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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9화 (139/741)

139화

그날, 통금이 가까웠던 시간 남자 기숙사 1층 식당에서 일어났던 일은 누군가가 촬영한 영상과 함께 '공공연한 비밀'처럼 학생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왜 공공연한 비밀이냐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영상부터가 따지고 보면 동의를 얻지 않은 '불법'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개망신을 당한 게 에스포 사단의 한 명이면서 일진들의 모임, 숭무회의 1학년생이었기에 뒷감당을 생각하면 결코 대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날의 일은 학교 커뮤니티인 에타에서 언급되지 않고 알음알음 메신저로 영상을 공유하며 익명 채팅방을 통해 화제가 되었다.

-와, 집안을 들먹이네. 존나 쓰레깈ㅋㅋㅋㅋ

-덤비면 개쳐맞을 거 아니까 기껏 짱구 굴린 게 저건갑네ㅋㅋㅋ

-추하다! 강시준!

-강하다! 추시준!

강시준의 이름은 더 떨어질 곳도 없는 곳까지 떨어졌다.

오줌까지 지리며 눈을 까뒤집었으니 더 이상 얼굴 들고 학교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로 화제가 된 건, 강시준이 그렇게 오줌을 지리며 눈을 까뒤집게 만든 게 무엇이냐였다.

-내가 무공 안 익히고 알몸으로 사자 우리에 들어가면 그럴까 싶은 느낌이었음.

-내가 유치원생이고 혼자 집에 있는데 도끼 살인마가 문짝을 콱콱 찍어대다 문을 뚫고 도끼날이 훅 나타나면 그렇지 않을까 싶었음.

강시준의 입을 손도 대지 않고 다물게 만든 도진의 기세에 대해 당시 그곳에 있었던 학생들은 그렇게 증언했다.

물론 그것만으론 현장의 느낌을 알 수 없었다.

여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강시준을 즈려밟고 무언가를 말했을 때 도진이 섭음술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녹화는 당연히 소리까지 포함해 진행되었지만 도진이 섭음술을 사용했기에 딱 그 순간, 강시준이 미친듯이 몸을 떨다 오줌까지 지리게 만들었던 도진의 말이 무엇인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 진짜 궁금해서 어제 수련도 못했음;;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저렇게 된 거야...

-독순술(讀脣術) 능력자 없냐?;;

-입술이 보여야 읽든가 하지 ㅅㅂ;;;

독순술이란 입술, 얼굴, 혀의 움직임을 통해 소리를 듣지 않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내는 기술이다.

하지만 영상의 각도 때문에 입술이 보이지 않아 그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도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선 화제만큼이나 큰 궁금증을 낳았다.

그리고 그 '공공연한 비밀'은 학교의 분위기도 읽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었던 숭무회의 귀에도 들어갔고, 안 그래도 도진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그들의 화를 더더욱 돋군 것이다.

빠악! 빠악! 빠악!

평소라면 적당한 수준에서 '어루만져' 주었을 일이 참혹한 구타로 바뀌고, 평소라면 한둘 정도는 말렸을 상황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은 건 그런 배경이었다.

그렇게 구타가 점점 더 심해지고, 몸을 만 채 급소만을 겨우 보호하고 있는 서태주가 이윽고 피를 토하려던 그때에.

"아, 역겨운 현장이네요."

"……!!"

도진이 나타난 것이었다.

뚝, 하고 거짓말처럼 구타가 멎었고 모두의 시선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방과 후.

여름이 성큼 다가와 아직 환한 하늘 아래 도진은 입꼬리를 슬쩍 올린 채 서 있었다.

"…김도진."

서태주를 무자비하게 걷어차던 험악한 인상의 2학년, 오공태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숨을 거칠게 내쉬고선 물었다.

"뭐하러 왔냐?"

도진이 그 물음에 여상스런 얼굴로 답했다.

"산책이나 할까 해서 돌아다니고 있었죠."

"……산책이라고?"

"네, 산책이요."

집행부 활동까지 끝나고 도진은 소담과 헤어진 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내키는 대로 학교를 거닐었다.

