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건 '레드슈의 리더 박소진'이다.
숭무고 재학생들로만 구성된 걸그룹.
인지도를 쌓았고 그 인지도에 부끄럽지 않은 미모와 끼, 재능을 보여 주었기에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 그룹의 리더가 고급 유흥가를 드나들며 '천박하게 놀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별다른 사건 사고없이 무난한 시기에 잠룡 김도진까지 얽힌 이 사건은 그렇기에 엄청난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소속사인 문방구 엔터는 최소한의 입장조차 내지 않고 침묵했고, 그 사이 온갖 웹사이트에선 유언비어가 난무해 박소진의 이미지와 풍문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바로 그런 때에, 돌연 도진이 SNS에 '스토커를 잡았다'는 인증샷을 올려 버린 것이다.
-? 뭐임?
-갑자기 분위기 스토커;;
-아니 여기서 스토커가 왜 나와?
새로운 '장작'에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
스토커의 얼굴은 가렸지만 변장을 푼 도진의 얼굴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취재를 통해 실제로 박소진을 괴롭히던 스토커라는 것까지 밝혀졌다.
-뭐야. 그냥 평범한 실습이 아니라 스토커 때문에 의뢰를 한 거였어?
-숭무고 학생을 스토킹한다고? 무슨 음모 같은 게 있는 건가?
-윗댓러 소설을 너무 봤네 ㅋㅋㅋ 음모는 무슨 음모야 ㅋㅋㅋ
무림고 학생을, 그것도 숭무고 학생을 스토킹했으니 결코 평범한 스토커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스토커에 관한 이야기로 잠시 커뮤니티가 타올랐다.
-아니 음모까진 아니어도 진짜로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음. 다른 곳도 아니고 숭무고 학생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했다는 건 업계의 전문가란 소리인데 이런 전문가가 아무런 이유없이 박소진을 스토킹하진 않았을 거 아냐
-일리가 있네?
-그거야 모르지. 팬심에 일반인이랑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박소진이 마음에 들었는데 마침 그런 능력이 있으니 스토킹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일단 업계 전문가를 김도진이 잡았다는 것도 존나 대단한 일인데 언급이 안 되네 ㅋㅋㅋㅋ
-김도진이라서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음.
-ㄹㅇㅋㅋ
그렇게 갑론을박이 벌어지며 새로운 장작으로 커뮤니티가 타오르고 있을 때, 도진에게 붙잡힌 스토커 신용진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엿 됐구만.'
설마 잡힐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쪽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신용진이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조직에서 무려 10년이 넘도록 한 번의 실수조차 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해 온, 무공 실력 이상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한데 그런 자신이, 동종 업계의 실력자도 아니고 심지어 정식으로 무림에서 활동하는 무인도 아닌 학생에게 허무하게 당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하는 괴물 새끼지?'
순수하게 무공 실력으로 압도당했다면 그 자체로 괴물이지만 만약 '이쪽 업계의 기술'로 압도당한 것이라면 더욱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또래 중 따를 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경지에 있는 '양지의 무공'만이 아닌 이쪽 업계의 '음지의 무공'까지 상식을 벗어난 수준으로 익히고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무서운 건, 이게 양지의 무공 실력으로 제압당한 것인지 아니면 음지의 기술로 제압당한 것인지 그조차 구분하지 못한다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그를 제압한 두려운 놈이 취조실로 수사관들과 함께 들어왔다.
무림인에 의한 범죄였기에 무림맹과 민간 수사 기관의 수사관들이 함께였다.
이 자리에 도진이 함께 한 것은 아마도 참고인 자격이 아닐까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백할 생각이 있습니까?"
수사관 중 한 명이 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신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고 그저 미행하며 사진을 찍어주면 돈을 준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뿐입니다."
신용진의 대답에 수사관이 말했다.
"호번용역 소속이시군요. 한데 이 호번용역은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였습니다. 노숙자 등의 혈연도 일정한 주거지도 없는 사람들의 이름들로 채워져 있고 유일하게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당신이군요."
수사관의 말에 신용진의 눈이 커지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 뭐라구요? 그, 그럴 리가……!"
큰 충격을 받은, 마치 사기 피해라도 당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신용진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내, 내가 회사에 투자한 돈이 얼만데! 그럴 리가! 그럴 리가!"
"……."
호번용역은 곧 상장할 거라며 직원들의 투자를 유도했고 신용진은 그것을 믿고 큰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한데 조사 결과 호번용역은 몇 시간 전에 갑자기 폐업신고를 했으며 명목상의 사무실도 텅 비어 있었다.
…전형적인 이쪽 업계의 수법이었다.
고스트 등을 운용하는 흑도는 이런 식으로 꼬리를 자른다.
그리고 만약 붙잡힌 자가 있다면 그는 신용진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곤 했다.
누가 보아도 조직의 일원이다.
한데 이런 식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너 그쪽 요원이잖아 새끼야'하고 추궁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심증이 강하더라도 증거가 없는 이상 유죄로 몰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자료를 관리하는 고스트 업계 특성상 이렇게 되면 몸통을 잡을 수가 없다.
그것을 신용진도 알고 수사관들도 알았기에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도진이었다.
"안개파도 꽤 정석적으로 일을 처리하네요?"
"허어어어억?!"
