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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65화 (165/741)
  • 165화

    도진의 생애 첫 고등학교 여름방학은 충실하면서도 즐겁게 채워졌다.

    -동생들이 열심히 무공을 익힘.

    오전에는 동생들의 무공 수련을 봐 주었다.

    -와, 동생들 겁나 귀엽다..

    -잠룡한테 집중 지도를 받는 거잖아. 너무 부럽다...

    -형아 나도 가르쳐주세요 응애

    SNS에 동생들과 함께 수련하는 사진을 올리면 그런 반응들이 올라오곤 했다.

    -멋진 가구들로 집이 채워짐.

    방학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우벽진과 함께 만들었던 가구들이 완성되어 드디어 집 안에 배치되었다.

    -와.. 진짜 멋지다..

    -잠룡&우벽진 명장의 콜라보 수제 가구 ㄷㄷㄷ;;

    -와, 저거 팔면 얼마일까?

    예술 작품 같던 집의 퀄리티를 더욱 높여주는 가구들의 사진은 온갖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고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현재 후기지수 중 가장 핫한 잠룡과 대한민국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는 우벽진이 손수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가구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진님 이거 팔로워 추첨 이벤트로 작은 거라도 좋으니 증정 이벤트 해주시면 안 돼요?

    '음?'

    도진은 SNS에 올라온 댓글 중 하나에 눈길을 주었고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어떠세요, 우 명장님?"

    우벽진에게 물으니 우벽진은 물론이요 곁에 있던 우서연까지 눈을 반짝였다.

    "이거 명성공방 차원에서도 지원해서 조금 더 크게 여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대놓고 잠룡의 이름을 걸고 물건 구매시 추첨권 증정 같은 행사를 할 수는 없다.

    그런 건 도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잠룡과 명성공방의 이름으로 어디까지나 순수한 '이벤트'로만 진행해도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우서연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었다.

    우벽진은 그런 식의 계산을 하지는 않았으나 꽤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검토해 봐도 좋겠군."

    그렇게 이벤트 하나가 계획되기도 했다.

    집행부의 일, 친구들과의 시간, 부모님의 무공을 봐드리는 등 그 어떤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방학은 사건 없이 무난하게, 그러나 그래서 즐겁게 채워졌고 2학기가 성큼 다가왔다.

    따로 개학식 같은 건 없었다.

    대학의 시스템을 채용한 숭무고였기에 모든 수업의 종강이 방학의 시작이었듯 수강 신청과 함께 첫 수업의 시작날이 2학기의 시작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도진은 기숙사 앞 공용 식당의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 모여 앉았다.

    소담과 나지윤, 주정아와 오대용까지 네 명의 친구들이다.

    시간표를 모조리 다 맞출 순 없었다.

    그러나 가능하면, 겹치는 게 있다면 함께 듣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 사이의 도진을 다른 학생들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42기 신입생들 중 배경과 무공 양쪽에서 최고였던 에스포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른 도진.

    심지어 2학년마저 압도했으며 유구한 전통의 일진 클럽인 숭무회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작년의 전설이면서 현재진행형인 검봉에 이어 숭무고에서도 격이 다른 무인이 된 도진을 그들은 선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비봉 옆자리에 앉아 보고 싶다."

    "나도 금봉을 선배라고 불러 보고 싶다……."

    "그냥 저기에 끼어 보기라도 하고 싶다."

    "나는 지윤이 옆자리에 앉아 보고 싶다."

    "……뭐 이 새끼야?"

    뭐, 다른 이유들도 여럿이 있긴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식당의 풍경에 일순 소요가 일어났다.

    "어?"

    "뭐야. 3학년 선배잖아?"

    술렁이는 그들의 시선은 식당 밖의 한 무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이 다름 아닌 폐부된 숭무회 소속의 학생들, 그러니까 일진들이었기 때문이다.

    핵심 인물들이 정학 처분을 당하고 일진 클럽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숭무회는 폐부되었다.

    겨우 처벌을 피한 '피라미'들은 숨을 죽였고.

    한데 그 숨죽이던 피라미들을 이끌고 당당하게 식당으로 걸어들어오는 양복 차림의 '무림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숭무회 소속이었던 3학년생이었다.

    무림고 3학년생은 학생과 무림인의 사이에 있다.

    3학년이 되면 학교의 수업보다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와 실습을 넘어 본격적인 '실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나 방학에 그 실전들을 거침으로써 학생보다는 무림인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정식 무림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은 3학년생은 그래서 학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1년의 시간을 더 발전한 게 아니라 정식으로 무림에서 살며 급격히 강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3학년생이 나타났으니 학생들이 술렁이는 것이다.

    더더욱 그는 숭무고의, 그것도 숭무고 일진들의 모임이라는 숭무회 출신이었으며.

    "그, 금무(金武)에 특채로 간 성지수 선배다."

    '금무'에 채용된 무인이었다.

    금무는 숭무회 출신이 특히 많이 모였다는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이다.

    무림 업계의 회사는 그 성격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데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이라고 하면 기존의 민간 군사 기업과 같은 성격을 띠는, 무림 업계에서도 가장 무력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민간의 의뢰를 넘어 '전쟁'마저 수행하는, 가장 위험하고 혹독한 환경이기에 그만큼 무력 수준 또한 높을 수밖에 없는 곳.

    그런 곳에 특채로 갔다는 말에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졌고 그 소란의 중심이 된 성지수는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들어온 성지수가 도진의 앞에 섰다.

    그리고 도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잠깐 시간 되나?"

    부드럽지만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느낌이 묻어나는 어투였다.

    도진은 성지수와 눈조차 맞추지 않은 채 말했다.

