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이 시기엔 아직 콘텐츠의 중심이 '지상파 방송'에 있었다.
간간이 케이블이 지상파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기도 하고 파급력은 인터넷이 더 크지만, 그래도 아직 지상파 TV가 중심에 있는 시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을 일이었다.
TV가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고 그 휴대폰이 인터넷과 연결된 시대.
'고여서 썩어가는' TV는 결국 인터넷에 콘텐츠의 중심을 내어주게 되는 시기가 온다.
지금보다 뒤의 미래를 살았던 도진은 그런 시대를 겪었고 그것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올해였구나. '웹 예능'이라는 게 뜨기 시작한 것이.
-어, 그랬던가요?
스승의 말에 도진이 속으로 물었다.
-그래. 뉴스에서 보았지. 시기가 꽤 괜찮구나.
이 시기의 스승들은 아직 회복기라 외부를 볼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도진이 보았던 많은 뉴스들 중 하나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래의 도진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했던 것 중 하나가 휴대폰으로 순위권의 뉴스들을 읽는 것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이어졌다.
'잘 됐네.'
도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웹 예능은 미래의 기억이 내놓은 방법이었지만 시기에 관해선 확신이 없었다.
레드오션이 되기 전에 시도하는 건 좋지만 반대로 관심이 거의 없다면 경쟁은커녕 볼 사람조차 없다는 소리이니 말이다.
한데 올해 웹 예능이란 게 주목받기 시작한다면 그 흐름에 바른 엔터의 콘텐츠도 탈 수 있을 것이다.
"웹 예능이라……."
"그게 뭐야?"
공부를 좀 했는지 고민하는 기색의 오대용과 달리 주정아는 단어의 뜻 자체를 모르는 얼굴이다.
그런 주정아에게 뜻을 알려준 건 안티체리의 주교은이었다.
"말 그대로 인터넷으로 송출하는 예능이야. TV랑 다르게 널널한 편이지."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핵심을 꿰고 있는 것이 주교은 또한 9년이나 아이돌을 하며 업계의 지식을 꽤 쌓았다는 걸 보여주는 일면이다.
그녀의 말대로 웹 예능은 TV나 지상파, 심지어 케이블도 아닌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상파보다 널널하다는 케이블 이상으로 규제가 느슨하기에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며 사실상 '개인 방송'의 연장이기에 방송사가 아닌 제작자가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여기에 레드슈는 물론이요 안티체리 또한 합류할 수 있다는 거다.
안티체리는 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으며 보호 관찰을 받고 있다.
각 방송사에서 방송 출연 금지는 하지 않았지만 구태여 출연시킬 이유도 없다.
즉 아이돌 활동에 있어 가장 큰 기회이자 창구인 방송을 전혀 탈 수 없다는 소리였는데 그것을 웹 예능으로 만회할 수 있다.
"와! 괜찮은 거 아냐?"
"응. 괜찮은 거 같아. 여기엔 그쪽 전문인 사람들도 많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웹 예능 제작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책임져야 할 것도 많다는 소리니까.
예능 제작사의 노하우나 장비 등을 포함한 '규모'를 오롯이 제작하는 쪽에서 책임져야 하니 그것이 개인 방송이 아직 방송국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른 엔터는 그 부분 또한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생 공룡이었다.
엔터 업계의 마당발이자 인력 회사였던 바른 엔터는 노하우와 기술을 보유한 인력과 그들이 쓸 장비는 물론이요 자금 또한 충분했으니까.
남은 건 어떤 것을 찍을까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도진은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일상 관찰 예능을 찍자."
"일상 관찰 예능?"
이쪽은 주교은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교은이 모르는 게 당연했는데, 아직 이 시대엔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일상을 보여주는 콘텐츠예요. 꼭 웃기거나 특별한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최대한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걸 보는 사람이 있을까?"
오대용이 물었고 모두가 비슷한 생각인 얼굴이었다.
'맞아. 그랬지.'
도진도 이해했다.
굳이 남의 일상을 보려고 TV나 동영상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게 통했다.
곧 예능의 대세는 관찰 예능, 일상 예능이 되었고 그게 머지않았음을 도진은 스승들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레드슈와 안티체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레드슈랑 안티체리가 대중에게 친근하고도 호감가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예요. 제가 어디서 봤는데, 걸그룹의 전장은 여덕이랑 대중을 잡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관현 게이트의 이미지도 씻어내야 하고 대중에게 조금 더 다가갈 필요도 있죠. 그 방법으로 일상 관찰 예능이 좋을 거 같아요."
지금의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엄청난 화제의 중심에 있지만 그렇기에 역으로 대중과 아주 먼 거리에 있다.
이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었고 거기엔 일상 관찰 예능이 딱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음……."
