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김 주임. 운전 면허 따볼래?"
그것은, 입사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사장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도진은 사장이 그런 권유를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주 과장이 그만둔다면서?"
"그만둔다 그만둔다 말로만 투덜거리는 줄 알았는데 진짜 관둬 버리네."
"사장이 골치가 좀 아프겠어."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은근히,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도진이었기에 직원들이 뒤에서 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고 그 덕분에 5년 이상 일했던 사람 중 한 명이 그만두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 주 과장이 그만두면서 물건을 납품할 사람이 한 명 부족해졌다는 사정 또한 알게 됐다.
도진이 일했던 회사는 싸구려 도복을 만들어 도매처를 포함한 몇 군데 거래처에 납품하거나 직접 판매하는 게 주 수입이었다.
한데 그 거래처를 돌며 물건을 납품하는 업무까지 맡고 있던 주 과장이 그만두면서 납품 업무에도 공백이 생겨 버린 것이다.
사장이 돌연 도진에게 면허를 따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김 주임도 이렇다 할 만한 업무 하나 맡아야 하지 않겠어?"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
도복을 포장하는 등의 단순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운행을 나가고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네가 해 봐라.
"면허 따는 데 필요한 비용은 회사에서 대줄 거야. 해볼래?"
호의로 하는 말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사람을 더 뽑지 않고 있는 직원들로 해결해 보려는 의도라는 걸 도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사장의 말대로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평범한 직원으로 남는 것보다 무언가 하나라도 맡는 게 더 좋았으니까.
거기에 공짜로 면허까지 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네."
그리하여 도진은 면허를 따게 되었다.
"음, 2종 자동은 따실 수 있겠네요."
왼쪽 다리가 마비되고 왼쪽 손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도진이었으나 다행히 신체검사에서 2종 자동은 딸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오른 다리만으로도 페달 밟는 건 문제 없죠. 아, 오히려 양발 운전 같은 위험한 운전을 하지 않으실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왼손으로 핸들을 최소한으로는 움직일 수 있으니 다행이네요."
…면허를 따면서, 알게 모르게 가슴에 멍이 들었었다.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움직일 수 없는 왼 다리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왼손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그 왼 다리와 왼손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악의없이 하는 말들마저 너무 아프게 가슴을 때려서 멍이 들게 만들었다.
괜히 스틱 운전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았고 그것이 머릿속에 남아 운전할 때마다 떠오르면서 또 가슴을 두드렸다.
어차피 스틱을 몰 일이 없다시피 한 시대. 그러나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는 현실이 도진을 괴롭힌 것이다.
결핍.
그것을 끊임없이 자각시켰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 전생의 그 결핍은 모두 없었던 것이 되었다.
오히려, 초월적인 힘을 품게 되기까지 했다.
그것이 갑작스러우면서도 급류처럼 몰아쳐서 전생의 결핍을 잊고 살았었다.
전생의 불행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에 되새기거나 돌아보지도 않았었다.
한데 지금 그 결핍에 관한 기억이 되살아난 건 더 이상 그 결핍이,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라지 않다는 걸 새삼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선 결코 할 수 없었던 왼발로 클러치를 밟는 감각.
그 클러치 밟고 있는 왼 다리를 통하여 전해지는 차의 진동.
오롯이 왼손으로 쥐고 돌리는 핸들까지.
이제는 더 이상 모자라지 않다는 걸 체감하게 해주는 그 감각들이, 도진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나는 이제 결핍을 안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응? 1종 보통 따게?'
'네. 그걸 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날의 연습은 특별했다.
"다 끝났어?"
"네."
"그럼 돌아가자. 바래다 줄게."
"네. 고마워요, 누나."
"에이! 이것도 다 일이야, 일! 그러니까 안 고마워해도 돼."
끝까지 함께 있어 준 오성아 덕분에 도진은 편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일도 오늘이랑 비슷한 시간에 올게."
"내일은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아직 조율해야 할 것들이 좀 있으니까 업무야, 업무. 데려다주는 건 어디까지나 외근하기 위한 핑계! 그러니까 부담가지지 마."
"아하하. 알겠어요 그럼. 대신 내일 밥은 제가 살게요."
"그것까지 거절하진 않을게. 그럼 내일 봐."
"네. 조심히 가요, 누나."
돌아가는 오성아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집으로 향했다.
7시가 좀 넘은 시간.
동생들에겐 미리 말을 해 두었기에 알아서 저녁까지 챙겨 먹었을 시간이다.
그 동생들이, 집에 도착해 보니 밖에 나와 있었다.
"유진아. 호진아."
"형아!"
"오빠!"
도진의 부름에 동생들이 토토토, 달려왔다.
귀여운 동생들에게 웃어 보이며 도진이 말했다.
"차 보고 있었어?"
"응."
"못보던 차인데 누구 차일까?"
문월동은 달동네답지 않게 차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은 길이 있는 곳이었다.
구석구석 길이 잘 뚫려 있는 건 아니지만 동네를 관통하는 중앙의 큰길이 있다.
때문에 그 큰길과 연결된 몇 군데 공터에 낡고 오래된 차들이 여럿 보이는 곳인데 그런 동네에 섞여든 슈킨팍시는 여러모로 이질적이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유진이와 호진이는 그 슈킨팍시가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들의 집 옆에 주차되어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근데 차 진짜 멋있다."
"응."
10대와 20대를 중점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디자인된 차라 그런지 아이들의 감성 또한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던 듯 유진이와 호진이의 눈이 반짝였다.
