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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4화 (134/741)

134화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림인에게 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설령 있다 해도 최소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툭-!

바로 지금처럼, 술에 절은 사람 같은 경우가 그랬다.

낙후된 달동네인 문월동의 좁은 골목을 걷던 50대의 무림인은 분명히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툭, 어깨가 부딪쳐 나뒹군 상대에게 서늘한 시선을 주었다.

공사판에서 구른 듯 더럽고 해진 옷을 입었으며 제대로 씻지 않은 듯 퀴퀴한 냄새에 술냄새까지 섞인 구역질나는 인간이었다.

"뭐야 시발!"

술에 절어 허우적거리며 욕지거리를 하는 인간을 50대의 무림인, 불을 지르기 위해 이곳을 찾은 마두는 본래 죽였을 것이었다.

조직을 피해 밀입국한 한국에서 흑도에 몸담아 20년을 보낸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마두(魔頭)'였으니까.

좁은 골목에서 '저쪽의 실수'로 인해 어깨가 부딪치는 등의 일이 일어나면 그는 주저없이 상대를 때려죽이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 그의 어깨에 더러운 것을 묻힌 쓰레기를 거침없이 때려죽이는 건 그에게 있어 '일상'이었다.

실제로 그럴 생각으로 손을 들었던 그는 그러나, 취객의 흐리멍덩한 눈을 마주한 순간 거기에 담긴 어떤 감정을 보았고 계획을 수정한 것이었다.

스윽-

들었던 손을 내렸다.

그 손을 쓰레기에게 내밀며 마두는 웃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과의 의미로 술이라도 한 잔 사드릴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어어? 좋지!"

취객을 데리고 허름한 실비집에 앉았다.

취객은 자신이 잘 나가던 사장이었는데 불행하게도 회사가 망하고 이런 곳까지 굴러들어왔다고 했다.

"이 꼴이 나니까 빌어처먹을 여편네는 도망갔고 하나 있는 딸년도 아비 도와줄 생각은 않다가 기어 나가 버렸지."

세상을 원망하며 주절거리기만 하는 꼴이 참 역겨웠다.

오늘도 공사판에 나갔다가 일을 제대로 못해 쫓겨났다는 걸 참 어설프게도 포장해댔다.

"이 개 같은 놈의 세상. 차라리 다 불 질러 버리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그 말만큼은 마음에 들어서, 원하던 말이었기에 마두는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시군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생각만 하고 있어선 의미가 없잖습니까. 한 번…… 실행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술이 확 깨서 대번에 거리를 벌렸을 표정과 말이었다.

하지만 취객은, 마두가 제대로 보았던 그 취객은 오히려 실실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거, 나쁘지 않은데?"

* * * *

그것은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

도진에 의해 일어난 나비효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취객, 윤상도는 본래 마두를 만나지 않았었다.

상미가 정식으로 집을 나가지 않았었고 접근금지명령도 내려지지 않았으며 친권도 상실되지 않았었다.

달라진 삶. 그 달라진 삶이 변화를 가져왔고 그날 그 골목길을 지나게 만들어 마두와 만나는 우연을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이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으니 연달아 일어난 화재가 그것이었다.

콰아아앙-!!

첫 번째 화재. 문월동에서 일어난 화재는 윤상도의 집에서 강치환의 집까지를 잡아먹었다.

도진은 윤상도를 몰랐기에 알지 못했던 일인데, 사실 전생에서 화재는 윤상도의 집까지 미치지 않았다.

그것이 바뀐 이유는 윤상도가 '공범'이라는 걸 감추기 위한 마두의 전략이었다.

"형씨의 집이 불 타면 누구도 형씨가 범인이라곤 생각 못 할 거 아닙니까?"

"그렇지. 형씨 똑똑하네."

그래서 윤상도는 자신의 집이 불타는 광경을 보면서도 킬킬킬 웃던 것이었다.

