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요즘 시대에 일부러 찾아도 찾기 힘든 스틱 운전을 선호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으로, 오성아는 차에 관심이 많았다.
단순히 운전에만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니라 차량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심지어 직접 정비하고 튜닝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런 오성아였기에 '슈킨팍시 클래식'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본래는 내연 기관 자동차로 시작했던 슈킨팍시가 최초로 내놓은 완성차.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내구성 등을 포함하여 신뢰성만큼은 지금도 인정받는 차.
거기에 디자인으로는 언제나 호평받았던 슈킨팍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재직 중인 제럴드 린킨이 최초로 디자인했던 차.
그래서 30년이 다 돼가는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클래식한 멋이 진한 차가 바로 슈킨팍시 클래식이었다.
요즘 슈킨팍시를 몰며 관련 역사나 지식 등에 관해 찾아보았던 오성아는 그 진한 클래식함이 마음에 들었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가장 신형이라 해도 25년은 되었을 차.
관리를 아무리 잘했다 해도 자잘한 불편함을 감안하고 몰아야 할 차.
허나 그래서 오성아는 더 좋다고 생각했다.
차에 관심이 많고 운전이 취미인 오성아는 개인 주차장을 가지고 있을 만큼 여러 대의 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잦은 외근과 업무 스트레스를 기분에 따라 달리 선택한 차를 운전하여 다니는 것으로 해소하곤 했다.
여기서 올드 카다.
직접 정비하고 튜닝까지 한 클래식한 차를 몰아 본다.
어쩌면 운행 중에 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그걸 감안하여 개인적인 시간에 몰고 나온 거니까 상관없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공구들로 본넷을 열고 딸깍딸깍 수리해 본다.
그래서 멈췄던 엔진이 다시 움직이고 그것을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또 동호회 카페 등에 올려 공유하는 것으로 되새기며 몇 배나 크게 즐길 수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두근거리는 감정이 마음의 창이라는 눈에 깃들어 안 그래도 예쁜 눈동자를 반짝이며 오성아는 김서우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눈동자에, 김서우는 미소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배려는 감사하지만 저는 지금 차를 조금 더 타려고 합니다."
"아, 그러신가요."
귀를 늘어뜨리는 강아지 같은 기색으로 오성아가 답했다.
김서우는 미소에 미안함을 더하며 말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차를 처분하고 슈킨팍시를 타고 다니기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고 하시면……."
"첫 번째는 충전소 문제입니다."
슈킨팍시는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100% 전기차다.
그 말은 즉 일반 주유소를 이용할 수 없으며 따로 전기 차 충전소나 충전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충전 문제가 전기 차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단시간 내에 주유가 가능한 내연 기관과 달리 최소 수십 분 이상의 충전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나마도 시설을 갖춘 곳이 드물며 여러 대가 동시에 이용하기도 힘들다.
"저희 집 근처는 물론이고 이 근처에서 전기 차 충전소는 찾기 힘들죠. 하물며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도 전기 차 충전 설비는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충전소를 찾아가 충전을 해와야 한다는 건데 단순히 번거로운 걸 떠나 필요할 때 차를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 부분은……."
당연히 오성아는 이 부분에 관해서도 대비를 했다.
김서우의 회사나 근처 공공 시설에 충전소 설치를 할 수 있도록 계획서를 올려 두었다.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이 집에도 집주인과 협의하여 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그러나 그런 설명을 하기 전에 김서우가 먼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부분은 제가 근무하며 몰고 다니기엔 어울리지 않는 차라는 점입니다."
김서우가 근무하는 곳은 무림인들의 훈련을 서포트하는 회사다.
더 정확히는 훈련할 수 있는 훈련장을 조성하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일을 한다.
여기서 김서우가 하는 일은 그 훈련장을 '조성'하는, 머리와 몸을 같이 쓰는 일이다.
"자재를 싣고 작업복을 입은 채 험한 환경에서 차를 몰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도진이가 협찬받은 차를 쓰는 건 조금 어울리지 않지요."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몰고 다니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배려는 감사하지만 저는 지금 차를 좀 더 타고 다니려 합니다."
김서우의 설명에 오성아는 물론이고 도진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라도 혹시 차를 매각하시게 되면 꼭 저한테 말씀주세요. 제가 비싸게 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끝나고 오성아가 돌아갔다.
도진은 오성아를 배웅하고 김서우와 함께 담벼락에 주차된 슈킨팍시 앞에 섰다.
"아버지가 타시던 차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게 저에게 왔네요. 기분이 좀 묘한 느낌이에요."
"그렇구나."
슈킨팍시가 가장 처음 내놓은 완성차, 슈킨팍시 클래식.
그 차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최신형 모델 S 로드런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음에도 아직 멈추지 않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차와 그 옆의 화려한 차는 꽤 의미심장하게 대비된다.
"들어가요."
"그래."
함께 들어가 함께 음식을 만들어 조금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공부를 마치고 한 손씩 거들었던 동생들은 맛있는 걸 먹어 배부르다며 운동하러 근처로 나갔다.
"면허,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전생을 포함해도 몇 번 되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식사는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졌으나 어색하진 않았다.
가족이니까, 어색할 이유는 없었다.
