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74화 (174/741)

174화

-연예계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다.

-밝은 만큼 어두웠던 연예계의 그늘.

세상이 온통 떠들썩한 가운데 지금 사람들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이슈는 다름 아닌 연예계의 어두운 부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상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연속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문방구 엔터의 설 대표와 방송국의 석 국장, 그리고 홍 피디가 박소진의 폭로와 증거로 인해 구속 수사를 받으면서 그동안 주고받았던 상납이 줄줄이 드러났고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공개 폭로 또한 몇 건이나 나왔다.

-와……. 진짜 사람 새끼 아니네.

-설광수 저 개새끼 그동안 구설이 많긴 했는데 상상초월이네

-저러고도 돈 처먹이고 금방 나오는 거 아님?

-그건 아닐 거임. 이번에 사건 맡은 게 바로 그 갓성보님이심.

-엌ㅋㅋㅋㅋㅋㅋㅋ

-씨밬ㅋㅋㅋㅋ 저 씹새끼들 인생 끝났네 ㅋㅋㅋㅋㅋ

-??? 갓성보가 누군데?

-아니 이 새낀 어디 산에서 자연인으로 살다 나왔나. 잠룡의 변호사 모름?

-아. 그 사람? ㅋㅋㅋㅋ 쟤들 잣됐네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만 치라고 ㅋㅋㅋㅋㅋㅋ

"낄낄낄."

휴대폰으로 기사와 댓글을 보며 웃는 건 진한 화장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정적인 차림의 아이돌이었다.

이십대 후반의, 아이돌 생활을 9년이나 해 온 그녀는 다름 아닌 문방구 엔터의 주력 걸그룹이었던 '안티체리'의 리더 주교은이다.

안티체리는 화제를 몰고 데뷔했으나 과도한 '언플'로 인해 역풍을 맞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언론플레이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TV에 얼굴을 비춤으로써 어느 정도 뜨는 데 성공한 그룹이었다.

허나 그런 과도한 언플과 휴식기 없는 활동이 극심한 이미지 소모와 멤버들의 불화, 체력고갈을 불러왔고 전성기에 그로 인한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몰락하고 말았다.

이제와선 싸구려 섹시 컨셉으로 불러 주기만 하면 여기저기 행사에 얼굴을 비추며 시간을 채워 주고 푼돈이나 버는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 안티체리였기에, 피해자였기에 주교은은 회사의 악재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씨발, 존나 꼬시지 않냐?"

"말조심해 이년아. 또 기사날라."

"기사는 씨발. 우리가 기사날 급은 되냐?"

"그건 그렇네?"

"지랄들 한다. 깔깔."

단체로 쓰는 대기실 한구석을 차지한 안티체리의 멤버들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실제로 한물도 아니고 아예 가 버린 안티체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철판 깔고 활동한다며 욕하던 사람들조차 사라졌고 설령 욕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그녀들은 몰락하고 무뎌져 버렸으니까.

허나 그렇게 몰락하고 무뎌진 정신으로도 설광수의 악재에는 환희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기쁨을 느꼈다.

'각을 봐서, 나도 터뜨려볼까?'

아마 이짓도 이제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수백수천 번, 꿈에서도 했던 생각을 실행에 옮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안티체리 준비해 주세요."

그녀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주교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관현 게이트, 안개파부터 곽필섭까지.

-관현 그룹, 여전히 "입장 발표를 위한 정리중"

박소진의 스캔들에서부터 시작된 이른바 '관현 게이트'는 일파만파 커져만 가고 있었다.

대기업인 관현 그룹이 아무리 힘을 써도, 언론을 통제하려 들어도 호미로 무너진 댐을 메꾸려 드는 것만큼이나 어림없는 일일 정도로 말이다.

안개파의 본거지를 압수수색하여 자료를 확보했고 곽필섭은 위증을 하려다 들통나 오히려 역풍을 맞고 구속되었다.

이쯤되면 곽필섭은 물론이요 관현 그룹 또한 기둥뿌리가 흔들릴 것 같았지만.

'대기업이란 게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거든.'

도진의 생각대로, 특히 역겹게 썩은 대기업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었다.

-충격! 문방구 엔터테인먼트는 연예계 성상납의 온상이었다!

세상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사가 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방구 엔터의 설광수가 지금껏 수많은 아이돌과 아이돌 연습생들을 성상납으로 몰아 넣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미친.

-와, 이런 개새끼가 있나

한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이 그렇게 성상납을 하거나 당했고 그 안에는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 아이돌이나 배우까지 있어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왔다.

일부는 실명을 내걸고 피해자였음을 알리기도 했다.

분명히 알려져야 했고 합당한 처벌을 해야만 하는 사건.

그러나 이런 사건을 밝히고 키운 것이 관현 그룹이라는 게 너무나 역겨운 부분이었다.

술에 술을 타듯, 사건에 사건을 더해 시선을 분산시키고 초점을 흐린다.

'관현 게이트'를 덮기 위해 설광수 일당이 저지른 짓을 키우고 퍼뜨렸다.

피해자들이 실명을 걸고 폭로하도록 부추기기까지 했다.

'정의 구현'을 자신들의 추악한 목적을 위해 이용한 것이다.

곽필섭도 가만있지 않았다.

발악했다.

"맞습니다. 곽필섭 씨는 사실 그날 실크 로드에 갔습니다. 다만 그것을 숨긴 건 박소진 양의 증언과 달리 다른 이유였습니다."

"다른 이유라면?"

"음주 운전을 했습니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 조작을 했던 겁니다."

"……."

우스운 소리였다.

하지만 그 우스운 소리를 반박할 증거가 없었다.

곽필섭은 일부러 실크 로드에서 일을 진행했고 당시의 소진에겐 도진이 준 팔찌가 없었으니까.