여상스런 도진의 말에 신용진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경악해 표정 관리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그만큼 도진이 언급한 '안개파'는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신용진의 경악에 도진이 씨익 웃었다.
"왜요? 모를 줄 알았어요?"
"어, 어, 어, 어떻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신용진이 물었다.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봐야 믿지 못할 일이었고 해봐야 좋을 게 없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니까 정답은 '미래의 지식'이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취미를 계속해 나가던 곽필섭은 도진의 전생에서 결국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그다지 뜨지 못한 여배우 한 명이 자살하며 남긴 유서로부터 시작된 파장은 관현 그룹을 뒤흔들 정도로 커져 버렸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바로 '안개파'였다.
흑도 태생인 관현 그룹은 덩치를 키우면서 겉으로는 흑도의 흔적을 지웠지만 안으로는 오히려 더욱 흑도로서의 무력을 키워 나갔다.
현대 무림에서 재벌은 금력과 인맥을 통한 권력만이 아닌 무력 또한 필수로 갖춰야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관현 그룹이 한 가지 달랐던 점은 그 무력을 양지가 아닌 음지에 집중했다는 부분이었다.
가진 역량을 쏟아부어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음지의 일을 전담할 무력집단을 따로 키웠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안개파였다.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관현 그룹의 큰 힘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인 안개파가 곽필섭으로 인해 드러난 것이었다.
당시의 사건이 워낙 어마어마하고 충격적이어서 사회에 관심을 두기 힘들었던 도진 또한 사건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고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한 번 오공태를 포함한 숭무회를 조질 때 사용했던 방법이었기에 더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
"거기에 송 뭐시기 씨가 있잖아요? 그분이 자료를 꽤 살뜰하게 모아두셨더라구요."
"……!!"
신용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송씨 성을 가진 남자.
짐작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사로 관련 그룹 셋째가 꽂아 넣었던 남자였다.
이렇다 할 특장점이 없던 셋째는 넷째 곽필섭에 밀려 찬밥 대우였는데 그 때문에 곽필섭에 대한 원한이 컸다.
그 셋째가 곽필섭을 조지려고 자료를 넘겼다, 라고 신용진은 추론했다.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상상도 못할 미친짓이다.
하지만 사람이 눈이 돌아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법이다.
애초에 눈앞에서 벌어졌으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은 그저 현실 도피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사실은 좀 다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아, 물론 제보자의 신분은 비밀을 엄수해야 하니 그 사람 이름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신용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또한 나름의 재능을 가지고 무공을 익힌 천재였기에 뒤에 나올 내용을 대번에 짐작했기 때문이다.
도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자백했다고 할 겁니다. 불만은 없으시죠?"
"안 돼. 안 돼. 안 돼!!"
제대로 문장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고장난 로봇처럼 안 돼를 연발하는 신용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백한 것이 되면, 안개파의 '보호'를 받고 있는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제발! 제발! 안 돼!!"
완전히 이성을 잃고 바짓단을 붙잡고 늘어진 신용진을 내려다보며 도진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협조하셔야죠?"
* * * *
-충격! 스토커의 소속은 관현 그룹의 흑도, 안개파였다!
-관현 그룹, 거대 흑도 문파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는 쓰나미 같은 충격으로 사회를 강타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잠깐만. 누가 정리 좀 해줘 봐.
-몰르겟슴.. 몬가..몬가..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진 거 가틈..
그저 뜨기 직전의 아이돌 한 명을 중심으로 했던 이슈가 상상도 못할 대사건으로 번졌다.
관현 그룹이 흑도 태생이라는 건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대기업 정도 되면 구린 일을 처리할 흑도와의 연결점이 있거나 직접 흑도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 또한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팩트'로 드러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럴 것이다와 그렇다는 0과 1만큼이나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으니까.
도진에 의해 붙잡힌 스토커의 소속이 관현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흑도 문파인 안개파의 소속이라는 게 갑작스런, 그러나 대대적인 본거지의 압수수색으로 드러나 버렸다.
상식적으로 관현 그룹 정도 되는 대기업이 보유한 흑도 문파의 중요 문서가 보관된 본거지가 이렇게 빨리 드러나고 압수수색 당할 거라곤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관현 그룹은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치부가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양지로 끌려나온 안개파의 자료 중에 근래 이슈가 되었던 박소진의 스토킹 의뢰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엄청난 관심 속에 관현 그룹으로서도 막는 것이 불가능한 이슈로 대번에 퍼져 나갔고 그룹 차원의 대위기가 되었다.
"스토킹을 사주한 사람이 바로 곽필섭입니다."
'미친 년이!!'
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박소진이 핵폭탄에 버금가는 발언을 해 버렸다.
누가, 왜 안개파의 고스트를 고용하여 박소진을 미행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고 그런 대답을 해 버린 것이다.
곽필섭은 그 똑똑한 머리로 이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조사를 받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 초조함을 다 감추지 못할 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연락조차 받지 못할 만큼 신속하게 일이 처리되었고 그 때문에 최소한의 대비조차 하지 못했으니 더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대동한 자리에서 곽필섭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증거도 없이 일방적인 증언만으로 이래도 되는 겁니까?"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입을 열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 속에서 끓는 화가 그렇게 묻도록 만들었다.
그 물음에, 박소진의 곁에 앉아 있던 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역으로 물었다.
"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