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뭐야?"
갑자기 나타난 그는 '어리숙한 이방인'처럼 보였다.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걸친 모습의 그가 두르고 있는 분위기가 이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느긋했기에 이방인이었으며.
모자에 마스크까지 써 겨우 드러난 눈이 상납의 현장을 신기한 것 보는 듯 했기에 또 어리숙한 느낌을 받게 했다.
고대 무림이었다면 이런 류의 인간을 더욱 경계해야만 했다.
정말로 어리숙한 인간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목적을, 그것도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나타난 위험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뭐냐, 넌?"
허나 문월동의 일진들은 그러지 못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그들은 식견과 경험이 없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삼류조차 못 될 밑바닥의 멍청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문월동은 겁날 게 없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놀이터였으며 감히 대항하려는 놈이 없었으니까.
다만 굳이 변론을 하자면 그들로서도 나름 판단의 근거라 할 만한 게 있긴 했다.
이방인은 척 봐도 그들의 또래였다.
얼굴을 가려도 또래끼리는 본능에 가까운 영역에서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여기에 이방인의 체구는 호리호리했으며 '무림인'치고는 작았다.
흑도의 밑바닥 수준에서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보다 앞서는 게 체격 조건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서 엄격하게 체급을 나누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일단은 키가 커야 하고 몸도 우람해야 한다.
선천적인 조건을 넘을 만큼 무공이 압도적이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일진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문월동의 무림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체격 조건이 좋았다.
2미터에 가까운 키를 가진 학생도 적지 않았고 씨름 선수 못지 않게 기골이 장대했다.
그런 조건이 아니고서라도 일진에 드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반대로 이쪽이 더 위험했다.
체격 조건을 커버할 만큼의 무공 실력이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당장 일짱이라는 난우성이 그 케이스로 비쩍 마른 편이다.
허나 이방인은 그런 고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또래'였으며 입고 있는 옷조차 후줄근하다.
그래서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는 문월고 1학년의 일진, 수납 담당 류금홍이 대표로 다가가 비딱하게 내려다보며 물은 것이었다.
피식-
누구냐는 물음에 그는 숨소리와 함께 웃음을 흘렸다.
"새끼가!"
그것이 마치 비웃는 것 같아서 류금홍은 바로 손이 나갔다.
그는 말보다는 손을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콱!
한 손은 멱살을 틀어쥐고 다른 한 손은 뺨을 치기 위해 거세게 휘둘렀다.
툭.
그리고 그 두꺼운 손은 마치 거짓말처럼 이방인의 손가락에 막혔다.
"……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그가 멍청한 소리를 흘렸다.
이방인, 도진은 그런 류금홍을 마주하며 말했다.
"너희같은 쓰레기가 닿는 건 혐오스럽지만 이래야만 정당방위가 성립하는 법이잖아? 그래서 버릴 옷을 입고 왔어."
"뭐라고?"
"알 거 없어."
뻐억!
류금홍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말과 동시에 눈앞이 번쩍였고,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나 정신이 찢어지는 듯한 격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아낌없이 베푼 천마기는 도진의 제어가 없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날뛰었고 그것은 몸 속에서 가시가 날뛰는 것만 같은 고통을 선사했다.
마치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죄수가 내지르는 것만 같은 비명소리에 문월동 일진들의 안색이 변했다.
"어디서 온 새끼냐, 너?"
난우성이 일진들을 배경으로 두른 채 무게를 잡고 물었다.
도진은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쓰레기 새끼가 꼴에. 안 덤빌 거면 꼬리 내리고 가라."
"이 새끼가 미쳤나!"
누가 봐도 다혈질임을 알 수 있는 덩치 하나가 시뻘게진 얼굴로 덤벼들었으나 도진의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그 주먹은 급브레이크라도 밟은 것마냥 멈춰 버렸다.
도진이 가볍게 든 검지손가락에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익!!"