그리고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거처를 나와 비척거리며 걷는 취객을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한 번, 불을 질러 보시겠습니까? 이거 꽤 기분 좋습니다?"

"킬킬. 좋아. 처음 걸리는 재수없는 놈 집을 태워볼게."

그렇게 중얼거린 윤상도는 외상으로 술을 사러 마트에 갔고, 외상이 많았던 그는 당연히 술을 손에 쥘 수 없었다.

"저 개같은 마트를 태워 버려야겠어."

"좋습니다. 방법을 알려드리죠."

마두는 비릿하게 웃으며 윤상도에게 가방을 열어 안에 든 병을 보여 주었다.

"기름이야?"

"아뇨. 액체 화약입니다. 무색무취죠. 이걸 붓고 이어서 이걸 열을 가한 뒤 부으면 몇 분 지나 폭발합니다."

무공이 벽에 막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되면서 쌓인 가슴 속의 화를 분출하기 위해 그가 개발한 액체 화약에 대해 마두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좀 더 수월하게, 더 오래 들키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이용하려는 쓰레기에겐 사용법만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하나는 제가 화장실 첫 칸에 부어놨습니다. 이제 이걸 라이터로 충분히 데운 뒤에 부으면 됩니다."

무색무취의 액체 화약. 그것을 의심을 사지 않고 폭발시킬 수 있도록 했으며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다.

사실 전봇대 위에 발자국을 남긴 것조차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포석이었으니 나쁜 쪽으로 머리가 특히 잘 돌아가는 마두였다.

윤상도는 마두의 설명에 따라 당황하지 않고 훌륭히 역할을 완수했다.

그리하여 마두가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화재가 발생했고 '맛을 들인' 윤상도는 이어서 외상을 거절한 마트에도 불을 질렀다.

마두가 부추긴 것도 있었지만 윤상도는 이미 훌륭한 '쓰레기'였기에 불을 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덕분에 일이 더욱 수월해진 마두는 공개 수사로 전환된 뒤에도 꼬리를 밟히지 않은 채 코웃음을 치며 다음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오히려 무림인의 범죄로 알려진 게 그에겐 이득이었다.

음료에 섞은 액체 화약을 그가 화장실 등에 자연스럽게 뿌려두면 의심을 사지 않는 '일반인 윤상도'가 시간 차를 두고 뒤처리를 하여 불을 지르면 되니까.

그가 없는 상황에서 불이 났으니 의심을 살 이유가 없다.

쓰레기가 불을 지르고 킬킬거리는 역겨운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한데 보호소를 타깃으로 하면서 마두는 이번엔 스스로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고 순서를 반대로 하면서 도진에게 잡히고 만 것이었다.

윤상도가 먼저 보호소에 들러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처치를 해 두었다.

마두는 들키지 않고 다음 처치를 한 뒤 자연스럽게 빠져 나와 구경꾼 사이에 섞일 생각이었다.

한 번 정도는 현장에 머물러도 의심을 살 이유가 없으니 리스크도 없다는 계산.

그러나 그 계산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 전생을 기억하는 도진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마두는 핏덩이를 상대로 압도당했고 사지가 부러진 채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처지에 미쳐 버린 마두는 그러나,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며 소름끼치게 웃는 것이었다.

"킬킬킬."

'나를 잡은 걸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라고. 병신들아.'

범인이 잡힌 바로 그 순간 경계는 가장 느슨해진다.

그리고 그 느슨해진 경계의 틈을 노리고 지금쯤 '쓰레기'가 움직이고 있을 거라 마두는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형씨, 형씨가 못한 일. 내가 대신 마무리해 줄게."

일반인 윤상도는 범인까지 잡힌 새벽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보호소의 개구멍을 통해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대로 화장실로 가 배운 대로, 윤상도가 맡겼던 액체 화약을 라이터로 데워 뿌린 뒤 빠져 나가기만 하면 됐다.

