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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56화 (156/741)

156화

올리버가 놀란 것은 도진이 말한 한빙석이 지금 상황에서 나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한빙석(寒氷石). 혹은 빙한석.

이름 그대로 차가운 얼음과 같은 돌이다.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고 현대 과학의 힘으로 탄생시킨 일종의 특수 광물이었다.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주위의 한기를 모으는 특성도 있다.

보편적으로는 냉동고 등에 넣어 두어서 한기를 잔뜩 응축시킨 뒤 음한기공(陰寒氣功), 그러니까 냉기나 한기를 띠는 무공을 익힐 때 몸에 지님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용도로 쓴다.

다만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차가워서만 되는 게 아니라 무공, 정확히는 내공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 위한 재료부터가 꽤 희소하고 만드는 법이 극비라 특허를 가진 특정 국가에서 소량만 생산되어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물론 그것도 상대적인 것이어서 올리버 후작 정도 되는 사람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런 물건을 다른 상황도 아니고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올리버가 확인을 위해 물었다.

"한빙석이라면 제가 아는 그 한빙석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도진은 지체없이 올리버가 아는 그 한빙석이 맞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으음……."

"마침 한빙석이라면 우리 공방에 재고가 몇 개 있으니 내가 하나 가져오도록 하지. 하나면 되겠나?"

"네. 충분합니다."

올리버가 고민하는 사이 우벽진이 말했고 도진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일은 지체없이 진행되었다.

그 사이 침묵하던 강호섭이 말했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저는 그럼 이제 손을 놓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강 거사."

마음을 아직 완전히 정하지 못한 올리버가 강호섭을 불렀다.

그러나 강호섭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해결하는 게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일을 해결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도진 학생이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저는 이만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강호섭에게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고생하셨는데 마지막까지 함께 하시는 건 어떠세요? 하루 정도만 투자하시면 되는 일인데."

도진의 말에도 강호섭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귀신의 일이 아니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귀신의 일을 도맡는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완고한 강호섭의 태도에 결국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였고 강호섭은 그렇게 퇴장해 버렸다.

"…도진 학생을 믿겠습니다."

기호지세(騎虎之勢).

올리버는 그렇게 말했고 도진은 일말의 불안이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믿어주세요."

* * * *

한빙석도 준비되었겠다 결정을 내렸고 미룰 일도 아니었기에 집의 청소까지 끝낸 다음날 저녁 바로 올리버 후작 부부는 문제의 저택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올리버 후작네 가족과 도진, 우벽진에 사용인들까지 들어오니 청소를 마친 저택의 내부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외부와 달리 금방 온기를 되찾았다.

"…정말 엄마는 괜찮은 거죠?"

올리버 후작 부부의 침실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방에 머물게 된 도진은 갑자기 찾아온, 귀여운 잠옷 차림의 꼬마 아가씨 릴리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한 번만 믿어 봐."

금갈색 머리카락의 꼬마 아가씨는 미소에 담긴, 단단한 확신이 주는 믿음에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는 처음 도진을 보고 사기꾼이라 외치던 것과 달리 조금은 미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기는 도진이 신뢰를 주기 위해 갈무리하고 있던 기세를 풀었던 때로, 태어나 처음 겪는 강렬한 존재감이 도진의 인상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그럼 한 번만 믿어볼게요."

고개를 돌린 채 작게 중얼거리고서 릴리는 총총총 떠나 버렸다.

아이다운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고서 도진은 눈을 감았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올리버 후작 부부가 잠에 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느껴지는 두 사람의 기척은 꽤나 담담했다.

외부인이 집에 있다는 것 자체는 두 사람에게 있어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 데다 담이 컸기에 상황에 짓눌리지도 않았다.

과연 우벽진의 친우답고 그런 사람을 반하게 만든 사람답다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했다.

하루가 다르게 크고 거칠어지는 천마기를 능숙하게 제어하며 내공을 몸 안에서 돌렸다.

