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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73화 (173/741)

173화

"교차 검증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진술 시간에 신용진은 아는 모든 것을 순순히 토해냈다.

그것은, 전생에서는 1년 넘게 정계와 재계의 권력자들을 상대로 인생을 걸었다고까지 말할 만큼 나성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조사해서야 겨우 닿을 수 있었던 귀중한 정보였다.

그 정보를 토대로 하여 다급히 구성된 합동조사반은 안개파의 본거지를 덮칠 수 있었고 동시에 '인질'이었던 신용진의 가족까지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도진은 일의 진행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잘 풀렸어.'

사실 도진이 구체적으로 아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사건의 진행이나 얼개는 전생에서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통해 보았으며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때의 일이라 상당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에 스승들의 도움이다.

-그때의 사건이라면 네가 본 건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천재 중의 천재이며 입신의 경지에 닿았던 도진의 두 스승은 당시 도진의 눈을 통해 보았던 기사 내용을 글자 하나까지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도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본거지를 압수수색했다는 기사는 있어도 그 본거지가 어느 동 몇 호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으니 말이다.

때문에 사실 도진이 언급한 안개파와 '송 씨'는 가진 패의 전부였던, 블러핑이자 도박이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먹혔다.

다만 모든 부분에서 최상의 결과가 나오진 못했는데, 일단 안개파의 본거지에서 획득한 자료에도 관현 그룹 오너나 핵심 인물들에 대한 부분이 없었다.

이쪽은 특히 중요하고 치명적인 만큼 특별 관리를 하는 듯했다.

신용진을 제외한 안개파 소속의 '인질'들 또한 따로 확보하지 못했다.

이 또한 중요한 부분인 만큼 혹여 다른 마음을 먹거나 합치지 못하도록 따로 관리를 하고 있을 거라 전문가는 말했다.

"그래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나성보는 수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저 도진을 믿으며 일을 추진한 나성보였기에 도진은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고 나성보는 언제나처럼 씨익 웃었다.

"오늘도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하하. 제 취미라서요."

조금은 부족했던, 핵심에 닿기에 한 걸음이 모자랐던 압수수색의 성과.

그러나 그 부족한 한 걸음은 다른 데서 채울 수 있었다.

"스토킹을 사주한 사람이 바로 곽필섭입니다."

바로 박소진의 증언이었다.

-속보!! 스토킹을 사주한 사람은 관현 그룹의 3세?!

-박소진의 스토킹 배후는 같은 학교의 동기였다?

공개적인 폭로에 기사가 쏟아지고 여파는 더욱 거세졌다.

-아니, 뭐냐 진짜;; 이거 그냥 연예계 사건 사고 아니엇음?

-잡초를 당겼더니 기둥이 뽑혀 나왔어요;;;

-그 기둥이 관현 그룹 기둥인거임 엌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아니 관현 그룹 기둥이란 게 농담으로 안 끝날 것 같은 게 유머네 ㅋㅋㅋㅋ

폭로 이전에 먼저 긴급 체포된 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방송국 관계자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문방구 엔터의 대표인 설광수, 방송국의 석 국장과 홍 피디였다.

"고백을 거절한 저를 압박하기 위해 이 사람들과 모의해서 저를, 레드슈 멤버들을 접대 자리로 강제로 데려갔습니다."

"아니! 무슨 증거가 있다고 이러는 겁니까!"

"애먼 우리를 모함하고 있어!!"

이들은 조사를 받는 입장임에도 기세등등하게 날뛰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증거가 있을 리가 없지.'

실크 로드가 고급 유흥가로 통하는 건 외부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증거가 남지 않는다'는 부분이 진짜였다.

실크 로드는 자체적으로 녹음이나 녹화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전자 기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입장 전에 스캔을 통하여 확인이 되고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런 조치가 있었기에 돈 있고 뒤가 구린 일을 하는 자들이 비싼 돈을 내면서 즐겨 찾았고 거리낌없이 접대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치는 이들에게, 박소진이 차가운 눈으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응?"

"뭐야?"

언뜻 봐서는 그냥 팔찌다.

