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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6화 (136/741)

136화

강시준. 숭무고등학교 1학년.

가전 제품 생산 판매 회사인 '화목 생활가전'의 장남이다.

화목 생활가전은 TV나 세탁기 등이 아닌 커피 포트, 다리미 등의 제품을 박리다매로 팔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급성장한 기업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면서 신뢰성 높은 a/s를 무기로 하여 입소문을 타고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에서 좋은 의미로 'a/s 깡패'라는 평가를 받는 이 회사의 장남인 강시준은 그러나 에스포 사단의 한 명으로 제품 평가와 반대되는, a/s도 안 될 양아치였다.

중학생 때부터 일진으로 유명했고 잘 나가는 중견 기업의 장남이다 보니 주변에서 설설 기어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과 나름의 재능에 힘입어 숭무고에 입학했고 에스포 사단에 합류했다.

'이렇게 보면 하늘이란 건 엿 처먹을 놈이란 말이지.'

도진은 강시준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내려놓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일진이란 것들이 하는 짓은 그야말로 조폭이나 다름없다.

특히 그것이 무림학교 학생이라면 더욱 흉악하고 두려운 것이 된다.

논란이었던 소년법이 사라지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을 만큼 이놈들의 패악질은 상상 이상이었다.

당장 문월동을 '지배'했던 강치환의 패거리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다행히 강치환 패거리는 도진에 의해 죗값을 치르게 됐지만 강시준은 아니었다.

이 양아치는 그런 짓을 하고도 잘 먹고 잘 살았으며 심지어 성공이 보장된 숭무고에 입학하기까지 했다.

피해자들은 평생 그 트라우마를 지고 살아갈 텐데 이 쓰레기는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 길이 보장된 것이다.

'그러면 안 되지.'

도진은 다음 서류를 집어들었다.

화목 생활가전은 숭무고 기숙사는 물론이요 숭무고 전체의 가전 일부에 대한 납품과 유지보수에 관한 계약을 맺고 있다.

TV, 세탁기 등의 제품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이 전담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소한 전자 제품에 대해서는 화목 생활가전이 계약을 따낸 것이다.

화목 생활가전은 이에 대한 실무자 중 한 명으로 강시준을 두었다.

열일곱이 되면서 회사 사원으로 이름을 올린 강시준에게 일을 배워보라는 의도로 진짜 실무자들 사이에 강시준을 배치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놈이랑 같이 일진 놀이하던 직속 선배가 지금 2학년 중에 있거든."

도진의 건너편에 앉아 섭음술로 말하는 건 다름 아닌 나지윤이었다.

카페에 앉은 주변 여학생들의 시선을 끄는 미소년은 그 외모값을 하는 상큼한 웃는 얼굴로 음료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집행부 2학년 선배들 덕분에 기를 못 편다지만 일진 놀이하는 한심한 놈들이 박멸되진 않았잖아. 그중 하나가 강시준이랑 친한 오정군이야."

오정군. 숭무고 2학년이며 화목 생활가전과 비슷한 수준의 가전 업체의 셋째였다.

무공에는 재능이 있었지만 성격이 개차반에 장사에도 재능이 없어 이렇다 할 직책도 맡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보안팀에서 한 자리 차지하게 해 줄 텐데 그건 싫고 제대로 된 직책을 갖고 싶다고 떼를 쓴 모양이야."

무공에 재능이 있고 숭무고에까지 왔으니 요즘 규모가 있는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보안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 될 텐데 오정군은 그게 싫었던 모양이었다.

첫째 둘째와 달리 회사의 운영에 개입할 수 없으니 뿔이 났고 오기도 생겼나봐, 하고 나지윤은 말했다.

"그래서 가게 하나를 내줬는데 그 성격에 실무도 모르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완전 개판이 난 거야. 아버지가 노발대발해서 자르려는 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시간 벌고 방법을 찾는데 여기서 강시준이랑 이어져."

-야 시준아. 너 이번에 맡은 거, 나랑 협업 좀 하자.

