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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57화 (157/741)

157화

"그 사람, 사기꾼입니다."

도진의 말에 누구 한 명 당황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마음속으로는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쉬이 확언하지 않는 도진이 강호섭을 사기꾼이라 확언한 이유는 궁금했기에 우벽진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사용하는 부적부터가 가짜였거든요."

'사람 보는 법'을 배운 도진이었기에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강호섭이 사기꾼이라는 걸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다만 확신이 맹신이 되는 걸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았기에 태도를 유지하며 강호섭을 주시했다.

"부적이 가짜였다고?"

"네."

일반적으로 부적은 노란 종이로 보이는 괴황지(槐黃紙)에 붉은색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쓴다.

하지만 마치 보여주려는 듯 도진과 우벽진이 떠나는 중에 강호섭이 태우던 건 괴황지와 경면주사로 직접 쓴 게 아니라 질감만 비슷한 종이로 '프린트를 한' 것이었다.

물론 스승들이 살던 시대의 제작 방식을 현대에서 고스란히 유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부적에 그려진 것이 엉터리인 건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엉망이군.

장호는 어디서부터 지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투로 부적에 그려진 모든 것들에 대해 말했다.

거기에 천문(天門)이다.

천문이란 말 그대로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모름지기 도사를 포함한 술법가, 이 시대로 치면 무속인은 어떤 형태로든 천문에 닿아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매망량을 보고 듣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에 닿아 있지 않다면 지식은 있을지언정 이매망량의 세계에 간섭할 수 없으니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천문에 대해서는 증명하기 힘드니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힘들었지만 굳이 그것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그 외에도 언급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었고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들 짐작가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위안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고용했던 거야."

"이해하네."

강호섭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기꾼'이었다.

과한 재물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호언장담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귀신을 떠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선에서 말했고 그를 위해 요구하는 것 또한 소소했기에 지쳐 있던 올리버는 최소한의 위안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강호섭을 고용했던 것이었다.

여기에 처세술과 언변이다.

설령 사기꾼이란 말을 들어도 발끈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강호섭은 사람의 경계를 굳이 뚫고 들어가려 들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이 정도야 할 만하지'라는 생각이 들게끔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그러고도 안 된다 싶으면 미련없이 발을 뺄 줄도 안다.

도진이 권유했을 때 자리에 남았다면 강호섭은 그냥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묘하다 싶으니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떼고 떠나 버렸다.

"찾아서 벌을 주진 않을 텐가?"

"나의 모자란 부분으로 인한 것이었으니 굳이 찾아 처벌할 필요는 없겠지."

'가늘고 길게 살아남을 타입이야.'

덕분에 강호섭은 여타의 사기꾼들과 달리 무사할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후식으로 차가 나왔다.

그 차를 마시는데 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올리버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이 일을 해결한 사람에게 드리겠다 공언한 사례금입니다."

도진이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니 일억 원이 송금되어 있었다.

"과하진 않을 겁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큰 돈이 아니고 도진 학생이 해 주신 일은 큰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올리버의 말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위지혁의 조언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던 도진은 올리버의 사례를 사양하지 않았다.

사례를 절대적인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적인 가치로 판단하는 것.

여기에 도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

그저 겸양하고 사양하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다.

감사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미덕이라는 것.

우벽진과 마찬가지로 올리버 후작도 무언가를 받았다면 반드시 사례를 해야 하는 성격이었으니 더더욱 말이다.

올리버는 순수하게 감사를 받아들이는 도진의 모습에 더욱 진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누가 되었든 드려야 할 사례금이었고, 우리 부부가 도진 학생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은 따로 있습니다."

"선물이요?"

"예. 저희는 양복도 취급을 하는데, 도진 학생에게 맞춤 양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도진은 잘 몰랐지만 올리버 후작가는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프리미엄 맞춤 양복 브랜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도진 학생만이 아닌 가족분들에게 맞춤 양복을 선물해 드리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십니까?"

좋다.

도진은 바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이직을 하시며 양복이 필요하게 되어 아버지의 것까지 맞춰 드렸었던 도진이었다.

그때 해드린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들로서 더 좋은 걸 해드리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이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것으로 과하지 않고 받는 입장에서도 기쁜 것.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선물이네요.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좋은 인연을 맺은 도진이 식사가 끝나고 떠나려 할 때였다.

총총총, 릴리가 다가왔다.

조금 떨어진 뒤에는 동생이 이쪽을 몰래, 그러나 훤히 보이는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야, 꼬마 아가씨?"

"릴리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릴리."

릴리는 도진의 시선에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다 말했다.

"심한 말을 했으니까 나도 부탁 하나를 들어주도록 할게요."

"오, 정말?"

"…들어드릴 수 있는 것만요!"

조금은 짓궂게 웃으며 말하니 다급히 그런 조건을 붙인다.

도진이 하하 웃고선 말했다.

"좋아. 그럼 어렵지만 들어줄 수 있는 걸 부탁하도록 할까?"

"뭐, 뭔데요?"

불안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릴리의 시선을 마주하며 도진이 '부탁'을 말했다.

