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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0화 (130/741)
  • 130화

    10대들 사이에서 무림인은 흔히 프로게이머에 비유되곤 했다.

    어릴 적부터 시작해야 하며 재능과 노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등 둘은 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다면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재능은 최상위권에 오르기 위해선 피지컬과 동시에 '뇌지컬', 그러니까 손과 함께 머리까지 요구했다.

    이렇게 피지컬과 뇌지컬을 동시에 갖추고서 피나는 노력 끝에 최상위권에 오른 프로게이머는 '양민 학살'이 가능해진다.

    쉽게 말해 일정 수준 이하의 유저는 몇이 되든 프로게이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서로가 총을 들고 겨루는 FPS라면 혼자서 수십 명을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도 있고 대전격투게임이라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상대를 농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무림인은 현실에서 보여줄 수 있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뇌지컬, 그리고 수련.

    그리하여 만들어진 육체와 기술, 여기에 초월적인 힘을 부여하는 내공까지 더해져 일반인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서는 것으로 말이다.

    때문에 이런 무림인이 범죄를 일으키게 되면 대번에 전담 대책 본부가 편성되며 동시에 무림맹이 나서게 된다.

    무림맹.

    무림인들이 모여 구성된 조직이면서 민간과 정부 사이에 걸쳐 있다.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무림을 사는 무림인들이 일반인들과의 사이에 불화가 없도록 하는 것이 주 업무인 무림맹은 그렇기에 사회와 무림의 공존을 저해하는 '마두(魔頭)'의 척결에 적극적이었다.

    무림맹은 무림인 범죄가 발생하면 즉각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기관과 함께 대응한다.

    단, 사건의 해결을 위해 발로 뛰는 건 국가와 무림맹만이 아니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무림인, 마두가 출몰하면 일반인만으론 대처가 어렵다.

    때문에 국가에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국가직 개념의 무림인들을 고용하고 육성하여 파견하지만 이들만으로 모든 무림인 범죄에 대응하는 건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무림맹 또한 '무림인들의 대표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지지만 직속 무력 집단의 수는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신속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민간 무력 기업'이다.

    민간 무력 기업이란 무림인 범죄에 대처할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하여 법적으로 제도화되며 탄생한, 무림 범죄 대처 전문 용역 업체 개념의 기업이었다.

    쉽게 말해 마두를 상대하기 위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무인들의 집단이 일정 보수를 받고 범죄를 저지른 마두를 잡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합당한 보수만 지불하면 이들이 적절한 장비와 노하우, 무공을 발휘하여 마두를 상대하니 국가나 무림맹은 소수의 인원과 관리 감독관을 보내 현장을 컨트롤하고 관리 감독만 하면 된다.

    무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파가 관아와 함께 마을의 치안을 관리하는 장면이 현대적으로 어레인지 된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무림인'은 고등반 졸업 후 이런 민간 무력 기업에 입사하여 경제 활동을 하는데 일반인의 회사원이라 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만약 꾸역꾸역 문월고를 졸업했다면 나도 그런 회사원이 되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다녔을지도 모르지.'

    전생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어찌되었든 꾸역꾸역 무림학교 고등반에 눌어붙어 있었다면 도진은 보잘것 없는 스펙으로 민간 무력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활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뜬금없이 하게 된 건, 다름 아닌 그 민간 무력 기업 중 한곳의 사장님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니,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고 하기엔 조금 말이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민간 무력 기업의 사장님이 다름 아닌 도진의 선배이자 현재 집행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한유아였기 때문이다.

    "어…… 선배가 사장님이라구요?"

    "응. 내가 창업주니까 사장님이지."

    여상스레 말하는 한유아는 집행부실 가운데 테이블에 도진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평상시처럼 수업을 다 받고 집행부 활동도 끝난 뒤 도진은 문월동으로 달려가려 했다.

    오전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뉴스엔 무림인 범죄라는 내용이 없었지만 동네에는 은밀히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요원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일이 잘 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것만을 믿고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직접 뛰어다니려 한 것이다.

