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46화 (146/741)

146화

-충격! '그 중견 기업' 일진의 어머니,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흑도까지 고용했다.

-숭무고도 피하지 못한 일진 문제는 더 심각했다(종합).

숭무회 가해자의 부모들이 그토록 막으려 했던 사건은 그런 타이틀과 함께 대서특필되고 말았다.

대서특필될 수밖에 없을 만큼 사건이 커졌다.

시작은 문월동 경찰서였다.

도진을 핍박하려 들었던 경찰이 감찰을 받게 되었고 라인을 타고 올라가 서장까지도 줄줄이 걸려들었다.

동시에 '작업'을 함께 하던 물산용역이 도진에 관한 '의뢰'를 받은 흑도와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났고 그 흑도가 극한파라는 것까지 순식간에 밝혀졌다.

보통 겉으로 드러나는, 말단에서 얼굴 팔리며 행동하는 게 흑도의 새끼라는 건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부분이었다.

하지만 몸통이 되는 흑도의 이름은 잘 드러나지 않는데,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데다 적이 많은 그들 특성상 같은 식구가 아니면 문파라고 하기도 민망한 그 이름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전산상으로도 남기지 않고 식구가 아니면 문파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련 있는 흑도가 어느 곳인지 특정하는 것부터가 난항인 것이 흑도에 의한 사건이었다.

한데 이번엔 그 이름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드러났고 심지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밝혀선 안 되는 의뢰자의 이름까지 밝혀지고 말았으니 다름 아닌 도진의 활약이었다.

물산용역의 관리자, 물산용역의 몸통과 유일하게 연관되어 있는 남자는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입을 굳게 잠갔다.

그러나.

"어차피 극한파가 오공태 부모한테 의뢰받은 거 다 알고 있는데."

"허억! 그, 그걸 어떻게!"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뜬 남자가 경악해 외쳤지만 참고인 자격으로 동석했던 도진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성보가 잔잔하지만 자비없는 어조로 말했다.

"제보자의 신분은 비밀엄수입니다. 그러니 장구보 씨가 실토한 것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아, 안 돼!"

흑도의 비밀을 누설한 자는 언제든, 설령 낮이라 해도 길을 가다 칼에 맞아 죽을 걸 각오해야 한다.

가족이 있다면 가족 또한 처참한 죽음, 혹은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게 된다.

장구보는 수사에 '협조'를 한 대가로 가석방을 받을 텐데 그것은 나가 죽으라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장구보가 착란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허우적거리자 나성보가 다시 말했다.

"보호 감찰 처분을 받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협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그리하여 장구보는 아는 것 모르는 것 모조리 실토하였고 극한파의 본거지가 압수수색 당하며 의뢰자, 장헌숙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어떻게 의뢰를 받은 곳이 극한파라는 걸 알았습니까?"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나성보가 물었다.

흑도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성보의 입장에서 대번에 이번 일을 벌인 흑도 문파의 이름을 알아낸 도진은 그 천재적인 머리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나성보의 시선에 도진은 씨익 웃었다.

"우연이었어요. 제가 중학생 때 한 번 들었던 이름이거든요."

불행했던 전생의 기억이 도움이 되었다.

도진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강치환과 같은 고등학교인 문월고에 진학했기에 악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일찌감치 새끼가 되었던 강치환이 했던 말을 도진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야, 나 이번에 스카우트 됐다.

-스카우트?

-어. 아는 선배 중에 극한파라는 곳에 입사하신 선배가 있거든. 거기로 오라고 하시더라.

-오 미친. 그럼 이제 진짜 무림인 되는 거냐?

정보라는 건 의외의, 그리고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 새는 법이다.

그 대화로 문월고가 극한파의 '인력 시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숭무고의 김도진은 결코 알지 못했을 일을, 전생에서 일진들의 한복판에서 피해자로 살았던 김도진은 '내부자'로서 어느 정도 어깨 너머로 들었던 것이다.

만약 강치환이 처벌을 받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번 일에 강치환 또한 새끼로서 동원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인 도박으로 던졌던 한 마디에 극한파의 장구보는 제대로 낚여 모든 걸 실토했다.

"제가 문월중이었잖아요."

나성보는 그런 도진의, 전생에 관해선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 천재적인 머리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지만 중학생 때 일진 문제의 피해자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일진들이 조심성없이 흘린 말들을 통해 얻게 된 정보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수사가 막힘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싸움을 걸고 도망가는 걸 용납지 않는다.

선인도 아닌 악인.

걸리는 것도 없으니 끝장을 볼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니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결국 극한파를 찾아냈을 것이다.

어쩌면 나지윤의 도움을 받아 그 시간이 단축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즈음엔 느리게 좁혀지는 수사망에 저쪽도 충분한 대비를 하고 말아 흐지부지하게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북양식품은 그런 쪽으론 전문가였으니 말이다.

그것이 도진의 '낚시'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수사가 진행되어 뿌리가 되는 장헌숙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낚아챌 수 있었다.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성보 변호사님."

도진의 말에 나성보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건 제 전문 분야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대로 되었다.

* * * *

-북양식품 장헌숙 전무, 징역 1년 실형 선고!

-나성보 변호사, 이번에도 '정의 구현'했다!

흑도 문파에게 의뢰하여 무고한 시민을 해코지하고 영업을 방해하려 했던 장헌숙은 이례적인 속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진에 의해 피해가 최소화되었기에 1년이었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발악하며 실형을 피해왔던 북양 일가는, 그러나 이번에는 그 충격적인 실형이 선고된 1심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나성보 검사'가 나선 이상 발악해봐야 끌리는 시간만큼 이슈가 더 커지고 회사 이미지만 더 나빠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길게 끌고 가기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걸 택했다.

