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22화 (122/741)

122화

차에서 내린 도진은 옷을 갈아입고 오성아와 함께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름 아닌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러 가는 길이었다.

"토요일에도 면허 학원은 일을 하나 보네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오성아가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지금 가는 곳은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

"일요일에도요?"

"응. 평일에 바쁜 사람들을 위한 곳이거든. 필기 시험이랑 장내 기능 시험은 스케쥴만 되면 오늘이랑 내일만으로 끝낼 수도 있어."

"정말요?"

도진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2주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그걸 이틀만에, 그것도 주말동안 가능하다고 하니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필기는 웬만해선 떨어질 일도 없고 금방 끝나잖아. 그러니까 오늘 접수하고 필기까지 끝내고 오늘이랑 내일 나눠서 장내 기능 시험치면 돼. 그리고 월요일이랑 화요일에 도로 주행이랑 시험치면 끝!"

오성아의 설명에 따르면 주말에 장내 기능 시험까지 끝내놓고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를 이용해서 도로 주행과 시험까지 끝내는 계획이었다.

"물론 이렇게 급하게 하지 않고 여유롭게 해도 되고."

"아뇨. 그게 좋을 거 같네요."

도진은 찔끔찔끔 하는 것보다 몰아서 끝내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어차피 수련이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고 중간고사까지 끝나 여유가 있다.

안 그래도 면허는 기회가 되는 대로 따려고 생각했기에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럼 4일 완성 프로젝트로 갈까?"

"네. 그렇게 해요."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 더 걸으니 내리막길이 끝나고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그 공터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자동차가 한 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오성아의 슈킨팍시 로드런너 S 그레이드였다.

도진과 같은 디자인에 풀옵션. 하지만 확연하게 구분되는 게 하나 있었으니 과감한 컬러였다.

'와, 보라색이네.'

도진의 신비하면서도 확 튀지 않는 딥블루 컬러와 달리 오성아의 슈킨팍시는 매트한 질감의 보라색 컬러였던 것이다.

웬만해서는 선택하기 힘든, 그러나 오성아에게는 그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위이잉-

오성아가 스마트 키를 조작하자 특유의 구동음과 함께 전면 스윙 도어가 자동으로 열렸다.

"타."

"네."

내부의 컬러 역시 도진의 것과 달리 블랙&화이트로 모던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다.

보조석에 오르고 벨트를 매니 오성아 역시 벨트를 매고 운전대와 기어를 잡았다.

'음?'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 어떤 의문이 생겼다.

"누나."

"왜?"

"차 두 대를 가져오신 거예요?"

"응. 두 대를 어떻게 가져온 건지 궁금한 거야?"

도진의 의문을 바로 눈치채고 묻는 오성아에게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성아는 웃으며 말했다.

"자율 주행 시스템이랑 리모트 컨트롤, 그러니까 원격 조종 기능을 적극 활용했지."

자율 주행은 익숙한 용어다.

그러나 리모트 컨트롤은 조금 생소했다.

"리모트 컨트롤요?"

"응. 한 대는 내가 운전, 그리고 너한테 줄 건 자율 주행 모드로 해놓고 뒤따라오게 했어.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리모트 컨트롤 기능으로 동시 운전을 한 거야."

"그럼 진짜 혼자서 두 대를 몰고 온 거예요?"

"응. 그리고 그걸 SNS에 올리는 걸로 오늘 숙제 끝!"

세상 진짜 좋아졌다.

도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별개로, 굳이 거창하게 자율 주행 모드와 리모트 컨트롤을 쓴 건 홍보를 위한 '숙제'였던 듯했다.

사실 두 대를 동시에 운전할 일이 거의 없고 자율 주행과 리모트 컨트롤이 있다 해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오성아는 여유롭게 핸들과 기어를 조작했다.

도진은 그렇게 운전하는 오성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공들여 세팅한 기다란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와 매력적인 핑크빛 입술.

기다란 손가락과 그 끝에 화려하게 꾸미진 않았으나 깔끔하게 손질하고 투명한 네일 글로우를 바른 손톱까지.

곁에 앉은 오성아의 옆모습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도진이 보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성아 또한 무림인. 그래서 도진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는지 바로 깨닫고 말했다.

