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53화 (153/741)

153화

그 집은 우벽진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꽤 큰 규모의 저택이었는데, 중세 귀족이 살 법한 디자인이어서 특히 눈에 띄었다.

한국이 아닌 영국에 있는 것이 어울릴 법한 고딕 양식의 저택이다.

외관에서 연식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낡았다'가 아닌 '멋스럽다'는 형태로 받아들여질 만큼 잘 지은 집이었다.

하지만 그 집을 품고 있는 마당이 더해지는 순간 저택은 귀족 저택이 아닌 '마녀의 저주를 받은 집'으로 이미지가 바뀌고 만다.

저택을 속박하고 있는 듯 무질서하고 무성하게 자란 정원의 식물들 때문이었다.

벌써 몇 달이나 방치한 듯 제멋대로 자란 식물들이 저택을 침식하는 듯 했고 그것이 멋스러운 저택에 중세 시대에 마녀의 저주를 받고 출입이 금지된 성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다.

숭무동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니었고 오래도록 잘 관리되어 온 듯한 저택의 이미지와도 맞지 않아 도진은 의문을 가지고 물은 것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우벽진의 답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저 집은…… 귀신들린 집이라 불리고 있네."

"귀신들린 집이요?"

도진의 반문에 우벽진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혹시 내일 시간 되나? 저 집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네."

우벽진의 그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린 집이란 말을 들었으니 내막을 듣지 않고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도진은 다음날 아침 숭무고 근처의 카페에서 우벽진과 마주한 것이었다.

"이런! 오늘도 내가 늦고 말았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오늘도 역시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온 우벽진은 블랙 커피를 홀짝이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제 말한 귀신들린 집은…… 사실 내 친우의 장인 장모님이 사시던 집이었네."

"우 명장님의 친우요?"

"그래. 젊었을 적의 나에게 통 큰 투자를 했던 친구였지."

"아."

도진은 우벽진이 말한 친우가 누구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무공을 동경하여 중국을 방문한 영국의 귀족 청년이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중국으로 갔던 청년은 그러나 실망하고 말았는데, 무공의 발상지라고 불리던 중국의 문파들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배타성이 유독 강했기 때문이었다.

인연이 없다면, 그리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초식 하나 견식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 실망한 청년은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우연히 한국으로 흘러들며 인연이 닿아 평생지기를 만났으니 바로 젊은 날의 우벽진이었다.

그 인연이 바로 우벽진이 명장이 될 수 있었던 귀한 인연이었다.

청년은 친구가 된 우벽진의 가능성을 알아 보았고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으니 그가 바로 영국의 명문 귀족인 웨일스가의 현 가주 올리버 웨일스였다.

친한파로 유명한 사람이면서 아내 또한 한국인이다.

여기에 우벽진이 명장이 되도록 아낌없는 후원을 하기까지 했으니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 이름을 알고 있었고 바로 얼마 전에 우벽진에 대해 검색까지 해 보았던 도진 또한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그 기색을 읽어낸 우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올리버 그 친구야. 그 친구가 한국에서 머물 집을 지었는데 기왕 짓는 거 장인 장모님이 지내시기 좋도록 좋은 곳에 크게 지은 게 바로 그 집이었지."

고딕 양식의 집은 그런 배경으로 지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크게 힘들어하던 아내를 위해 올리버는 얼마간 한국에서 머물 생각으로 이곳에 왔었어."

향수병까지 겹친 아내를 위해 올리버는 당분간 한국에서 머물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 집을 찾았다.

한국에 왔을 땐 언제나 그 집에 머물렀었다. 여기에 돌아가신 장인 장모와의 추억이 아내의 향수병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한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던 거야."

한국에 오고 얼마간 지났을 때.

갑자기 아내는 악몽을 꾸었다.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귀신이 나를 끌고 가려 했던 것 같다고 아내는 말했다.

그리고 그 꿈을 꿀 때 아내의 몸은…… 마치 시체라도 된 것처럼 차가웠다.

"시체가 된 것처럼 차가웠다구요?"

"그래. 올리버는 한기가 들어서 잠에서 깼고 곁에 누운 아내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크게 놀랐다고 했지. 한여름에 말이야."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타인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가워질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국 명문 귀족가의 침실에서, 그것도 여름에 말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한데 그 일이 이틀째, 삼일째 반복되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대사건이 되고 말았어."

한 번도 아니고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니 우벽진의 말대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가 그 3일만에 건강을 잃고 말았으니 말이다.

사람의 몸이 그토록 차가워지는데 건강을 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괴이한 것은, 그의 아내 말고는 같은 증상을 겪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제수씨는 3일동안 계속 같은 꿈을 꾼 것 같다고 했어. 그래, 귀신이 자신을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는, 깨고 나면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꿈을 말이야."

마치 올리버의 아내만을 데려가려는 귀신이 있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 갔으나 이렇다 할 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몸이 너무 강한 한기로 인해 상해서 건강이 깨졌다는 말만 해 주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에 가 보았으나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음기가 너무 강해져 음양의 조화가 깨져 이리 되었다면서 음기를 억누르고 양기를 북돋는 약의 처방을 해 주는 게 한계였다.

