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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58화 (158/741)

158화

-잠룡 김도진, 명성공방과 파트너 계약 맺었다!

이삿날이 확정되고 명성공방과 계약한 내용이 보도된 건 의도된 타이밍이었다.

보도가 되어도 상관없을 만큼, 정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이 확정된 뒤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상의하여 이사가 확정되어야 계약 내용도 확정되고 그렇게 모든 일이 명확해져야 보도가 되어도 뒤에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배포된 보도 자료에서 도진과 명성공방의 사이는 생각 이상으로 끈끈했다.

스폰서 계약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도진은 명성공방과도 스폰서 계약을 맺지 않았다.

다만 그런 '계약 관계'보다 끈끈하게 보일 만큼 명성공방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

계약금으로 명성공방이 전셋집을 내 주었는데 그 전셋집이 우벽진 일가가 직접 참여하여 '환골탈태'시킨 집이었으며 같은 부지를 공유하는 이웃집이다.

서로 왕래하며 요즘 관련 업계에서 심심찮게 이름이 거론되는 손자의 무공을 봐주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에 '백설(白雪)'이다.

도진이 사용하는 검이 입학 시험 수석 특권으로 명장 우벽진에게 받은 것이라는 건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SNS를 통해 백설이 명검이라는 것 또한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명검이 보통 명검이 아니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명장 우벽진의 복귀작의 '근본'이라는 건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우벽진은 '백설은 도진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거다'라고까지 인터뷰에서 말했기에 마른 들판에 번지는 불처럼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태양권가를 경계해 이런 류의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해왔지만 이제는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태양권가가 눈이 시뻘게져서 조사했던 시기에도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았었다.

도진이 치료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고 그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상황에서 우벽진이 더욱 혼란을 주기 위해 행동했으니 태양권가는 엉뚱한 데서 골탕만 먹으며 인력과 금력을 낭비한 꼴이 되었다.

그러다 후계 구도에 금이 가며 내홍이 격화돼 외부에 신경을 쓰기 힘든 상황에서 명성공방의 주가는 하늘을 뚫을 듯하니 이제 거리낄 게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화제가 된 상황에서 도진이 SNS에 새로운 글을 올렸다.

-새로 이사갈 집이 너무 예쁨.

명장 우벽진이 직접 참여하여 올리모델링한 예술 작품 같은 집.

그 집을 배경으로 도진이 올린 사진은 당연히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고, 수많은 관심 속에서 도진네 가족의 이삿날이 밝았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어머! 어서와요! 소담 학생이죠?"

"네, 맞습니다."

아직 해가 다 오르기 전 이른 아침 1등으로 도착한 건 소담이었다.

"어머어머! 직접 보니 더 예쁘네!"

"그만해요. 부담스러워 하잖아."

꽤 긴장한 기색이었는데, 도진은 그제서야 소담이 부모님을 처음 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랬구나.'

낯을 가리는 성격이니 생각보다 더 긴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다음으로는 오대용과 주정아였다.

"안녕하십니까."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하는 오대용.

"어서와요. 도진이 친구죠?"

"네!"

그리고 서정원의 물음에 부끄러워 머뭇거리는 오대용 대신 활달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주정아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예, 어서오세요. 우 명장님."

마지막으로 우벽진과 우서진이 합류했다.

오전에 이사를 돕기로 한 건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일이 많지 않은데 오전부터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도 그렇고 각자의 일이 있는 만큼 다 같이 모이는 건 오후부터가 될 예정이다.

도진의 슈킨팍시와 우벽진의 픽업 트럭이 나란히 집 옆 공터에 주차되고 본격적인 이사가 시작되었다.

옷 등의 들고 갈 짐은 며칠에 걸쳐 이미 정리와 포장이 되어 있었기에 짐을 옮기고 버릴 건 버리는, 집을 비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단 박스부터 실을까요?"

"그러지."

도진의 제안에 따라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은, 들고 가야 할 짐부터 싣기로 했다.