그렇게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대가 알아챌 수 없게 무흔잠영을 구사하는 수련을 병행했지만 도진의 기준에서 그것은 충분히 여유롭게 학교를 걷는 산책이었다.

그 산책을 계속하다 남산과 이어진 공원을 발견했고 수상쩍은 소리가 들려 여기까지 온 것이 도진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였다.

그러니까 도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산책을 하다 이곳에 왔다.

물론, 그것이 실제이든 아니든 숭무회의 학생들은 분노할 것이었다.

"아주 씨발……. 기세가 등등하네. 그렇지?"

오공태가 씹어먹을 듯 도진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폭력을 행사하며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도진이 나타나 속을 긁으니 인내심이 증발하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오공태의 기세에, 도진 또한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코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등등할 수밖에 없죠. 너 같은 쓰레기 새끼가 뭐가 무서워서 내가 쪼그라들겠어요? 응?"

"……!!"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숭무영재고의 학생들이 되려 놀라 몸을 떨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적나라하게 받아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 도진의 발언에 숭무회 2학년들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버렸다.

"야, 김도진."

지켜보던 다른 학생이 나섰다.

쿵!

그러나 그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오공태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기세를 뭉클뭉클 일으키며 눈을 부라렸다.

"면상을 찢어발겨 주마."

꽈앙!

씹어뱉는 것과 동시에 오공태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다리가 특히 길고 우람한 오공태의 특기는 각법(脚法)이다.

짐승을 닮은 빠르고 날카로운 보법(步法)으로 상대의 틈을 파고들어 강렬한 발차기를 꽂아 넣는다.

특수 제작된, 각반과 일체화 된 신발을 신었는데 발끝과 뒤꿈치, 그리고 종아리에 돌기가 나 있어 충격을 집중하여 극대화했다.

잘못 맞으면 그대로 뼈가 으스러지는 그 돌기 중 하나가, 오공태의 발끝이 화살처럼 도진의 명치를 노리고 쏘아졌다.

도진은 그것이 지척에 이를 때까지도 반응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정말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오공태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잔혹하게 웃으며 죽여 버리겠다는 험악한 감정이 눈동자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실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훅-

거짓말처럼 도진이 오공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두 눈을 부릅뜨며 반응하려는 오공태.

허나 무흔잠영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순간부터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짜악!

"켁!"

시선을 피해 대각선으로 한 보 움직인 도진은 비어 버린 오공태의 왼쪽 뺨을 후려쳤다.

볼이 터진 오공태가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이 씨발!!"

그러나 창졸간 반응하여 피해를 줄였기에 바로 벌떡 일어나 다시 덤벼들었다.

쾅!

진각과 동시에 포탄처럼 쏘아지는 다리.

과장 좀 보태면 호리호리한 체구인 도진의 허리만큼이나 굵은 다리가 포탄 같은 기세로 쏘아졌으니 맞상대하기보단 피하는 게 옳아 보인다.

하지만 도진은 피하기는커녕 마주 다리를 찼다.

빠악!!

"끅!"

놀랍게도 비명은 보호 장구조차 착용하지 않은 도진이 아니라 오공태에게서 흘러나왔다.

도진의 발차기는 오공태의 각반마저 뚫고 종아리뼈를 부숴 버린 것이었다.

균형을 잃고 기우는 오공태의 몸.

거기에 쐐기를 박듯 도진의 회전 돌려차기가 작렬했다.

아직 각반에 닿아 있는 발에 힘을 주어 몸을 띄운 뒤 회전으로 인해 생긴 힘을 고스란히 담은 회전 돌려차기가 오른쪽 뺨을 때렸다.

빠각!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

동시에 피와 함께 이빨 몇 개가 공중에서 팽그르르 도는 오공태의 모습에 장식을 더했다.

쿠당탕!

"……."

거짓말처럼 사위가 조용해졌다.

오공태는 숭무회의 행동대장 격이었다.

그러니까 숭무고 내에서도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오공태가, 오정군 때와 마찬가지로 검조차 뽑지 않은 도진에게 일방적으로 참패해 버렸다.

'이런 씨발…….'

