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곽필섭의 취미는 '갖기 어려운 것을 공을 들여 가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으로 보이는 그것은 그러나 사실 역겨울 만치 악취미였는데, 그 갖기 어려운 것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쉽게 꺾이지 않을 만큼의 의지를 가진 여자.
관현 그룹의 넷째로 태어났다.
그것만으로도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인데 그 금수저에는 숭무고에 입학할 수 있을 만큼의 재능마저 코팅되어 있었다.
곽필섭은 당연히 성공 가도를 걸었으며 관현 그룹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강자로 살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는 삶.
그 삶에서 곽필섭은 권태를 느꼈으며, 본성에 묻어 있던 가학성이 함께 깨어나고 만 것이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노력하여'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노력은 가학성을 충족할 수 있는 형태여야만 했고, 그리하여 갖게 된 취미가 곽필섭의 배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자들을 망가뜨려 손에 넣는 게 된 것이었다.
손에 넣는 것까지가 취미였기에 목적을 달성하면 미련없이 쳐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변해가는 표정을 담은 사진들은 곽필섭의 PC에 고스란히 남았다.
이미 몇 명이나 되는 피해자를 만들어냈던 그 취미의 타깃이 이번엔 박소진이 되었다.
하찮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 분수에 맞지 않는 재능과 미모를 타고 난 박소진.
여기에 성격까지도 분수를 모르고 당당한 모습이어서 곽필섭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던 것이다.
아이돌을 목표로 하는 이 여자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욕구를.
그래서 몇 달이나 공을 들여 작업을 했다.
처음에 일부러 비호감을 느끼도록 학교에서 압박을 주었다.
그렇게 '비호감 스택'을 쌓은 뒤 이번엔 소속사를 찾아가 '어설픈 호감 스택'을 쌓았다.
이렇게 밑작업을 끝낸 뒤 성의없는 고백을 했고 의도대로 박소진은 고백을 거절해 주었다.
한 가지 예상을 벗어났던 건 고백을 거절하는 박소진의 눈빛이 곽필섭에게 일말의 여지조차 없었다는 부분이었다.
곽필섭에게 있어 그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상당히 기분 더러운 일이었고, 그 분노와 도진에게 치이며 쌓였던 분노가 더해져 박소진을 망가뜨리는 과정에 좀 더 공을 들이게 만들었다.
"슬슬 본 작업 들어갈 거야, 설 사장."
"예, 알겠습니다. 곽 실장님."
곽필섭은 통보했고 그 통보에 고개를 숙인 건 문방구 엔터의 대표인 설광수였다.
놀랍게도, 설광수부터가 곽필섭의 영향 하에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깝지만 뭐 시간은 많으니까.'
레드슈는 본래 문방구 엔터의 차기 캐시카우로 키우려 했다.
현재 문방구 엔터의 수익을 책임지고 있는 두 그룹은 이미지 소모가 격심했고 하도 오래 굴려 수명이 다했다고 봐야 할 상황이라 신예 그룹이 필요했다.
때문에 슬슬 레드슈가 1위를 차지하며 주가를 올려야 할 때였으나…… 설광수는 곽필섭이 박소진을 찍었다는 말에 미련없이 레드슈를 버림패로 쓰기로 했다.
설광수 또한 쥐꼬리만한 재능이나마 있어 무공을 익혔다.
무공을 익히고 이제 겨우 50대인 그에게 있어 새로운 그룹을 키우기 위한 몇 년 정도는 얼마든지 새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껏 들어간 투자 자금 또한 어차피 곽필섭을 통하여 새로 수혈받을 수 있었으며 레드슈를 바치는 대가로 얻게 될 여러가지 것들은 투자 자금 이상의 이득을 그에게 줄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래서 곽필섭의 취미 활동을 전폭적으로 도왔다.
"예? 투자가 더 힘들다구요?!"
일부러 레드슈의 멤버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한창 새로운 앨범에 박차를 가하며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고까지 밑밥을 깐 뒤 터뜨림으로써 압박감을 주었다.
그 압박감을 바탕으로 아슬아슬한 선을 넘지 않으며, 넘으라고 강요하며 접대를 돌렸다.