심공을 수련하며 내공으로 일깨워진 감각을 풀어낸다.

오늘밤.

도진은 잠 대신 내공을 수련함으로써 피로를 풀며 정신을 일깨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만일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확신했기 때문에 확언하며 일을 진행한 것이다.

허나 확신한다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되기에 만반의 대비를 했다.

올리버 후작 부부는 자정이 넘어서 잠에 들었다.

방의 환경은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오직 하나, 서랍 위에 성인 여성의 주먹만 한 한빙석이 놓여 있다는 게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다.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뜬 그날 밤.

도진은 심공을 수련하며 시간을 흘려보냈고 우벽진은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올리버 후작 부부는, 달이 지고 태양이 뜰 때까지 잠에서 깨지 않았다.

"…신이시여."

햇살이 눈꺼풀을 간질일 때에야 잠에서 깨어난 올리버는, 마치 요람에서 잠든 아이처럼 미소를 띠며 잠든.

따듯한 온기가 깃든 아내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

* * * *

정여원은 꿈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났다.

미소짓는 부모님을 만나 인사를 나눴고 그것을 깨어났을 때에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정여원의 몸은 차가워지지 않았고 올리버가 얼음장 같은 아내의 한기에 깨어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도진이 확언한 대로, 그토록 부부를 괴롭혔던 괴이한 문제가 거짓말처럼 해결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진 학생."

"정말 고맙습니다."

도진은 미소지었고 크게 기뻐한 부부는 도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많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산해진미로 가득 채워진 식탁에 앉은 도진은 올리버 부부의 호의 가득한 감사 인사에 답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반짝반짝.

식사하는 도진을 정여원의 옆에 앉은 릴리가 반짝이는 눈으로 응시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적대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동경만이 가득하다.

릴리 같은 타입의 아이는 경계심이 많지만 그만큼 한 번 신뢰를 주기 시작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도진은 그런 신뢰를 보여주는 릴리에게 웃어주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이어졌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함께 초대된 우벽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말해 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우벽진의 재촉에 도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작 부인. 더위를 잘 타시지 않지만 반대로 겨울에 추위를 많이 타시는 편이죠?"

"네. 맞아요."

도진의 물음에 정여원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자네 설마 무속 쪽으로도 일가견이 있는 건가?"

우벽진의 물음에 도진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에요. 후작 부인의 체질을 아니 당연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에요."

"체질?"

"네. 후작 부인께서는 음기(陰氣)를 끌어들이는 체질이시거든요."

"음기를 끌어들인다면……."

우벽진이 말을 흐렸다.

그의 손자 우서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여 정여원 또한 그와 관련된 문제가 되는 체질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도진은 그런 걱정을 고개를 저어 일축하며 말했다.

"심각한 건 아니에요. 무공을 익히면 그 체질이 강해지지만 어디까지나 '체질'이 그렇다는 거라 겨울에 추위를 더 탄다, 정도로 그치는 게 보통이에요."

다만 이번엔 여러가지가 겹쳐 그렇지 못했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이 집의 '빛 설계'가 너무 잘 되었던 거예요."

"빛 설계가?"

"네."

빛 설계란 간단히 집으로 스며드는 빛을 의도한 곳으로 이끌기 위한 설계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창을 내는 게 아니라 정교한 설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빛을 들이는 것이다.

때문에 '빛 디자인'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에 관한 영역 또한 넓고 깊다.

"이 집은 곳곳에 고루 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그 의도가 200% 반영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채광이 좋아요."

그 시대에 지어졌다기엔 너무나 훌륭한 빛 설계.

그것은 도진의 말처럼 200% 태양빛을 고루 집에 퍼뜨려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낮의 태양빛만이 아닌 밤의 달빛 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달빛……."

"네. 달빛이요."

태양이 양기를 상징한다면 달빛은 음기를 상징한다.

부부의 침실에는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유리 천장을 내놓았으며 곳곳에도 창을 배치해 두었다.