무림인들이 다수 움직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박스가 차곡차곡 슈킨팍시의 트렁크와 픽업 트럭의 뒤에 실렸다.

예상대로 두 대에 모두 실을 수 있을 만큼 짐은 많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버려야 할 짐이다.

이쪽도 숭무고의 학생들과 신력으로 유명한 우벽진까지 있으니 거짓말처럼 수월했다.

"거실 창문으로 넘기면 되겠군. 받게나."

"예."

높이는 키보다 크고 부피는 몸의 두 배가 되는 장롱이 우벽진의 손에 무슨 종이로 만든 것처럼 가볍게 들린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우벽진은 그것을 활짝 열린 거실의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넘겼고 마당에서 대기하던 오대용이 부드럽게 받아냈다.

"아래쪽 도롯가 공터에 두면 된다고 했지?"

"응. 이거 붙이고."

도진이 대형 폐기물 신고를 하면서 사 둔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주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대용이 능숙하게 장롱을 들고 대문을 빠져 나갔다.

제 몸보다 큰 것을 이고도 걸음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과연 요즘 실력이 쑥쑥 늘고 있는 무림학교 학생다웠다.

"자네는 이거."

"네."

이어서 나온 장롱은 주정아가 받았다.

이쪽도 강맹한 창술을 구사하는 무림학교 학생인 만큼 일견 호리호리해 보이는 외견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먼저 갈게."

"응, 부탁해."

오래된 장롱, 낡은 화장대 등을 친구들과 함께 집 밖으로 날랐다.

본래 이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달동네치고 드물게 승용차나 SUV가 들어올 길이 있다고 하나 트럭이나 이삿짐차 등이 들어오기엔 무리인 골목이었다.

때문에 대형 폐기물을 내놓을 일이 있으면 주민들은 그 무거운 것을 어떻게든 동네 초입의 공터로 옮겨 놓아야만 했다.

업자들은 안 그래도 돈이 안 되는데 그런 일까지 할 수는 없다며 손사레를 치는 게 대부분이었고 웃돈을 줘도 안 하고 말겠다는 사람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이 또한 가난에 이자가 붙는, 가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이자는 이제 도진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삶이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힘이 세진 게 아니라 무공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도진에게 있어 자신보다 훨씬 큰 짐을 위험하지 않게 나르는 건 차라리 소소한 장난이라 해도 될 만큼 쉬운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그것을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한 이사 준비는 하하, 웃음이 나올 만큼 빨리 끝나 버렸다.

작업이 끝나고 떠나기 전 텅 빈 집을 잠시 둘러보았다.

가벽을 세워 만든 방은 그대로 두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청소와 도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아도 될 만큼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도진은 그 집을 보며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전생을 포함하여 낡고 어두컴컴했던 기억은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터전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하여 짐을 나누었다.

이제 각자의 방에 각자의 물건을 배치하고 옷을 정리하여 넣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

사실상 이쪽이 이사의 메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짐을 풀고 있자니 새로 한 사람이 합류했는데, 다름 아닌 상미였다.

"오, 어서 와."

"어머, 상미 왔니?"

"네, 안녕하세요."

도진은 당연히 상미에게도 이사간다는 이야기를 만나서 해 주었다.

상미는 자신도 돕고 싶다고 말했고 그 말대로 일과를 조율하여 시간을 내 이렇게 달려와 준 것이었다.

사실 오늘만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짐 정리와 옷 정리 등을 도와준 게 상미였다.

"내가 아끼는 동생이야."

도진이 곁에 서서 소개시켜주니 친구들이 웃으며 먼저 인사해 주었다.

상미는 우 명장과 오대용, 주정아, 소담까지 보통이 아닌 면면에 조금 움츠러든 기색이었다.

보잘 것 없는 자신과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미에게 도진이 전음으로 말했다.

-움츠러들지 마. 너는 앞으로 나랑 많은 걸 함께 해야 하고 누구에게도 꿀릴 게 없는 사람이 될 거니까. 겸손하면서도 당당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닌 도진의 조언이다.

상미는 즉시 마음가짐을 바꾸고 어깨를 폈다.