이대로 아내가 시름시름 앓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한 올리버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임시로 마련한 주택으로 거처를 바꾸고 양방과 한방 양쪽의 치료를 병행함으로써 아내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상태가 호전되자 아내는 고집을 부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부모님을 잃은 상실감에 더해 집에 거부당했다는 생각이 그런 고집을 부리게 만든 것이었다.

"올리버는 일단 집을 한 번 조사해 보자고 말했고 제수씨는 받아들였지."

혹시 정말로 집에 안 좋은 것이 깃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올리버는 생각했다.

용하다는 풍수지리사, 도사들, 그리고 이에 관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지식인들까지 고용하여 집을 조사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마저 장인들이 고려하여 잘 지은 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정말 귀신이라도 깃든 것 같은 이야기네요."

"그렇지."

혹시나 해서 하룻밤 더 머물러 보았으나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났다.

"올리버는 살풀이 굿을 하고 제사까지 지냈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으니 그런 것까지 해 보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그 불가사의한 일은 해결되지 않았어."

아내는 계속 귀신이 자신을 끌고 가는 꿈을 꾸었고 올리버는 아내의 몸이 뿜어내는 한기에 잠을 깨야 했다.

결국 올리버 부부는 그 집을 나와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내가 얼어 죽을 판이었다.

"그 귀신이 어쩌면 부모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제수씨는 하고 있는 모양이야."

우벽진은 씁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집은 방치되었고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았다.

올리버의 아내는 크게 상심했고 정신적으로도 상처를 입었다.

"당시의 나는 그 친구의 상담에 제대로 응해줄 수가 없어서 아는 건 이 정도야."

손자의 목숨이 저당잡혀 있던 때였기에 우벽진 또한 친우의 문제를 깊이 고민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이 후회스러웠고, 그래서 굳이 자리를 마련해 도진에게 이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어떤 기대를 안고.

"자네는…… 혹시 짐작가는 게 없나?"

"음……."

이야기만으로는 무어라 할 수 없었다.

우벽진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도진은 본래 귀신에 관해 '무관심'한 입장이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언하지 않지만 애초에 관심이 없으니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면 이제 도진은 그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바로 그 자신의 안에, 명계에서 도주하여 자신의 영혼에 깃든 두 명의 '영혼 스승'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승님들.

-글쎄다. 내가 살던 시대에야 천문(天門)에 닿은 술법가나 도사들이 극히 드물지만 있긴 있었고 이매망량 또한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시대엔 그런 게 딱히 없는 것처럼 보였다만.

위지혁이 도진의 눈으로 본 현대는 그러했다.

현대는 같은 세상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괴이(怪異)'가 자취를 감춘 시대였다.

오죽하면 귀신의 존재조차 부정하겠는가 말이다.

-그 장소에 가보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이어진 장호의 말에 도진이 화색을 띄었다.

-짐작가는 게 있으신가요, 장호 스승님?

장호는 이런 쪽에 관해서도 지식이 있었기에 도진은 어떤 기대를 하고 물은 것이다.

-가 봐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도진의 기대에 장호는 섣불리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짐작가는 게 없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었기에 도진은 예, 하고서 우벽진에게 말했다.

"현장에 가 보면 무언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 사실인가?"

"확답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저 작은 가능성입니다."

"그걸로도 충분하네! 내 연락해봄세."

우벽진은 반색하며 대번에 어디론가 연락을 했고 곧 일어났다.

집을 한 번 둘러봐도 되겠느냐는 이야기와 허락을 도진 또한 들었기에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의 픽업 트럭을 타고 달려 도진은 우벽진과 함께 어젯밤 보았던 마녀의 저주에 걸린 듯한 저택 앞에 섰다.

최소한의 관리는 하는지, 커다란 대문은 가볍게 밀자 부드럽게 열렸다.

"허락을 받았으니 얼마든지 둘러보게나."

"알겠습니다."

사박.

무성하게 자란 꽃과 풀들을 밟으며 도진은 나아갔다.

본래는 흐드러지게 피어 집과 어우러졌을 정원은 무질서하게 자라 걸음을 방해하려 들었다.

천천히 걸으며, 사방을 꼼꼼히 둘러보며 도진은 속으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장호 스승님.

-집 안을 한 번 확인해 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짐작에 아주 약간은 확신이 실린 어조였다.

도진은 지체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홀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2층 저택의 내부는 고딕 양식에 예의 빛 설계 등 현대적인 부분을 잘 녹여냈는데,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럽고도 장대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몇십 년이나 전에 지어졌음에도 이 정도라니, 과연 대단한 귀족이 장인들을 고용하여 지은 집다웠다.

도진은 말없이 장호가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도록 어느 한 곳 놓치지 않고 두 눈에 담았다.

함께 걷는 우벽진은 그런 도진을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함께 해 주었다.

그렇게 문제가 되었던, 부부의 침실까지 다 확인한 도진은 잠시간 말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장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장호가 요점만 정리해서 명확히 이야기 해 주었기에 대화는 길지 않게 끝났고 그 내용을 도진이 묵묵히 기다려 준 우벽진에게 해 주려 했을 때였다.

쿵쿵쿵쿵!

'음?'

고요한 집 내부를 울리는 성난 발소리를 도진은 들을 수 있었다.

우벽진 또한 그 소리를 들었기에 두 사람의 시선은 곧 발소리의 주인이 나타날 문으로 향했고.

쾅!!

"어떤 놈이 감히 이 집에 발을 들인단 말이냐!!"

성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도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