단순한 장신구로 보이는 그 팔찌를 어떤 기기에 장착하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석 국장님이랑, 홍 피디님이랑 자면 뭘 해 주실 수 있나요?

-응? 무슨 소리야?

-…우리밖에 없는데 굳이 말 돌리실 필요 없잖아요. 이 말을 듣고 싶으셔서 그동안 괴롭히신 거 아닌가요? 제가 두 분이랑 자면 뭘 해 주실 수 있냐구요.

자리의 모두가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는 그 소리에, 몇몇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머, 멈춰!"

다급히 소리치지만 녹음된 내용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건 너희가 하기 나름이지.

-알다시피 나는 음악 방송을 맡고 있으니 레드슈를 출연시켜 줄 수도 있을 거고 석 국장님은 너희들을 꽂아 주시겠지. 너희가 봉사하는 수준에 맞춰서 말이야.

"멈추라고!!"

석 국장이 그 비대한 몸을 날리고 설광수 또한 몸을 날렸지만.

짜악!

"꾸엑!"

"아악!"

소진의 곁에 있던 도진에게 뺨을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경호 무인이 뻔히 옆에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자 그럼, 날을 잡아 볼까?

그날의 대화는 고스란히 재생되었고 그 뒤로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음성 증거가 계속되었다.

'세상에는 아날로그란 것도 있단 말이지.'

실크 로드는 분명히 '전자 기기'에 대한 대처를 완벽하게 했다.

하지만 세상엔 전자 제품만 있는 게 아니다.

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제품 또한 얼마든지 있으며 그런 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의 아들을 도진은 마침 친구로 두고 있었다.

'고맙다, 지윤아.'

바로 나지윤을 말이다.

도진은 나지윤을 통해 얻은 특수 제작된 팔찌를 소진에게 주었고 소진은 그것을 이용해 이렇게 완벽한 증거를 획득했다.

수치심을 참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얻은 증거가, 눈앞의 역겨운 것들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흠. 증거가 나왔으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

믿고 있던 게 무너진 설 대표 일당 중 한 명에게서 배후에 곽필섭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설 대표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며 미쳤냐고 소리쳤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가 심증마저 굳히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폭로가 기사화됨과 동시에 곽필섭이 조사실에 앉게 된 것이었다.

"고백을 거절한 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질적인 지배 하에 있던 문방구 엔터를 이용하여 접대를 강요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토커까지 고용했던 것입니다."

'미친 년이!!'

조사실에 앉은 곽필섭은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가장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러고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결코 드러나선 안 될 안개파의 이름이 드러난 건 엄밀히 말해 곽필섭의 탓이 아니었다.

안개파는 관현 그룹의 직계와 방계를 위한 숨겨진 칼이었다.

그런 만큼 합당한 자격이 있다면 부릴 수 있었고 직계인 곽필섭에겐 차고도 넘칠 만큼의 자격이 있었다.

하물며 이미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개파의 일원 중 한 명이 스스로의 실책으로 붙잡히더니 다 불어 버려 발생한 일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곽필섭의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가 생각하는 '정론'이 그렇다는 말이다.

현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책임질 자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은 사건과 엮여 버린 곽필섭의 잘못으로 결론이 나 버릴 것이다.

이미 그 결론을 만들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을 상황.

곽필섭은 어떻게든 모든 죄를 덮어쓰지 않기 위해 발악해야만 할 시간을 이런 데서 낭비하고 있는 1분 1초에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았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 돼.'

최대한 빨리 조사실을 나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측근 변호사도 그 부분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박소진 양의 주장은 그날 곽필섭 실장님이 실크 로드에서 한 고백을 거절당해 이런 일을 벌였다, 이 말씀이시죠?"

"아뇨. 고백까지도 기만이었죠."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그러니까 곽필섭 실장님이 실크 로드에 방문했다는 거죠?"

"네."

소진의 대답에, 곽필섭의 변호사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한가요?"

"그날 곽필섭 실장님은 실크 로드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가지 않았다구요?"

조사관의 확인에 변호사는 틀림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블랙박스를 포함한 모든 자료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CCTV도 확인해 보십시오."

"으음……."