'일상 관찰 예능'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기에 그런 도진의 설명과 의도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천재인 오대용과 주정아, 레드슈는 어렴풋이 도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고 엔터 업계의 고인물이라 할 만한 안티체리 또한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잡아냈다.
"…괜찮을 거 같아."
가장 먼저 주교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교은은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고여서 썩지 않도록 항상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롱런한 아이돌들은 모두 대중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각인시켰음을 말이다.
여기에 실패했다면 설령 그룹은 떴다 해도 개인은 뜨지 못했고.
보통은 '덕질하는 팬'들에 의해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이미지가 퍼뜨려지지만 역으로 자신들이 캐릭터와 이미지를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참신하고 괜찮은 시도라 생각했다.
"좋아. 한 번 해보자."
오대용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의 핵심은 관심이다.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어찌되었든 그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고 그것이 썰물이 되어 빠져 나가기 전에 무엇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역효과가 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었는데 듣고 보니 이거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일단 구체적인 계획을 짜야겠네. 일단 출연진부터인데……."
"촬영까지는 내가 계속 임시 매니저를 맡아도 될까?"
"어?"
도진의 말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아?"
그리고 오대용이 물었다.
설마했는데 여기까지 도진이 함께 해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에 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여기랑 계약하라고 했는데 그 정도까진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
그랬다.
바른 엔터와 계약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한 것은 도진이었다.
또한 손을 내민 이상 일어설 때까지는 함께 해 주어야 하는 성격인 도진에게 있어 이 정도 '애프터 서비스'는 당연한 일이었다.
오대용이 도진을 도와주었으니 도진 또한 오대용을 도와주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주면 우리야 좋지."
이제 '잠룡 김도진'의 이름이 가진 파급력은 무얼 하든 기준 이상의 효과를 보장한다.
그리고 그 효과의 방향은 물론 한없이 긍정적이다.
그 이름만으로 대중에게는 낯선 '걸그룹 관찰 예능'에 대한 홍보가 될 정도로 말이다.
"완전 리얼로 갈 수는 없으니 반 리얼로 가야겠고, 그러려면 최소한의 대본은 있어야겠네."
"그렇지."
"좋아. 그럼 기획을 짜볼게."
그렇게 매니저 김도진과 레드슈, 안티체리의 일상 관찰 웹 예능 제작이 결정된 것이었다.
* * * *
-레드슈와 안티체리,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다.
-신생 바른 엔터테인먼트, 레드슈와 안티체리와 계약 체결!
웹 예능 제작이 결정될 즈음 레드슈와 안티체리, 바른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와 ㄷㄷㄷ 이걸 새 소속사를 찾네?
-이걸 살아?
-바른 엔터가 어디임? 오나전 듣보인데
-그 듣보가 오성 계열사임.
-엌ㅋㅋㅋㅋㅋㅋㅋ
바른 엔터는 기사가 나자마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신생인데 그곳이 다름 아닌 오성의 계열사이며 대표가 직계인 오대용이라는 게 알려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헐. 여기가 그 영선이었음?
-아, 그 인력 파견 전문?
-이게 그 경력 있는 신입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여기에 바른 엔터의 전신이 영선 엔터라는 게 알려지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또 그 부분이 화제가 되었다.
-? 엔터들 간판 바꾸는 거 그리 드물지 않은 일 아니었나?
-저기는 좀 다름. 실력 있는 프리랜서들이 엄청 소속돼 있어서 사람 부족하면 업계에선 무조건 저기다 전화 넣음.
-오, 듣고 보니 좀 멋있는 곳 같은데?
-거기다 오성 계열사인데 이번에 직계가 대표 맡았으니 앞으로 떡상할 일만 남음.
-ㅁㅊ
-팩트) 헐. 이번에 웹 예능 찍는데 잠룡 김도진 출연 확정!
-엌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또 머선 일이고 ㅋㅋㅋㅋ
그리고 대형 떡밥이 투척되었으니 바른 엔터가 이번에 레드슈와 안티체리를 중심으로 한 웹 예능을 제작하는데 거기에 잠룡 김도진이 매니저로 동반 출연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형이 왜 매니저로 나와?
-와, 상상초월이네. 후기지수가 웹 예능 매니저로 출연 실화냐?
-이거 인맥 비리네.
-???
-?? 비리?
-맞잖아. 오대용이 매형 찬스 썼자너.
-엌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밬ㅋㅋㅋㅋ 이게 뭔 개소리옄ㅋㅋㅋㅋ
-깜짝 놀랐넼ㅋㅋㅋ
아직은 낯선 웹 예능이라는, 그것도 일상 관찰 예능이라는 장르에 대한 접근성은 그렇게 도진의 이름과 대중의 관심으로 메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