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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1화 (131/741)

131화

[이틀에 걸쳐 일어난 세 건의 방화가 마두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강력 대응을 위해 설치된 대책 본부는……]

다음날 아침.

연쇄 화재 사건이 마두에 의한 것임이 뉴스를 통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무림인에 의한 범죄라는 걸 더 이상 숨긴 채 대처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

도진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정부의 무림 범죄 전담 기관인 '초상범죄대응팀'에 무림맹에서 파견된 토벌대, 그리고 민간 무력 기업의 요원들까지 은밀히 마을을 순찰하며 경계했으나 또 한 번 발생한 방화를 막지 못했다.

나태했다거나 경계를 게을리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무림 범죄인만큼 철저하게 순찰하고 또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화를 막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무림인의 동선과 육체 능력을 고려하여 은밀히 CCTV 등을 설치했으나 여기에도 용의자로 특정할 만한 인물은 찍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더라도 더 강력한 경계를 펼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연쇄 화재가 마두에 의한 것임이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사건이 되었다.

…전체적인 얼개만 보면 전생에서의 흐름 그대로였다.

연달아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며 무림인의 범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그제서야 관련 조사가 이루어지며 마두의 소행임이 드러났던 전생.

이번 생에서는 도진이 개입하여 미리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형태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다.

'…좀 짜증나네.'

사건의 흐름을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었다.

한데 결국 중간 결과가 전생과 다르지 않았으니 정말로 조금, 화가 났다.

"…내가 따로 업체들 고용 좀 해 줄까?"

그런 도진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하는 건 다름 아닌 오대용이었다.

혹여 도진에게 뜻이 잘못 전달되는 건 아닐까 우려하는 그 눈동자를 마주하니 도진은 옅게 웃음이 나왔다.

"이미 대대적으로 인원이 투입되었잖아."

"다다익선이라잖아. 경계 인원이 많아서 나쁠 건 없겠지."

"…그렇긴 하지."

"그것보단 우리집에 의뢰하는 게 어때? 우리집 정보 전문이잖아. 조사하면 뭐가 더 나올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끼어든 건 나지윤이었다.

본가가 하오문 같은 정보 취급 전문 단체인 나지윤이 오대용에게 하려면 자신들의 집안에 의뢰하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나쁘지 않네. 그럼 진짜 의뢰한다."

그러면서 오대용은 그 자리에서 진짜 의뢰를 넣었고 나지윤은 단순히 의뢰를 넘어 친구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설 것임을 도진에게 어필해 주었다.

"나도 같이 갈게."

"나도 같이 순찰 돌아 줄게!

여기에 소담과 주정아까지 한 손 거들어 주려 했다.

전생의 기억대로 사건이 흐른다면 도진의 집이 위험해질 일은 없다.

허나 세세한 부분에서 많은 것이 달라진 사건이었기에 도진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당장 금요일인 오늘 하교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가 주말동안 경계를 늦추지 않을 예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이 도진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있으니 생소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 가슴을 간질였다.

"…고맙다."

전생에서는 입에 담을 일이 없다시피 했던 말.

그 말을 하며 도진은 친구들에게 웃어 보였다.

* * * *

방과후.

도진은 친구들과 함께 한유아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유아는 공유 가능한 선에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아."

이번 연쇄 화재가 무림인에 의한 방화임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렇게 '공개 수사'로 전환하면서 대책 본부는 강도 높은 경계 태세를 갖추고 범인을 찾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의자를 아직 특정하지 못하고 있어."

본래 열 손이 한 손을 못 막는다고 했다.

지키는 쪽은 한시라도 경계를 늦출 수 없지만 훔치는 쪽은 원하는 순간,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 행동하면 되니까.

이런 상황에서 지키는 쪽이 유리해지려면 용의자를 특정해야만 한다.

한데 바로 그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에 관해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도진이 용의자에 관해 기억하는 거라곤 50대 남성 무림인이라는 것뿐이었다.

이름만 알고 있었어도 어떤 형태로든 전달해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 한국인이 아니어서 정확한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중국 소수 민족 출신이며 불법으로 밀입국하여 흑도에 몸 담고 있던 마두.

이런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만 익숙지 않은 중국식 이름까지 전생에서의 도진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문가들과 장비들이 동원되어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긴 한데 다른 것도 아니고 화재 사건이라 현장이 모두 타 버려서 이렇다 할 증거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야."

어렵다.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는데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 찾은 단서라고는 처음 문월동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전봇대 위 발자국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불완전한 발자국을 복원한 것이다.

도진 역시 유사 범죄 예방 정책 때문에 당시 보도에서 용의자의 수법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이쪽으로도 아는 바가 없었다.

'이대로면…….'

사건의 진행이 전생에 비해 훨씬 빠르다.

전생에서 세 건의 화재는 일주일에 걸쳐서 일어났었다.

그리고 또 이틀이 지나서야 무림인의 범죄라는 게 밝혀졌는데 그것이 지금은 단 사흘만에 진행됐다.

여기서 도진을 조급하게 하는 건, 이렇게 무림인의 범죄라는 게 밝혀지고 보란듯이 방화를 저지른 곳이 다름 아닌 보호소였기 때문이다.