    "선배한테 쓸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없지는 않네요. 할말 있으면 해 보세요."

    "……."

    웅성웅성…….

    도진의 대응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성지수의 표정 또한 한순간 굳었다가 겨우 풀어졌다.

    "…선배를 상대로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저는 일진놀이하던 오물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타입이라서요. 그래도 선배니까 오물에서 등급을 높여서 사람 취급은 해드리고 있는 건데."

    "이 건방진 새끼……!"

    뒤에서 쌍심지를 켰던, 피라미라 겨우 징계를 피할 수 있었던 일진 중에서도 찌꺼기는 도진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더니 입을 딱 다물고 말았다.

    방학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성장을 이룬 도진의 눈빛은 피라미가 감히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근히 드러난 도진의 기세에 성지수가 눈을 가늘게 뜨다 말했다.

    "그래, 그렇군. 그러고보니 너도 그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지. 적대적인 것도 이해할 만해."

    어떻게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포용력을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조롱하는 내용이다.

    도진은 피식 웃고선 물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으로 오셨나요?"

    도진에게 그 과거는 부끄러운 것이되 조롱이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지 남에게 조롱받을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과거를 극복하고 나름의 끝맺음을 했기에 더더욱 조롱이 될 수 없었다.

    성지수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는 도진의 모습에 도발을 포기하고 본론에 들어갔다.

    "숭무회를 집행부의 권한으로 폐부했다고 들었어."

    "그래서요?"

    "일부 구성원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학생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리고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는 부를 없애 버리는 건 과한 처사이지 않을까."

    "그래서요?"

    "…폐부를 철회하라는 말을 하려고 왔다."

    꼬박꼬박 대답은 하는데 그래서 더욱 성질을 긁는 도진의 태도에 성지수는 생각했던 내용들을 다 쳐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우습네요."

    "…우습다고?"

    "네. 제가 아주 귀한 시간을 써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첫째, 일진놀이하는 쓰레기들이 모여서 만들었고 쓰레기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던 동아리의 추억과 전통이 뭔지 생각할수록 우스우니까 이게 첫 번째 이유. 아, 우습기만 한 게 아니라 역겹기도 하네요."

    "……."

    "두 번째. 폐부를 철회해달라고 말할 거면 제가 아니라 한유아 선배한테 갔어야죠. 왜, 굳이, 1학년인 저한테 오셨을까?"

    도진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아! 그렇구나! 한유아 선배한테는 무서워서 못 찾아가고 저한테 오셨구나! 아! 그렇구나!"

    "이 새끼가!"

    쾅!

    성지수가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진각을 밟았다.

    쩌적, 바닥이 갈라지며 거칠게 내공이 휘몰아쳤다.

    과연 3학년. 그것도 민간 무림 군사 기업에 들어갔다더니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허나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걸 떠나 도진이 '기세'에 겁을 집어먹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심상세계에서 스승, 천마 위지혁의 기세를 매일 정면에서 맞받아치는 것이 바로 도진이었으니까.

    성지수의 기세라고 해봐야 오물 웅덩이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것보다 못한 존재감이었다.

    씨익-

    오히려 여유로운, 그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얼굴로 도진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역으로 성지수가 속으로 움찔했다.

    '뭐야, 이 새끼?'

    마치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던 맹수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본능에 의한 느낌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고맙네, 이거.'

    근래에 쌓인 게 있었던 도진은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다.

    다만 그것을 분출할 대상이 없어 무공 수련으로 억누르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적절한 상대'가 나타나 준 것이다.

    소담이, 친구들이 느꼈던 '평소랑 조금 다른 느낌'의 도진의 도발적인 행동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성지수는 거기에 그대로 걸려 버렸다.

    1학년을 잡으니까 2학년, 2학년을 잡으니까 3학년이 나오는 게 참 만화 같으면서도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런 멍청함 덕분에 화풀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도진에겐 그저 고마운 일이었다.

    "무림인이 기세를 일으켰으면 그냥 넘어갈 수 없죠. 불만이 있으면 말이 아니라 무공으로. 이것도 '국룰'이잖아요?"

    도진이 그렇게 말을 해 버리니 기세까지 일으킨 성지수로선 뺄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서 먼저 뺀다는 건 상대가 후기지수라고는 해도 이미 사회에서 무림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지수가, 그것도 민간 무림 군사 기업 소속의 무림인이 겁을 집어 먹고 뺐다는 낙인이 남아 버리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성지수는 검을 뽑았고, 그 검으로 도진을 겨누며 말했다.

    "그래, 무림인은 무공으로 말해야지. 그러니까 경고하지. 내가 검을 뽑은 이상, 너는 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야 무공을 겨루는 게 '비무'로 끝나지만 진짜 무림에서는 그런 '소꿉장난'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위 말하는 '은원(恩怨) 관계'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견 오그라드는 성지수의 말이 협박이 되는 이유였다.

    설령 여기서 도진이 이긴다 해도 그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경고.

    무림에서 사는 무림인이기에 할 수 있는 협박.

    허나 도진은 오히려 더욱 진하게 웃었다.

    적.

    좋은 말이다.

    적에게는 도기로서의 자비를 베풀 필요 없이 천마로서의 패도를 고스란히 행사할 수 있으니까.

    화풀이 상대로는 더할 나위 없는 관계였다.

    스윽-

    백설은 뽑지 않았다.

    그러면 '너무 빨리' 끝나 버릴 테니까.

    기세도 조절했다.

    상대가 겁을 집어 먹어 버리면 김이 새 버리니까.

    그래서 주먹조차 쥐지 않고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꽉 쥔 성지수를 향해 다가가려 할 때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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