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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7화 (137/741)
  • 137화

    쿠웅!

    오정군은 마치 거암갑이 무력화된 채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뭐, 라고?"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게 더욱 납득하기 힘든 말을 방금 듣고 말았다.

    "약하…… 다고?"

    무림에서 나이는 크게 의미를 갖지 못했다.

    돈보다도, 권력보다도 무력이 더 귀한 가치를 갖는다.

    무력이 있으면 돈과 권력은 저절로 따라오는 세상이었기에 더더욱.

    강자가 곧 법이라는, 원초적이고 어떻게 보면 미개하기까지 한 그 말이 힘을 갖는 게 무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회'와 달리 '학생들의 세계'에서는 나이가 큰 의미를 갖는다.

    재능이 없다면 입문하는 것조차 어려운 무공을 익히는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있어 나이, 그러니까 '시간의 격차'는 곧 무력의 격차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아이들. 아직 넘을 수 없는 벽을 모르는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있어 1년은 까마득한 차이를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힘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 무림학교에서 오히려 선후배 관계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고.

    그런 무림학교에서, 그것도 숭무고에서 오정군은 후배에게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버린 것이다.

    가끔 학년을 뛰어넘는, 혹은 환경과 배운 무공에 의해 그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예외니까 검봉 같은 천재 중의 천재가 화제가 되는 것이고.

    하지만 오정군은 잠룡을, 김도진을 그 예외라 생각하지 않았다.

    달동네서 사는 비렁뱅이라고 했다.

    이름을 담는 것조차 역겨운 저질 학교의 낙제생이라고 했다.

    그랬던 놈이 요즘 좀 잘 나간다고 감히, 감히 나 오정군에게 약하다고 지껄여?

    "쳐죽여 주마!!"

    이 순간 오정군은 다른 모든 것을 잊었다.

    자신을 모욕한 건방진 놈을 쳐죽여 버리겠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콰아아앙!!

    내리치는 대검을 도진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동선으로 피해냈다.

    피해내고서 또 한 번 비어 버린 옆구리를 가격했다.

    뻐억!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지만 오정군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그는 그러니까 정중한의 '상위호환'이었다.

    외공을 익혀 빠른 성취를 보았으며 여기에 부족하나마 수련한 내공으로 더 큰 힘을 내던 정중한의 상위호환.

    육체를 다른 학생들 이상으로 단련하며 여기에 몸을 보호하는 호신기공(護身氣功)인 거암갑을 더한다.

    그러니까 내공이 주가 되고 육체가 부가 되는데 외공 수준으로 육체를 단련한 내가기공의 수련자다.

    같은 내공을 사용한다면 육체에서 차이가 난다.

    오정군은 상대보다 앞서는 피지컬에 몸을 보호하는 데 특화된 내공인 거암갑을 더함으로써 압도적인 방어력을 얻었다.

    그럼으로써 내공이 담긴 도진의 공격을 별다른 타격없이 막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공이 소모되긴 하지만 오정군 또한 숭무고의 학생.

    내공이라면 아쉽지 않을 만큼 쌓았기에 초조할 것이 없었다.

    부웅!!

    뿌리박은 거목처럼 하체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옆구리를 얻어맞는 것과 동시에 왼팔이 거세게 도진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도진은 몸을 낮춰 그 공격을 피했다.

    처음과 완전히 같은 흐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을 노리고 있던 오정군의 한 수가 터져 나왔다.

    콰가가가가각!!

    파암쇄도(破巖殺到).

    바닥에 박혀 있던 오정군의 대검이 그대로 바닥을 긁으며 도진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긁히며 튕겨나가는 조각들은 그 자체로 암기가 된다.

    그 암기를 만들어내는 대검 또한 치명적인 공격이다.

    본래 대검은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신중해야 한다.

    수많은 빈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거암쇄검공은 그 상식을 비틀었다.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고 그 빈틈이 빈틈이 아니도록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럼으로써 상대의 공격이 어디로 올지 예측할 수 있고 '먼저 준비하여' 상대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때려박을 수 있었다.

    파암쇄도는 그렇게 옆구리를 파고든 상대를 노리는 수법이었다.

    처음 대검을 내리친 것부터 계산된 일격이었다.

    도진이 피하여 옆구리를 노릴 거라 생각했고 휘둘렀던 왼팔까지도 빌드업이다.

    진짜는 그렇게 함으로써 관성적으로 아까와 같은 구도를 만들어 준 뒤 갑자기 덮치는 이 대검이다!

    몸을 숙이고 하체를 노리려 했던 도진은 그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설령 기적적으로, 억지로 피한다 해도 '무공'인 거암쇄검공은 다음의 수는 물론이요 그 다음의 수까지 준비되어 있다.

