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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62화 (162/741)
  • 162화

    그날 이후로 매일 세 시간씩 도진은 지하 연무장에서 동생들의 수련을 봐 주었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시작은 아주 중요한 단계였고 혹여 잘못된 버릇이 들거나 조금이라도 길이 어긋나지 않도록 상세히 가르치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연신극기공과 비슷하게 연호신공은 앉아서 움직임없이 하는 좌공(坐功)만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수련하는 동공(動功) 또한 가능했는데 도진은 동공에 중점을 두었다.

    움직이며 운기하는 동공은 연신극기공처럼 몸에 부하(負荷)를 가한다.

    이는 몸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헬스를 하며 역기를 드는 것처럼 '이로운 부하'다.

    이 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라 느리게 초식을 수련하는 '완공(緩功)'을 행함으로써 몸과 동시에 초식을 단련하는 수련이 되는 것이다.

    동생들은 힘들 텐데 요령을 피우지 않고 항상 진지하게 임했고 그 모습에 도진은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좋은 아이들이구나.

    -예.

    냉정하게 말해 동생들은 무공에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성실함'이라는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는 좋은 재능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성실함은 어설픈 무재(武材)보다 훨씬 좋은 재능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이 가장 중요한 연호신공을 익힘에 있어서는 더더욱 좋은 재능이고 말이다.

    이대로만 수련해 준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큰 성과를 볼 것이라고 위지혁은 말해 주었다.

    "어머니, 제가 무공 가르쳐 드릴게요."

    동생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한 도진은 물론 부모님에게도 무공을 가르쳐 드리기 위해 움직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서정원은 음료수를 건네며 도진이 말한 내용에 눈을 크게 떴다.

    "무공?"

    "네. 전수자의 가족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무공이 있거든요."

    도진의 말에 서정원은 머뭇거렸다.

    아직 풍족하던 시절에는 물론이요 어릴 적부터 서정원은 다른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무공에 시간을 투자했었다.

    허나 지독히도 재능이 없었던 탓에 진전이 더디고 효과가 미미하기만 했다.

    때문에 찬모로 일할 때 그리도 고생을 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 서정원이었기에 이리도 늦은 시기에 새로운 무공을 배워봐야 무엇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어려운 무공도 아니고 싸우기 위한 무공도 아니에요. 그저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그런 무공이고 몸을 지키기 위한 호신공이니 꾸준히 하기만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는 무공이니까요."

    도진은 망설이는 어머니의 모습에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가 매일 함께 봐드릴게요. 그러니까 아들이랑 데이트한다 생각하시고 두 시간만 시간을 내주세요."

    장남이 이렇게 설득하니 서정원은 이길 도리가 없어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바로 서정원은 도진과 함께 지하 연무장에서 연호신공을 수련하게 되었고 눈썹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정성들여 가르쳐주는 아들의 노력에 힘입어 일주일만에 연호신공의 입문에 성공했다.

    퇴근 후 두 시간씩의 수련이어서 며칠간은 확실히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입문에 성공하자마자 그런 피로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그것을 넘어 마치 젊어진 것처럼 활기가 넘치니 다름 아닌 연호신공의 공능이었다.

    "정말 효과가 대단하구나, 도진아."

    "그렇죠? 앞으로도 매일 수련하셔야 돼요. 방학 끝나도 주말마다 제가 검사할 겁니다?"

    "얘는. 그래, 약속할게."

    찬모로 일하며 많이 상했던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연호신공을 꾸준히 수련해야 하는 서정원이었다.

    어머니와 약속을 한 도진은 늦은 새벽에 집을 나와 아버지의 회사로 달려갔다.

    동생들이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회사에 머무는 날이 많으니 도진이 새벽의 휴게 시간에 맞춰 아버지의 회사로 가는 형태가 된 것이다.

    "전수자의 가족에게 전수할 수 있는 무공이니 익혀주세요, 아버지."

    도진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김서우를 신안으로 보고선 남몰래 가슴을 아릿하게 하는 아픔을 숨겨야만 했다.