너무나 당당한, 그것도 근거 있는 당당함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블랙박스에 CCTV까지 확인해 보라는 말은 그만큼의 힘이 있었다.

곽필섭의 얼굴에도 약간 여유가 돌아왔다.

그는 '계획적인 성격'이다.

당연히 일을 진행함에 있어 여러가지 꼼꼼하게 대비를 했고 CCTV 등의 조작 또한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조사가 진행 중일 때에 손을 대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에 그런 것들을 깔끔하게 처리해 두는 건 곽필섭에게 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몇 번이나 했던 일이기도 했다.

관련 자료는 이미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멍청한 년.'

곽필섭은 자신이 유도하고 준비한 함정에 박소진이 깔끔하게 걸려들었다 생각했다.

"증거도 없이 일방적인 증언만으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조금 되찾은 여유가 화를 분출하기 위해 그렇게 묻도록 만들었다.

그 물음에 대답한 건 조사관이나 박소진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껏 조용히 있던 김도진이었다.

도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냥감을 붙잡기 일보직전의 사냥꾼의 얼굴로 말했다.

"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라고?"

"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냐고."

곽필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름 아닌 '그 김도진'이, 확신하는 얼굴로 물었기 때문이다.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불안감이 타고 올랐고, 그것은 도진이 내미는 사진으로 인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게 됐다.

"그, 그건……!"

도진이 내민 사진.

그것은 다름 아닌 도진이 전생의 뺑소니범을 보기 위해 옥상에서 기다렸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곽필섭의 비릿한 얼굴과 스포츠카, 그리고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국도의 표지판까지 찍혀 있었다.

이 도로는, 곽필섭이 준비한 자료에서는 지나간 적이 없는 도로였으며 그렇기에 '지나가서는 안 되는 도로'였다.

"자료를 대조해 보면 알겠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곽필섭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

-거대한 '관현 게이트' 열리나…….

-관현 그룹, "입장 정리중"

결국 곽필섭은 혐의를 벗지 못하고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얽힌 일은 그 어마어마한 여파로 관현 그룹이 흔들릴 만큼의 큰 사건이 되었다.

관현 그룹의 직계가 아이돌 멤버 하나를 작정하고 망가뜨리기 위해 영향 하에 있는 소속사를 동원하여 접대를 강요했다.

심지어 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흑도 조직'을 이용하여 스토킹까지 했다.

말만으로도 아득해질 일들이 벌어졌고 그것이 소설이 아니라 '팩트'로 드러났으니 대한민국 전체가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곽필섭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 수갑까지 찬 채 멍하니 걷다 소진과 함께 나오는 도진을 발견하고선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서 다가갔다.

"김도진."

"아, 괜찮아요."

시선이 집중된다.

도진은 곽필섭을 붙잡고 끌고 가려던 사람들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곽필섭을 마주했다.

"할 말 있어?"

곽필섭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를 악물고, 섭음술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무엇 하나 너랑 대립한 게 없었어. 그런데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들어서 이렇게까지 날 건드리는 거지? 그래서 너한테 좋을 게 있어?"

도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전생의 김도진은 그러했다.

하지만 현생의 김도진은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은 맞지만, 그 '좋은 것'의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나를, 관현 그룹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계산이 안 서는 건가? 응?"

곽필섭의 말에 도진의 미소가 짙어졌다.

"제발 그 대가란 걸 치르게 해 줬으면 좋겠네."

"…뭐라고?"

"대가를 치르게 해 보라고. 발버둥치고, 더 더러운 짓을 하고, 나를 노려 보라고."

도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너를, 너희를 원하는 만큼 찢어발길 수 있잖아. 응?"

"……."

미친 새끼.

이를 드러내며 진심으로 말하는 도진을 보며, 곽필섭은 압도되어 그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놈은 진심이다.

진심으로 곽필섭을 찢어발기길 원하고 있다.

그것을 읽었기에 곽필섭은 허세조차 부리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사람들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입을 다문 곽필섭은 무림맹의 무인들에 의해 끌려갔다.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도진은 여전히 이를 드러낸 얼굴로 웃었다.

'아직 안 끝났어, 곽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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