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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70화 (170/741)

170화

결국 문방구 엔터는 백호와 소진 사이의 경호 계약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습으로 아이돌 경호를 하게 됨.

도진이 SNS에 그 일을 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무림학교 고등반 학생은 1학기를 마치면 정식으로 진짜 무림에서의 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실습이 가능해진다.

1학기를 마친 도진은 거기에 따라 '사회 실습'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는데 기념할 만한 첫 실습을 하게 되었음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이다.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도진의 SNS에 그런 글이 올라갔으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 되었고 대번에 기사까지 떴다.

-잠룡 김도진, 동갑내기 아이돌의 경호로 첫 실습하게 돼…….

-잠룡의 첫 실습은 폭룡의 회사, 의뢰자는 숭무고 동기.

법적으로도 어떻게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사까지 뜰 정도로 일이 알려졌으니 거부할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경호를 맡게 된 이유, 스토킹 문제에 관해선 언급이 되지 않았던 것 정도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곽필섭의 아래에 있는 설광수는 그 스토커가 다름 아닌 곽필섭의 사주임을 알고 있었기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내용이 알려질 일이야 없겠지만 언론의 관심이 향한다는 것만으로도 곽필섭의 짜증을 받아내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 하나만으로는 설광수의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될 수 없었다.

대표실 창가에 선 설광수의 눈에 마침 레드슈를 태운 밴이 들어오고 있었다.

본래는 레드슈, 그리고 레드슈를 관리하는 그의 수하 겸 매니저만이 타고 다니던 차.

하지만 이제는 그 차에 씹어먹어도 모자랄 원수, 김도진이 함께 타고 있었다.

"완전 밀착 경호가 아니고 아이돌이라는 특성상 남자인 제가 숙식을 함께 할 순 없겠지만 가능한 부분은 함께 다녀야죠."

그렇게 말하며 아침저녁으로 레드슈 옆에 붙어다녔다.

도대체 저렇게 붙어다니면서 수련은 언제하는지 모를 일이다.

덕분에 레드슈를 관리하던 매니저 또한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지시가 내려온 뒤로 약자를 괴롭히는 취미가 있던 매니저 또한 레드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쾅쾅쾅!

아침에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숙소의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빨리 빨리 준비하자!"

굵은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치면 겁을 집어먹고 초조한 기척이 느껴지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한데 도진이 온 뒤로는 그런 아침의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제가 올라가도록 하죠."

"그건……."

"매니저가 그렇게 힘든 직업이라면서요. 이 정돈 제가 해드리죠."

웃으면서 말하는데 도저히 토를 달 수 없게 만드는 기세를 흩뿌리니 매니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른이 다 되어 가는 나이.

하지만 흑도의 찌꺼기 정도밖에 안 되는 그로서는 도진의 말에 토를 달 실력도 배짱도 없었던 것이다.

똑똑똑-

그리하여 레드슈의 아침은 거칠고 위협적인 소음 대신 마음을 편안하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로 바뀌었다.

"…신기해."

"그러게."

유혜진과 여은영이 가벼운 화장을 하며 섭음술로 말했고 박소진 또한 공감했다.

매니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도축을 할 동물을 찾는 발소리 같아서 세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었었다.

하지만 그 매니저를 대신하여 문을 두드리는 도진의 노크는 신비할 정도로 세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그야말로 구세주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녀석. 제법 재주를 부리게 되었구나.

그리고 그것은 그녀들의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현실에서의 내공 운용에 신경쓰기 시작한 도진은 그동안의 깨달음에 힘입어 움직임에 내공을 담아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성취를 얻은 것이다.

달칵.

"안녕."

소진이 문을 여니 오늘도 실습 규정에 따라 교복을 입고 백설을 포인트로 차고 있는 도진이 웃으며 인사했다.

"응, 안녕."

"안녕!"

채비를 마친 레드슈 멤버들을 데리고 내려오니 매니저는 밴에 시동을 건 채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혜진과 여은영이 인사했지만 매니저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박소진 또한 그런 매니저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그러나 도진은 아랑곳않고, 오히려 도발하듯 웃으며 말했다.