    온갖 풍파를 고스란히 견뎌 온 단단한 바위는 세월에 깎이고 또 깎여 작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풍파에도, 설령 태풍이 몰아친다 해도 꿈쩍 않는 거대한 모습으로 아버지가 계셔 주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도진은 강력하게 아버지에게 부탁했고 김서우는 그런 아들의 부탁에 연호신공을 익히게 되었다.

    "어떤 무공이랑도 충돌하지 않고 육체를 단단하게 해주는 느낌이니까 꾸준히 수련해 주시기만 하면 돼요. 제가 매일 검사할 거니까 절대 빼먹으시면 안 돼요."

    "매일이라니, 힘들게 그러지 않아도 돼. 안 빼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의 말에 도진은 웃었다.

    "불시 검문에 다섯 번 걸리지 않으시면 그러도록 할게요."

    그렇게 가족 모두에게 연호신공을 전수하면서 다른 일도 도진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집행부의 모임에 빠짐없이 나가 책무를 다했고 함께 하는 회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기숙사에 머무는 소담을 찾아가 주기적으로 산책을 했고 우정한의 절을 찾아가거나 오대용, 주정아와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음, 이건 관리를 한다 해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게야. 새로 여러가지 처리를 하는 게 좋겠군."

    "그런가요?"

    "그래. 같이 해보세나."

    "네."

    바로 옆집의 우벽진과는 매일같이 만나 집에 들일 가구를 만들었다.

    지하에 가구 공방 못지 않은 본격적인 작업실을 차려 둔 우벽진이었기에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에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어제 너튜브에서 본 게 있는데 그걸 한 번 시험해 보세."

    생각 이상으로 이쪽 업계에 재미를 붙인 우벽진은 도진과 함께 온갖 것들을 함께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것들 중 두 사람의 마음에 쏙 든 것들이 우벽진이나 도진의 집에 들어가곤 했다.

    "어때, 유진아. 호진아."

    "좋은 것 같아."

    가끔은 유진이와 호진이가 함께 하기도 했고 우서진이 찾아와 거들기도 했다.

    "음, 서진아. 좀 더 힘을 줘도 돼. 넌 분명히 일반적인 남자가 가지지 못한 유연함이 강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돼."

    "네, 형."

    작업이 끝나면 계약 내용에 있었던 우서진의 무공을 봐주기도 했다.

    집안의 무공을 배우기에 그 부분에 관해선 터치할 수 없었지만 무공 그 자체의 이치에 관해선 조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도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형이 알려주신 것만 고쳐도 무공이 쑥쑥 느는 거 같아요. 형은 정말 대단해요."

    "아하하. 고마워."

    우서진은 언제나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도진을 보곤 했다.

    "올리버 삼촌이 오시기로 했는데 같이 저녁 드시지 않을래요? 유진이랑 호진이도 같이."

    "응, 그럴까?"

    가끔은 함께 모여 저녁을 먹기도 했다.

    우벽진의 집에 올리버 후작 부부가 올 때 도진네 식구도 초대받곤 한 것이다.

    "우리도 너희랑 같은 학교에 가기로 했어."

    "정말?"

    "응!"

    "잘 됐다! 그럼 매일 같이 학교 가자."

    "그래!"

    시간상 부모님이 함께 하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유진이와 호진이는 릴리, 루크와 식사가 끝나고 함께 어울려 놀곤 했기에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곤 했다.

    이사오면서 상미와의 거리도 가까워져 주기적으로 만나 우서진의 무공을 봐줄 때처럼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변함없이 밀도 높은 날들을 보내던 도진은 어느날 새벽, 아버지와의 수련이 끝나고 물었다.

    "아버지."

    "응?"

    "내일도 당직이시죠?"

    "응, 그렇지.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요."

    도진은 웃으며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날 아침.

    동생들과의 수련을 마친 도진이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 가, 형아?"