"스틱은 처음 봐?"

"음…… 그렇네요."

스틱(Stick). 그러니까 수동 변속기를 뜻하는 말이다.

달리는 속도에 따라 운전자가 직접 기어를 조작해 주어야 하는 변속기.

요즘 시대에는 보기 힘든 변속기였다.

다만 도진이 이쪽으론 지식이 부족해 못 알아본 것인데, 사실 슈킨팍시에 탑재된 건 '변속기'가 아니라 '감속기'였다.

전기차는 보편적으로 변속기가 아니라 감속기가 탑재되며 그것도 1단 감속기다.

한데 슈킨팍시는 특히 앞선 기술로 수동 변속기를 연상케하는 3단 감속기를 탑재해 도진이 수동 변속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일부러 이 옵션으로 신청했어. 나, 스틱 운전 좋아하거든."

"그러셨구나."

불편할 때도 있지만 운전하는 손맛은 스틱이지.

도진은 그런 말들을 간간이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오성아가 그렇게 운전하면서 손맛을 찾는 드라이버였던 듯했다.

운전 학원은 외곽에 있었으나 교통량이 적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접수하자."

"네."

오성아의 손에 이끌려 절차를 밟았다.

증명 사진이 없어 먼저 근처에서 증명 사진을 찍었다.

덤으로 함께 증명 사진을 찍어 그것을 SNS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오늘의 활동까지 겸했다.

이후 신체검사를 받고 교통안전교육을 들었다.

남은 건 필기 시험인데, 30분 벼락치기를 하고 들어가 20분만에 다 풀고 나왔다.

"어때?"

"잘 쳤어요."

생판 문외한도 아니고 전생에서 10년 가까이 운전을 했던 도진에게 있어 낮은 난이도의 운전 면허 필기 시험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실전이네."

웃으며 말하는 오성아. 그런 오성아와 눈을 마주하며 도진은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안 챙겨 주셔도 되는데."

이곳까지 데려다주기만 해도 충분했는데 일일이 서류까지 함께 작성하며 챙겨주었다.

몇 시간동안 도진의 일을 함께 해 준 것이다.

"계산은 이걸로 해주세요."

심지어 계산까지 오성아가 했다.

"아, 이거 내 돈으로 내는 거 아니야. 어디까지나 공금으로 지원해주는 거야. 계약에도 있었잖아? 부대비용은 우리가 담당한다고."

그러면서 법인 카드를 들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모습 또한 매력적이었다.

오성아는 도진의 인사에 고개를 저었다.

"너, 잊고 있는 거 같은데 나 너 전담 컨설턴트야. 이게 다 업무라구. 그러니까 외근 같은 거. 오히려 회사에 안 갇혀 있어서 난 좋은데?"

진담, 그러나 일부러 조금은 장난스레 말하는 오성아의 모습에 도진 또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대용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도진에 대한 고마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 때문이 아니라 그 고마움으로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져 호감이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장내 시험과 도로 주행 시험의 신청까지 완료하고 한 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 이른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바로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었기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은근한 시선들이 모였다.

앉은 자리를 화보로 만드는 오성아의 미모만이 아니라 도진 또한 시선을 모으는 원인이었다.

오성의 직계이자 SNS 여신 오성아. 그리고 그 오성아와 맞팔 관계이면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후기지수, 잠룡 김도진이 함께 있으니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가 나보다 더 시선을 끄는 거 같은데?"

"아하하."

빨대를 문 채 짓궂게 말하는 오성아에게 도진은 그저 웃었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시선들을 느끼고 있었다.

이름뿐이던 잠룡이란 별호가 이제는 실체를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로 인해 모이는 관심이, 싫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 말이다.

프라이버시가 특히 존중받는 요즘 시대였기에 불편한 일도 없었으니 더더욱.

그렇게 방해받지 않고 식사하며 오성아와 대화를 이어갔다.

"1종 보통 신청한 건 원래 집에 있는 차 때문이야?"

1종 보통. 쉽게 말해 특별한 차량을 제외하고 웬만한 차, 그것도 스틱 차량을 다 몰 수 있는 면허다.

예전엔 면허를 딴다고 하면 이걸 따는 경우가 많았은데 요새는 스틱 차량이 거의 없다보니 대부분 2종 자동에 응시했다.