    그런 도진을 한유아가 붙잡고 갑자기 내가 민간 무력 기업의 사장이라는 말을 꺼낸 것이었다.

    "나름 사람들을 모으고 자본금을 투자해서 세웠어. 집안 찬스는 최대한 배제했으니까 온전히 내 기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싱긋 웃는 얼굴에는 약간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그렇게 분위기를 풀어내고서 한유아는 말했다.

    "너희 동네에 화재 사건이 있었잖아."

    "…네."

    "그 사건이 무림인에 의한 범죄라는 걸 알린 건, 너지?"

    "……."

    도진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거기에 따라 기세 또한 차갑게 벼려졌다.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이런 사건에서 제보자에 대한 정보 보호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사항이었다.

    한데 그 정보가 한유아의 입에서 나왔으니 도진의 기세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유아는 그런 도진의 오해를 풀기 위해 바로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마. 네 정보가 유출된 건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야."

    "추측이요?"

    "응. 몇 가지 정황을 놓고 생각해보면 너라는 결론이 나오거든."

    그러면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일단 나는 네가 어제 차를 타고 나가는 걸 봤어. 그리고 문월동에 화재가 두 건 발생한 걸 알게 됐지."

    "SNS에 글이 올라왔거든. 여기에 네가 왔다는 목격담도 올라왔고."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은밀하게 공문이 내려온 거야. 문월동에서 발생한 화재가 무림인의 범죄라는 게 밝혀졌는데 협조할 기업을 찾는다고."

    여기에 입찰한 것이 다름 아닌 한유아가 사장으로 있는 민간 무력 기업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업체에 비해 월등히 평가가 좋은 한유아의 기업은 어렵지 않게 계약을 따냈다.

    "일반적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것이 범죄일 거라 가정하고 조사하진 않지. 심지어 무림인의 소행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고. 그런데 두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곤 해도 전봇대 위에만 남아 있던 흔적을 바로 발견하고 무림인의 범죄라고 빠르게 결론날 정도의 조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여기까지 오면 예언을 한다고까지 알려진 한유아의 통찰력으로 어떤 가설이 완성되는 것이다.

    "현장에 이렇다 할 무림인은 없었지. 거기에 있었던 뛰어난 무림인은 도진이 너뿐이었고 넌 추종술을 배웠잖아. 그러니까 난 네가 제보를 해서 이번 화재가 무림인의 소행이었다고 빠르게 밝혀졌다고 결론 내린 거야."

    도진은 입학 시험 배틀 로얄에서 추종술을 보여 주었다.

    지쳐 있는 학생들을 빠르게 추적하면서 말이다.

    한유아는 그것까지 판단 재료로 삼아 정답을 도출해낸 것이었다.

    "…그러셨군요."

    도진은 납득 가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본래 했어야 할 질문을 했다.

    "한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제게?"

    도진의 질문에 한유아는 언제나와 같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라 걱정이 많을 거잖아. 오늘 빨리 돌아가려 한 것도 너희집으로 가려고 한 것이었을 테고."

    "네."

    "그래서 조금, 상부상조 할 수 있는 제안을 하려고."

    "상부상조요?"

    "응."

    도진은 한유아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이런 류의 사건에서 무림학교 고등반 학생은 '실습'을 통하여 경험을 쌓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까 실제 사건에서 이런 민간 무력 기업의 견습생 같은 느낌으로 보호를 받으며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제도가 바로 '실습'이었다.

    무림인으로 살아갈 학생들이 목숨이 걸린 일에 최소한의 경험과 준비는 하고 마주할 수 있도록, 베테랑들의 업무를 현장에서 배우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여기서 명성과 실적이 생기면 아예 주도적으로 의뢰를 받고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다.

    그 끝판왕이 2학년 학생이면서 민간 무력 기업의 사장인 한유아 같은 느낌이고.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1학년 2학기부터 가능한 일이었다.