그로 인해 장헌숙이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어차피 '다른 피'다.

감수할 수 있는 피해라고 창업주, 북양식품의 회장은 판단한 것이었다.

물론 회사 이미지는 이미 시궁창에 빠진 뒤였지만 말이다.

장헌숙의 실형 선고와 함께 영업 방해 등의 손해에 대한 민사 소송도 진행되어 5000만원 가량의 손해 배상도 하게 생겼다.

여기에 손자 또한 징계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서태주는 가감없이, 당했던 일과 알고 있던 일까지 모두 풀어놓았다.

철저하게 자신이 당한 일들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숭무회 전체가 징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여기에 나지윤이 조사한 내용까지 증거로 더해졌다.

정학 3년. 숭무고 반경 300m 내로 접근 금지.

공통적으로 숭무회 양아치들이 받은 징계였다.

피해자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여기에 특별 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려 더욱 가혹한 규범을 적용받게 된다.

최고의 형벌이 무인으로서의 생을 마감함은 물론이요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살아야 하는 '단전 파괴'였으니 그 무시무시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소리치던 가해자들의 부모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장헌숙의 사례를 통해 뻗대봐야 피만 본다는 걸 깨닫고 알아서 처신한 것이다.

3년 정학은 뼈아프지만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학교에 복귀할 수 있고 처벌을 받지 않으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징계가 결정되고 학교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된 오공태가, 조금 떨어져 있던 도진에게 달려갔다.

주변 사람들이 경계했지만 도진은 느긋하게 덤벼들 것처럼 흉흉한 기세의 오공태를 마주했다.

오공태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얼굴로 씹어뱉듯 말했다.

"너…… 언젠가는 내가 죽여 버릴 거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당신을 죽이진 않을 겁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착한 사람이 아닌데 죽이지 않는다니.

도진은 그렇게 말하고선 다음을 섭음술로 오공태에게만 들려주었다.

"……!!"

오공태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리고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공포스러운 어떤 것에서 도망치듯 뒷걸음질 쳐 사라져 버렸다.

도진은 한 번 더 피식 웃고선 몸을 돌려 버렸다.

'아니, 또 뭐라고 말한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길래 저러는 거야?'

주변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은 표정이었지만 다가가 묻지 못했다.

가까이 가 말을 걸기에 도진은 너무 커 버렸으니까.

"뭐라고 말한 거야?"

그래서 바로 곁에서 함께 걸으며 묻는 소담이 다른 의미로 부러웠다.

소담의 물음에 도진은 부드러운 얼굴로 답해 주었다.

"원래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더 괴로운 거잖아?"

"아, 그렇구나."

모든 걸 다 말해주지 않았지만 소담은 그것만으로도 무슨 말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고 그것은 얼추 들어맞았다.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단전마저 파괴되어서 망해 가는 집안을 지켜보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도진의 말에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한유아의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아니라, 지옥의 불꽃이 넘실거리는 듯한 흉악한 마력이 말이다.

기필코 그렇게 되고 말 거라는 불길한 확신이 들게 하는 도진의 말에 오공태는 공포에 질려 도망친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길게 끌렸던 징계가 결정되면서 전통 있는 일진 클럽 숭무회는 해산되었다.

물론 일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없앨 수도 없는 것이고.

하지만 최소한 현재의 집행부가 있는 이상, 도진이 있는 이상 그 세력은 역대 최저라 해도 좋을 만큼 기를 펼 수 없게 되었다.

대놓고 기세등등하게 활동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해졌고 말이다.

모든 것이 '해피 엔딩'으로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현실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도진은 오성아, 나성보와 함께 다시 한 번 서태주의 부모님을 마주했다.

후련한 얼굴의 두 사람은 사건이 마무리 되었는데 무슨 일로 찾아왔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오성아가 말했다.

"두 분께서 식재료 납품 업체도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번에 저희 오성 본사 구내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 중 한 곳과의 계약이 중도 해지 되어 그 부분에 관한 업무를 대행하여 주실 수 있을까 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네에?"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부부의 눈이 커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기업 본사 구내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일이라니,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성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계약이 해지된 곳은 북양식품의 계열사입니다."

"아……."

그 말만으로도 부부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북양식품의 이미지가 다시 나락으로 가며 여기저기서 불매 운동과 '손절'의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기업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오성 또한 북양식품과의 관계를 끊어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구내 식당 식재료 납품 업체 중 한 곳이었던 것이다.

"장기 계약은 아닙니다. 본래의 계약 기간 중 남아 있는 1년 간의 계약입니다. 이후로는 입찰 경쟁을 통해 연장 여부가 결정됩니다."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좋은 계약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복권 당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현실은 동화 같지 않아서, 사실 부부의 사업은 경영 사정이 상당히 나빠져 있었다.

가해자들의 부모는 기득권으로 나름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때문에 부부의 회사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히고 배척받아 납품 계약이 끊기고 식당의 예약이 뜸해지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곳도 아니고 오성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계약을 1년이나 맺게 되었으니 복권 당첨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오히려 오성의 이미지가 좋아질 일이니 저희 쪽의 이득이 더 큰 일입니다."

공익 신고를 한 서태주의 부모님 회사와 계약을 맺는 일이니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서로가 윈윈하는 계약.

그 계약의 성사를 지켜보며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다 지켰다. 서태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