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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61화 (161/741)
  • 161화

    숭무고가 들어서면서 남산 근처는 마치 근대화되던 시절처럼 격변했다.

    단순히 숭무고만 들어선 게 아니라 그 주변까지도 완전히 재개발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그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종합 쇼핑몰도 새로이 개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이 들어선 시설들 중에는 학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숭무동 근처에 새로 생긴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 학교들은 자연스럽게 명문 학교가 되었고 도진이 전학가겠다는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무공을 가르치겠다 말한 이유이기도 했다.

    요즘 시대엔 설령 무림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재능이 없는 일반인이더라도 반필수적으로 무공을 익힌다.

    무공을 익힌 사람과 익히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무공을 익힘으로써 더 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더 많은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삶의 밀도 자체가 달라지고 그로 인한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무림인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무공을 익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소한 재능의 벽에 막힐 때까지는 무공을 익혀야만 경쟁할 수 있는 시대다.

    때문에 국가에서도 막대한 자원을 무공에 투자하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그 명분을 보기 좋고 거창하게 '홍익인간'이라 한다.

    이런 세상이니 유진이와 호진이가 전학을 갈 주변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조기 교육, 그것도 엘리트 무공 교육을 받고 있다.

    허나 삶에 치여서 무공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 또한 가난에 대한 이자라 할 만하다.

    유진이와 호진이는 시간은 투자할 수 있었으나 학교에서 배우는 최소한의 교육이 전부였고 스스로 그것을 복습할 수밖에 없었으니 아무래도 케어를 받은 아이들보다 공부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만약 명문 학교에 지금의 유진이와 호진이가 전학가면 은연중에 차별을 받게 되고 상황이 나빠지면 학교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다.

    도진이라는 배경이 있고 릴리와 루크가 친구라 해도 본인이 약하면 어떤 쪽으로든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다 해도 또래와의 차이만으로 요즘 자신감을 되찾은 동생들의 성격에 약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도진은 전학을 가기로 마음 먹은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무공을 가르치기로 결론내렸다.

    생각보다 이른 시기가 되었지만 문제는 전혀 없었다.

    도진 또한 생각보다 빠르게 무공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가족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걸 뒤로 미뤘던 건 스승들의 무공은 고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을 환경이 크게 달라진 현대에 적용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단번에,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했는데 당시의 도진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솔직히 지금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말도 안 되는 성장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현실 시간으로 따지면 도진은 아직 본격적으로 무공을 사사받은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때문에 심상세계에서 몇 배나 길어진 시간동안 수련을 해 경지가 높아졌으나 현실의 육체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해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불균형이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일반적인 단계를 밟아왔다면 알아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고 여기에는 무공을 익히며 자연스레 알게 되는 상식적인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도진의 경우 역시 무공을 배움에 있어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심상세계가 있었고 그 안에서 스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행착오를 거쳐 완벽한 해법을 찾은 뒤에 현실에 적용하는 게 가능했다.

    고대 무림에서도 감히 따를 자가 없었던 절대고수인 위지혁과 장호는 그에 걸맞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고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심상세계 안에 있었으니 그 어떤 위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와 호진이에겐 심상세계가 없고 위지혁과 장호의 안목 또한 완벽할 수 없었으니 두 절대고수가 도진의 안에서 바깥에 관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도진의 감각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도진이 일정 경지에 도달하며 얻은 '신안(神眼)'이다.

    '천마의 무리를 꿰뚫는 눈'을 뜻하는 신안은 단순히 무리만을 보는 게 아니라 이치를 보는 눈.

    그 눈을 통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 위지혁과 장호는 도진이 동생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생길 수 있는 변수와 수정해야 할 부분들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랑 다르게 동생들은 정공법으로 가르칠 거니까.'

    천마가 되기 위하여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도진과 달리 동생들은 차근차근 무공을 가르칠 예정이었다.

    여기에 배울 무공 또한 지극히 안전하고 안정적이니 위험성 또한 극히 낮다.

    두 동생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진을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우리도 형처럼 무공 배우는 거야?"

    "응. 그럴 거야."

    "와아아아!!"

    기뻐하는 호진이.

    유진이는 그런 호진이와 같이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오빠."

    "응?"

    "우리도 무공 익혀도 돼?"

    "응? 아."

    도진은 유진이의 물음에 담긴 걱정이 무엇인지 읽어내고 웃었다.

    무공의 전수는 폐쇄적이면서 또 배타적이다.

    전수자가 아니면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철저하게 함구해야 하는 것이다.

    어리다 해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유진이였기에 그런 걱정을 하며 물었고 도진은 그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가르칠 건 오빠가 배운 무공이 아니라 전수자의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야."

    "전수자의 가족?"

    "응."

    도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진이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가르칠 건 천마의 가까운 친족에게만 허락된 호신공(護身功)이다.

    천마의 친족은 당연히 여러 위험에 노출된다.

    이들을 위해 엄중한 경호가 붙긴 하지만 본인이 약해서야 근본적인 부분에서 틈이 생긴다.