빛 설계에 의해 배치된 그 창들을 통해 달빛이 부부의 침실에 고였고 거기에 깃든 음기가 정여원에게로 모였다.

잠든 동안 꾸준히 모인 음기는 일정치를 넘어 정여원의 몸을 한기로 가득 채워 버렸고 그렇게 몸이 차가워진 정여원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향수병까지 겹쳐 있었기에 '악몽'을 꾸었다.

한기로 인해 신체 기능이 떨어졌던 정여원은 깨어나서는 그 악몽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말이다.

"…그랬던 건가."

도진의 설명에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설마 이렇게 '과학적으로' 규명될 줄은 몰랐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풍수지리적으로, 무속적으로라도 상황을 해결하려 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도진이 이토록 쉽게 일을 해결해 버렸다.

"음, 그런데 말야. 제수씨는 과거에도 몇 번이고 이 집에서 머물지 않았나. 왜 그때는 괜찮았던 거지?"

그렇게 물은 것은 우벽진이었다.

듣고보니 분명히 그러했기에 다시 시선이 도진에게로 모였다.

도진은 정여원을 마주하며 물었다.

"후작 부인의 어머니께서도 아마 같은 체질이셨을 거예요. 제 말이 맞나요?"

"네, 그러셨어요."

"당시의 일을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해서 지금부터는 어디까지나 가정이에요."

이 집은 탁월한 빛 설계로 인해 달빛, 음기를 모으는 진법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무공을 일정 수준 이상 익혀 그때보다 음기를 모으는 체질이 더욱 강해진 정여원이 이번 일을 겪게 되었다.

여기에 과거에는 같은 체질인 어머니가 함께 머물렀기에 그 효과가 분산되어 문제가 될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 고 도진은 예상했다.

"아마 여러가지 요소가 겹쳐 있었을 거예요."

다만 그 요소를 지금에 와서 밝히긴 어려웠다.

정여원의 어머니와 아버지만이 머물렀을 때 어머니는 이번 일을 겪지 않은 이유 등을 이제와서 규명하는 것도 어렵고 말이다.

때문에 도진은 여기서 가정을 끝맺었고 올리버 부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본론으로 돌아와 도진이 말했다.

"제가 한 일은 그때처럼 음기를 분산시키기 위해 한빙석을 놔둔 것 뿐이에요."

일반적으로 과한 음기로 인해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빙석을 가져다 놓는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진은 문제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에 그 해결책으로 한빙석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음기를 끌어들이는 체질이 문제라면 그 체질보다 강하게 음기를 끌어들이는 특성을 가진 한빙석을 가져다 놓으면 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으니 말이다.

"한빙석의 음기가 너무 강해져서는 안 되니 일정 이상으로 음기가 모였을 때 교체해 주기만 하면 문제없이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근본적으로는, 이 집을 리모델링하는 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구요."

도진의 제안에 올리버 부부는 한빙석을 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여원이 추억 그대로 집을 보존하는 걸 원했기 때문이다.

방법이 리모델링밖에 없다면 그것을 택해야겠지만 한빙석이라는 수단이 있었기에 그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한빙석의 교체 시기 또한 적어도 3개월이니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일도 없다.

"그 한빙석은 내가 공급하기로 하지. 보수는 필요없어. 월광(月光)으로 한기를 채운 한빙석은 보물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한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우벽진이었다.

그의 말대로 한빙석은 달빛으로 음기를 채웠을 때 그 가치가 가장 높아진다.

우벽진은 그 한빙석으로 무구를 만들 생각이었다.

계약한 곳을 통해 한빙석을 소량이지만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어 수급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맙네, 친구."

"무얼. 우리 사이에."

미소를 주고받는 올리버와 우벽진.

이후로 화기애애한 대화가 식사 내내 이어졌고 어느 순간 강호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에 대해 도진은 간단히 평했다.

"그 사람, 사기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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