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26화 (126/741)

126화

"집에 보태 쓰세요. 아버지, 어머니."

웃으며 말하는 도진.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말하기에 9천만 원은 너무 큰 금액이었다.

"이 돈은……."

"이번에 광고 효과가 정말 좋아서요. 계약 조건이 후했는데 뭐, 대박이 터진 거죠."

얼떨떨하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다.

비록 요즘 특히 유명한 '후기지수'라 해도 이렇게 큰 금액을 내놓으니 얼떨떨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얼떨떨함은 곧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는데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어떤 복잡한 감정이었다.

어찌되었든 아들이 정정당당하게 번 돈이다.

한데 그 돈을 이렇게 집에 보태라고 주저없이 내놓았다.

어쩌면 한 번 제대로 쓰지도 않고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얼떨떨함을 뒤덮을 만큼의 여러 감정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서우와 서정원의 감정이 묻어나는 시선에 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앞으로는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아들이 돼 보겠다구요. 그런 느낌으로 받아주시면 돼요."

"도진아."

"아시다시피 저는 또 장학금이랑 그 이름도 거창한 '품위유지비'가 나오잖아요. 돈 관련해서는 아쉬울 게 없어요."

거짓말이 아니다.

다른 학생들 입장에서야 크게 와닿지 않겠지만 도진에게 있어 숭무고 기준으로 나오는 품위유지비는 아쉬움없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되었다.

애초에 돈을 쓸 곳도 거의 없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제 입장에서는 '이자' 같은 거예요."

"이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단어에 김서우가 되물으니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은 이번 일이 있고부터 꽤 여러 곳에서 제의가 들어왔거든요. 광고나 모델, 협찬 같은 거요."

이름을 알리게 된 무인들이 돈을 버는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다.

때문에 김서우와 서정원 또한 길게 설명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다 거절했어요. 내키지가 않았거든요."

좋은 말을 써 줘야 한다.

인위적으로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은 감춰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처럼 해놓고 사실은 철저하게 기획된 광고대로 움직여줘야 한다.

이름을 알리는 '후기지수'에게 들어오는 광고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

도진은 그게 싫었고 그래서 거절했다.

"조금만 눈 감으면 꽤 괜찮은 수입이 될 텐데, 그리고 그거면 집에 큰 보탬이 됐을 텐데 제가 싫어서 거절했어요."

"……."

"조금만 더 지나면, 이제 2학기가 되면 '실습'을 나갈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내키지 않는 건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제 입장이고 생각이고, 집을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게 좋은 거잖아요."

"아니, 아니야. 도진아."

고개를 저으며 도진의 말을 끊은 것은 김서우였다.

김서우가 도진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너는 그런 걸 고민하지 않아도 돼. 넌 아직 학생이니까. 집안에 관해선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네가 고민하고 책임질 일이 아니야."

빚을 지게 된 것이 오롯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김서우의 책임감과 죄책감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 말에, 도진 또한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고민하고 책임지고 싶어요. 장남이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장남 노릇도 못하고 오히려 부담만 드렸죠. 하지만 이제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성인이 되었잖아요."

"좀, 욕심내고 싶어졌거든요. 장남 노릇도 하고 부모님이 덜 힘드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는 욕심이요."

내도 되는 욕심이 있다.

도진은 그러니까 그 내도 되는 욕심에 한해선 욕심쟁이가 되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건 이자예요. 2학기가 되기 전까지 해드릴 수 있는 걸 미루기 위한 이자. 그러니까 부담없이 받아주세요. 이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기적처럼 손에 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

도진은 다시 사는 삶에서는 부모님이 호강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고 미래를 희생했던 동생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거나 희생, 헌신하는 게 아니다.

순수하게 도진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었다.

성공할 것이고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살 것이다.

그저 그 안에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도진은 씨익 웃었다.

"원래는 1억을 받았어요. 거기서 천 만원은 제가 어디 쓸 데 있을지 모르니까 미리 챙겨뒀거든요. 항상 그랬잖아요? 제가 필요한 건 먼저 챙겨두니까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유진이랑 호진이 데리고 가족 여행도 갔으면 싶고 조만간 이사도 갔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걸 생각으로 끝내지 않고 실제로 만들 욕심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부담없이 받아주세요."

생각한 것을 생각으로 끝내지 않고 실현한다.

다시 사는 도진의 방식이었다.

그런 기세가 깃든 도진의 모습에, 김서우와 서정원은 모든 감정의 위에 미소를 그렸다.

"고마워, 우리 아들."

* * * *

다음날. 도진네 가족은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서정원이 일찍 일어나 솜씨를 발휘했고 다 함께 거들어 완성된 아침 밥상이었다.

즐거운 아침 식사가 끝나고 정리까지 마친 뒤, 도진은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잠시만요."

"응? 왜?"

"선물 드릴게요."

그러면서 어머니의 등에 손바닥을 댄 도진이 천마기가 아닌 순수하게 정제된 내기(內氣)를 불어넣었다.

서정원은 아들이 불어넣어 준 내기에 피로가 가시고 몸이 가벼워지는, 생기가 가득차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엔 못했는데, 이젠 가능해졌거든요."

타인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어 생기를 북돋는 수법.

깨달음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었고 그나마도 수준 높은 내공 운용법을 모른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매일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도진은 얼마 전 현실에서 이 수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그 경지에 이르렀기에 이렇게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피곤한 몸으로 일찍 일어난 어머니의 피로를 해소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아들."

