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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42화 (142/741)

142화

방과후 하굣길.

숭무회 소속의 숭무영재고 1학년 일진들의 '공놀이'는 운동장에서 대놓고 자행되었다.

대놓고 해도 말리는 사람이 없고 거리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괴롭힘이지만 그것은 붙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훈련으로 둔갑할 수 있었다.

술래가 되는 학생이 목표, 가방을 여럿 사이에서 쟁취하는 훈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언성이야 높일 수 있겠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입을 맞추면 오히려 따지고 드는 사람이 이상하게 되어 버린다.

애초에 따지고 들 사람도 없다.

평범한 학생들은 일진들의 행사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목표가 되면 상상도 못할 끔찍한 학교 생활을 해야 하니까.

교사들 역시 대부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림은 마초적인 성향이 강한 세계다.

동시에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괴롭힘을 그저 감내할 뿐인 학생이 오히려 못난 학생으로 여겨지기에 굳이 구해주려는 정의로운 협객이 드물었던 것이다.

때문에 서태주는 오로지 몸과 정신이 지옥불에 타는 것만 같은 이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과시하듯 사방이 트인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이 지옥에서 서태주를 구해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한데 그런 서태주의 눈에, 헐떡거리며 좇고 있던 가방에 생소한 손이 끼어들었다.

턱.

끝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아야 할 가방이 멈추었다.

'……어?'

그것은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서태주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공놀이를 하던 일진들 또한 모두 동시에 그런 괴리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 등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귀신처럼 등장한 도진이 웃으며 서태주에게 인사했다.

"안녕?"

"……."

서태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괴리감과 혼란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도진은 그런 서태주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일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하고 있었어?"

웃는 얼굴 그대로 묻는다.

일진들은 감히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도진이 가방을 잡을 때까지 다가오는 건 물론이요 존재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진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목을 무저항으로 따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그들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도진의 경지는 높았고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눈깔만 뒤룩뒤룩 굴리는 일진들의 모습에 도진은 이번에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가 시리도록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로 다시 말했다.

"내 앞으로 모여줄래?"

말은 부탁이었지만 그것은 명령이었다.

일진들은 생사가 걸린 것마냥 신속하게 도진의 앞으로 모였다.

도진의 시선이 그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무얼 하고 있었는지는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겠지."

"…그, 그게."

"아가리 다물고 그냥 듣기만 해. 말하고 싶으면 무공으로 하고."

"……."

그들 중 누구도 도진에게 무공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다시 말했다.

"무얼하고 있었는지, 왜 하고 있었는지, 누가 시켰는지도 굳이 듣지 않아도 알아."

'합의'하기를 거부하는 서태주의 부모를 의식해서 숭무회 2학년 쓰레기들은 1학년을 움직여 서태주가 결코 입을 열 수 없도록 단속하고 있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다.

뻔한 이야기지만 역겹게도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서태주만 입을 다물면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으니까.

이런 때는 정공법으로 가면 안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조금 더 효과가 좋다.

도진은 웃고 있지만 베일 것만 같은 차가운 얼굴로 일일이 하나하나, 일진 양아치들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경고할게. 한 번 더 얘 옆에 알짱거리면,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을 체험할 수 있을 거야."

파르르-

도진을 마주한 놈들의 몸이 의지를 벗어나 덜덜 떨렸다.

그것은 도진의 말에 기필코 그리 될 것이라는 확정이 담겨 있었으며 그 확정된 미래의 공포를 미리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애들도 괴롭히지 말고. 뭘 뺏지도 말고 위협하지도 말아. 그러기 힘들면 지키지 않아도 돼. 다만, 나한테 걸리지는 마. 걸리면, 내가 귀찮게 되잖아. 알겠지?"

"아, 아, 알았어."

한놈만이 겨우 굳어 버린 혀를 움직여 대답했고 나머지는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잘 판단해. 2학년 쓰레기들의 말을 들을지, 아니면 내 경고를 지킬지."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나올지 두렵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도진은 그 두려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미지의 공포였다.