    최소한의 경험은 쌓고 실습을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

    그렇기에 아직 1학기를 마치지 못한 도진은 정식으로 이 사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한유아는 그러나 씨익 웃었다.

    "실습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데이트 좀 하자는 거야."

    "데이트요?"

    "응. 이번 일은 그 마두 모르게 잠복해 있다가 찾아서 덮쳐야 하는 일이잖아. 그런데 내가 이유없이 돌아다니면 그것만으로도 수상쩍잖아."

    "그렇죠."

    한유아는 존재만으로도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미녀다.

    여기에 후기지수 금봉이자 대한민국 재계 1위인 금화의 영애라는 신분까지 가지고 있다.

    이런 한유아가 문월동을 이유없이 돌아다닌다?

    대번에 범죄자를 자극할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한유아 선배가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기업의 사장이 현장에서 뛰어야 할 정도로 한유아가 세운 기업이 영세할 것 같지는 않았다.

    허나 그런 의문을 한유아가 중간에 끊었다.

    "그러니까 너야."

    "음."

    "문월동은 네가 사는 동네잖아.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지. 그러니까 너랑 내가 함께 다니면 의심을 사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닐 수 있을 거야. 어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묘수였다.

    한유아는 의심을 사지 않고 문월동을 탐색할 수 있으며 도진 또한 정식으로는 아니지만 사건에 한 발 걸칠 수 있는 묘수.

    그러니까 도진은 거절할 이유가 없는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여기 떡볶이 맛있네."

    "그거 아세요? 떡볶이가 살 찌우는 데 직빵이래요."

    "무림인은 살 안 찌니까 괜찮아."

    한유아와 함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며 국가 기관과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요원들, 그리고 한유아가 사장으로 있는 기업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섞여든 동네를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해가 지고 거리가 어두워질 즈음이 되었다.

    약 두 시간가량을 돌아다녔는데 이렇다 싶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좋을 텐데 쉽지 않네."

    "…그러네요."

    도진은 범인이 50대 남성이라는 걸 알고 있다.

    딱 그게 전부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범인을 봤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흔적을 찾은 게 전부인 상황에서 50대 남성이라고 말할 만한 그럴싸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라면 변장을 하고 돌아다닐 확률이 높겠지만 말야."

    여기에 한유아의 말대로 범인이 용의주도한 녀석이라면 변장을 하고 다닐 경우 또한 고려해야 했다.

    특히나 현대의 변장 기술은 무협지에 등장하는 인피면구나 축골공 등에 버금갈 정도로 발달해 있어서 '50대 남성'이라는 데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범인을 놓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진전없는 탐색을 계속하던 중 도진과 한유아는 작은 소란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집은 외상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들어!!"

    "아 한 병만 좀 외상으로 달라고!!"

    뾰족하게 소리치는 것은 할인마트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듣고 있자니 취객이 막무가내로 외상을 요구해 참다 못한 주인 아주머니가 폭발한 듯했다.

    '음…….'

    그리고 그 취객은, 공교롭게도 상미의 아버지였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그는 검댕이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 더욱 추레한 몰골이었다.

    돈을 준다 해도 환영받지 못할 차림인데 술까지 취해 외상을 해달라고 하니 이런 동네에서 장사하는 억척스런 사람이 화를 내지 않을 리가 없다.

    '엉망이네.'

    좋은 감정이 없다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도진이었다.

    허나 굳이 얽힐 이유가 없었기에 한유아와 함께 자연스레 할인마트를 지나쳤다.

    "뭐야! 이거 놔!"

    "자꾸 행패부리시면 연행될 수도 있습니다."

    거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상미의 아버지는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양팔이 붙잡혔다.

    주인 아주머니가 신고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상미의 아버지가 마트에서 멀어지고 아주머니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치직-

    펼쳐둔 감각에, 심지에 불이 붙어 타는 듯한 느낌이 스쳐갔다.

    "……!"

    무언가를 할 틈은 없었다.

    입을 열기도 전에 소리를 모조리 잡아먹는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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