여기에 박소진은 곽필섭의 지시에 따라 특별 코스로 전문 흑도 집단의 스토커까지 붙었다.
어디에 이야기를 털어 놓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레드슈의 멤버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유혜진과 여은영은 벌써 무너졌고 그것을 박소진 혼자서 어떻게든 받치고 있는 상황.
밥은 이미 다 되었고 뜸만 들이면 되겠다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설광수는 예상했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제가 석 국장님이랑, 홍 피디님이랑 자면 뭘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동안 필사적으로 언급하길 피하던 접대를 제 입으로 꺼내 놓으며 박소진은 항복 선언을 했다.
'끝났군.'
설광수는 뒤에서 비죽 웃었고 곧 곽필섭에게 연락을 넣었다.
요리가 끝났으니 이제 드시기만 하면 된다고.
'레드슈는 실크 로드 전문으로 굴리면 되겠군.'
곽필섭의 취미는 그것을 손에 넣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제 손에 들어오기만 하면 금방 흥미를 잃는다는 말이다.
며칠을 못 가 박소진은 곽필섭에게 버림받을 것이고 그러면 버려진 장난감은 다시 문방구 엔터의 소유가 된다.
설광수는 그렇게 버려져 완전히 고분고분해진 장난감을 실크 로드 전용 접대 그룹으로 쓸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VIP'들이 기존의 아이들을 질려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까지 드는 설광수였다.
'자 그럼 VVIP를 모실 준비를 해볼까.'
연락을 넣었으니 곽필섭이 오늘 사무실을 찾을 것이었다.
그 준비를 할 생각으로 30분 일찍 출근했던 설광수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을 마주해야만 했다.
"……?"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이다.
일반인이라면 탄탄한 몸에 큰 키라 할 만한, 그러나 무림인이라면 호리호리한 체구에 평범한 키라고 평할 만한 체격 조건.
하지만 그 인상과 체격이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정도로 특별한 기세가 어려 있으니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
"……잠룡?"
바로 잠룡 김도진이었다.
'왜?'
설광수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자신의 회사 로비에 잠룡이 있는지, 그것도 레드슈와 함께 있는지 말이다.
'포, 폭룡?'
심지어 이제야 알았는데 그 옆에 있는 건 무려 폭룡 류대현이었다.
요즘 활동이 뜸해 잠룡보다 늦게 알아 보았다.
이쯤 되니 설광수는 둘이 있는 이유를 추론하길 포기하고 직접 묻기로 결론을 내렸다.
"김도진 학생과 류대현 학생이시군요.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다가와 묻는 설광수에게 도진은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레드슈와 경호 계약을 체결한 김도진입니다."
"……?"
이게 무슨 소리지?
그동안 단련한 처세술로 머릿속에 떠오른 그 강렬한 의문을 입밖으로 내지 않을 수 있었다.
허나 얼굴에는 얼핏 그 감정이 드러나고 말 만큼 도진의 대답은 뜬금이 없었다.
도진은 그걸 다 읽었으면서도 모른 척 웃으며 서류를 내밀었다.
설광수는 반사적으로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그 서류는 민간 무림 군사 기업 '백호(白虎)'의 이름으로 박소진에 의해 경호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류였고 대표 파견 요원으로는 백호를 운영하는 세가의 후계자인 폭룡 류대현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세부 요원 중 한 명이 바로 '인턴 김도진'이었다.
'아니 시발 이게 뭐냐고.'
머리가 복잡했다.
뭔가 일이 아주 잘못됐는데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언급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어떻게든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위해 고개를 든 설광수는 그러나, 그 작업에 착수하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를 맞아야만 했다.
"……."
'허어억!'
열린 문 너머로 곽필섭이 보였다.
찾아오기로 했던 곽필섭이 생각보다 더 일찍 방문한 것이었다.
그 곽필섭의 눈동자가 죽일 듯한 기세로 설광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광수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머리가 펑, 오버 히트해 버렸고 그 사이 김도진은 곽필섭의 일행에게도 같은 인사를 했다.
"레드슈와 경호 계약을 체결한 김도진입니다."
