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새끼'라는 단어가 있다.
흑도에 발을 들인 무림고 학생들을 뜻하는 은어다.
싹부터 노란 양아치들이 고등학생 때 이미 진로를 흑도로 정하고 그쪽으로 이름을 올리면 새끼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흑도에 갓 입문한 어린 놈으로 대부분은 흑도 문파의 말단으로 활동하며 실적을 올리거나 무공이 강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뭐 말은 거창하게 흑도 문파인데 톡 까놓고 말하면 조폭들이다.
현대 무림판 조폭.
기껏 무공을 배웠으나 그 수준이 변변찮고 번듯한 업체에 취직하여 활동할 자신이 없는 놈들, 혹은 인성이 글러먹은 놈들이 일찍이 흑도로 빠져 조폭이 되는 것이다.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따질 것 없고 스펙을 쌓을 것도 없이 시키는 대로 힘만 쓰면 가끔 목돈이 들어온다고 하니 쉽사리 그쪽으로 빠진다.
흑도에서 일부러 말단을 수급하기 위해 꼬드기기도 하고.
이런 행위를 또 '새끼 친다'고 한다.
도진은 골목을 막고 있는 것들이 그런 새끼들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모두 무복 형태의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클라이언트'의 의뢰에 따라 고등학생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고 이곳에 파견되었을 것이다.
빠아아아아앙!!
도진이 힘껏 누른 경적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진다.
오토바이 위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놈 하나가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휴대폰을 툭 떨궜다.
다시 집어든 휴대폰은 모서리와 액정이 깨져 있었다.
그것을 든 놈이 한껏 위협하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빠아아아아앙!!
쿵쿵쿵!
"아저씨. 문 좀 열어 봐. 아이 씨발!! 시끄러우니까 그만 쳐 누르고 문 열라고!!"
멈추지 않는 경적 소리에 창문을 두들기면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무슨 짓이냐는 서태주의 시선을 받으며 도진은 느긋하게 경적에서 손을 떼고 문을 열었다.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서 나오는 도진에게로 조폭 지망생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운전석 창문을 두들기던 조폭 지망생이 쿵쿵거리며 도진의 앞에 섰다.
위협적으로 면상을 들이댄다.
"뭔데 니가 나오냐? 응?"
'음?'
그 시점에서 도진은 약간 당황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나를 못 알아본다고?'라는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 그렇구나.'
하지만 이어서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이곳은 숭무고가 아니었으며 눈앞에 있는 것도 숭무고나 숭무영재고의 학생이 아니었다.
바닥 중의 바닥.
그리고 막장 중의 막장.
조폭 지망생이나 하고 있는 밑바닥 쓰레기들은 도진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도진이 입고 있는 숭무고의 교복은 등에 '崇武'라는 두 글자만 새기면 되는, 디자인 규정이 상당히 넓은 편이어서 놈들은 숭무고의 교복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모두가 날 알아볼 리가 없는데 말이지.'
슬쩍 웃음이 나왔다.
그런 도진의 모습에 면상을 들이댔던 조폭 지망생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이 새끼가 실성을 했나. 뭔데 쳐 웃고 있냐?"
대답 대신 웃음을 흘린 도진을 기세등등하게 위협하는 조폭 지망생의 모습에 도진이 더욱 진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 미안. 나는 너희를 아는데 너희는 나를 모르는 게 조금 재밌어서."
"뭔 개소리야?"
조폭 지망생은 도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방금의 말은, 어디까지나 전생을 기억하는 도진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으니까.
놀랍게도 도진은 이들을 알고 있었다.
이름을 안다거나 낯이 익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도진이 이들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들이 다름 아닌 문월고의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월고.
전생에서 도진이 합격했던 학교였으며 이 근방에서 양아치들의 집합소로 유명했던 학교였다.
그렇게 양아치들이 모인 곳에서도 눈앞의 놈들은 그야말로 사신이나 다름없는 악명을 자랑했다.