도진은 그런 동생들의 모습에 웃으며 몰래 오른손을 움직였다.
"멋있으면 타 볼까?"
"어?"
"어떻게?"
"이렇게."
숨겨둔 오른손으로 스마트 키를 조작하자 전면의 스윙 도어가 날개를 펼치듯 열렸다.
"와아아아!"
"열렸어!"
동생들이 놀라며 주먹을 꼭 쥐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도진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문이 열렸으니까 이제 탈 수 있겠네."
도진의 말에 동생들이 머뭇거렸다.
호진이가 말했다.
"근데 허락없이 타면 안 되잖아."
"맞아."
유진이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네. 맞아. 남의 차를 허락없이 타면 안 되지. 근데, 이건 내 차니까 괜찮은데?"
"형아 차?"
"오빠 차야 이거?!"
동생들이 고개를 홱 돌려 올려다보면서 묻는다.
도진은 그러엄,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짜 진짜 형아 차야?"
"그래. 진짜 진짜 형아 차야. 보여줄까?"
그러면서 스마트 키를 꺼내 이번엔 동생들에게 보여주며 조작했다.
우우웅-
특유의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더니 슈킨팍시가 천천히 움직여 동생들의 앞에 섰다.
매뉴얼 북을 틈나는 대로 읽어 숙지했던 리모트 컨트롤을 활용한 것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저절로 움직였어!"
동생들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문이 열린 채 저절로 차가 움직인 것이 그토록 동생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자, 타 보자."
도진은 그런 귀여운 동생들을 번쩍 들어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혀 주었다.
주행 잠금 모드로 전환해 두었기에 도진이 바깥에 서 있어도 혹시 모를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슬슬 어둑해지는 밤.
그러나 곳곳에서 켜진 간접등이 차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여기에 전면을 가득 채운 패널의 빛 또한 어린 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아아……."
"형아, 이제부터 우리 이 차 타고 다니는 거야?"
호진이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며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평소 차를 몰 일이 거의 없는 도진이었기에 이번에 받은 슈킨팍시를 패밀리카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최대 8인승의 준대형 SUV.
여기에 뒷열 시트를 제거하고 트렁크 공간을 늘린 도진의 슈킨팍시는 훌륭한 패밀리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여유가 없어 어디 번듯한 곳에 놀러가지도 못했던 동생들.
삶에 허덕이느라 바빴던 부모님까지.
앞으로는 이 슈킨팍시를 이용해 여기저기 다니게 될 것이다.
"이러면 너무 밝지?"
"응. 줄이자."
동생들은 신세대답게 슈킨팍시의 인터페이스에 금방 적응하고 패널을 조작했다.
간접등의 밝기를 조절하고 색깔까지 이것저것 바꿔 보았다.
"와! 게임도 돼!"
"이제 할머니집 가도 안 심심하겠다."
한 시간을 그렇게 둘러보고서야 동생들은 겨우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자고 싶다."
"나도."
들뜬 동생들의 말에 도진은 피식 웃었다.
"앞으로 자주 타게 될 거니까 오늘은 들어가자."
"응!"
그렇게 동생들을 집에 들이고 어머니가 오실 시간이 되자 도진은 생각했다.
'면허만 있으면 어머니 모시러 갔을 텐데.'
기껏 차가 생겼고 집에 있는데 아직 면허가 없어 어머니를 모시러 갈 수가 없다.
좋은 차로 모시러 가면 어머니 기분도 좋고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가실 텐데 말이다.
4일만에 면허를 따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수준으로 빠르다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하루만에 못 딴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버린다.
게다가 사실은 지금 당장이라도 능숙하게 주행을 할 수 있으니 더더욱.
그래서 아쉬움을 달랠 겸 동네 입구까지 걸어서 어머니를 마중나갔다.
"피곤할 텐데 쉬지 왜 여기까지 나왔어."
"에이, 제가 피곤할 리가 없잖아요. 고수인데."
"어머!"
그러면서 다짜고짜 어머니를 업는 도진이었다.
"뭐, 뭐하는 거야."
"그냥 올라가면 너무 쉬우니까 업고 가려구요."
"얘는!"
목소리에 당황이 묻어나면서도 서정원이 결코 내리지 않는 건, 아들의 갑작스런 행동이 결코 싫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훌쩍 커 버린 아들의 등에 업혀서 집에 온 서정원 역시 담벼락에 주차되어 있는 슈킨팍시에 시선이 갔다.
그 시선을 안 보고도 느낄 수 있는 도진이 말했다.
"우리 차예요, 어머니."
"뭐어?"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광고 계약 하나 했다고. 그게 잘 돼서 받은 거예요."
"광고가 잘 돼서 차를 받았다고?"
"네."
도진은 집 안에 들어가 좀 더 설명을 했다.
정련단 관련 계약을 했을 때 성과가 정말 좋으면 인센티브와 더불어 차까지 받기로 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이거 관련해서 좀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건 아버지까지 같이 계실 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 큰일이면 그래야지. 전화는 드렸고?"
"네. 화요일날 일찍 오시기로 하셨어요."
안부 전화를 빼먹지 않고 하면서 버릇을 들인 도진이었기에 오늘 일이 있고서 바로 전화를 드렸었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를 벌었는지, 슈킨팍시에 관해서, 그리고 이번에 받은 돈을 어떻게 쓸지에 관해서까지 화요일에 이야기를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차가 생기고 일요일, 월요일까지 지나 화요일이 되었다.
"김도진 님, 합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