"인증샷 한 번 찍을까?"

"…인증샷?"

"응. SNS에 올리게."

"음……."

유혜진과 여은영이 머뭇거렸다.

두 사람은 박소진과 달리 문방구 엔터에 반기를 들지 않았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도진과 계약하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소진은 달랐다.

"같이 찍어줄게!"

"좋아."

소진이 도진의 곁으로 다정하게 몸을 숙이며 '토끼 브이'를 했고 도진 또한 이제는 능숙하게 표정을 만들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경호 업무 중.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리자마자 반응들이 쏟아졌다.

-? 경호중 맞음?

-이거 돈내고 하는 거 맞죠? 맞다고 해주세요 제발;;

-부러우면 지는 거다. 참아라.

-이미 졌다. 졌다고! 변명의 여지도 없이 져 버렸다고 끼엑껙껙!!

잠룡 김도진의 첫 경호 실습.

그리고 그 대상이 같은 숭무고 42기 동기이자 슬슬 뜨고 있던 아이돌 걸그룹 레드슈였기에 SNS의 글 하나하나가 큰 관심을 받고 기사화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관심은 설광수를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설 대표, 요즘 운영이 좀 잘 안 되시나 봅니다.

'씨발! 씨발! 씨발!'

석 국장의 문자에 설광수는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안 그래도 곽필섭의 무언의 압박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는데 콩고물이나 받아처먹는 게 다인 미운놈이 깝죽대니 울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요 며칠 접대 좀 못 받았다고 칭얼대는 꼴이라니.

달칵.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온 레드슈에게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빨리빨리 안 다니고 뭐하는 거야!!"

유혜진과 여은영이 대번에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박소진은 잘못한 게 없다는 얼굴로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었고 그것이 설광수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저희 10분이나 일찍 왔는데요."

"뭐야!"

쿵쿵거리며 박소진에게 다가간 설광수는 그 두터운 손을 번쩍 들었으나.

스윽-

박소진의 어깨를 감싸 자신의 곁으로 당기고선 물끄러미 바라보는 도진의 행동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손버릇이 별로 안 좋으신 것 같네요?"

"……."

그것은 과거 흑도에 몸담았던 설광수의 버릇이었다.

예전만 해도 정말로 남녀 가릴 것 없이 손찌검을 했었다.

요즘들어 그에 대한 인식이 민감해져 손찌검은 자중하게 됐지만 위협 행위만큼은 아직 고치지 못한 것이다.

도진의 조용한, 그러나 위압적인 시선에 설광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손을 내렸다.

"크흠.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앞으론 조심해 주세요. 아무래도 경호 실습이 처음이다보니 제가 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거든요."

파르르-

설광수는 분노로 손이 벌벌 떨렸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것을 억지로 삭여야만 했다.

경호 계약 체결 후 며칠째.

문방구 엔터는 매일 이런 그림이었다.

소진이 저항하고 그것을 도진이 보호하며 설광수 일당은 부들부들 떨며 화를 억누르는 것.

그리고 이 화를 참는 사람 중엔 곽필섭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씨발! 씨발! 씨바아아아아아알!!"

곽필섭은 자신의 것을 남이 마음대로 손대는 걸 결코 용납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라 점찍은 여자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 성격에 도진이 박소진의 곁에 붙어 있는 걸 보는 게 결코 괜찮을 리가 없었다.

조져 버릴 수 있는 놈이었다면 당장에라도 조졌겠지만 그것이 도모할 엄두가 나지 않는 김도진이었으니 애꿎은 물건들을 부수며 소리를 지르는 것 말곤 도리가 없었고, 그러다 결국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후욱, 후욱. 처리해 버려."

"…알겠습니다."

이미 남의 손을 타 버린 것.

그렇다면 차라리 처분해 버리자.

곽필섭다운 결론이었고 그 명령에 따라 아랫것들이 움직였다.