흔해빠진 그냥 일진이 아니라 새끼가 된, 그러니까 흑도 조폭 업계에 발을 들인 '진짜'들이었기 때문이다.
도진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일진이랍시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강치환이 설설기며 상납을 하던 모습을 말이다.
그렇게 '천외천(天外天)'으로 보이던 놈들을 도진은 이번 생에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이 새끼가 정신이 모자란 새낀가. 뭘 쳐 웃냐고!"
"하하하! 미안, 미안. 그냥 개인적인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상당히 유쾌한 기분이 만든 웃음이었다.
그때엔 그렇게 무섭게 보이던, 완전히 다른 세상 놈들이었던 '새끼'들이.
이제는 단순히 저급한 양아치, 하룻강아지만도 못한 놈들로 보였기에.
도진은 새삼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웃음이 나온 것이다.
"새끼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야!"
"어, 그래. 짖어 봐."
"이, 뭐……?"
"짖어 보라고."
순간 양아치의 표정이 멍해졌다.
도진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개 취급에 머리가 상황을 따라잡는 데 딜레이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순간 그 얼굴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이게 진짜 미쳤나!!"
개처럼 소리치며 손을 휘둘렀다.
단순한 도발에 바로 손을 쓰는 그 모습은 짧은 순간 도진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쓰고 버릴 놈들인가 보네.'
굳이 학생, 새끼들을 배치한 것에서 짐작하긴 했지만 너무나 수준 떨어지는 양아치들이었다.
상대의 역량 파악도 하지 않으려 들고 최소한의 경계심조차 없다.
사람들이 이곳을 꺼리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 배치했을 것이니 이런 식으로 쉽게 싸움을 거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허술하다.
어디까지나 버림패로 쓰려고 고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수작을 부리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그저, 이들을 고용한 양아치 부모들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단 하나.
무력(武力)이다.
짜악!!
도진의 따귀를 맞은 양아치의 몸이 부웅 날아 본래 있던 자리, 오토바이와 부딪쳐 함께 나뒹굴었다.
콰지직!
"뭐, 뭐야!"
우르르, 근처에 있던 여섯 양아치가 흠칫 놀라 모이며 몸을 긴장시켰다.
무림학교에서 일진 행세를 하는 양아치들은 발육 상태부터가 남달랐다.
험상궂은 면상에 180은 기본으로 넘는 키.
거기에 소위 말하는 '3대 500'은 우습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덩치까지 가지고 있다.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무인들은 이렇게 신체적 조건부터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하는데 도진은 바로 그 '극히 드문 예외'에 해당했다.
본래 발육 상태가 좋지 않았던 도진은 연신극기공으로 인해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겪고 있지만 아직 키가 170 중반밖에 되지 않았다.
체구 또한 호리호리한 편이니 무림인치고는 왜소한 난쟁이라 할 만큼 체격 조건이 부족한 것이다.
한데 그런 도진이, 곰 같은 덩치를 가진 양아치를 뺨 한 방으로 날려 버렸으니 양아치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따귀를 맞고 나뒹군 양아치가 입 안이 터져 피를 흩뿌리며 몸을 일으켰다.
눈마저 시뻘겋게 되어 도진을 노려보았다.
동시에 그 뒤를 다른 양아치들이 받쳤다.
그 모습에 도진은 또 코웃음을 흘렸다.
이런 면에서 밑바닥을 뒹구는 흑도 양아치의 습성이 보인다.
숭무고에서는 그래도 '엘리트'랍시고 여럿이 한 명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숭무회의 양아치들조차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만큼 합공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양아치들은 달랐다.
밀린다 싶으니 서슴없이 단체로 덤비려 했다.
법적으로도 뒤에 불리하게 작용할 텐데 망설이지 않으니 과연 흑도 양아치답다.
물론, 결과는 바뀔 수가 없었다.
짜악!
"켁!"
짜아악!!
"악!"
숭무고의 2학년들마저 감히 상대가 되지 못했던 도진이었다.