애초에 그들의 윗선인 2학년들을 혼자서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은 게 도진이었다.

그 공포가 싱긋 웃었다.

"기대되네. 너희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 가 봐."

도진이 턱짓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온몸을 옭아매고 있던 공포가 느슨해졌고 1학년 양아치들은 지켜보는 학생들의 시선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려서 도망쳤다.

저들은 이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어느 쪽의 말을 지켜야 할지에 관한 딜레마에.

그 과정에서 양아치 윗선의 압박을 받고 얻어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쓰레기들이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었기에 도진은 그 부분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

도진의 도기로서의 배려는 어디까지나 선인(善人)을 위한 것이지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악인(惡人)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양아치들을 퇴장시킨 도진의 시선이 우두커니 서 있던 서태주에게로 옮겨졌다.

"자, 가방."

내미는 가방을 서태주는 천천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증언을 해줬으면 하는 거야?"

그것은 몇 단계나 건너뛴 말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니가 증언을 했으면 해."

"…나는 못해."

그렇게 말하고서 서태주는 몸을 돌려 걸어가 버렸다.

구경하던 학생들 사이를 뚫고서 가 버린다.

도진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뒤따라 걸어 이내 어깨를 나란히 했다.

"못하는 이유를 말해 주지 않을래?"

"……."

흘끗, 하지만 이글거리는 시선이 도진을 스쳐갔다.

알면서 왜 묻느냐는, 울분이 담긴 시선이다.

그것을 읽었으면서 도진은 다시 물었다.

"말해 줘. 증언을 못하는 이유."

말해 주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기세다.

그래서 서태주는 결국 속에서 썩고 있던 울분을 담아 말했다.

"말하면 뭐가 그렇게 달라지는데? 나 한 명이 말한다고 해서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어?"

피해자는 서태주만이 아니다.

작은 것까지 따지면 수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숭무회에 의해 돈을 빼앗기는 등의 피해를 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우습게도 '무인의 자존심' 때문에 티내지 않는 학생도 있지만 집안이 풍비박산날지도 몰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학생도 있다.

"내가 이러이러한 걸 봤습니다, 말해도 당사자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면 소용이 없잖아. 증거조차 없어. 증인도 입을 안 열어. 그런데 내가 말하면 뭐 해? 심지어 그렇게 증언한다 해도 그놈은 기껏해야 정학, 정말로 기적처럼 퇴학을 당한다 해도 그놈 인생이 망해? 안 망하잖아. 잘 처먹고 잘 살겠지. 그냥 조금 좋은 타이틀 하나 놓치는 거야. 하지만 증언한 나는. 우리는! 집이 망해 버린다고!"

그랬다.

숭무고 졸업장은 분명히 이 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가진 자'에게 있어 없으면 안 되거나 없다고 해서 큰 손해를 볼 만큼의 물건은 아니었다.

숭무고가 아니어도, 설령 한국의 명문 무림고를 나오지 못한다 해도 그 대체제를 외국에서라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아니다.

그런 증언을 함으로써, 가진 자에게 밉보임으로써 가정이 풍비박산날 수도 있었다.

당장 원청과 하청의 관계로, 원청과의 계약이 없으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의 학생이 그러했다.

그들은 모든 걸 걸고 피해를 증언해야 하는데 가해자들이 감수해야 할 건 미미하기만 했다.

"보여줄까?"

울분을 토해내고 숨을 몰아쉬며 서태주가 물었다.

도진은 그래, 하고 말했고 서태주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서태주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학생용 주차장이었다.

그곳에서 평범한 차량들이 모인 쪽으로 가 조금은 낡은 SUV에 올랐다.

도진이 조수석에 자리잡고 안전벨트를 매자 서태주가 액셀을 밟았다.