    평소와 달리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준비하는 모습이었기에 호진이가 물으니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녀올 데가 있어서 형이 오늘은 좀 늦을 거야. 그러니까 심심하면 릴리랑 루크한테 놀러가. 저녁은 서진이 형이랑 같이 먹고. 알겠지?"

    "응! 잘 다녀와, 형아."

    "잘 다녀와, 오빠."

    "그래."

    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도진은 집을 나섰다.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날.

    허나 오늘은, 전생을 기억하는 도진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 * * *

    숭무고를 중심으로 한 일대는 서울에서도 특히 발전된 곳이다.

    허나 그런 밝은 빛은 그만큼 큰 그늘을 만드는 법인데, 그 그늘이 드리운 곳이 다름 아닌 문월동이었다.

    숭무고 근처에 있어 더욱 대비되는,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가난한 동네.

    이 동네에 도진이 다니던 문월중과 전생의 도진이 다녔던 문월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월고 근처에 있는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에 학생들의 줄이 늘어서 있다.

    "여, 여기."

    "오! 우리 삼식이 이번 상납이 제법이네. 오늘부로 넌 2등급 시민."

    "고, 고마워."

    골목 안쪽 공터에는 누가 보아도 일진 양아치임을 알 수 있는 행색의 학생들이 모여 있고 그들 중 한 명에게 줄을 선 학생들이 차례로 돈을 상납하고 있었다.

    문월고의 일진들은 이런 식으로 '상납금'을 받았다.

    그리고 상납금의 금액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 서열을 매겼다.

    이 서열은 절대적으로, 싸움 실력에 관계없이 더 많은 상납금을 내 서열이 더 높은 학생이 낮은 학생보다 우위에 있도록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도록 강요했다.

    그러자 블랙 코미디처럼 더 많은 수익이 들어왔다.

    '짭짤하네.'

    문월고 일진 무리의 리더, 소위 '일짱'인 난우성은 쌓이는 지폐에 흡족하게 웃었다.

    사실 이 돈들 중 다수는 극한파에 상납해야 하는 돈이었다.

    문월중과 문월고는 극한파의 인력 시장이었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던 일진들은 보호세 명목으로 큰 돈을 상납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데 그 극한파가 저번에 잠룡과 엮여 개박살이 나며 더 이상 상납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 풍족해졌다.

    '존나 욕했었는데 고맙다 새끼야.'

    문월동 출신이면서 잠룡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분상승을 하면서 또 일진들을 개박살냈던 도진을 난우성은 질투하고 또 시기하여 수없이 욕을 했었다.

    얼마 전 일로 그들 문월동 일진 중 몇 명이 잡혀들어가기도 했으니 더더욱.

    한데 이렇게 생각지 않은 형태로 주머니 사정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돈도 안드는 인사 정도는 해 줄 마음이 든 난우성이었다.

    "뭐야? 돈이 없어?"

    그렇게 웃고 있던 난우성이 갑자기 들려 온 고성에 고개를 들었다.

    교복부터가 허름한 한 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일진들 중 수납을 맡고 있던 험상궂은 인상의 1학년 후배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고개 숙인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 친구는 왜 돈이 없어?"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머니가 얼마 전에 다치셔서 입원해가지고 도, 돈이 없어."

    1학년 일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안 된 일이네. 근데 그건 니 사정이고."

    짜아악!!

    커다란 손이 학생의 뺨을 후려쳤다.

    맞은 학생이 크게 나뒹굴었다.

    "가져와야 할 돈은 가져와야지."

    1학년 일진이 그렇게 말하며 학생을 걷어찼다.

    퍽! 퍽!

    학생은 몸을 말고 버텼고 그것을 지켜보는 학생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문월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의 일상이었다.

    법은 말단까지 미치지 못하며 힘없는 자를 지켜주지 않는다.

    '시스템'으로써 기능하고는 있지만 심장과 달리 말단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육체와 달리 이 사회는 말단이 썩어도 문제없이 돌아가니까.

    그런 말단의 세계에, 이방인이 끼어들었다.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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