-협업이요?

-어. 대신 내가 선배들한테 너 잘 소개시켜줄게.

어떤 형태로든 실적을, 수익을 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던 오정군은 중학교 때 함께 어울리던 강시준을 찾아가 하청을 제안한 것이었다.

"강시준은 물량 절반을 오정군에게 떼줬어. 그러면서 일부를 용돈으로 챙겼지. 용돈 중 일부는 기숙사를 담당한 직원한테 떼주는 걸로 공범을 만들었고."

책정된 유지보수비의 70%만 받기로 하고 절반의 물량을 받았다.

강시준은 용돈을 챙기고 오정군은 적지만 실적을 낼 수 있었다.

도진은 나지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 직원이랑 강시준, 그리고 오정군이 문제라는 거네."

"응. 화목 생활가전 자체는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니까."

기왕 성실히 하는 거 아들 단속도 좀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 도진이 말했다.

"어이없는 일이네. 겨우 학생 둘에 공범 하나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도진의 말에 나지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런 말이 있잖아. 회사가 커서 돌아가는 거지 하는 꼴 보면 개판이란 말."

회사라고 하면 무언가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착착 돌아갈 것 같지만 의외로 그런 곳은 드물었다.

특히 개판으로 돌아가는 곳은 상상 이상이라고 나지윤은 말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을 멈췄다.

이야기를 나누며 한유아에게 올릴 보고서의 작성을 끝낸 것이었다.

나지윤 덕분에 오래 발품 팔 것 없이 빠르게 일이 끝났다.

"근데 너는 어떻게 이걸 두 시간만에 조사한 거냐?"

노트북을 닫으며 물으니 나지윤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게 되니까 정보 회사 하는 거지."

"듣고 보니 그렇네."

고개를 끄덕인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유아를 직접 만나 보고서를 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데, 험악한 인상으로 카페에 들어온 한 명의 남학생 때문이었다.

2미터 가까운 키의 근육질 거구. 거기에 시선을 사로잡는 검면이 유독 넓은 대검(大劍)을 소지한 남자.

바로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인물 중 한 명인 오정군이었다.

오정군은 카페를 가로질러 쿵쿵거리며 도진의 앞에 섰다.

"얘기 좀 하지."

외모만큼이나 굵직한 목소리였다.

도진은 위협하듯 쏘아보는 시선에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고서 말했다.

"하세요."

꿈틀!

오정군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여기 말고 조용한 데서."

한 번 참았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도진은 여전히 아랑곳않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사이에 조용한 데서 할 이야기는 없잖아요? 켕기는 것도 없다면 여기서 이야기 못할 것도 없을 테고.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하세요."

"너 이……."

험악한 인상이 한층 더 일그러졌으나 곧 풀렸다.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라는 걸 그래도 무공을 배울 수준이 되는 머리로 되새긴 것이었다.

결국 오정군이 의자 하나를 꿰차고 앉아 섭음술로 말했다.

"하청 관련해서 문제 제기했다면서."

"상황 파악만 했지 아직 하진 않았어요."

도진의 말에 오정군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빠르게 말했다.

"아끼는 후배가 이번에 처음으로 실무를 보는데 업무가 많다고 해서 내가 일을 좀 거들어 준 거야. 들어보니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왔다."

"네, 그게 아닌 것 같네요."

순간 화색이 되었던 오정군의 표정은 곧 몇 배나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도진이 오정군의 말을 개소리로도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개새끼가……."

꽈드득.

끌어올린 내공으로 인해 오정군이 앉았던 의자가 쩍 갈라졌다.

굶주린 곰처럼 일어나 그늘을 드리우는 오정군을 올라다보면서, 도진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머리가 많이 나쁘시네요?"

대답은 무기로 되돌아왔다.

콰아앙!

대검이 단숨에 테이블을 박살내며 바닥에 꽂혔다.