식사도 끝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늦은 밤이 되자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모셔 올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네."
대문을 나온 도진은 내리막길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옆의 공터로 향했다.
다름 아닌 슈킨팍시를 타고 가려는 것이었다.
차가 생겼고 오늘 면허도 땄다.
'숙제'도 해야하니 슈킨팍시를 타고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우웅-
특유의 근육이 깨어나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대시보드의 모니터들이 여러 정보들을 표시했다.
도진의 슈킨팍시는 오성아의 것과 달리 평범한 1단 감속기가 탑재된 차량이라 스틱처럼 조작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기어가 센터페시아만이 아닌 핸들에 탑재된 버튼식 기어를 이용할 수도 있어 한 손만으로 운전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달칵.
핸들의 버튼을 이용해 주행, D로 바꾸고 약하게 액셀을 밟자 부드럽게 차가 나아갔다.
마치 달리기 전 천천히 땅을 걷는 경주마 위에 오른 듯 편안하면서도 다이나믹한 주행감이다.
문월동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스무스하게 내려가 도로를 달린다.
굳이 속도를 내지 않아도 이 차가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만큼의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 핸들과 액셀을 통해 느껴진다.
그렇게 전생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스포츠 카 못지 않은 주행감을 만끽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은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 중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때를 맞추듯 중정에서는 다음날 준비를 마친 찬모들이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도진의 어머니 서정원을 포함하여 세 명, 밤 늦게까지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찬모들이었다.
지친 몸으로 걸어 나온 찬모 중 한 명이 서정원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면 도진이 엄마는 이제 풀타임 안 해도 되지 않아?"
"그러게. 아들이 보니까 요새 외제차도 받고 그러던데."
꽤 화제가 되고 있는 도진의 이야기가 SNS만이 아닌 인터넷에도 떠돌아다녀 찬모들 또한 들은 것이 있기에 나온 말이었다.
서정원은 그런 찬모들의 말에 뿌듯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도진이는 아직 학생이잖아요. 제가 열심히 벌어야죠."
"어이구. 무림인들은 열일곱이면 성인이잖아. 고생도 많이 했는데 슬슬 효도받고 그래야지."
함께 퇴근하는 두 사람은 서정원보다 선배들이고 지금껏 함께 일하며 변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처음엔 어디 부잣집 사모님 같았고 그 모습처럼 적응에 힘들어 하던 게 서정원이었다.
그 외모 때문에 탐탁지 않아 하던 기존 찬모들은 그러나 힘들고 고되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 악물고 참으며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 이내 호의적이 되었다.
이제는 퍽 찬모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그래서 안타깝고 안쓰러운 맘이 드는 게 서정원이었다.
입에 달고 살던 아들 자랑이 공허하지 않게 된 지금, 두 사람은 서정원이 이제 좀 편히 살아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 서정원이었기에 두 사람의 말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헤어지려던 때에 커다란 차 한 대가 중정의 주차장에 들어온 것이었다.
"어머, 저 차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러게요."
척 봐도 고급 외제차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디자인부터가 평범하지 않은 차량.
그럼에도 어쩐지 본 것 같은 그 차를 서정원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머니."
다름 아닌 어머니를 모시러 나온 도진의 슈킨팍시였으니 몰라볼 수가 없었다.
"어머, 어머!"
"도진이잖아. 어머니 모시러 온 거야?"
"네. 안녕하세요."
다가온 찬모들에게 도진이 웃으며 인사했다.
두 사람의 찬모들 뒤에 선 서정원은 생각지 못했던 마중에 조금은 놀란, 그러나 기쁜 얼굴이었다.
"요새 면허딴다는 이야기 들은 거 같은데 벌써 땄나보네?"
"네. 그래서 한 번 몰고 나와 봤어요."
"어머, 진짜 효자네. 그지, 찬우 엄마?"
"그러게."
"감사합니다."
찬모들의 칭찬에 도진이 웃으며 인사했다.
"우리는 어차피 같이 택시타고 저쪽으로 가거든. 그러니까 어서 가 봐."
"네. 다음에 뵐게요."
"잘 가요, 언니들."
"도진이 엄마도 잘 가."
인사를 나누고 도진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피곤할 텐데 그냥 집에 있지."
"에이, 피곤하긴요. 차 몰고 싶었는데 마침 딱 어머니 모시러 간다는 좋은 핑계거리가 있어서 이렇게 나온 건데요?"
"넉살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도진의 모습에 서정원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나올 순 없겠지만, 집에 있을 땐 이렇게 모셔다 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고마워."
괜찮다고 해 봐야 들을 아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서정원은 아들의 효도를 기쁜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동네 입구인 가파른 오르막길이 아니라 집 바로 옆의 담벼락까지 와 차에서 내려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왔어?"
"네."
들어가니 남편이 반겨 주었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아이들은 곤히 자는 중.
허나 오랜만에 집에 온 가족이 다 모였다.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앉아 마주한 자리에서 아들은 통장과 도장,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내밀면서 아들은 씨익 웃고선 말했다.
"아들이 처음으로 일해서 번 돈이네요."
남편과 함께 서정원은 통장을 펼쳐 보았다.
"……!!"
그 통장엔, 무려 9천만 원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