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52화 (152/741)

152화

도진네 가족이 저녁 식사 초대를 받은 우벽진의 집은 다름 아닌 바로 옆집이었다.

오늘 둘러본 집의 바로 옆에는 우뚝 솟은 나무들이 모여 작은 숲을 이뤘는데 그것이 옆집과의 담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숲에 작게 낸 길을 따라가면 도진이 보았던 집만큼이나 예술적인 저택이 한 채 나타나는데, 이 저택이 바로 우벽진 일가가 새로 지은 집인 것이다.

"사실은 이 부지 전체가 마당이었지."

우벽진네 가족이 새로 집을 지은 곳은 본래 도진네 가족이 계약금으로 받은 집의, 작은 숲까지 조성되어 있던 정말 넓은 마당이었다.

우벽진은 그곳을 활용하여 새로 집을 지으면서 숲 일부를 남겨 두 채의 공간을 분리한 것이었다.

도진네 가족이 살게 된 집이 백색을 바탕으로 하여 푸른색과 녹음을 더했다면 새로 지은 저택은 검은색을 바탕으로 하여 흰색과 갈색을 철저하게 영역을 나누되 조화되도록 지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두 집이 같은 사람에 의해 지어졌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묘한 통일감까지 느끼게 했다.

"미리 연락을 해 두었으니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을 겁니다. 들어가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도진은 우벽진이 새로 지은 집은 과연 철저하게 우벽진 일가를 고려하여 지었다는 것을 1층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1층부터 다른 집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1층 거실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곳이었다.

그러면서 우측에는 무려 커다란 '목욕탕'이 있었다.

그래, 욕실이 아니라 목욕탕이었다.

무림인이자 대장장이인 우벽진 일가는 1층과 지하실을 온전히 작업실 겸 수련장 겸 홀(Hall)로 사용했던 것이다.

생활 공간은 2층부터 시작이어서 도진네 가족은 2층의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기다란 12인용 식탁에 앉아 기다리니 곧 우벽진의 아들 내외, 명성공방의 대표인 우명진과 서은주가 귀가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푸짐하게 차려진 식사를 두고 서로의 가족이 인사를 나누었다.

우람한 근육의 이미지를 중화하는 선한 인상의 우명진과 명성공방을 지금의 덩치로 키워낸 카리스마 있는 서은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정중하게 서정원에게 인사했고 서정원 또한 정중하지만 과하지 않게 인사했다.

첫 만남이어서 조금은 어색함이 묻어나는 그 자리를 우벽진과 도진이 중간에서 풀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식사와 대화가 진행되자 우벽진이 오늘 도진네 가족을 초대한 이유인, 도진이 우서진을 구한 이야기를 꺼냈다.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이 아이, 서진이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명장 우벽진의 손자가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는 건 의외로, 그리고 놀랍게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태양권가가 손을 썼기 때문이다.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다니다 태양권가에 닿았던 우벽진과 우서진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린 태양권가와 권민국이 수작을 부려 이야기를 묻고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특별 관리를 한 것이다.

"놈들은 초가 몸을 태우는 것처럼 서진이를 연명시킬 뿐이었고 그것을 몰랐던 저는 손자를 그리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깎여 나가고 있었지요."

아들 내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공을 가르쳐 손자가 '무림 불치병'에 걸리도록 만들고 말았다는 죄책감이 지금은 이토록 당당한 우벽진의 허리를 굽게 만들었었다.

"스스로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구렁텅이에 저와 서진이는 빠지고 말았던 겁니다."

담담히 말하던 우벽진의 시선이 도진에게 닿았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그런 저와 서진이를 구원해 준 것이, 다름 아닌 아드님이었습니다."

"도진이가, 요?"

우벽진은 천천히, 허나 강한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드님이 저와 서진이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들을 믿는 서정원은 그러나 지금의 말은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지식인인 서정원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 불치병'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여 국가 단위로 관련 연구를 하고 있음에도 아직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스승님께서 치료법을 알고 계신 것이라 운이 좋게 치료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 어머니의 생각을 잘 아는 도진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사실 제가 모시는 두 분 스승님은 고대 무림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은 분들이세요."

"고대 무림의 진전."

"네. 고대 무림의 진전이요."

도진이 말하는 '고대 무림의 진전'이란 지금은 유실된, 무협지에서나 등장할 법한 시대의 무공을 뜻한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고대 무림의 진전을 이었다는 말에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의 눈동자에 놀람이 깃들었다.

"어머니랑 아버지께 쉽게 말씀드리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스승님들께서도 가능하면 이 부분에 관해서는 가족들에게도 숨기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랬구나."

서정원이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로 쉽사리 발설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보물은 화를 부른다는 말이 딱 여기에 들어맞는다.

보물을 얻었다면 최대한 조용히,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그래, 그게 최선일 게다.

온전히 사실을 다 말한 건 아니었지만 심상세계에서 위지혁이 말하는 대로 도진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제가 회귀를 했는데 그것이 죽어서 제 영혼에 깃든, 명계에서 도주한 무림 시대를 살던 초월적인 고수 두 분 스승님의 영혼 덕분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기엔 아무래도 무리였으니 말이다.

부모님이라면 그것을 억지로 납득해 주실지도 몰랐으나 이것 또한 장호가 말렸다.

-우리는 명계에서 도주한, 그리고 엄밀히 말해 이 세계에 있어서는 '이레귤러'라 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의 존재를 발설해서는 너에게 좋을 것이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구나.

장호는 본업은 암살자이지만 술법이나 천문(天文) 등 온갖 지식에 두루 능통했다.