학교를 나와 도로에 오른 SUV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도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짐작할 수 있었다.

"중정에 가는 거야?"

"그래. 오늘 이모님 한 분이 아침에 갑자기 다치셔서 오후에 내가 돕기로 했거든."

"이모님? 어떤 분이?"

"말한다고 해서 네가 아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네."

순간 놀라 물었는데 듣고 보니 그렇다.

도진은 바로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내 보았다.

-응, 아들. 왜?

그리고 보내자마자 어머니의 답장이 날아왔기에 안도했다.

도로가 막히지 않았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 익숙한, 중정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접어들었다.

거기서 도진은 그동안 없던 것을 보게 되었다.

"저게 우리집에 대한 '경고'야."

갓길 주차로 인해 차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야 하는 폭의 골목.

이 골목을 따라가다 좌측으로 꺾으면 넓은 마당을 주차장으로 쓰는 중정이 나타난다.

그 중정의 맞은편 꼬마 빌딩 1층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아니, 가게가 아니었다.

앞에 오토바이들이 늘어선 그곳은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집합소였다.

'…그런 건가.'

언뜻 보면 평범하게 음식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라이더들이 모이는 장소다.

하지만 새로 생긴 저곳은 그런 라이더로 둔갑한 '용역 업체'였다.

척 봐도 흑도의 무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러나 대단치 않은 양아치 행색을 한 놈들이 오토바이로 길을 막고 있다.

대놓고 점거하는 게 아니라 차가 지나가기 곤란한 위치에 오토바이를 두고 시시덕거리고 있는 행색이다.

이러면 신고하기도 애매하고 신고해봤자 그때 잠시 비켜줄 뿐 다시 길을 막아 버린다.

운전자 입장에선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허나 대부분은 깊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불편을 감수하고 후진하거나 차를 돌리는 게 차라리 낫다는 판단을 한다.

흑도의 무인하고 얽혀서 좋을 게 전혀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으니 자연스레 중정으로 오려던 손님들 또한 발길을 돌리게 된다.

"다쳐서 출근 못하게 된 이모님 대신 일당 한 분을 구했는데 손님이 없다시피 해서 기껏 구한 일당 이모님을 일찍 돌려보내 드렸대. 오후도 그럴 것 같은데, 단체 예약 손님이 있어서 내가 돕기로 한 거야."

차를 세우고 서태주가 말했다.

차가 멈춰 서 있는데 어중간하게 길을 막은 오토바이들은 비켜줄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이 꼴이잖아. 손님들은 차를 가지고 올 텐데 괜찮을까? 설령 오늘은 어떻게 한다고 해도 매일 이러면 우리 식당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안 될 거다.

신고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영업방해? 증거를 모아 고소?

쉽지 않은 일이고 설령 한다고 해도 시간만 질질 끌면 그 사이 식당은 망해 버릴 것이다.

"자, 이런데 내가 증언을 하면? 지금도 이런데 더 심해질 텐데 그러면 우리집은? 부모님이 정말로 피땀 흘려서, 추석이나 설날조차 쉬지 않고 밤늦게까지 고생해서 일군 부모님의 사업이 망할 텐데 증언을 하라고?"

서태주의 턱이, 손이 덜덜 떨린다.

그 모습을 마주하며.

도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니가 증언을 못하겠다고 하는 이유, 분명히 알겠어."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럼 다시 물을게. 니가 말한 것들. 그 모든 게 해결되면, 너는 증언을 할 거야?"

꿈 같은 소리다.

그래서 서태주는 언성을 높였다.

"그래! 그게 다 해결 되면! 우리집이 전혀 피해를 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 증언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되냐고!!"

세상이 그렇게 동화 같았다면 애초에 서태주는 이토록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상황에 침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서태주의 모습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돼."

그러고서 도진은 상체를 스윽 서태주 쪽으로 기울이더니.

빠아아아아앙!!

우렁찬 경적 소리를 울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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