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강시준은 회사에서 잘렸다.
그러니까 사장 아들이 공개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동안 강시준에게 너그럽던 아버지는 조사를 받고 돌아온 장남에게 위로는커녕 노발대발하며 집기를 던지기까지 했고 동생들 앞에서 장남의 체면은 똥물에 처박혔다.
물론 바깥에서의 체면 또한 똥물에 처박히긴 마찬가지였다.
-너같은 새끼를 믿고 일을 맡긴 내가 병신이었지!
숭무고에 들어갈 때만 해도 스포츠카를 선물로 주며 동네방네 장남 자랑을 하던 아버지의 분노 어린 시선에 강시준은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처음으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를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경찰서로 가 조사까지 받고 있을 땐 인생이 다 끝나 버린 것만 같은 절망감과 함께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도진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끝도 없이 치밀었다.
그리고 더, 그것보다 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스포 사단 중 한 명인 강시준이기에 도진의 무서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했다.
그 말도 안 되는 고릴라 새끼 같았던 정중한을 힘으로 압도하고 감히 덤빌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권민국을 무공으로 압도했던 김도진이었다.
에스포 사단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조차 발휘하지 못했던 강시준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조사받는 사이 도진을 찾아갔던 오정군마저 '피떡'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단다.
2학년 중에서도 일진 행세를 하던 오정군이었다.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학교 전체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일짱'으로 기세가 등등했던 선배였다.
그런 선배마저 도진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도니 강시준은 그저 머물고 있던 오피스텔 내의 물건들을 개박살내며 소리를 지르다 술을 퍼마시는 것으로 울화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화를 달래다, 뇌가 알콜에 절여져 흐려진 이성으로 어떤 생각을 번뜩 떠올리고 도진을 찾아온 것이었다.
통금 시간인 밤 11시가 가까운 시각.
남자 기숙사 1층의 식당에는 소수의 학생들만이 있었고 그 학생들은 이 늦은 밤에 두 마리는 될 양의 치킨을 혼자 탐닉하고 있는 도진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선을 모으던 도진에게로 강시준이 접근했으니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집중의 한가운데서, 강시준은 술에 절은 입으로 말했다.
"야, 김도진. 뒷감당 자신 있냐?"
피식-
도진은 강시준의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나이대의 학생들은 그렇다.
똑똑하지만 감정적이다.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 논리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감정이 끼어들고 만다.
지혜가 부족해 가진 지식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시야가 좁아 멀리 볼 순 있지만 넓게 보지 못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곤 하는 것이다.
강시준 또한 그럴 것이었기에 도진은 과연 이 양아치가 술까지 절은 상태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뒷감당?"
도진의 물음에 강시준의 얼굴이 일그러진 비웃음을 띠었다.
"그래, 맞아! 너 대단해! 존나 세다고. 그런데 시발, 시발 말이야."
스윽-
술 냄새를 훅, 끼치며 다가온 강시준이 말했다.
"니 새끼 집안은 존나 별 거 없잖아."
"……."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 집안 놈들 어떻게 하는 건 순식간흡!"
강시준의 말을 막은 건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스으으으…….
그것은, 도진에게서 새어나와 이 공간에 차오르는 공포였다.
사신이 토해내는 시커먼 숨결.
혹은 괴물. 아니, 괴물은 너무 부드러운 표현이다.
형언할 수 없고 알 수 없어 그저 공포스럽기만 한 어떤 것.
그것이 마치 도진의 안에서 울룩불룩, 빠져나오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 기세는 도진이 일으킨 천마기였다.
그냥 천마기가 아닌, 도진의 분노에 이를 드러낸 천마기.
항상 여유가 깃들어 있던 도진이 처음으로 분노하여 흉포한 기세를 고스란히 드러낸 천마기는 그토록 공포스럽게 이 공간을 잠식해 버린 것이었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하얗게 질려 급격히 거리를 벌렸다.
덜덜덜덜.
그리고 그 기세에 정면에서 짓눌린 강시준은 흐읍흐읍, 살기 위해 억지로 숨을 토해낼 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저 통제를 벗어난 몸이 미친듯이 멋대로 떨릴 뿐.
퍽!
도진은 그런 강시준을 가볍게 걷어찼다.
