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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21화 (121/741)

121화

예쁜 핸드백에서 나온 건 오성아의 작은 손바닥을 채울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스마트 키였다.

오각형에 모서리를 라운드 처리하여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하고 가운데엔 작지만 정보를 표시하기에 충분한 액정이 자리해 있다.

여기에 금색으로 빛나는, 햇살 같은 갈기를 휘날리는 말의 로고가 자리해 그것이 다름 아닌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슈킨팍시'의 스마트 키라는 걸 알려 주었다.

"그건……."

"응. 스마트 키야."

도진에게 답하며 키를 내려 놓고서 오성아는 서류를 꺼내 그녀와 도진 사이에 펼쳤다.

"우선은 정산부터."

그렇게 말하며 오성아가 서류와 함께 꺼낸 태블릿을 조작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봐."

오성아의 말에 따라 휴대폰이 울리게 만든 원인, 문자를 확인한 도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입금 : 100,000,000원

오성장학재단오성아

"어……."

일, 십, 백, 천, 만…….

세 번을 셌는데 그것은 틀림없는 '1억'이었다.

그래, 1억 원.

오성아가 태블릿을 조작하여 한 일은 다름 아닌 도진에게 1억을 송금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잘못 보낸 거 아냐. 더 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네가 받아야 할 인센티브야."

"1억이요?"

"응!"

인센티브.

그러니까 지금 도진이 받은 1억은 다름 아닌 정련단 홍보와 관련한 계약에 따른 성과급이란 말이었다.

"성과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었잖아. 그리고 그 '성과'가 엄청나게 대박이 터졌거든. 너도 알지?"

이번 3:3 팀전이 낳은 이슈 중 하나는 도진의 내공량이었다.

-야, 잠룡 내공 후달린다고 하지 않았냐? 전혀 아닌 거 같은데?

-? 연전 좀 했다고 내공 고갈된 거 보면 내공 후달리는 거 맞는 거 아님?

-아이 무알못;;

-? 무알못이 머임?

-무림 알지도 못하는 놈 임마 ㅡㅡ

-? 내가 뭘 모름?

-안녕! 나는 설명 요정! 내가 자세히 설명해 주지! 기본적인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무림인이 사용하는 내공은 가진 내공의 총량과 무공 수위에 따라 결정이 돼.

-그러니까 눈높이에 맞춰 비유를 해주자면 내공의 운용을 물이 이동하는 파이프와 수압, 내공의 총량을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저장된 물탱크에 비유할 수 있지.

-김도진이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던 건 경지가 높아서, 물이 이동하는 파이프가 상대에 비해 훨씬 넓고 단단하면서 수압도 셌기 때문이야. 마주보고 샤워기를 쐈는데 방수량은 물론이고 수압에서마저 압도하니까 대번에 밀어내는 느낌이지.

-중요한 건 그렇게 방수량과 수압이 세다는 건 상대보다 훨씬 많은 물을 소모한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그걸 무려 3차전, 아홉 명까지 유지했어. 그러니까 이거야. 아홉 명을 상대할 때 소모한 내공량을 유추해 보면 김도진의 내공 수위가 알려진 것처럼 얕지 않다는 소리지. 한 방 한 방에 필살기 수준의 내공을 담았으니까. 심지어 그렇게 소모하고도 정중한, 곽필섭 포함 네 명을 더 상대했고.

-여기에 결정적으로 잠깐 쉬었을 뿐인데 그렇게 회복한 내공이 눈깔 뒤집혀서 전력으로 덤빈 권민국마저 압도할 정도였지. 즉 김도진의 내공은 결코 얕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 이해했어?

-고마워요 설명 요정!

잠룡 김도진의 내공 수위가 낮다는 건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이었다.

한데 그 인식이 이번 3:3 팀전으로 인해 바뀌었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찾던 사람들이 발견한 게 있었으니.

"그게 정련단이었던 거야."

"그랬군요."

도진은 여전히, 꾸준하게 SNS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공들여 하는 건 아니고 소소하게.