나지윤은 어느새 크게 거리를 벌렸고 도진은 한뼘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슬아슬하게, 한뼘 차이로 피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여유를 두고 피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검의 궤적을 파악하고 필요한 만큼만 몸을 움직였다.

그로 인해 노릴 수 있게 된 틈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훅-

사라진 것처럼 빠르게 한 걸음을 내딛은 도진이 왼손바닥 아래로 오정군의 갈비뼈 아래를 가격했다.

빠악!!

웬만큼 튼튼한 무림인이라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터.

"으아아아압!!"

그러나 오정군은 아무렇지 않다는 걸 과시하듯 기합을 내지르며 왼팔을 파리 쫓듯 휘둘렀다.

기둥 같은 그 팔은 맞으면 대번에 기절할 정도로 거셌지만 도진은 몸을 급격하게 낮추는 것으로 그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릎의 뒤쪽, 오금을 가격했다.

빠아악!

휘청!

이번엔 버티지 못했는지 오정군의 거구가 휘청였다.

콰앙!

하지만 다른 발을 강하게 내딛는 것으로 균형을 잡은 오정군이 바닥을 쓸듯 대검을 휘둘렀다.

콰장창창!!

주변의 집기가 부서지고 잘려 나뒹굴었다.

이미 링을 만들듯 카페 안에 있던 학생들과 직원들이 물러나 있었기에 사람이 휘말리진 않았다.

그것을 파악했기에 오정군은 거침없이 대검을 휘둘러댔고 도진은 그것을 피해 급소만을 노리고 손을 휘둘렀다.

빠박!

콰아앙!

오정군의 공격은 도진에게 닿지 않고 급소를 노리는 도진의 공격은 한 번도 빗나가지 않고 적중한다.

이렇게 보면 도진이 검도 뽑지 않고 압도하는 것 같지만 지켜보는 학생들 다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저거 안 될 텐데……."

"그러게."

오정군의 무공은 거암쇄검공(巨巖碎劍功)이다.

거대한 바위와 같이 몸을 보호하는 내공을 특징으로 하는 이 무공은 압도적인 방어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최대한 피해없이 '몸으로' 받아내면서 강력한 한 방으로 반격하는 스타일이었다.

어떤 무공이든 공격을 하는 도중과 공격이 닿은 그 순간이 가장 큰 빈틈이 된다.

그렇다면 그것을 최대한 피해없이 받아냄과 동시에 강한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필승법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발전한 무공인 것이다.

이 무공을 익힌 오정군은 그래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겐 특히 무력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방어를 뚫지 못하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겐 압도적인 면모를 보였다.

'역시! 넌 아직 얕아!'

도진의 공격을 받아내는 오정군은 그런 생각을 하며 비죽 웃었다.

혹시 몰라 1학년을 상대하러 가는 것임에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특별 제작된 전신 방호복을 입고 왔다.

덕분에 그 이름이 자자한 잠룡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음에도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소모전으로 가면 결국 한 번은 빈틈을 드러내게 될 도진이 패배할 거라는 계산이 섰다.

'그래 까짓거, 이번 일이 까발려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이 새끼라도 쳐죽여 놔야지.'

1학년 후기지수 중 최고라는 잠룡 김도진을 깨부순다.

1년 밑의 후배라지만 잠룡 정도 되면 충분히 그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후기지수 후보로 거론된 적조차 없는 무명이었으니까.

이걸로 이번에 드러나게 될 과실을 덮어보자.

그렇게 생각한 오정군이 대검을 쥔 손에 불끈 힘을 주었을 때였다.

스슷-

쉼없이 오정군을 두들기던 도진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뭐야. 지친 거냐?"

오정군은 건재함을 과시하듯 대검을 쿵 내리찍으며 이를 드러냈다.

육체를 보호하는 '거암갑(巨巖甲)'을 운용하느라 내공의 소모가 적지 않았지만 티를 내지 않았기에 주변에서 보기엔 결코 뚫리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런 오정군을 마주하며, 도진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선배. 생각보다…… 약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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