도진의 경우 이번에 받은 슈킨팍시도 그렇고 스틱을 몰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텐데 1종 보통을 신청했기에 오성아가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집에 있는 차가 스틱이긴 한데, 그것보다는…… 그냥 스틱을 따고 싶었어요."

"하긴. 기왕 면허 따는 건데 다 할 수 있는 거 따는 게 좋긴 하지."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의 입가에 걸린 미소에는 어쩐지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듯하다.

오성아는 그것을 읽었지만 굳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 잘 하고 와."

"음, 이제 진짜 가셔도 되는데."

"가면 나 야근해야 되는데?"

"아하하. 알겠어요."

식사가 끝나고 도진은 장내 교육을 받기 위해 연습장 대기실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강의을 맡게 된 오중철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깔끔한 정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미리 대기하고 있어 기다릴 것 없이 교육용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사용감이 진한, 그러나 깔끔하게 관리된 1톤 트럭이었다.

"먼저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우선 강사 오중철이 운전석에 앉고 도진이 보조석에 앉았다.

"자, 이게 브레이크이고 이게 액셀입니다. 이건 기어. 그리고 이게 바로 스틱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클러치입니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오중철이 꼼꼼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도진은 그것을 건성으로 넘기지 않고 집중하여 들었다.

'햐, 요즘에 드문 인성이네.'

그런 도진의 모습에 오중철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말하는데 듣지도 않고 건성으로, 아예 딴짓을 하는 인간이 흔한 시대였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걸 일일이 왜 설명하냐고 묻는 사람마저 드물지 않았다.

특히 무림인이 그런 경향이 심했다.

몸 쓰는 일은 물론이요 머리마저 좋은 게 무림인이니 자신감이 가득했고 불법이지만 등록하기도 전에 미리 주행 연습을 다 하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까.

한데 도진은, 그것도 요즘 이름을 떨치고 있는 후기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니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중철 또한 더 열과 성을 담아 강의에 임했다.

"시동은 2단으로 시작합니다. 일단은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2단에 넣습니다. 기어가 들어가면 이렇게, 클러치를 살살 떼 봅니다. 어느 정도 떼면…… 자, 차의 흔들림이 느껴지시죠? 이때 브레이크를 떼면 차가 움직입니다. 이 감각을 기억해 두시면 좋습니다."

"자, 일단은 액셀은 사용하지 말고 전진과 후진을 연습해 보기로 합시다."

실전의 시작은 전진과 후진이다.

설명과 시험을 끝낸 오중철과 도진이 자리를 바꿔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도진이 핸들과 기어에 손을 올리고, 왼발을 클러치에 올렸다.

"자, 클러치랑 브레이크 밟으시고."

꾸욱.

도진이 힘주어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았다.

"기어 2단에 넣으세요."

달칵.

오른손을 움직여 처음으로, 수동 변속기를 조작해 보았다.

"그럼 이제 클러치를 천천히 떼 봅니다."

달달달.

왼발을 천천히 떼니 차가 떨린다.

그 감각이, 고스란히 왼 다리를 타고 몸 전체로 퍼졌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조작하시면 됩니다."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잘하시네요. 처음이 아니신 거 같은데. 역시 무림인이시라 그런가?"

전진과 후진.

도진은 그것을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해냈다.

'음, 진짜 처음이 아닌가?'

오중철이 느끼기에 그것은 단순히 능숙하다는 걸 넘어 정말로 운전을 오랫동안 해 온 것 같았다.

핸들을 잡은 손부터 시작해 자세는 물론 분위기까지 도진은 그런 느낌을 풍겼으니까.

그리고 도진은 실제로 전생에 오랜 시간 차를 몰았었다.

다만 한 가지, 특별한 게 있었다.

'근데 왜 눈이 좀 붉은 거 같지?'

오중철이 보는 도진은 마치 눈물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도진은 정말로,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음……. 스틱을 몰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안 되지. 어쩔 수 없구먼. 자동을 따자, 도진아.'

전생.

왼쪽 다리가 마비된 도진은 결코 '1종 보통'을 딸 수 없었다.

그 결핍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멍으로 남았었다.

그 멍이.

이제서야 완전히 지워지고 있었다.

꾸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