어머니의 미소에 도진 또한 미소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어머니께도 무공을 알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도진은 천마와 사신을 통하여 현대의 무공이 고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퇴보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확연히 옅어진 기(氣)의 밀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 기의 밀도와 반비례하여 진해진 탁기(濁氣), 그러니까 매연 등의 안 좋은 기운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진이 알고 있는, 천마와 사신이 알려준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선 옅은 기의 밀도와 진한 탁기의 밀도 때문에 발생할 변수에 빠르고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어야만 했다.

때문에 도진은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것을 1년 정도 뒤로 잡고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무공에 뜻을 두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건강이나 미용을 위한 생활 체육 수준으로 수련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집안이 기운 뒤로는 그만두었고 말이다.

특히 심법의 경우는 사실상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극한까지 집중하여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혈도 중 정해진 경로를 따라 내공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니 재능과 노력, 끈기 없이는 기초 심법이라 해도 성취를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진이 돕는다면 건강을 증진하고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북돋아 무병장수에 목적을 둔 선도(仙道) 계열의 심법을 전수해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인(武人)을 위한 심법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심법은 그 안정성에 큰 차이가 있다.

고출력·고화력을 추구하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느리고 부드러우니까 말이다.

정말로 후하게 잡아도 집안의 빚을 다 갚고 어느 정도 안정될 때까지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려 하실 테니 최소한 피로를 풀고 건강을 지키실 수 있도록 심법을 습득하도록 해 드릴 필요가 있다.

이제 최소한의 경지에 올랐으니 지켜보고 알려드리고 또 진기도인(眞氣導引), 내공의 운용을 이끌어 드린다면 어머니가 내공 심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드릴 수 있다고 도진은 생각한 것이다.

'좋아.'

오늘부터 심상세계에서 스승님과 상담해보고 계획을 짜 보자.

내친김에 가족 전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판을 더 벌리자.

결론을 내린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잘 다녀와요. 잘 다녀와."

서정원의 배웅을 받으며 모두 함께 집을 나섰다.

"다녀오세요, 아버지."

"다녀오세요."

"그래, 너희도."

도진과 유진이, 호진이의 인사에 김서우는 미소지으며 차에 올랐다.

거짓말처럼 불면증 없이 푹 잤고 함께 따듯한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출근길의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고개 숙이고 버티는 게 아니라 마주하여 나아간다.

풍파에 깎여 나가고 칼바람에 얻어맞으면서도 자리를 지켜야만 했던 암울한 나날들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김서우는 소중한 자식들의 시선에 핸들을 불끈 쥐고 액셀을 밟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차가 내리막길을 지나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도진이 몸을 돌렸다.

"자, 그럼 우리도 갈까?"

"응!"

반짝이는 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진이 스마트 키를 조작했다.

우우웅-

S 로드런너에 시동이 걸리며 저절로 문이 열렸다.

동생들이 토토토, 달려가 뒷좌석에 자리잡았다.

도진이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다 운전석에 올랐다.

"안전벨트 잘 맸지?"

"응!"

"좋아. 그럼 가자!"

동생들의 신이 난 얼굴을 백미러를 통해 보고서 도진은 액셀을 밟았다.

부드럽게 나아간 차는 일체의 흔들림없이 내리막길을 지나 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좁은 길을 지나 슬슬 막히는 도로에 진입했는데, 도진이 옅은 웃음을 흘렸다.

-비싼 차가 지나가면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음.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다.

그러니까 정말로 비싼 차가 도로에 나오면 혹여 사고라도 날까봐, 부딪칠까봐 다른 차들이 거리를 두는 모습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 말.

도진은 단 한 번도 그런 걸 보거나 체험한 적이 없었다.

한데 바로 오늘, 처음으로 그것을 체감하게 됐다.

도로에 합류하기 위해 깜빡이, 방향지시등을 넣고 진입하기 위해 살피는데 차들이 '어서 지나가시죠'라고 말하는 것처럼 길을 내 주었다.

달리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차들이 신기하게도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이 시대에, 그것도 서울에서 안전거리를 직접 보게 된 건 전생을 포함하여 처음이었기에 신선한 기분이었다.

'신기하네.'

그 신기한 경험을 하며 오래 지나지 않아 유진이와 호진이가 다니는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아……."

"멋있다."

등교하던 아이들이 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하는 말들이 들린다.

디자인에서부터 차별화되는 슈킨팍시는 특히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특화되어 있었다.

도진이 먼저 내려 문을 열고 동생들을 번쩍 들어 내려 주었다.

"유진이네 형이네."

"진짜!"

그런 도진과 동생들에게로 시선이 모이는 건 슈킨팍시 때문만이 아니라 이 동네 출신이면서 잠룡으로 이름을 떨치는 도진이 말 그대로 스타와 같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SNS에서 봤어. 저거 유진이네 형이 받은 차래!"

"와……. 고수가 되면 저런 차도 받나 보네."

유진이와 호진이는 주변의 시선과 목소리에 어깨가 과할 정도로 올라갔다.

도진은 그런 동생들의 기세등등함에 피식 웃고선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

"응!"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동생들의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나는 어른 되면 공부 열심히 해 같은 뻔한 말 안 할 줄 알았는데…….'

동생들을 위해 말하다보니 나오는 대사가 딱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도진은 다시 한 번 피식 웃고선 뛰어가는 동생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고 차에 올랐다.

'자, 그럼.'

동생들도 데려다 주었고 이제 도진도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본래 도진을 향한 적의를 가진 학생들이 가득했던 학교.

그러나 이제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