그리하여 나뒹군 강시준의 가슴팍을 지르밟고서 상체를 숙여 지근거리에서 눈을 마주했다.
마주하며,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니가 마음만 막으면, 우리 가족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겠지. 근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까?"
"흐읍! 흐읍!"
도진의 입꼬리가 조금 더 진한 호선을 그린다.
마치 공포 그 자체가 피처럼 뚝뚝 흐르는 입을 여는 것처럼.
"니가 해코지를 했으니까…… 나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다치셨으면 너희 집 아버지 어머니도 다쳐야 하지 않을까? 내 귀여운 동생들이 다쳤다면, 너희 집 동생들도 다쳐야 하지 않을까?"
"흐읍! 흐으읍!"
"만약 내가 가족을 잃는다면, 너도 가족을 잃게 만들어야겠지? 관련된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흐으으읍!!"
강시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된다고.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그러지 마. 제발.
저도 모르게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젓는데 공포에 얼어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았다.
도진이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
"하나 알아뒀으면 하는 게 있어. 이 사회가, 법이 지켜주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라는 거 말야. 너희 같은 쓰레기를 청소하지 않는 건, 이 세상에서 지우지 않는 건 이 세상에 법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강치환 패거리는, 송재익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마. 그 테두리를 벗어나 버리면…… 내가 쫓아가서 죽여 버릴 수가 있잖아?"
싱긋-
도(道)가 아닌 마(魔)가 깃든 얼굴로 웃으면서 도진은 숙였던 허리를 폈다.
발을 내리고, 몸을 돌려 떠났다.
주르르르-
남은 자리의 강시준은.
오줌을 지린 채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 * * *
숭무고에는 꽤 많은 공원이 있다.
일부는 야외 운동을 위해, 일부는 조경을 위해, 일부는 순수하게 쉼터로 조성되어 있는데 남산 자락에 걸쳐 있는 작은 공원에는 인기척이 드물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비교적 구석에 위치해 굳이 찾아가는 학생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 이 씨발……."
"……."
이곳이 바로 숭무고 일진들의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모여 있는 십여 명의 학생들은 2학년으로, 숭무고 일진인 '숭무회(崇武會)'에 소속되어 있다.
대외적으로는 '무공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기 위한 동아리'였으나 까보면 일진 모임이다.
상당히 전통 있는 동아리로 숭무고에서도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모임인 만큼 무공 실력과 배경이 받쳐주는 학생들이 모여 무소불위의 위세를 자랑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숭무회가 집행부에 입성하도록 만들었고, 한때는 숭무회가 곧 집행부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영광도 작년부터 빛이 바랬으니 집행부가 새로운 후기지수들, 검봉과 금봉, 폭룡에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집행부는 새파란 후기지수들의 차지가 되었고 전통의 숭무회는 이렇게 구석진 공원에서 모이는 신세가 되었다.
대놓고 활동하지 못하고 집행부 눈치나 보는 신세도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한데 이번엔 아예 새파란 1학년 놈한테 숭무회의 일원이 개박살나 버렸다.
잠룡.
숭무회가 기를 못 펴는 사이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치고 다녀 숭무회 소속이던 에스포를 아작을 내 놓았다.
집행부만 아니었다면.
집행부만 아니었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한유아의 눈치가 보여 그러질 못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검봉과 폭룡이 폐관 수련 때문에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1학년 때 당한 게 트라우마 수준으로 강렬하게 머리에 새겨져 있어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그랬던 놈이 이제는 아예 숭무회의 일원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개박살내 버렸다.
오정군.
맷집 하나는 수위권이었으며 그 맷집을 바탕으로 가하는 강렬한 역공은 주의하지 않으면 단번에 승부를 결정지을 만큼 한 방도 있는 놈이었다.
그놈을 잠룡이 검조차 뽑지 않고, 힘으로 압도해 버렸다.
"도대체가 씨발……."
작년의 폭룡만 해도 재앙 같은 놈이었다.
타협이란 일절 없고 뭐라도 할라치면 나타나서 갖다 들이박아 버렸다.
그래서 그놈의 별명이 트럭이었는데, 진짜 트럭은 따로 있었다.
-와, 재밌겠네.
