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대한민국 법무팀 중 최고를 꼽으라 하면 열 중 아홉은 금화의 법무팀을 꼽는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금화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로 구성된 소수 정예의 팀은 가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드림팀이었으니까.
하지만 질문을 바꿔 '가장 잘 싸우는 법무팀'을 꼽으라 하면 다른 이름이 나오니 바로 오성의 법무팀이다.
그 공격적인 성격상 적이 많은, 그런 상황에서도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오성은 적이 많은 만큼 마찰도 많았다.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기에, 무력에 관한 문제라면 오군성이 있는 이상 해결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법(法)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오군성은 무(武)는 물론 문(文)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그쪽으로 평생을 매진한 자들에 비해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물며 법은 도리와는 유리된 부분이 있어 의롭다 해서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었다.
때문에 오군성은 금화 이상의 대우를 해주며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채용했고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법적 투쟁을 잘 하는 조직인 오성 법무팀이었다.
그 오성 법무팀의 한 명이 지금, 문월동의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성보.
지방 법원에 입성하여 어느 중소 기업 사장의 비리 사건을 맡았다.
그 사장이 여기저기 인맥도 대단했고 심지어 흑도 무인들까지 얽혀 있어 '적당한 수준'으로 끝내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기어코 감방에 쳐 넣어 버렸다.
그 이야기가 퍼지며 일약 '스타 검사'가 되었으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좌천되었고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한데 그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터뜨리며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뇌물이나 협박 등에 결코 굴하지 않는 진짜 검사.
그리고 그런 위협에서 그를 지켜줄 대단한 인맥까지 보유한 검사로 말이다.
그 인맥 중 하나가 바로 오군성이었고 그 인연으로 서울의 검사장을 거쳐 오성의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상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나성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설령 나성보를 모른다 해도 '오성의 법무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자리의 모두를 찍어 누르기에 충분한 타이틀이었다.
대기업 법무팀.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오성의 법무팀이 이 자리에 나타났으니 지금부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판단하지 못할 정도의 멍청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 자리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사득은 아예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았다.
머리가 삐걱이면서도 팽팽 돌아가는 거 같긴 한데 유의미한 생각으로 이어지지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아 전에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대처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강사득을 나성보가 발견하곤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이름이 강사득이었지."
쿵!
심장이 튀어 나올 것처럼 강사득은 놀랐다.
마치 펄쩍 뛴 심장 때문에 몸까지 같이 뛴 것만 같았다.
"아, 예. 예. 강녕하셨습니까, 선배님."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했지만 머리는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 괴물 같은 사람은 강사득이 막내로 지방 법원에 입성해 스쳐갔던 때의 일은 물론이요 이름마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
독을 잔뜩 품고 대가리를 바짝 치켜든 채 기세등등하던 강사득이 노련한 땅꾼에게 모가지를 눌린 듯한 모습이 되자 마찬가지로 고개가 뻣뻣하던 양아치들도 눈깔을 뒤룩뒤룩 굴려댔다.
눈치만큼은 탁월한 그들도 상황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음을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오성의 법무팀 중 한 명이 오성의 직계인 오성아와 함께 나타났다.
거기에 그들은 얼굴을 몰랐지만 같이 온 오대용 또한 한껏 인상을 쓰고 '니들이 내 친구를 건드려?'란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쳐맞은 건 그들인데 말이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헉!"
새로이 경찰서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 또 한 번 모두가 기함했다.
허니 블론드의 머리카락을 지닌, 마력과 같은 미모를 자랑하는 미녀.
무림에서는 금봉으로 유명하며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금화의 영애인 한유아가 나타났다.
"우리 후배가 여기 있다고 해서 와 봤는데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하는 한유아였으나 그 안에는 구미호가 꼬리 아홉 개를 살랑이고 있었다.
변호사랑 함께 온 것도 아니고 혈혈단신, 혼자 왔다.
하지만 무림의 금봉이면서 금화의 영애인 한유아가 후배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압박이었다.
토끼굴인 줄 알고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불곰을 마주한다면 이럴까 싶은 상황에 양아치들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파직!
은밀하게 오성아와 한유아의 시선 중간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여유롭던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자, 제 일을 맡아 주실 변호사님도 오셨으니 대질 심문, 시작하시죠?"
"……."
당신도 그냥은 못 넘어갈 거야.
그런 도진의 시선을 마주한 경찰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렸다.
* * * *
고소장을 제출했던 양아치들의 회사, '물산용역'은 즉시 고소를 취하했다.
애초에 승산이 제로였던 고소였다.
알면서도 그저 소송 특성상 시간을 질질 끌며 도진의 피를 말리려던 계획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전면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에나가 제아무리 노련해봐야 코끼리와 박치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코끼리 무리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서를 나와 중정에서의 식사 자리에서 도진은 정중하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해 두었기에 고소장이 날아든 상황에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도진이었다.
-한 번 들이박아 보려고 해요.
-그럼 내가 너희 가족 경호 의뢰 넣을게.
-그 의뢰는 내가 받도록 할게.
-나는 그놈들 죄라도 좀 캐볼까. 심심풀이로.