신안마저 뜬 도진에게 있어 문월고의 양아치들은 쉬움 모드의 봇조차도 되지 못할 만큼 수준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일부러 힘조절을 하며 오직 따귀만으로 놈들의 얼굴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주었다.
따귀를 맞을 때마다 굴욕감과 고통에 짐승마냥 온힘을 다해서, 그러나 어설프게 덤벼드는 양아치들의 뺨을 도진은 계속해서 후려갈겼다.
짜악! 짜악!
터져서 너덜너덜해지는 입 안.
그리하여 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덤벼드는 모습들을 도진은 근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모습마저 역겨웠기에, 도진은 슬슬 끝낼 생각으로 손에 천마기를 담았다.
훅!
그 경로가 뻔한데 심지어 너무 느리고 맞아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나약한 주먹이 날아든다.
기초가 부실해 일직선으로 뻗지도 못하는 게 마치 파리가 비실거리는 듯 하다.
너무 수준이 낮으니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지경.
도진은 그 주먹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한 발 내딛었다.
무흔잠영을 쓴 게 아니었음에도 그 움직임을 좇지 못한 놈의 면상에 도진이 따귀를 날렸다.
짜아악!
앞서와 마찬가지로 소름끼치는 소리.
하나 차이가 있다면 경력이 담긴 그 충격은 피륙을 넘어 뼈와 혈도에까지 어마어마한 고통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끄아아아아아!!"
천마기의 경력을 실었기에 따귀와 함께 몸속을 때리는 기운이 혈도를 타고 면도칼이 흐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공평하게 한 대씩 천마기가 실린 따귀를 맞은 양아치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처참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아아아아악!!"
그 비명소리가 온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중정에서 식사하던 소수의 손님들과 직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여든 시선에는 하나 같이 쌤통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행패를 부리던 그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란이 커지고 구경꾼들이 원을 이루었을 때 드디어 경찰들이 도착했다.
무림반 형사들이었는데, 경찰 중에서도 엘리트들만이 지원하고 활동할 수 있는 부서였다.
이들은 각지에 지부를 둔 무림맹의 무인들과 함께 움직이며 무림 관련 사건을 담당했다.
"신고받고 출동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신분증을 제시하는 반듯한 인상의 경찰에게 도진은 여유있게 웃으며 인사했다.
학교에서야 그렇지 않았지만 바깥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보통 이렇게 무림반 형사들과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이 찾아온다.
혹시 모를 사건 사고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쪽에서도 관리소에서 양복을 갖춰 입은, 그러나 누가 봐도 양복 입은 조폭처럼 보이는 인물이 나왔다.
"그러니까 길을 막고 있던 분들이 경적 소리에 먼저 시비를 걸었군요."
"네. 블랙 박스 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압도적인 무력으로 '사건 사고 없이' 해결한 일이고 도진의 과실이 없었기에 문제될 부분은 전혀 없었다.
딱 하나 꼽자면 경적 소리에 놀라 떨군 휴대폰의 변상을 할 필요가 있는가였는데 이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무인이 경적 소리에 놀라 휴대폰을 떨궜다는 게 법적인 부분으로 갈 것도 없이 상식의 선에서부터 우스운 일이라 문제가 되지 못했다.
여기에 찜찜함이 남을 정도로 양복의 남자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겨우 경력이 해소되어 몸을 일으킨, 면상이 너덜너덜해진 양아치들은 이제서야 도진이 '바로 그 잠룡'임을 알게 되어 눈치를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후기지수 잠룡 김도진은 천외천의 무림인이었으니까.
도진이 일부러 의도하였기에 함께 나뒹굴어 부서진 오토바이를 끌고 처량하게 집합소로 돌아가는 패잔병들의 등 뒤로 도진이 말했다.
"길 막지 마라. 행패도 부리지 말고 위협하지도 마라. 어기면, 다음에는 이 정도로 안 끝날 거야."
"……."
양아치들은, 그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패잔병에게 승자의 경고를 대꾸할 용기와 권리는 없었으니까.
때문에 도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보는 어머니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