한데 팔로워는 그 '소소함'의 범주를 한참 넘어서 있었으니 팔로워가 무려 20만 명이 넘었다.

여러 이슈로 몇 만 명이 넘었던 상황에서 이번 3:3 팀전이 크게 이슈가 되면서 대번에 몇 배로 불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진의 내공량이 급등한 이유를 찾던 중에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정련단이었고, 그로 인해 정련단이 뜬금없이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찍으며 화제가 되었다.

도진의 내공이 급증한 게 정련단 때문일 리는 없다.

그러나 그 효능은 분명하게 입증이 되었고 '바로 그 잠룡'까지도 미미하지만 꾸준히 효과를 보고 있다고 공언해 주었다.

그것이 이미지 상승과 판매량 급증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요즘 판매량이 300%까지 폭증했거든."

90일분 한 세트가 무려 500만원.

하지만 무림학교 학생의 보호자들에게 있어 500만원은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그것을 배경으로 교육열까지 더해져 판매량이 300%까지 폭증했다.

그걸 생각하면 도진의 인센티브가 1억인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건 또 생각 못했던 건데.'

정말로 생각지 못했던 큰돈이다.

물론, 기뻤다.

부모님이 열심히 일해 조금씩 빚을 갚아 나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몇 억이나 되는 빚이 남아 있다.

이제 전생과 같은 사고는 없을 테니 꾸준히 빚을 갚아 언젠가는 다 갚을 수 있겠지만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당기고 싶었고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 돈이면 그 빚을 갚는 데, 집안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이제 1학기만 지나면 무림인으로서 '실습'이 가능해지니 그때까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자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라 할 만했다.

'몇 개 더 제안이 있었지.'

이번 일로 도진의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사자군이 눈여겨보는 후기지수'에 불과했던 도진이 이제는 무림에서 스스로의 이름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만큼.

그런 도진이 오성과 스폰서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그것들을 수락하면 금방이라도 집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도진은 메일을 주고받고, 몇 가지는 직접 만나 설명을 들은 뒤 고개를 저었다.

도진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점이 뻔히 보이는 제품을 그것을 못 본 척하고 좋다고 해 달라, 맞지 않는 이미지로 광고에 출연해 달라는 등의 제안.

그것은 그러니까 '정신적인 타협'이 필요한 문제였다.

하늘 너머를 보는, 도(道)를 걷는 도진에게 있어서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부분.

그래서 도진은 그 제안들을 거절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타협하지 않아도 조금만 더 있으면 집의 빚을 갚고, 번듯한 '우리집'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새삼 다짐하는 도진을 보며 오성아는 활짝 웃는 얼굴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거!"

오성아가 내미는 건 바로 처음 꺼냈던 스마트 키였다.

물리 키, 그러니까 폴딩 키가 내장된 스마트 키는 받아드니 생각보다 묵직해 비싼 재료를 썼으며 그 안에도 꽤 많은 부품들이 들어가 있음을 짐작케 했다.

"전에 말했던 차 가지고 왔어."

정련단 홍보 계약의 보수에 오성아가 추가로 따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슈킨팍시의 신모델이었다.

슈킨팍시에서 홍보를 위해 오성에 제공한, 그것도 최고급 모델을 성과에 따라 도진에게 협찬의 형태로 대여하기로 추가 조항을 넣었는데 조건을 초과 충족해 오성아가 바로 몰고 온 것이었다.

대여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절차를 충족하기 위한 서류 작성이 끝나고 오성아가 물었다.

"한 번 보러 갈래?"

"네, 그렇게 해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대문을 나와 담벼락을 따라 몇 걸음만 걸으니 바로 오성아가 가져 온 차를 볼 수 있었다.

"와…… 크네요."

"응. 준대형 SUV거든!"

폐가를 헐고 그대로 방치한 공터에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그러나 미려한 곡선을 함께 품은 딥블루 컬러의 SUV가 자리해 있다.