전생과 다르지 않다면 다름 타깃은 바로 상미가 머무는 보호소였다.

'…이렇게 되면 단순하게 갈 수밖에.'

도진은 결론을 내렸다.

* * * *

마두에 의한 연쇄 방화 사건이 이슈가 된지 이틀째.

여전히 조사는 크게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화재 특성상 증거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고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 낙후된 동네라 CCTV의 사각지대가 많았으며 장비가 노후되어 그 얼마 안 되는 영상의 화질 또한 좋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림 범죄에 대한 대처는 없다시피 해 더욱 증거를 찾기 힘들었다.

공개 수사로 전환하며 그 부분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졌다.

무림인의 운동 능력을 감안한 CCTV 설치가 빠르게 이루어졌으며 추종술을 특기로 하는 정부와 무림맹, 그리고 기업의 요원들이 엄중하게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루트에 검문소를 세우고 검문을 진행했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으니 아예 일대의 모든 무림인의 검문을 진행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생을 위해 필요한 건 양보.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무림인들은 검문에 협조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허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큰 소득없이 이틀이 지나 일요일이 되었다.

연쇄방화마가 누군지 특정조차 하지 못한 채 맞이한 일요일이었기에 동네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 불안한 기운이 약간은 옅은, 문월동에서 얼마간 떨어진 보호소에 한 명의 남자가 방문했다.

추레한 몰골에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는 남자.

그는 바로 상미의 아버지였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보호소에서 오래 일한 남자 직원이 그를 맞이했다.

청소년 보호소에서 일하다보면 으레 만나게 되는, 부모 자격이 없는 '폐급 인간'을 많이 보았던 남자는 겉으로는 친절한 얼굴이었으나 속으로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상미의 아버지는 건장한 덩치의 직원을 보고선 비죽 웃었다.

"아, 별 건 아니고 딸 좀 보려고 왔수다."

"딸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윤상미."

"윤상미…….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은 소지하고 있던 태블릿으로 윤상미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곧 사진과 함께 필요한 정보가 나열되었다.

예쁜 외모의 중학교 3학년 여학생. 그러나 심각한 방치 속에 불행한 일을 겪고 이곳으로 왔다.

편부 가정이며 현재 그 아버지, 눈앞의 남자는 접근금지명령과 함께 아예 친권이 박탈된 상황이었다.

"…현재 접근금지명령 상태이시네요. 죄송하지만 따님을 만나게 해드릴 순 없습니다."

말하며 직원은 근육에 힘을 주었다.

이런 말을 듣자마자, 혹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패를 부리는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10년 전만 해도 그런 행패를 직원들은 무력하게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행패를 부리면 '무력으로' 받아치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무력을 행사하기 위해 있는 것이 바로 그였다.

무림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준은 되지 못했지만 일반인보다는 무공 수준이 뛰어났다.

추레한 몰골에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는 인간.

알콜 중독에 어린 딸을 방치했던 이 인간이 취할 반응은 뻔한 것이었기에 언제든 주먹을 내뻗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한데, 직원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그냥 가야겠네."

"……."

'……뭐야?'

싱거울 정도로 그는 쉽게 포기했다.

이게 맞는 일이지만 그 맞는 일을 보기가 어려운 게 이 바닥이었기에 직원은 당황하고 말았다.

"아! 가기 전에 화장실 좀 씁시다. 오줌만 좀 싸고 가게."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 취객을 직접 화장실까지 안내했다.

상미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을 나왔고, 정말로 아무런 행패를 부리지 않고 떠나갔다.

'뭐야, 도대체.'

오래 일하다보니 정말로 별일을 다 겪는다고 직원은 생각했다.

'이건…… 굳이 알릴 필요가 없겠지.'

상미의 아버지를 보내고 이 일을 알릴 필요가 있을까 고민한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괜히 언급해봐야 좋을 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미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시설에는 분명하게 보고해 두었다.

그렇게 사건이 되지 못한 일은 흘러갔고 깊은 밤이 되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하고 당직을 서는 두 명만이 보호소에서 깨 있었다.

바깥에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연쇄방화범을 경계하는 무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지만 내부는 그런 분위기에서 한 걸음 빗겨 나 있었다.

설마 이곳에 오겠느냐는 그런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마냥 안일하다고 하기엔 가혹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제로가 아닌 그 확률에 보호소가 걸렸다.

스으윽-

가로등의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을 타고 조용히 담을 넘는 사람이 있었다.

높지 않은, 그러나 가볍게 넘기는 힘든 그 담을 남자는 너무나 쉽게 넘었다.

집중하고 있어도 듣기 힘들 만큼 작은 소리를 내며 남자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소리없이 신속하게 움직이던 그는 그러나, 채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터덕.

"……!!"

바로 뒤에서 똑같이 담을 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남자는 등에 내려앉은 서늘한 감각을 매단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빛이 엷어 식별이 어려운 밤. 그러나 무림인인 남자는 어렵지 않게 상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너는……!"

크게 뜨인 남자의 두 눈에 비치는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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