    '피떡을 만들어 주마!'

    죽일 순 없으니 검날이 아닌 검면을 쏘아냈다.

    그것으로 최소한 전신골절로 실려가게 만들어 버리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잔혹하게 입을 찢었던 오정군은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입보다 크게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콰아아앙!!

    굉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로 짐작한다면 단 한 방에 도진은 오정군이 생각했던 대로 전신골절에 이를 만한 충격을 받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 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분노가 모조리 증발할 정도로 경악하여 두 눈을 부릅뜬 오정군의 눈에 비친 도진은.

    "역시, 별로 무겁지 않네요."

    여유가 묻어나는 얼굴로 오정군이 휘두른 대검의 검면을 '한 손으로' 받아낸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것은 지독히도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도진의 키는 이제 170 중반이었다.

    본래 170 초반이던 것이 연신극기공을 수련하며 몇 센티가 컸다.

    앞으로 더 자라겠지만 아직은 170 중반인 도진은 180 이상의 키를 가진 남학생이 대부분인 숭무고에서 '난쟁이'라 불릴 만큼 체격적으로 불리한 편이었다.

    심지어 체구 또한 호리호리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더욱 왜소해 보인다.

    그런 도진이.

    숭무고 내에서도 거구라 부를 만한 키와 덩치를 자랑하는 오정군이 휘두른 대검을.

    여유롭게 한 손으로.

    정면에서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으며.

    받아낸 것이었다.

    "뭐, 뭐야 저게."

    "말도 안 되잖아……."

    지켜보던 학생들이 중얼거렸다.

    그래, 정말로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얼마 전 에스포 사단을 압도하던 도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도 그랬다.

    도진은 외공을 익혔으며 완력으로는 에스포마저 넘어선다는 정중한을 '힘'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그때는 외공을 넘어서는 내공과 상대적으로 초식 면에서 부족함이 있던 정중한을 넘어서는 초식을 사용했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이, 이익!!"

    잠룡 김도진은, 내공은 물론 육체 능력마저 기준을 아득히 넘어선 것 같았다.

    "솔직히 조금 긴장했거든요. 2학년 선배는 과연 얼마나 강할까, 하구요."

    "이, 이이익!"

    여유로운 얼굴로 말하며 대검을 미는 도진의 힘에 오정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두꺼운 그의 팔이 한계까지 힘을 발휘하며 부들부들 떨렸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듯한 광경이다.

    팟-!

    그 다윗이 피식 웃고서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미는 힘이 사라지자 사력을 다하고 있던 오정군이 휘청였다.

    그리하여 생긴 빈틈을 노릴 수 있는 최적의 위치, 오정군의 명치 아래에 도진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무흔잠영의 묘리였다.

    쿠웅-!

    강하게 내딛는 진각.

    오오오오-!

    그리고 천마검공 효아의 묘리가 담긴 기세가 주먹에 실렸다.

    이치를 꿰고 있는 도진은 검공의 묘리를 얼마든지 주먹으로도 체현할 수 있었다.

    "……!!"

    오정군은 아주 위험한, '엄청나게 큰 것'이 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대비하려 했으나 명령이 몸에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쏘아져 버렸다.

    꽈아아아앙-!!

    마치 수류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과 동시에 오정군의 거구가 벽에 처박혔다.

    콰르르르르-

    두터운 벽의 일부가 부서진 잔해와 함께 오정군이 나뒹굴었다.

    정신을 잃지 않았으나 의지를 벗어나 덜덜 떨리는 육체는 도저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거암갑이 깨진 충격으로 외상보다 큰 내상을 입은 오정군은 손가락 하나 의지로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오정군을 내려다보며 도진은 말을 마무리했다.

    "…선배는, 별 거 없네요."

    "……."

    주변이 조용해졌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말 대신 생각으로 소리없는 아우성을 자아냈다.

    '탈 1학년급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도대체 뭐야, 이 발전 속도는.'

    관문 시험, 배틀로얄, 비무 대회.

    도진은 이미 말도 안 될 정도의 성장을 보여 주었다.

    그럴 수 있었다.

    낙제생이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혔고 스승의 도움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잠시' 보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폭발적인 성장이 반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건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하물며 그렇게 성장하며 보여주는 무위는.

    '이건…… 검봉을 보는 것 같잖아.'

    그래, 대한민국에서 탄생한 전에 없는 역대급 무(武)의 천재인 검봉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검조차 뽑지 않고 박투술만으로, 힘에서까지 압도하며 오정군을 '때려눕혀' 버렸다.

    그렇게 오정군을 이긴 도진은 소리없는 아우성에 섞인 경악이 내려앉은, 엉망이 된 카페를 둘러보고선 나지윤과 함께 한 켠에 서 있던 직원에게 다가갔다.