음주 운전도 범죄이고 위증 또한 범죄이지만 박소진의 폭로를 인정하는 것보단 낫다.

곽필섭은 그런 생각으로 이런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랬다.

지금보다 훨씬 나중에 곽필섭은 취미가 들키고 나성보까지 나서면서 큰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때도 사건에 사건을 더해 물타기를 시도했으며 시간을 끌고 또 끌어 결국 관심이 떨어지고 흐지부지 되었을 즈음 숨을 죽이고 빠져 나간 것이다.

피해자들이 나설 수 없도록 뒷처리를 잘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에도 그러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곽필섭은 관현 그룹에서 '손절'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손절하기엔 아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때문에 관현 그룹은 손절을 하더라도 곽필섭을 그룹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는 선까지는 보호해야만 했고 그를 위해 무려 '대기업'이 전력을 다해 곽필섭을 지키는 중이었다.

물타기로 초점을 흐리고 곽필섭은 대중의 관심이 멀어질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버틸 태세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강력한 패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결국 타격은 주었을지언정 곽필섭에게 확실한 벌을 내려주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마무리 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쉽지 않군요."

나성보는 식사 자리에서 술을 한 잔하며 말했다.

피로가 묻어나는,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도진은 미소지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버틴다는 게 참, 그렇긴 하네요."

상식이 통한다면 끝나도 벌써 끝나야 할 일인데 이 세상은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으시죠?"

"하하. 당연하지 않습니까."

전생에서도 그랬다.

나성보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도진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성보라는 이름에 찬사를 보냈었다.

전생엔, 찬사밖에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선 아니다.

도진은 '곽필섭을 잡겠다'고 결론 내렸으며 결론을 내린 이상 나와야 할 답은 하나뿐이었다.

"나성보 변호사님."

"예."

"제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요?"

"음? 잠룡의 선물이라니, 이거 벌써부터 긴장이 되는군요?"

나성보의 너스레에 도진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풀어놓을 때였다.

"……응?"

-속보!! 문방구 엔터 소속 걸그룹 안티체리의 리더 주교은, "문방구 엔터는 마약상" 폭로!!

상상도 못한 곳에서 지원 '폭격'이 터졌다.

* * * *

하나밖에 없는 행사 스케쥴을 마친 주교은은 샤워를 하고 다시 '행사복'을 차려입고 화장을 했다.

외출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1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온 인터넷 방송을 하기 위한 차림이었다.

그래도 나름의 '짬'이 있고 끼도 있으며 외모도 받쳐주었던 주교은은 관심에서 밀려났다고는 하나 현역 아이돌 버프와 '선정성'까지 더해 나름의 구독자 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방송을 켜고 수다를 떨고 있으니 백여 명의 시청자가 모였다.

-뭐임 중대발표?

-설마 이제 정말 회사라도 나옴?

-전업 방송 가나요

-19금까지 걸고 술까지 마신다? 이거 무섭거든요?

"낄낄낄. 기대해도 좋아, 언니 오빠들."

독한 싸구려 양주를 안주도 없이 홀짝이는 주교은의 모습은 그동안의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시도때도 없이 끌던 모습과도 완전히 달라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주교은의 소속사인 문방구 엔터가 완전히 끝장이라는 것을.

거기에 따라 안티체리 또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까지 말이다.

최소한의 인기나 수익성이라도 보장되었다면 다른 소속사를 찾을 수라도 있었겠지만 이미지부터가 나락으로 간 안티체리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정말정말 아이돌이 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것도 이제 끝인가 봐."

담담하게, 그러나 양주의 독한 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주교은은 말했다.

"언니 오빠들 중에 그런 사람 많았잖아. 왜 그 좆같은 새끼 밑에서, 회사에서 안 나오냐고. 사실 그래. 나오기 힘들어. 이미 나이 먹고 데뷔까지 했는데 성적도 저조하잖아. 나와봐야 다른 데 갈수도 없고 재데뷔도 사실상 무리였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꼴깍. 꼴깍.

주교은은 병째 양주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 흘러나온 술을 스윽 닦고선.

"근데 아니야.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낄낄낄, 웃었다.

"사실은 마약 때문이었어."

-어?

-??

-;;;;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당황했다.

도저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목소리와 눈빛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기에 역으로 채팅창은 싸늘했다.

"설광수 그 새끼, 우리한테 마약을 팔았단 말야. 근데 그 마약이 존나게 기가 막히더라고. 뇌를 녹이는 것도 아니고 중독성이 대단하긴 한데 사람을 미치게 만들진 않아. 근데 없이는 도저히 못 버틸 정도로 좋았단 말야. 우리는 상납하면서 술에 탄 그걸 먹었고 그 뒤로는 게임 셋! 그 회사를 못 나오게 됐단 말이지. 그거 문방구 엔터 특산물이거든. 낄낄낄. 다른 데 가면 못 얻어 그거."

"설광수 그 새끼는 그걸 흑도 조직한테서 얻어서 '비즈니스'에 썼어. 비즈니스 말야. 말 안 해도 뭔지 알지? 그거 때문에 노예된 놈년들 많아.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신고도 못하니까 일석이조 아니겠어? 그리고 그 흑도 조직 말야, 이제 나도 이름 알아. 언니 오빠들도 알 걸? 그래 맞아."

"안개파야."

* * * *

그날 밤.

주교은의 방송은 정지되었지만 이미 녹화된 내용이 온갖 커뮤니티를 강타했다.

그리고 마른 들판에 번지는 불처럼 영상이 번지기 시작할 즈음, 도진은 합동조사대와 함께 부산항의 컨테이너 부두를 급습했고 목적을 달성했다.

-속보!! 안개파, 일본의 야쿠자와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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