"내 동생들이랑 친구해 줄래?"

* * * *

며칠 뒤.

도진은 숭무고 집행부실에 부원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방학이라 해도 집행부의 일은 처리해야 했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모이는 것이다.

전생의 도진은 방학에 학교에 나오는 걸 결코 좋아할 수 없었겠지만 현생의 도진은 아니었다.

학교는 더 이상 지옥이 아니었고 집행부의 일은 이렇게 나와 할 만한 가치와 재미가 있었다.

시키는 대로, 상황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관찰자이자 구동자의 입장에서.

톱니바퀴를 설계하고 톱니바퀴가 모여 움직이는 기계 전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만에 모여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집행부의 일을 마무리한 도진이 부원들에게 말했다.

"저 다음주에 이사가게 됐어요."

"헤에, 정말로 이사가는구나."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건 오대용의 곁에 앉은 주정아다.

주정아만이 아니라 나지윤은 물론이요 부원 전체가 알고 있었다는 얼굴이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숭무동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오는 일이다.

심지어 그 이사오는 사람이 살 집이 명장 우벽진이 올리모델링을 한 집이었으니 동네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정보를 집행부의 부원들이 접하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꽤 바쁘겠네?"

한유아의 물음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사 자체는 오전 내에 끝날 거 같아요. 차 두 대로 끝날 만큼 짐이 적거든요."

"어, 그거 무시하면 안 될 걸? 트럭 두 대면 하루종일 정리해야 할 만큼 보통이 아닐 건데."

몇 년 전 이사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주정아가 말했다.

하지만 도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 트럭 두 대가 아니야. 내 차랑 픽업 트럭 한 대까지 해서 두 대야."

"포장 이사가 아니야?"

"응. 짐이 정말 별로 없기도 하고 거들어 줄 애도 있어서 직접 하기로 했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모두의 눈빛이 변했다.

"직접할 거라고?"

무언가 의도가 스며 있는 한유아의 물음에 이 선배가 또 무슨 꿍꿍이를 품었나 싶은 도진이었으나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것도 나름 추억이 될 거 같아서요."

"헤에……. 그럼 나도 그 추억에 껴도 돼?"

"나도 가고 싶어."

"…나도 다음주에 한가한데 수련 겸 좀 거들어줄게."

"재밌을 거 같아. 나도 갈래!"

"나는 그냥 놀러 가고 싶은데?"

한유아의 뒤를 이어 소담과 오대용은 물론이요 부원 전체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그 제안이 도진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워 하하 웃었다.

-좋은 친구들이로구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절하지 않을 테지?

-네.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렇게 많은 손이 필요할 만큼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좋은 날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 손, 손님은 얼마든지 많아도 좋은 것이다.

여기에 한유아와 오대용 등이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도진에 대한 동네의 평가는 크게 올라갈 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금화의 영애와 요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오성의 오대용은 숭무동의 누구에 비교해도 빛이 바래지 않을 만큼 이름값이 높으니 말이다.

한유아와 오대용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제안했음을 도진은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 고마웠다.

그래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 끝나고 밥은 제가 쏘도록 할게요."

"오!"

이사 후 집들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풍성하고 즐거워질 거라는 예감이 드는 도진이었다.

* * * *

이삿날이 확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에 관한 기사들이 떴다.

-잠룡 김도진, 명성공방과 파트너 계약 체결!

가장 먼저 뜬 건 다름 아닌 명성공방과의 특별한 계약에 대한 기사였다.

-와, 명성공방 성공했네;; 김도진이랑 계약도 체결하고.

-반대 아님?

-아 분위기 곱창내지 말고 ㄹㅇㅋㅋ 만 치라고;

-ㄹㅇㅋㅋ

명장 우벽진이 합류한 명성공방은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처럼 그 주가가 치솟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그 못지 않은 명성을 얻고 있던 도진과의 계약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기사와 함께, 기사 이상으로 화제가 된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도진의 검 백설이었다.

-헐 미친 김도진 검이 '눈' 시리즈 원본이라는데?

-엌ㅋㅋㅋㅋㅋㅋ ㄹㅇ?

-아니뭐요시발진짜임그거?

눈 시리즈.

우벽진의 복귀작으로 유명 경매장의 최고가를 경신한 바로 그 명품 라인이다.

그리고 우벽진이 말하길 눈 시리즈에는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시리즈의 근본이 되는 작품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백설이라는 게 이번에 추가로 밝혀진 것이었다.

-기사 보셈. 우벽진피셜임.

-이거 또 낚시... 이왜진?;;

-아니 시발 진짜 이게 왜 진짠데 ㅋㅋㅋㅋ

도진과의 계약에 관한 자료를 보내면서 우벽진은 백설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한 것이다.

물론 도진과 이야기된 사항으로, 덕분에 도진과 명성공방의 계약은 온갖 커뮤니티에서 이틀을 내리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장작이 추가 되었으니 다름 아닌 하나의 기사와 도진의 SNS 글이었다.

-속보!) 잠룡 김도진, 명장 우벽진의 이웃이 된다!

-새로 이사 갈 집이 너무 예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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