    때문에 이들 스스로가 단련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연호신공(鍊護身功)'이다.

    연호신공은 그 이름처럼 단련하여 몸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연신극기공에 근본을 두고 있다.

    "자, 우선 구결(口訣)을 알려줄 테니까 외우는 거야. 알겠지?"

    "응!"

    의욕이 가득하여 대답하는 동생들에게 도진은 128자로 이루어진 연호신공의 구결을 적어 주었다.

    구결이란 무공의 이치를 함축한 글귀라 할 수 있다.

    이 구결을 곱씹고 또 참오함으로써 무공에 담긴 깊은 이치를 깨우쳐야 한다.

    한자로 이루어진 구결은 한 글자마다 뜻이 있었고 또는 합쳐져 다른 의미가 되기도 했다.

    중의적인 표현이 있기도 하고 서로 연결되어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해 무공 수련만큼이나 구결에 대한 참오가 중요했다.

    현대의 무공은 그런 부분을 한글로 대체하거나 깊이가 부족할 경우 해설서마냥 직관적으로 풀어 쓰기도 했는데 연호신공은 바로 그 시절 무림의 천마신교에서 만들어진 만큼 철저하게 한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련할 때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는 거야. 공부하는 것처럼. 알겠지?"

    "응!"

    그런 한자로 이루어진 구결에 동생들은 투정부리거나 걱정하는 대신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레 겁먹거나 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열의를 보이는 태도에 도진은 역시 내 동생들이라며 미소지었다.

    구결에 대한 참오는 완벽하게 무공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이기에 오늘은 암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다 외웠어, 형."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진이가 다 외웠는데, 그럴 거라 예상했던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진이는 머리가 좋았지.'

    무공에 대한 재능은 부족했지만 호진이는 친형이라는 입장을 떼고 보아도 천재였다.

    계속 공부를 했다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전액장학금을 받고 명문대에 다녔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진이는 열심히 하는 기색이었지만 쉽사리 외우지 못했다.

    사실 이쪽이 정상이다.

    도진은 조바심을 보이려 하는 동생에게 웃어주며 말했다.

    "무리해서 오늘 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해도 되니까."

    무협지에서야 수백 글자나 되는 구결을 한 번만 듣고 외우니 몇 번만에 외우니 하지만 그거야 진짜 천재들이나 되는 거고 일반인에겐 힘든 일이다.

    "구결은 매일매일 보고 외우면서 뜻을 고민해봐야 하는 거야. 단순히 암기만 하면 안 돼. 알겠지?"

    "응!"

    어리석은 자들은 구결을 그저 암기하려고 하지만 그건 정말로 평생을 삼류에 머물러야 할 만큼 미련한 일이다.

    구결이란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요 이치를 담고 있는데 함축되어 있는 뜻을 참오하지 않고 겉의 글자들만 핥고 있는 꼴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도진은 그런 것을 경계하여 동생들에게 주지시킨 뒤 다음으로 넘어갔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내공의 길을 알려줄 거야. 그걸 기억해서 구결을 되새기면서 매일매일 운기해야 해."

    구결과 함께 중요한 것이 매일 해야 하는 내공 수련을 위한, 내공을 운기하는 길을 외우는 것이다.

    "자, 우선 유진이부터."

    유진이를 가부좌로 앉히고 도진이 뒤에 앉아 등에 손바닥을 댔다.

    천마기가 아닌 순수한 내공의 기운만을 정제해 등에 댄 손을 통해 흘려 넣었다.

    그 기운을 우선 단전으로 보내 미미한 유진이의 내공과 합친 뒤, 도진은 연호신공의 구결을 전음으로 들려주며 혈도를 따라 내공을 이끌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길만을 따라가는 여타의 심법과 달리 연호신공은 인체의 모든 혈도를 돈다.

    연호신공은 연신극기공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내공 수련이 아니라 그 내공을 활용하여 육체를 '진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운기를 통하여 생성된 내공을 고스란히 축적하는 게 아니라 절반 이상을 육체를 강화하고 감각을 키우는 데 투자한다.

    그리고 남은 내공만이 단전에 쌓인다.

    내공의 축적은 느리지만 특성을 띠지 않기에 다른 무공을 익힐 수도 있고 이미 배운 무공이 있다면 그 무공의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설령 다른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근본적인 '무술'이 탄생한 이유인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수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약자가 강자로 환골탈태하는 효과를 보도록 했다.

    도진이 압도적인 체격차가 나는 정중한이나 오공태를 내공없이 압도할 수 있는 격이 다른 육체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능 덕분이다.

    당장은 그런 극명한 효과를 보지 못하겠지만 꾸준히 수련하면 언젠가는 그 영역에 다다를 것이다.

    도진은 유진이에 이어 호진이의 내공을 인도하여 주며 생각했다.

    '연호신공이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거야.'

    전생에서 동생들은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찾아온 집안을 위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포기했었다.

    포기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도진은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해 스스로를 수없이 자책했었다.

    '이번 생에는.'

    이번 생에는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연호신공이 아주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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