고개를 들고 도진의 친구들을 빛나는 눈동자로 당당하게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윤상미입니다."

갑자기 달라진 기세에 친구들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문월동에 있었던 사건의 피해자라고 들었는데 그때의 피해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과연, 이쪽도 도진이 얽혀 있는 만큼 무언가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도진이 만족스레 웃으며 말했다.

"서진이 너랑 동갑이야. 그리고 내년에 숭무고에 입학할 거니까 동기가 되겠네. 친하게 지내 봐."

"아."

우서진과 상미의 시선이 마주했다.

두 사람은 도진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은연중 비슷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정리에 들어갔다.

유진이와 호진이의 옷 정리를 도와주고 버리지 않고 가져온 가구들을 공간에 맞게 배치했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처럼 맞춰져 있는 공간에 저번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져왔으니 조화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연녹색 벽지를 바른 방 안에 거무튀튀한 보라색 진흙을 던져 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일단은 임시로 쓰다 바꿔 넣어야겠네요."

이 부분은 미리 얘기해 두었던 대로 이 집에서 쓸 가구를 우벽진과 함께 만들어 교체해 넣어야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난 괜찮다네."

우벽진은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어조로 말했고 도진은 웃으며 그러자고 답했다.

모든 걸 새로 만드는 건 아니었다.

이를테면 상미,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만든 DIY 가구 등은 '리폼'을 하기로 했고 추억이 깃든 물건들 또한 버리기보다 최대한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는 사이 속속,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도착했다.

한유아와 오성아, 나지윤이 도착하고 우서연 또한 반차를 내고 합류했다.

여기에 올리버와 정여원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왔으며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던 우정한까지 집들이에 참석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심시간이 되어 출장 뷔페와 함께 찾아온 것이 바로 서태주와 서태주의 부모님이었다.

도진은 공언했던 대로 집들이에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는데 그를 위해 선택한 것이 출장 뷔페였고, 그 업체가 바로 서태주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출장 뷔페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집 테마야?"

"이삿날은 짜장면이라잖아. 그리고 대용이 너 탕수육 좋아한다면서?"

"오, 세심한데?"

오대용이 시선을 슬그머니 돌리자 주정아가 짓궂게 웃는다.

큰 부분은 다 끝났고 나머지는 시간을 들여 세세하게 맞춰 갈 부분들이었기에 이사는 끝났고 집들이를 위해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서소담. 윤상미. 한유아. 오대용. 주정아. 나지윤. 우벽진. 우서진. 우서연. 올리버 후작. 정여원 후작 부인. 릴리 웨일스. 루크 웨일스. 우정한. 서태주. 서금호. 이금주.

회귀하여 짧지만 지극히 밀도 높은 삶을 살아 온 증거인 좋은 인연들을 마주하니 이 순간 도진은 제대로 된 길을 걸어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옳은 길임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이렇게 기쁜 형태로 실감하는 건 과연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한 일이었다.

그렇게 도진이 벅찬 기분에 미소짓고 있을 때였다.

한유아가 슬쩍 짓궂은 얼굴로 말했다.

"뭐해, 후배. 건배사 해야지?"

"…건배사요?"

"응."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에 도진이 멈칫하고 말았다.

건배사. 도진과는 아득할 정도로 인연이 없던 단어였다.

"그건 아버지가 하셔야 하는 게……."

"이 자리의 주인은 너니까 네가 하는 게 맞을 것 같구나."

아버지, 김서우는 그렇게 퇴로를 막아 버렸다.

결국 도진은 콜라 잔을 든 채 일어나고 말았다.

-앞으로 이런 자리가 많을 텐데 연습한다 생각하면 되겠구나.

위지혁의 말을 들으며 도진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음, 제가 이런 쪽으론 말재주가 없어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추며 도진이 말했다.

"기쁜 날에 참석해 주셔서, 도와 주셔서, 함께 기쁨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좋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드니 우벽진이 말을 보탰다.

"자, 김도진의 미래를 위해 건배!"

"건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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