연신극기공을 수련하면서부터 멈췄던 키가 크고 있는, 그러나 무림학교 또래들 사이에서는 아직 작은 편인 도진의 키가 현재 174 정도 되는데 그런 도진보다 키가 큰 SUV였다.

정면은 전기자동차라 일반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릴이 없는 대신 매끈하면서도 공격적인 커팅 기법으로 갈기를 휘날리는 말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었고 양옆으로 과감한 크기의 헤드라이트를 장착했다.

좌우의 디자인 또한 평범한 차들과 전혀 다른 곡선이 보였는데, 전면의 도어를 위로 열리는 스윙 도어로 해 가능한 디자인이었다.

심지어 후면에는 정말 슈퍼카처럼, 리어 램프 주위를 부스터가 달린 것처럼 특히 과감하게 디자인한 부분이 돋보였다.

"SUV인데 슈퍼카 같네요."

도진의 감상에 오성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요즘 SUV가 대세긴 하지만 젊은 층에선 슈퍼카를 로망으로 여기는 감성이 있잖아. 그걸 잘 조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디자인이라고 해."

언뜻 SUV와 슈퍼카를 합친 이미지는 전혀 어울릴 것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한데 지금 눈앞의 커다랗지만 미려한 SUV는 그걸 해냈다.

주요 타깃인 10대와 20대의 로망을 자극하면서도 40대 이상이 원하는 중후함 또한 놓치지 않고 담아 과하지 않게 녹여냈다.

"와……."

그리고 내부는 더 대단했다.

전체적으로 브라운 컬러를 입히고 여기에 블랙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역시나 십대부터 중장년층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는 멋드러진 디자인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핸들과 대시보드에 자리한 거대한 터치 패널이다.

대시보드 전체가 세 개의 모니터가 합쳐진 형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비닐조차 떼지 않은 새것이었다.

"시동 켜볼게."

"네."

보조석에 앉았던 오성아가 상체를 슬쩍 뻗어 역시나 비닐조차 떼지 않은 시동 버튼을 눌렀다.

'START' 버튼을 누르자 근육이 깨어나는 소리를 상상케 하는 낮은 구동음과 함께 시동이 걸리고 모든 패널이 켜졌다.

좌측에는 통째로 운전자에게 차의 모든 정보를 표시하는 계기판이 표시되었고 가운데는 센터페시아와 함께 내비게이션이 표시되었다.

여기에 핸들의 패널에 센터페시아는 물론 내비게이션까지 조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띄워졌다.

"와, 진짜 미래 차 같네요."

"그렇지? 처음엔 좀 적응이 힘들 수도 있는데, 적응하고 나니까 정말 편하더라."

"아, 그러고보니 누나도 이 차 받았죠."

"정확히는 나도 협찬. 그래서 숙제 겸 열심히 타고 있지."

도진도 오성아의 SNS를 통해 사진과 글을 보았었다.

2억이 넘는, 정확히는 2억 8천에 달하는 풀옵션의 '슈킨팍시 로드런너 S 그레이드'의 실내는 사진만으로도 로망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했는데 지금 도진이 그 로망의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소음도 없고 떨림도 없고…… 좋은 차네요."

"맞아. 솔직히 완성도 부분에서 전통 있는 업체들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었잖아. 그래서 걱정했는데 이번 건 정말 잘 나온 거 같아."

슈킨팍시는 갑자기 뜬 업체였다.

레드오션이었던 완성차 업계에서 블루오션인 전기차 분야에 뛰어들어 업계 선두를 달리게 된 전통이 부족한 기업.

그래서 그런지 디테일한 부분의 완성도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 지적들을 받아들여 이번 신품은 칼을 갈고 제대로 내놓은 모양이었다.

"당장 몰아보고 싶네요."

사실 도진은 차나 시계 등에 관해선 그닥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 다행히 성향이 그래서 크게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 도진마저도 슈퍼카의 감성을 SUV에 녹여낸 이 차는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어허, 안 돼요."

"그렇죠?"

"응. 면허부터 따야지."

안타깝게도 지금 도진에겐 면허가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런 도진을 마주하며 오성아가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면허 학원 등록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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