-속보! 잠룡 김도진, 동갑내기 아이돌 동기와 열애중?!

시작은 스캔들 기사였다.

걸그룹 멤버에게 있어 아직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열애 기사.

도진의 전생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저항하던 박소진을 꺾기 위해 했던 수작 중 하나였다.

이 열애설을 시작으로 소진은 악플에 시달렸으며 그 뒤로도 이어진 여러가지 악재에 결국 꺾여서,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생엔 달랐다.

소진을 노린 열애설 기사였는데 정작 대중의 관심은 도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나마도.

-않이..

-또 너야? 화화공룡?

-화화공룡 닉값, 아니 별호값 오지네;;

열애설이 터졌는데 소진을 욕하는 내용은 없고 도진을 욕하는 내용도 없었다.

오히려 장난스레 '화화공룡'을 놀리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의 전적과 주변의 인물들이 인물들이다보니 도진이 엮인 열애설은 조금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봉 한유아와도 친하고 오성의 SNS 여신인 오성아와는 이미 한 번 열애설이 터지기까지 했다.

더더군다나 비봉 서소담과는 붙어다닌다고 할 정도로 특히나 친했음에도 열애설이 터지지 않을 만큼 '선'을 지키는 게 도진이었는데 팩트체크조차 되지 않은 갑작스런 박소진과의 열애설로는 논란이 생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지금 잠룡 김도진만큼이나 여론이 좋은 인물이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더더욱.

'엿같네.'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 반응에 설광수는 전자 담배를 짓씹었다.

그래도 꼴에 무림인이라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 설광수는 그러나, 전자 담배를 물고 있는 눈동자가 조금 풀려 있었다.

"후우……."

전자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설광수는 그것을 내뱉으며 입꼬리를 주욱 찢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속보! 걸그룹 레드슈의 리더 박소진, '실크 로드 죽순이'였다?

* * * *

그 뉴스는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왔다.

현역 걸그룹이, 그것도 요즘 크게 화제가 되었던 걸그룹의 리더가 고급 유흥가로 유명한 실크 로드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다른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찾는 곳으로 유명했던 만큼 '그냥' 출입하는 것이었다면 이미지에 타격이 좀 갈지언정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에 포함된 몰래 찍은 듯한 사진에는 풀메이크업에 복장까지 무대 의상 수준이었기에 수많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콜걸임?

-일단 레드슈 스케쥴 중에 실크 로드는 없음.

-? 이건 좀 중립 기어 박기 힘든 거 같은데.

여기에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들의 증언이 기름을 부었다.

-앨범 작업 중에도 실크 로드에 자주 드나들었다.

-워낙 잘 꾸미고 다니길래 따로 스케쥴이 있나 생각했었다.

이쯤 되니 신중하던 여론마저 등을 돌리고 박소진의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꿈에서도 악몽에 시달릴 정도의 악플들이 쏟아짐은 물론이었다.

덩달아 열애설로 엮였던, 박소진의 경호를 맡았던 도진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김도진도 사실 뒤로는 호박씨 까고 있는 거 아님?

-말조심하셈. 잠룡은 다름.

-ㅇㅇ 그동안 행보만 봐도 그런 개소리는 못할 텐데.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니들은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 이미지를 다 그대로 믿냐?

"킬킬킬. 그래, 이래야지."

댓글들을 읽으며 곽필섭은 일그러진 얼굴로 킬킬거렸다.

이미 남의 손을 탄 더러운 박소진, 손을 댔던 김도진까지 동시에 욕을 먹는 상황이 미쳐 버릴 것처럼 부풀었던 화를 가라앉힐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작업하면 박소진은 완전히 보내 버리고 김도진 또한 그동안의 이미지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여론을 뒤집을 순 없을 거다.

곽필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업을 독촉했고 그 생각대로 되는 것 같았다.

한데.

-속보! 걸그룹 레드슈의 리더 박소진을 스토킹하던 무림인 구속!

"?"

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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