그런 장호의 말이었기에 도진은 허투루 듣지 않고 부모님에게도 온전한 사실은 발설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뭐 그런 스승님들의 지식과 가르침 덕분에,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제가 배운 지식과 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을 서진이가 앓고 있어서 치료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 덕분에 저는 불치병을 치료하고 그토록 바라던 건강을 되찾고 대장장이이자 무림인을 목표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 또한 제 삶을 되찾을 수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리고 저희는 아드님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주고 싶은 겁니다."

우벽진 일가는 도진에게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는 커다란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우벽진 일가는 받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갚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도진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여사님, 저희가 드리는 것들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이 우벽진이는, 받은 게 있으면 꼭 돌려줘야만 하는 성격이니 말입니다."

* * * *

서정원은 우벽진 일가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벽진 일가에게 있어 주는 것들은 과한 것이 아니었고, 받는 서정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생각보다 아들이 훨씬 커버린 것을 알았기에 그것이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월요일과 목요일, 괜찮은 시간을 지정해 주시면 업체에서 찾아가 관리해 드릴 것입니다. 오전 5시부터 밤 11시 사이 언제든 괜찮으니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먼저 도진네 가족 사정상 관리가 힘든 집 전체를 전문 업체에서 일주일에 두 번 관리해 주는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관리비가 매달 백만 원씩 나오는데 이 부분도 저희가 함께 납부하기로 했습니다."

관리비란 다름 아닌 오늘 이곳에 오며 보았던 치안 서비스를 포함하여 수영장, 헬스장 등의 공용 공간과 편의 시스템에 대한 비용이었다.

이 부분도 우벽진 일가에서 납부하기로 했다.

"오늘 보셨던 집에 설치된 가전은 따로 사용하셔야 하거나 생각해 둔 것이 있지 않으시다면 사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디자인을 한 집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전이었다.

색상은 물론이요 크기까지 리모델링을 하며 완전히 맞춤으로 주문하여 넣은 것이었기에 우벽진은 그리 제안했고 그것까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럼 이제 이삿날만 정하면 되겠네요."

"포장 이사하실 거예요?"

"글쎄. 사실 가지고 나올 게 많진 않거든."

옷가지와 얼마 안 되는 짐을 제외하면 한 트럭으로도 충분할 거라 예상되는데다 도진이 있으니 굳이 포장 이사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 도진의 대답에 우서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형! 포장 이사 부르지 말고 제가 거들면 안 돼요?"

"응? 네가?"

"네! 이것도 행사라면 행산데, 함께 이사를 거드는 것도 재밌을 거 같거든요!"

"음……."

사실 도진에게 있어 '이사'란 건 그리 좋은 이미지의 단어가 아니었다.

생애 처음 한 이사가 바로 달동네로 쫓기듯 한 이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서진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로, 좋은 곳에 이사를 가게 된 상황이다.

가족들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짐을 싸고 나르는 장면을 떠올리니 결코 나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좋은 그림만이 연상되었다.

"마침 할아버지의 픽업 트럭도 있으니까 웬만한 짐은 다 함께 옮길 수 있을 거 같은데……."

"아, 확실히 그렇네."

대부분의 가재도구는 아마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내놓고 올 것 같았다.

커다란 것들은 싣고 올 일이 없고 어느 정도의 짐들은 픽업 트럭에 실을 수 있으며 슈킨팍시의 트렁크 용량 또한 적지 않다.

만약 부족하다면 작은 트럭 한 대 정도만 추가로 부르면 되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계산이 됐다.

그렇게 계산이 끝나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 같아. 그럼 도움을 좀 받아볼까?"

도진의 말에 우서진이 만면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든지요!"

그리하여 이사의 방식 또한 정해졌다.

"아, 그러고보니 자네 가구는 어찌할 텐가?"

"가구요?"

"웬만한 것들이야 들여놨다지만 그 외에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은가."

"네. 그렇죠. 천천히 한 번 가구 상가를 돌아볼까 싶네요."

가전기기를 포함하여 커다란 것들은 모두 갖춰졌지만 자잘한 것들은 채워야 하는 상태였다.

이번에 받은 계약금도 있고 이래저래 저금해 둔 돈까지 여유가 있으니 도진은 또 한 번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가구 상가를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우벽진이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만들어보는 건 어떤가?"

"만들어요?"

"그래. 자네가 SNS에 올린 사진 중에 직접 가구를 만드는 게 있던데, 혹시 관심 있으면 함께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겠나?"

우벽진은 이번에 리모델링을 진행하며 건축과 가구 제작에도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기왕 이리된 것 관심이 있다면 가구를 함께,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 제안에, 도진은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그 당시 DIY 가구를 만들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거…… 괜찮은데요?"

도진의 말에 우벽진 또한 씨익 웃었다.

"그렇지? 자재는 내가 제공할 테니 자네는 시간만 투자하게!"

조금은 들떠 말하는 우벽진의 모습은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길 친구를 찾은 것만 같아 도진은 더 크게 하하 웃고 말았다.

'큰 비밀'을 믿고 말해준 것이 크게 작용했던지 우벽진은 도진을 더욱 호의를 갖고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항이 정해지고 이삿날은 가족이 상의하여 잡기로 결론이 났다.

식사와 이야기가 끝나고 시간이 꽤 늦어 슬슬 도진네 가족이 떠나기로 하고 나왔을 때였다.

차고로 가는 길에 도진은 우연히 이질적인 집 한 채를 보게 되었다.

"명장님. 저 집은 어떻게 된 건가요?"

별 생각없이 한 질문.

그러나 그 질문을 받은 우벽진의 표정이 꽤 굳었다.

그리고 나온 답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저 집은…… 귀신들린 집이라 불리고 있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