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닮은 부분이 많은 무림인과 프로게이머의 차이 중 하나는 '전성기'였다.
프로게이머는 빠르면 십 대, 늦어도 이십 대 사이가 전성기다.
극한의 피지컬을 요구하기에 육체가 가장 강성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사이가 전성기가 되는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반응 속도가 떨어지는 등 기량이 점점 하락하게 된다.
하지만 무림인은 반대로 전성기가 사십 대에서 오십 대 사이에 오게 된다.
육체가 가장 강성한 이십 대가 아닌, 쇠락하기 시작하는 사오십 대에 전성기가 오는데 그 즈음에 무림인 대부분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무림인이라 해도 30대를 기점으로 육체 능력은 점점 하락하게 된다.
허나 초월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내공에 힘입어 극한까지 단련하는 육체는 고점이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이 높으며 하락 또한 더디다.
여기에 내공은 나이를 먹을수록 운공을 통해 계속 늘어나기에 육체 능력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무림인이 낼 수 있는 능력폭은 더 높아진다.
더더욱 무공의 숙련도에 있어서도 그 시기에 완숙해지니 사십 대에서 오십 대 사이가 무림인의 전성기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도진은 전성기에 해당하는 나이인 마두를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했다.
넓혀둔 기감에 범인으로 확신할 수 있는 움직임이 걸려들었다.
동시에 그 범인의 경지를 파악했다.
퇴보한 현대의 무공은 상대의 기량이나 내공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져 작정하고 숨기면 압도적인 격차가 있지 않는 한 그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허나 천마와 사신의 무공을 익히는 도진은 상대의 역량과 내공을 파악하는 것만큼은 이미 현대의 고수들마저 뛰어넘어 있었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도진은 몇 분이라면 충분히 마두를 묶어둘 수 있다는 것을 자만심이 아닌 객관적인 비교를 통한 판단으로 확신했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그 위험을 감당함으로써 무림인으로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귀중한 실전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심상세계에서 수없이 겪었던 스승과의 대련이 아닌 현실에서 죽일 기세로 덤벼드는 '적당한 수준'의 마두와의 실전은 도진을 또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위지혁이 말한 '신안(神眼)'을 도진은 갑작스럽게 쓴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심상세계에서 위지혁과의 대련을 통해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터득하여 구사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심상세계에서는 육체의 제약이 없어 천마군림을 시전한 상태에서 쓰고 있기에 더욱 완성도가 높다는 것인데, 그런 완성도 높은 신안으로도 위지혁의 '일부러 보여주는' 공격을 엿보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마두는 달랐다.
'그저 그런 무인'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마두의 무공은 육체의 제약이 있어 불완전한 신안으로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빈약했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위지혁과의 대련을 매일 해왔던 도진이기에 더욱 쉽게 마두의 무공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내공의 상성마저 압도적이니 도진은 흑도에서 수십 년을 구른 마두를 상대로 오히려 몇 분이나마 우위를 점하는 신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우위를 점하며 신안으로 상대를 완전히 꿰뚫어 보는 게 어떤 것인지 체감했다.
그 몇 분의 우위를 위해 체력과 내공을 다 때려 부었지만 상관없었다.
그 몇 분이면 신호를 받은 요원들이 달려와 마두를 덮치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었으니까.
채채챙!!
두 자루의 도(刀)가 수투를 낀 마두의 팔을 때렸고 또 두 자루의 도가 날이 서 있지 않은 부분으로 마두의 정강이뼈를 부서뜨렸다.
도진이 만들어낸 틈을 요원들이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끄아아아악!!"
눈이 뒤집혀 시야가 좁아졌던 마두는 사방에서 날아든 기습에 당해 대번에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사살(射殺)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마두를 제압하기 위한 토벌도(討罰刀)는 뼈를 부수는 데 특화되어 있는데 요원들은 그 토벌도로 망설임없이 마두의 사지 뼈를 부순 것이다.
환한 조명이 대번에 어둠을 몰아내고 마두를 비췄으며 무림 요원들 이십여 명이 동시에 마두를 둘러싸고 도진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도진은 앞을 막아선 무인의 무뚝뚝하지만 걱정을 담은 말에 여유있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두는 지체없이 요원들에 의해 구속되었다.
무림의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마기가 골수에 스며든 광인이었기에 최소한의 조치, 부목만 댄 채 병원이 아니라 무림맹으로 끌려갈 것이었다.
그렇게 마두가 구속되고 뒷정리가 진행되는 중에야 안절부절하던 상미가 다가왔다.
"오빠!"
"그래, 상미야."
상미는 가장 먼저 도진과 마두가 싸우는 곳으로 달려왔다.
천마신교의 장로급이 익히는 무공인 한천검공을 수련한 상미는 '교주'인 도진의 기운에 특히 민감했기에 천마기를 대번에 느끼고 달려온 것이다.
다만 함부로 마두와 도진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었기에 조마조마하게 지켜만 보고 있다가 일이 다 끝나고서야 다가와 말을 건 것이었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손가락을 안절부절못하는 상미의 모습에 도진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봤잖아. 한 대도 안 맞았어."
여유로운 모습과 도진의 토닥임에 상미가 겨우 진정했다.
그리고 존경으로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대단했어요, 오빠."
"아하하. 고마워."
상미만이 아니라 소란에 몰려나왔던 아이들 모두가 상미와 비슷한 눈으로 도진을 보고 있었다.