인사를 한 김도진은 곽필섭과 눈을 맞추고선 씨익 웃었다.
"이런 데서 동기를 보니까 반갑네?"
말은 반갑다인데 태도나 뉘앙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조롱하는 기색이 가득하여 곽필섭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게 만들었다.
거기에 위기감을 느낀 설광수가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선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소속사도 모르게 경호 계약 체결이라니요?"
그 물음에 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소진이가, 아 공적인 자리니까 소진 양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 방송도 아니고 뭐 그렇게까지 따질 건 없지. 편한 대로 해도 돼."
"아 그렇군요. 그럼 편하게 할게요. 소진이가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근데 마침 제가 이번에 '실습'으로 류대현 선배네 회사의 인턴을 하게 돼서요. 그러면 제가 경호를 해 주겠다, 이렇게 된 거죠."
'아니 시발.'
그게 궁금한 게 아니라고.
설광수는 속으로 욕했다.
도진은 그런 설광수의 터지는 속을 아랑곳 않고 이제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경호 계약이란 게 소진이나 레드슈의 연예게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스토커를 잡아주면 소속사에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 그……."
"법적으로 검토도 해 봤는데 따로 문제되는 사항도 없다던데요."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부글부글 속에서 끓는 게 있는데 논리적으로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화를 만만한 박소진에게 분출하려는데 이번에도 도진이 한 발 빨랐다.
슥-
마치 보호하듯 박소진의 곁에 서며 물었다.
"오히려 잘 된 거 아닌가요?"
"…잘 되다니요?"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제가 좀 영향력이 있잖아요. 제가 알기로 레드슈는 숭무고 재학생으로 이미지메이킹을 해서 더더욱 스토커 관련 신고를 하기 껄끄러울 텐데 반대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뢰를 수락했다고 하면 긍정적인 이슈가 되는 거 아닌가요? 연예인은 관심이 생명이잖아요."
"야, 나도 있잖아."
"아,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선배."
"아냐아냐. 괜찮아."
'이 시발…….'
내용을 떠나서 이 자리의 다른 이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도진과 류대현의 태도가 화를 돋군다.
"…꼭 그렇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거 같습니다."
설광수는 억지로 화를 다스리며 입을 열었다.
"김도진 학생이 엮여서 혹여 스캔들이 날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제 겨우 뜨기 시작한 아이돌에게 스캔들은 치명적입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도진은 그렇게 받아치고선 말을 이었다.
"제가 이래봬도 임자 있는 몸이거든요. 딸도 있어요."
"……예?"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 도진은 설광수의 한 발 늦은 반문에 씨익 웃고선.
"농담입니다."
그렇게 말했다.
'이, 씨……발.'
파르르…….
손발이 떨린다.
무공을 익혀서 그럴 리가 없는데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혈압이 오른다.
재미는커녕 오히려 짜증만 나는 소리를 쳐 해 놓고서 속 편하게 웃고 있는 면상을 진심으로 후려갈기고 싶었다.
물론 그로서는 그럴 실력도 능력도 없었으니 상상에 그쳐야만 했다.
그렇게 설광수의 속을 있는 대로 뒤집어 놓은 도진이 말했다.
"뭐, 정말로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경호도 레드슈의 스케쥴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협조하면서 진행할 테니까요. 스토커만 잡으면 끝나는 계약이라 상황에 따라선 금방 경호 업무가 끝날 수도 있겠네요."
도진은 씨익 웃었고 설광수와 곽필섭의 속은 뒤집어졌다.
* * * *
"으아아아아아!! 씨발!! 씨발!! 씨발 새끼가아아아아아!!"
그날 오후.
개인 사무실로 돌아온 곽필섭은 집기들을 있는 대로 때려부시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숨을 헐떡이며, 체력을 모두 소진하는 것으로 화를 겨우 가라앉힌 곽필섭이 똘마니를 불러 죽일 듯한 기세와 눈동자로 말했다.
"후욱, 후욱. 처리해 버려."
"…알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커다란 스캔들 하나가 터졌다.
-속보! 잠룡 김도진, 동갑내기 아이돌 동기와 열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