안티체리의 맏내 설현주입니다."

맏내.

맏이+막내의 합성어.

큰언니임에도 작은 체구에 나무늘보 같으며 덜렁이는 설현주의 별명이다.

안티체리가 그래도 잘나가던 시절 설현주의 캐릭터였다.

-저건 라면 먹고 잔 얼굴이다.

-왜 우리 누나 같지?

-아이돌 맞음. 아무튼 아이돌임ㅋㅋㅋㅋ

안티체리가 등장했음에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

아까부터 반응에 집중했던 도진은 거기에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벌써 낮이니까 슬슬 일어나야죠."

"밥 다 먹고 나서 불러. 그때까지만 좀 더 잘게……."

"밥 거르면 몸에 안 좋아요. 이제 서른인데 몸 관리 해야죠. 20대랑 30대는 완전히 달라요."

"괜찮아. 아직 만으로는 스물아홉이니까."

-와, 강적이다.

-흔들림 없는 짬;;

레드슈였다면 두 번은 뒤집어졌을 상황에도 설현주는 일체의 흔들림이 없다.

과연 9년차라 생각하며 도진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토닥토닥.

부드럽게 등을 두드리던 손이 위치를 바꾼다.

견갑골이 있던 부분에서 등허리로.

그렇게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누나. 지금 안 일어나면 강제로 일어나게 될 텐데, 괜찮아요?"

"방송인데 설마 도진이가 심한 짓 하겠어? 아니면 나 업어줄 꼬야?"

-엌ㅋㅋㅋㅋ 이모의 애교!

-강적이다..

설현주의 도발에 도진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던 손이 어느 위치에 이르러 검지손가락만 남기고 접혔다.

쿡.

"허윽?"

마치 점혈을 하듯, 아니 실제로 도진의 손가락이 어느 혈을 찔렀고 설현주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헐?

-뭐, 뭐임?;;

시청자들이 그 반응에 놀라는 가운데 설현주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 좋다……."

"그렇죠?"

따듯한 장판 위에 늘어진 강아지 같은 표정에 씨익 웃는 도진.

그런 도진에게 설현주가 물었다.

"뭐한 거야?"

"점혈(點穴)이죠. 몸의 긴장을 풀어 주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어요."

"아, 이걸로 잠을 깨우는 거야? 어쩐지 잠이 확 깨는 거 같더라니. 대단하네."

-와;; 점혈로 잠 깨우기..

-갑자기 고수 같은 면모 등장!

-잠룡 맞네.

사람들이 감탄하고 설현주도 만족한 얼굴로, 그러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설현주를 마주하며 도진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효과다보니 중요한 게 있어요."

"응, 뭔……."

설현주가 묻다 말고 오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설현주를 보며 도진이 씨익 웃었다.

"10초 내로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지옥을 맛보게 될 겁니다."

-으아아아아앜ㅋㅋㅋㅋㅋㅋ

-미쳤낰ㅋㅋㅋㅋㅋㅋㅋ

"너……!!"

그토록 잘 버티던 설현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시청자들은 책상을 치며 웃었고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숙소에 화장실은 하나뿐입니다. 불편한 부분이죠. 하지만 안티체리는 9년차 아이돌답게 그 부분에 대한 노하우가 많은데, 아침의 급한 용무가 겹쳤을 때의 노하우도 한 번 배울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네요."

그러면서 시선이 건너편의 이층 침대로 향한다.

"한 번 보여주실 분?"

후다닥!

안타깝게도 지원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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