생긴 건 눈 돌아가게 예뻤던 게 칼놀림은 미친년처럼 살벌했다.
검봉.
어떻게든 쪽수로 폭룡을 걸레짝을 만들어 놓을 뻔한 순간 끼어들었던 진짜 트럭 그 자체.
대항할 의지를 꺾어 버릴 만큼 괴물 같은 실력이었다.
여기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유명했던 금봉이 합류함으로써 그들은 이 공원으로 떠밀려 온 것이었는데…….
이 잠룡이란 놈이 또 그때의 후기지수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 나쁜 놈이었다.
웬만한 놈이었다면 체면이야 좀 상하겠지만 찾아가서 손봐줄 텐데 오정군을 그런 식으로 칼조차 뽑지 않고, 심지어 힘으로 압도하여 박살낼 수준이면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겨도 본전이 아닌데 지면 정말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상황.
심지어 액션이 커지면 집행부의 한유아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니 쪽팔리게도, 빌어처먹게도 조용히 넘어가야 할 상황이라고 그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화를, 겁을 잔뜩 집어먹고 주눅들어 주춤주춤 들어선 학생들에게 푸는 것이었다.
"이 씨발 새끼들아 빨리빨리 안 다녀!!"
"죄, 죄송합니다!"
공원에 새로 나타난 학생들은 숭무회 소속이 아니었다.
이번 년도 숭무영재고의 신입생들이다.
불행하게도 숭무회의 눈에 띈, 혹은 입학하기 전 사회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던 '먹잇감'들이었다.
잔혹한 폭력에 시달리고 어디 가서 말도 하지 못하는 신세의 학생들은 그야말로 지옥 속에 갇힌 영혼 같았다.
죄를 지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여 떨릴 정도의 폭력과, 그 폭력보다 더 아픈 불합리한 것들을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피폐함에도, 악마같은 선배들의 고성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숭무회의 2학년 중 특히나 험악한 인상의 한 명이 움츠러든 학생 중 한 명에게 말했다.
"강지수."
"네, 네. 선배님."
"방은 준비해 놨냐?"
방이라 함은 강지수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펜션의 방을 뜻한다.
숭무회는 이번 방학 때 합숙을 계획했는데 강지수네 집이 마침 펜션을 운영했기에 '선의의 뜻으로 방을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협력 요청'을 했었다.
강지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큰 방 두 개를 잡아놨습니다."
"그래."
무리를 했다.
강요에 의한 것임을 숨기고 오히려 부모님께 소리까지 쳐 가며 억지로 만든 방이었다.
물론, 그것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악마들은 당연히 그런 것들을 알아주지 않았고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당연하게 여기며, 다음 학생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서태주."
"네, 네."
"출장 뷔페는?"
서태주네 집안은 요식업을 했다.
식당도 하고 출장 뷔페도 하는데 거기서 펜션까지 출장 뷔페를 나오도록 강요한 것이었다.
물론 이 또한 '선배를 위해 후배가 자발적으로 성사시킨 것'이어야만 했다.
그 선배의 물음에, 서태주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목소리가 얼굴만큼 험악해진다.
대번에 주먹이 날아올 상황이 되자 서태주의 몸이 벌벌 떨렸다.
"그, 그날 큰 계약이 되어 있어서 아, 안 된다고"
빠악!
겁에 질린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발길질이 날아든 것이었다.
뻐억!
악마는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서태주를 다시 한 번 걷어찬다.
뻐억!
그리고 다시 한 번.
뻑! 뻑! 뻑!
점점 빨라지는 발길질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난폭해졌다.
"안 돼? 안 되는 게 어딨어 이 씨발 새끼야. 응? 응? 응?!!"
힘조절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힘조절은 심하게 다치지 않는 마지노선에 겨우 걸쳐 있을 뿐, 서태주의 교복에 가려진 몸에는 피멍이 새겨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다른 누구라도 적당히 말렸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그들 모두의 기분이 더러웠기 때문에.
빠악! 빠악! 빠악!
제 발로, 그러나 끌려온 학생들이 공포에 떠는 이 악마들의 짓거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지옥 같은 공원에.
"아, 역겨운 현장이네요."
"……!!"
도진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