도진의 말에 대번에 오대용이 나서서 경호 의뢰를 넣겠다고 말했고 한유아가 그것을 받았다.
나지윤은 적반하장으로 징계가 부당하다 지껄이던 숭무회 놈들의 죄를 캐보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의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취미로 하는 것이니 부담가질 것 없다는 투로 말이다.
여기에 전화까지 왔다.
-안녕. 잘 지냈어?
오성아는 오대용에게 들었다며 혹시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으면 총알처럼 달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 주었다.
그런 도움들에 힘입어 도진은 마음 먹은 순간 상황을 어렵게 풀 것 없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쌓아 온 시간, 그리고 인연의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과 인연의 힘은 도진의 계산조차 넘어설 만큼 대단했다.
도진의 인사에 나성보가 넉넉한 웃음을 보였다.
"초면이지만 들은 이야기들이 많아서인지 낯설지가 않군요."
50대 초반의 넉넉한 인심이 돋보이는 인상이다.
한데 그런 인상과 달리 업적과 행보는 화려하고도 파격적인 사람이었다.
"군성 형님께서 오랜만에 탐나는 인재를 봤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평소와 같은 욕심이라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저도 감탄하곤 했습니다."
나성보는 권력형 비리를 지독히도 혐오했다.
그의 집안이, 어린 시절이 권력형 비리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목숨을 걸고 검사 생활을 했던 것이고 노력과 집념, 천운이 합쳐져 이 자리까지 왔다.
그렇게 살아온 나성보에게 있어 도진은 역겨운 자들을 심판할 칼처럼 보였고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청하여 오성아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이었다.
"우리 성아의 남편이 될 수도 있었던 학생을 한 번 보고 싶기도 했었고 말이죠."
"삼촌!!"
다소곳이 앉아 있던 오성아가 깜짝 놀라 소리쳤고 나성보는 허허허, 웃었다.
은근히 두 사람을 이어주려는 의도가 보이는 농담.
오대용 또한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선 듯 흐뭇하게 웃고 있다.
그 분위기를, 자리에 함께 한 한유아가 끊었다.
"이제 함부로 뒷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됐을 텐데, 어떻게 할 거야?"
평소처럼 매력이 짙게 묻어나는 미소였으나 은근히 무언가를 시험하는 듯한 시선이다.
도진은 그 시선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 * * *
북양식품.
가공식품 전문 생산·판매 업체로 나름 이름 있는 중견 기업이다.
제품 때문이 아니라 오너 집안이 이래저래 사고를 많이 쳐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 이미지가 아주 좋지 않다.
창업주는 물론이요 창업주를 보고 배운 2대 또한 인성이 글러 먹었으니 3대가 되는 오공태가 일진이랍시고 싹수부터 노란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오공태의 어머니가 되는 북양식품의 장헌숙 전무는 손톱을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
아들이 기껏 배운 무공을 좀 썼기로서니 징계를 내리겠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찾아가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번 일을 만든 비렁뱅이를 보았다.
귀한 아들을 때린 걸로도 모자라서 영상까지 찍어 아들이 처벌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본때를 보여줄 생각으로 건수를 잡고 강사득을 고용했는데.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사태가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기세등등하게 의뢰를 받아들였던 강사득은 파리한 얼굴로 위약금까지 물며 대번에 '손절'을 해 버렸다.
돈을 뿌리고 술잔을 나누며 맺어두었던 인맥들 역시 앗 뜨거라 손을 빼고 모른 척을 하기 시작했다.
고소장을 받자마자 오성의 법무팀이 달려오고 한유아가 찾아오는 인물을 건드렸으니 그 무시무시한 업화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도대체 그놈이 뭐라고!'
오성의 회장인 오군성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물론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스폰서 계약조차 맺지 않았던 게 김도진이었다.
명백하게 오성과의 사이에 선을 그어 두었단 말이다.
한유아와도 같은 집행부 소속이라는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교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내막이 있기에 오성과 금화가 동시에 개입하느냔 말이다.
다급히 고소를 취하하고 발을 뺐지만 벌집을 건드린 여파는 시시각각 장헌숙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말단 경찰부터 시작해 경찰서장까지 이번 일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중정을 압박하기 위해 은밀하게 의뢰를 넣었던 흑도 문파, '극한파'마저 압수수색을 당하는 중이었다.
전면에 노출된 건 어디까지나 물산용역, 그러니까 '새끼'들이다.
아직 조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새끼들을 아무리 추궁해봐야 극한파라는 이름이 나올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몸통이 들통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놈이 배신했을 리도 없고.'
유일하게 조직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게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의 말단이었으나 고객의 정보를 실토하면 이 바닥을 목숨으로 떠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놈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거기에 관해서만 골몰할 수 없는 건, 이러다가 의뢰인이 자신이라는 게 드러나는 순간 그냥은 못 넘어갈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사실상 전면 항복을 선언하고 수작을 부리던 걸 완전히 멈췄다.
한데 저쪽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예 숨통을 끊어 놓을 때까지,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었다.
겨우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하는 게 장헌숙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벌컥!
"장헌숙 전무님.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도진은, 싸움을 걸어 온 악인을 자비롭게 보내주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