아예 터져 버릴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힘을 주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숭무고의 일진이었던, 제대로 무공을 익힌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정중한이나 오공태조차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도진의 육체 능력이다.
무림인이라 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에 타고난 육체 능력에 기댈 뿐인 양아치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슥-
"헉!"
도진이 가볍게 손가락을 떼 버리자 멧돼지마냥 힘을 주고 있던 놈의 균형이 대번에 무너졌다.
형편없다.
뻑!
가볍게 쳐올린 무릎에 안면이 박살나고.
빠아악!
쾅!
이어진 돌려차기에 거구가 담벼락에 날아가 처박혔다.
"……."
사위가 조용해졌다.
이방인의 무공 실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그제서야 모두가 알게 되었다.
"자, 다음 쓰레기는 누구야?"
"……."
도진의 도발에 문월동 양아치들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감히 나서는 놈은 없었다.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시선으로 양아치들을 보던 도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쓰레기 새끼들이 안 덤비니까 재미가 없네. 그럼 쓰레기들아. 걷은 돈 다 주인한테 돌려줄래? 지금 당장."
"…돌려주라고?"
"안 돌려주면? 당연한 걸 하라고 하는데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네. 쓰레기 새끼들이라 그런가?"
"이 씨발 새끼가!!"
결국 참지 못한 한 명이 덤벼들었다.
도진은 이번엔 한 방에 끝내지 않았다.
짜악!
"켁!"
짜악! 짜악! 짜악!
한 손만으로 연속해서 뺨을 갈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벽에 걸린 샌드백마냥 고개가 좌우로 돌아갈 뿐 쓰러지지도 못했다.
"개새끼야!!"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한 놈이 몸을 날렸고 그것을 시작으로 양아치들이 우르르 덤벼들었다.
"그래야지."
도진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때리던 놈을 마무리했다.
짜아아악!
한 대 거세게 맞는 놈이 피로 번들거리는 누런 이빨과 함께 날아가 두엇을 치며 함께 나뒹굴었다.
"컥!"
"켁!"
한 손은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을 거짓으로 만드는 움직임으로 도진은 양아치들의 뺨을 후려갈겼다.
하나 같이 자신의 이빨과 함께 허공을 날다 흙바닥에 나뒹굴었고 그렇게 난우성을 제외한 양아치들이 바닥을 구르는 데엔 3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악!!"
'…쉽네.'
비명을 내지르며 널부러진 쓰레기들을 보며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생에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던 오물이, 지금은 이토록 하찮았다.
그렇게 하찮은 오물들을 바라보던 도진이 고개를 들어 유일하게 서 있는 오물, 난우성을 다시 마주했다.
"움직여."
"뭐, 뭐라고?"
"움직이라고. 저능아가 아니라면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을 거잖아?"
"……."
"오늘 걷은 돈만이 아니야. 그동안 걷은 돈까지 십원 단위로 정산해서 다 돌려주는 거야. 할 수 있지?"
"……."
난우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으니까.
덤벼봐야 개박살이 날 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으니 난생 처음 받아든 난제에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에, 이 으슥한 골목 안쪽 공터에 다른 인물들이 나타났다.
"전부 다 손들어!"
경찰이었다.
* * * *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문월동 파출소로 연행되었다.
양아치들과 도진은 물론, 피해 학생들까지 모두 말이다.
경찰을 부른 건 다름 아닌 양아치들 중 한 명이었다.
널부러져 있다 고통이 겨우 가시자 벌벌 떨며 전화기로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도진은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 주었다.
다른 양아치들과 달리 조금은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문월동 재개발 추진 위원회 회장의 아들이었다.
그 회장이란 인간은 지금 지구대에서 버럭버럭 내가 누구요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니가 뭔데 애들을 이렇게나 두드려 패! 엉?!"
투쟁이란 노란색 글자가 새겨진 빨간 조끼를 입은 그는 곰 같은 체구에 치와와 같은 성격을 가진 남자였다.
말리는 '시늉'을 하는 경찰들을 밀어내고 도진의 앞에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멱살을 잡았다.