"잠룡이다."
"와……."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도진의 무위에, 아직 어린 아이들은 도진의 존재 자체에 동경의 시선을 보낸다.
마치 현실에 나타난 히어로를 보는 듯한 시선이다.
그것이 기분좋은 간질간질함이 되어 도진의 입이 호선을 그리게 만들었다.
전생에선 본 적조차 없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맞이해야만 했던 불행을 현생에서는 막아냈다.
불행을 가져오려 했던 마두를 정면에서 저지해냈다.
"킬킬킬, 아쉽구먼. 저급한 꼴을 지켜봐야 했는데."
마두는 미치광이의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끌려갔고 도진 또한 참고인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그렇게 무림맹 지부로 가는 차 안.
옆에 앉은 한유아가 조금은 엄한 얼굴로 말했다.
"혼자서 마두를 막아서다니, 너무 위험한 일이었어."
결과적으로야 더없이 좋은 형태로 마무리되었지만 한유아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식으로 '실습'에 나서는 것조차 금지된, 진짜 무림의 경험이 없는 1학년생이 혼자서 마두를 막아섰으니 말이다.
도진은 그런 한유아의 걱정 섞인 질책에 미소지으며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선배."
"……끄응."
결과가 좋으니 됐잖아요 같은, 조금은 뺀질거리는 말을 했으면 어깨라도 찰싹 때릴 텐데 솔직하게 고맙다며 미소지으니 뭐라 더 혼낼 수가 없었다.
그 나이 또래의 치기가 아니라 마치 철이 든 어른 같은 직구에 한유아는 결국 약간은 귀가 붉어진 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 * * *
-속보!) 잠룡 김도진, 연쇄 방화 사건의 마두를 잡았다!
새벽의 일은 대번에 속보가 되어 퍼져 나갔다.
무림인의 범죄는 사회에 큰 불안을 가져오기에 해결되면 신속하게 속보가 뜨는데 그 내용 또한 보통이 아니어서 새벽임에도 큰 이슈가 되었다.
-와, 뭐냐;; 잠룡이 마두를 잡았다고?
-아닠ㅋㅋ 이제 겨우 1학년이 마두를 잡아?;;
-이거 완전 근현대 무림인데 ㄷㄷㄷ
현대의 무림은 연구와 발전 속에서 어느 정도 고착화된 부분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후기지수라고 해 봐야 '학생 수준'이며 이 학생들이 웬만큼 뛰어나 봐야 사회, 그러니까 성인들의 무림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것이 그렇다.
무공을 뛰어난 수준으로 익히는 것은 모두가 천재.
이 천재들이 성장하여 활동하는 것이 현대 무림이다.
그리고 현대 무림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연구·발달에 의해 시스템화 되어 변수를 없애 나갔고 그것은 곧 익힌 기간에 따른 '계층의 고착화'를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시간만이 아니라 익힌 무공 또한 계층을 나누는 데 크게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태양권가나 군홍무가 등의 명문 무림가가 그러하다.
이들은 '일반 무림인'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며 달리는 속도 또한 차별화되어 웬만한 무림인의 시간은 단번에 따라잡곤 했다.
하지만 도진은 그런 '명문 출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아래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그런 하층민 출신으로 후기지수가 되어 잠룡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태양권가의 후계자를 압도하더니 이번엔 아예 무림에서 오래 활동한 흑도의 마두를 붙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야말로 근현대에서나 있을 법한, 무림 르네상스 시절에 이름없는 무인으로 출도하여 불 같은 명성을 날린 고수들의 일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잠룡이란 별호는 또 한 번,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거센 이슈가 되어 타올랐다.
이틀에 걸쳐 세 번의 대형 화재를 일으킨 흉악한 무림의 마두가 잡혔고 그 마두를 잡은 것이 후기지수 잠룡이었기에 불안은 가시고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니 자칫 더 큰 사건으로 번질 뻔 했던 방화마의 범행은 이렇게 긍정적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초상범죄대응팀과 무림맹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무림 범죄자 전용 교도소로 이송된 방화마를 조사하기만 하면 된다.
취조실에 앉은 방화마, 마두는 팔다리에 부목을 한 채 근육이완제 등의 주사까지 맞고서 엄중한 감시 하에 있었다.
단전을 부숴 더 이상 무림인이 아니게 만드는 건 판결이 난 뒤여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상태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래, 어떻게 몰래 불을 질렀는지 궁금하겠지? 킬킬킬. 근데 그걸 벌써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조사는 물론 쉽지 않았다.
이미 마기가 골수까지 스며든 미치광이의 입을 열게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울 수가 없었다.
"…저거 자백제 허가 받아서 조사해야겠는데요."
"그렇군."
세 번의 화재를 저지른, 인권이 박탈될 수준의 흉악한 범죄자였으니 차라리 자백제를 쓰는 게 낫겠다고 조사관들은 판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심문은 종료되었고 마두는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렇게 사건은 종결되고 평화로운 새벽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때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시간.
그는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고 비척이며 움직였다.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움직여 마두의 타깃이 되었던 보호소의 개구멍을 통과했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은 라이터를 꽉 쥐고 있었는데, 라이터를 쥔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형씨, 형씨가 못한 일. 내가 마무리해 줄게."
바로 마두가 실패했던, 보호소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도진의 전생에서는 없었던 존재.
허나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있었던 사람.
그는 마두의 '공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