    도진이 시선을 주자 나지윤이 어느새 꺼내든 스마트패드를 조작하며 말했다.

    "규정에 따라 기물파손에 대한 비용을 싸움을 건 오정군 선배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증명서를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무림인간의 싸움은 대부분 주변의 파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경우 일반적으로 손해배상 의무는 싸움을 건 무림인에게 청구하도록 되어 있다.

    양쪽에 잘못이 있으면 반반 배상이고 말이다.

    도진과 오정군의 경우는 오정군이 다짜고짜 공격을 하며 싸움이 시작됐으니 100% 오정군이 배상해야 할 일이었다.

    나지윤은 일의 시작부터 이미 빠르게 촬영을 하여 증거를 확보했고 집행부를 위한 전자 시스템에서 손해배상 청구의 근거가 되는 증명서를 발급해 직원에게 건네 주었다.

    이 손해 배상 또한 '상생'을 위해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으로, 무림학교의 경우 당사자가 증명서를 보낼 것도 없이 학교가 학생들의 집안으로 청구서를 발송한다.

    그렇게 깔끔하게 뒷처리를 마친 도진과 나지윤이 자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은 당연히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1학년이 2학년을 일대일로 꺾은 건 근래 10년 동안은 단 한 번, 검봉이 유일했기에 오늘 도진과 오정군의 싸움은 검봉의 이야기와 엮여 더욱 크게 번진 것이다.

    그 소문이 번지는 사이 도진은 나지윤과 함께 집행부실에 들어섰다.

    "어머, 우리 집행부의 간판인 도진이잖아!"

    "갑자기 제가 왜 간판이 된 거죠?"

    도진의 물음에 한유아가 활짝 웃었다.

    "요즘 집행부하면 금봉이 아니라 잠룡을 다들 먼저 말하잖아. 특히 지금은 더한걸?"

    그렇게 말하며 한유아는 소문으로 활활 타오르는 에타의 게시판을 보여 주었다.

    요즘 소문은 초고속 인터넷을 타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퍼지는데, 그것을 증명하듯 게시판이 오늘 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도진은 어깨를 으쓱이고선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 사건의 보고서입니다."

    "오케이, 접수."

    한유아는 도진의 보고서를 빠르게 훑었다.

    언뜻 대충 넘겨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정독하는 것이다.

    작은 데서부터 그렇게 유능함을 뽐내는 한유아의 모습에, 도진은 생각하던 것을 물었다.

    "선배. 이 일, 알고 계셨죠?"

    "응."

    도진의 물음에 한유아는 시원스레 긍정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총책임자로 있는 일인데 당연히 파악하고 있어야지. 그리고 내가 총책임자로 있는데 그런 나쁜 장난을 하는 애들을 용서할 순 없으니 준비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 전에 네가 먼저 터뜨려 버린 거야."

    그러면서 잘했어, 하고 웃으며 어깨를 토닥인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경험이었어요."

    "응응. 그렇지?"

    "네."

    정말로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내용만 따지고 보면 권모술수가 난무한다거나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게 아니었다.

    허나 그렇기에 아직 '초심자'인 도진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다.

    "그럼 뒤처리는 내가 할게."

    "네, 부탁드릴게요. 선배."

    한유아는 바로 일을 처리했고 병원에 입원한 오정군과 강시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학교 차원의 징계로 끝나는 게 아닌, 형사 조사였다.

    불구속 수사이고 집안이 집안인 만큼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 되겠지만 숭무고 학생이 형사 조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집안에 먹칠을 할 정도의 큰 망신이었다.

    이미 도진에 대한 소문과 함께 사건의 발단이었던 하청 비리에 대한 소문도 쫙 퍼져 나갔다.

    더욱, 지금껏 잘 해 오던 화목 생활가전 입장에서는 이번 계약 이후 숭무고와의 계약 연장 여부가 불투명해질 만큼 어마어마한 타격이었으니 강시준이 집안에서 어떤 말을 들을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 도진이었다.

    그렇게 학교가 술렁였던 하루의 끄트머리.

    연신극기공의 수련을 마친 도진은 늦은 밤 기숙사 식당에 앉아 순살 치킨을 즐기고 있었다.

    진화하고 있는 육체는 그 진화를 위한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고 도진은 거기에 응해 늦은 밤 야식으로 치킨 먹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도진에게로, 술냄새를 훅 풍기며 한 명의 학생이 다가왔다.

    길게 기른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양아치 티가 나는 남학생.

    "강시준."

    다름 아닌 오늘 조사를 받고 나온 강시준이었다.

    그 강시준이,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야, 김도진. 뒷감당 자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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