"좋은 말 놔두고 폭력을 써? 너도 한 번 맞아봐라 이 새끼야!"
그러고선 망설임없이 뺨을 갈기려 들었다.
물론, 그 시도는 실패했다.
탁!
도진이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어쭈? 막아? 이 새끼가!"
"꼴깝을 떨고 있네."
"뭐, 뭐야?"
도진의 나직한, 그러나 귀에 때려박히는 목소리에 멈칫한 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나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 무림인이네?"
"당신? 버릇 없"
"그리고 아주 멍청하기 짝이 없네. 하긴, 애새끼를 이따위로 키우고 적반하장인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 새깍!"
짜아악!!
시뻘게진 얼굴로 멱살을 잡았던 손을 움직이려던 그는 그러나 말조차 마치지 못하고 골목길에서의 양아치들과 비슷한 꼴이 되었다.
뻘건 이빨과 함께 허공을 날았단 말이다.
상상조차 못한 상황에 모두의 눈이 커졌고 곧 경찰들이 일부는 위원장에게 다가가고 일부는 도진을 제압하기 위해 제압봉을 들었다.
"개새끼야!"
짜아악!!
제 아비가 바닥을 구르니 눈이 돌아간 곱상한 양아치가 다시 덤벼들었으나 아비와 같은 꼴이 되었다.
"뭐하는 짓이야!"
"제압해!"
경찰들이 다급히 실력 행사에 나서려 한 순간 도진이 진각을 밟았다.
쿠웅!
"……!!"
퍼져 나가는 묵직한 진각의 기세에 경찰들의 몸이 굳었다.
그 한 수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직 마스크와 모자조차 벗지 않은 학생의 수준이 그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기세에 눌린 경찰 중 한 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무공 좀 높다고 벌써부터 어린 놈이 법을 우습게 아는구나."
경찰의 말에 마스크 속 도진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법을 우습게 아는 건 당신이겠지."
"뭐라고?"
도진의 손이 천마기의 여력에 뒹굴고 있는 위원장을 가리켰다.
"저 인간이 내 멱살을 잡았을 때, 아니 그 전에 말렸어야 정상 아니야? 왜 안 그랬어?"
"……."
파출소에 온 순간부터 경찰들의 태도는 노골적이었다.
곱상한 양아치를 챙겼으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처럼 대했다.
반대로 도진은 가해자로 취급하며 압박을 가했고 말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이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들이닥쳐 제 세상인 것마냥 날뛰던 위원장이었다.
대놓고 경찰들과 호형호제했다.
경찰들은 위원장을 진정시키지도 않고 도진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데도 나서지 않았다.
더 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너, 너 이 새끼. 그냥은 못 넘어갈 줄 알아라."
경찰이 입을 다물자 겨우 일어난 위원장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문월동의 터줏대감이었으며 재개발 추진 위원장으로 지내며 여러 높은 사람,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과 친분을 맺었다.
그 전문직 종사자들 중 일부, 변호사들이 오고 있었다.
그들을 믿어 기세등등한 위원장의 태도에 도진은 다시 한 번 입꼬리가 올라갔으며, 곧 일련의 무리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오 변호사님!"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자 위원장의 얼굴과 기세가 확 살아났다.
그러나, 그 '오 변호사'의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오 변호사님?"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위원장이 주춤했다.
그런 위원장의 앞에, 오 변호사를 지나 또 다른 변호사가 섰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말끔한 인상의 남성.
"오성 법무팀의 나성보입니다."
바로 나성보였다.
* * * *
새벽.
도진은 홀로 어느 건물의 옥상에 비스듬히 앉아 어두운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차도 드문드문 오가는 특별할 것이 없는 도로.
이번 생의 도진은 오간 적이 없어 연결점조차 없는 이 도로를 늦은 시간에 내려다보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바로 오늘이, 이 장소가.
후웅-!
전생의 도진이 아버지와 함께 뺑소니를 당한 곳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