숭무회의 양아치들은 이 순간 명확하게 인지하고 또 인정하고 말았다.

김도진은 1학년 수준이 아니며 그들을 압도하는 무인임을.

작년의 검봉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예외이자 재앙'에 해당하는 괴물임을.

자존심이 싫다고 아우성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논할 것조차 못 되었다.

힘과 속도에서부터 격이 달랐다.

그러니까 오정군에 이어 오공태까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차마 말로 내뱉을 수는 없겠지만, 서로가 시선으로 뜻이 통했다.

싸워선 안 된다.

싸웠다간, 최소한의 체면마저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기에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던 그들에게 도진이 말했다.

"한놈이 쳐맞았는데 왜들 병신 새끼마냥 눈깔이나 굴리고 있어요? 이럴 때 떼거지로 덤비는 게 쓰레기들의 방식 아니었나요?"

"……!!"

"이 개……!"

도진의 기세와 말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도진은 굳이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었다.

때 아닌 '산책'을 했던 건 기분 전환을 위해서.

그리고 그 기분 전환의 이유는 다름 아닌 강시준이었다.

가족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진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손끝이라도 건드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것을 위해서 '모든 걸' 버릴 생각은 없었다.

간단한 이유다.

모든 걸 버려봤자 가족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대부분의 경우 건드린 그 순간 이미 모든 것은 파국으로 치닫고 되돌릴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그들은 무엇을 버려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도진의 팔다리를 자르고, 죽이고, 가족마저 죽여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승승장구한다.

그러니까 희생하지 않는다.

차라리 관련된 모든 것에게 그 이상 없을 정도의 지옥을 보여준다.

최선이나 차선은 존재하지 않으니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다는 결론.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의 끈적하고 더러웠던 기분을 해소할 겸 산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산책을 하다 이렇게 양아치들의 모임을 마주했고 그 양아치들의 역겨운 짓거리를 목격하게 됐다.

전생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고 기껏 풀려가던 기분에 더욱 더러운 진흙이 끼얹어졌다.

그러니까 브레이크를 밟지 않기로 했다.

밟지 않아도 됐다.

숭무고의 일진. 그것도 2학년의 쓰레기 열하나를, 도진은 얼마든지 깨부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깨부숴도 되는 것들이었으니까.

"이 씨발 미친 새끼가!"

짜아악!!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한 명이 거세게 뺨을 맞고 상체가 돌아갔다.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하며 다시 주먹을 뻗었지만.

짜아악!!

이번엔 반대쪽 뺨을 후려맞았다.

뇌가 흔들려 휘청이는 몸.

마치 거대한 해머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텅 비어 버린 상체에 도진은 자비없이 진각의 힘이 실린 발차기를 날려 주었다.

뻐어억!!

힘껏 휘두른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구겨진 몸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죽엇!"

옆에서 창이 날아들었다.

변화를 주기보다 온 힘을 담아 꿰뚫어 버리겠다는 기세가 담긴 창.

피하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득을 볼 필요가 없었다.

콱!

"허억……!"

어차피 그냥 잡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볼품없는 찌르기였으니까.

창을 잡은 채 당기니 피라미마냥 허무하게 딸려 온다.

그 다음은 간단했다.

뻐억!

그대로 명치에 주먹을 박아 버리고.

빠악!

그가 놓쳐 버린 창으로 야구공을 때리듯 후려쳐 날려 버렸다.

"……."

어느새 구석으로 밀려난 숭무영재고의 학생들은 그저 경이로운 시선으로 도진을 응시했다.

똑같은 1학년이었다.

숭무고와 숭무영재고라는, 절벽 같은 수준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건 절벽이 아니라 아예 땅 아래 솟은 산과 하늘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스으으으-

천마기의 기세가 새어 나와 일대를 채워나간다.

마치 공간 전체에 군림하는 것처럼.

오롯이 독존(獨尊)하는 도진의 기세는 홀로 공간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심상세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위지혁의 입꼬리가 사나운 미소를 그렸다.

"그래, 이제는 슬슬 드러날 때가 되었지."

현실에서 계속되었던 상상도 못할 규모의 기초 공사.

그 기초 공사의 성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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