"그 더러운 년이 사는 곳은 불태워 버려야지. 킬킬킬."

괘씸한 마누라년과 마찬가지로 그를 떠나 버린 딸. 그 딸이 머무는 곳을 딸과 함께 태워 버릴 생각으로 그의 입가는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게 전생에서는 없던, 도진에 의한 나비효과로 인해 보호소가 결국은 불타려는 상황.

"…뭐하는 거야."

"……!!"

그 상황을 막은 건 바로 도진에 의한 또 다른 나비효과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윤상도가 몸을 돌렸다.

윤상도의 흐릿한 눈에 비친 건, 다름 아닌 그의 딸이었던 상미였다.

도진에 의해 구원받고 천마신교의 무공을 익힌 상미가 수상한 기척을 느끼고 나타난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던 윤상도는 그러나 나타난 사람이 상미라는 걸 확인하자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버럭 소리쳤다.

"이런 씨발! 갑자기 튀어 나와서 놀라게 만들고 지랄이야?"

제아무리 얻어맞아도, 제아무리 밥을 굶어도 갈 곳 없던 어린 상미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도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윤상도와 윤상미 사이의 절대적인 상하 관계를 만들었다.

내리깔아 보는 윤상도의 시선에는 집안에서 폭군처럼 굴던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손만 들어올려도 흠칫흠칫 놀라던 딸년의 모습을 기억하는 윤상도는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으르렁거렸지만, 그 모습은 이제 추레한 패배자가 짖어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상미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불태워 버린다고 했지? 보호소에 불을 지르러 온 거지, 당신?"

상미 또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다. 그것도 숭무고를 노리는.

이 고요한 시간에 윤상도가 중얼거리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윤상미는 추궁했고 그 추궁에 근래의 범죄로 역시 맛이 가 버린 윤상도는 대번에 손을 번쩍 들어올려 휘둘렀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년이!!"

쩌억!

그것은 상미의 뺨에 윤상도의 손이 닿은 것이 아니었다.

"아아아악!!"

상미가 휘두른 목검이 윤상도의 팔목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윤상도는 팔목이 부러져 대번에 바닥을 굴렀고 동시에 그 비명소리를 들은 보호소의 직원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달려온 직원들을 향해 상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방화마의 공범이 있었던 것 같아요."

* * * *

-속보!) 충격! 방화마의 '일반인 공범'이 있었다!

그 뉴스는 대번에 일요일 아침의 헤드라인이 되었다.

새벽에 있었던 방화마의 체포, 그리고 끝난 줄 알았던 때에 은밀히 움직이던 일반인 공범이 잡힌 일이었으니 대한민국의 일요일을 강타하는 사건으로 대서특필된 것이다.

여기에 방화마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도진 또한 크게 이슈가 되었지만 '일반인 공범'의 범죄를 막아낸 상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본인이 언급되지 않기를 원했기에 기사가 나가지 않은 것이었다.

문월동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원조교제 사업 사건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아버지를 붙잡은 일이었으니 언급되어서 좋을 게 하나 없었으니까.

때문에 상미는 공범을 붙잡은 게 자신이라는 걸 알리길 원치 않았고 뉴스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기레기' 한둘 정도는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끌 목적으로 기사를 낼 법도 했지만 남몰래 한유아가 손을 써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포상금만 받은 상미를 도진은 이제 제법 풀이 무성하게 자란 문월동의 하천에서 만났다.

"자."

"고마워요, 오빠."

도진이 건네는 따듯한 컵커피를 받아들며 상미는 싱긋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며 도진은 그저 말없이 곁에 앉았다.

그래도 친부였다.

인연을 끊었다지만 그 친부를, 한심한 범죄자가 된 친부를 자신의 손으로 잡아 신고한 상미의 기분이 어떨지, 도진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저 곁에 함께 있어 주기로 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 도진의 모습에 상미는 힘껏 웃어 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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