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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20화 (120/741)
  • 120화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인 3:3 팀 대결은 거대한 이슈가 되어 퍼져 나갔다.

    학교 내에서 전통처럼 가볍게 이야기되는 게 아닌, 무림은 물론이요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큰 이슈가 된 것이다.

    -영상 구해왔다. 주소 클릭하셈.

    -헐 ㅁㅊ 이왜진?;;

    -아니 진짜 이게 왜 진짜냐 ㅋㅋㅋㅋ

    -기를 쓰고 영상 막더라. 빨리 다운 받아라.

    -추천 누르면 상단에 노출되니까 누르지 마라;;

    숭무고 신입생 카스트의 정점인 '에스포'와 지금 가장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는, 카스트로 따지면 가장 아래에 있어야 할 잠룡 김도진의 대결.

    지는 쪽이 이긴 쪽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조건이 걸려 있었기에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 관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참관이 허가되었으니 수많은 학생과 무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몰렸고 그들 중 누군가가 찍은 영상이 마른 들판에 불을 놓은 것처럼 퍼져 나갔다.

    태양권가를 비롯하여 에스포의 집안에서 필사적으로 막아 보려 했지만 당연히 무리였고 영상을 통해 그날의 일을 보게 된 사람들이 해일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와.. 저게 뭐냐. 1학년끼리 싸우는 게 맞냐 이게?..

    -잠룡 거품이라던 새끼들 등판해서 설명 좀;;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와씨 근데 진짜 말도 안 되네. 내공을 저 정도로 운용하는 게 1학년 수준에서 가능한 일인가?

    홀로 상대 팀을 연달아서, 그것도 압도적으로 격파하는 도진의 모습은 과연 대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중한과의 대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뒤의 대결은 더더욱 대단했다.

    -다음.

    -다음.

    -다음.

    -? 뭔데 갑자기 다음무새들 나오냐?

    -글싸기 전에 영상 보고 와라.

    -??..보고 온다...음.

    이미 한계에 달한 몸.

    그러나 그 몸으로 정중한을 격파하고 연승을 이어나갔다.

    영상으로도 느낄 수 있는 소름끼치는 존재감으로 말하는 '다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와.. 소름 돋네.. 다음.

    -기저귀 차고 반복 재생 중. 다음.

    쓰러지지 않는다.

    지쳐있지만 그래서 무너지지 않고 계속되는 승리는 경이롭고 또 경이로웠다.

    심지어 그 몸으로 곽필섭까지 잡아냈으니 감탄조차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사과를 받아냈다.

    잠룡 김도진이, 에스포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눈이 뒤집어져 달려든 권민국마저 대결 때처럼 단 두 수로 제압해 무릎 꿇리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완벽한 마무리가 없었다.

    -와, 오군성 회장이랑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까지 하네.

    -진짜 클라쓰가 다르다..ㅋㅋㅋ

    -야, 근데 이쯤 되면 진짜 궁금해진다.

    -? 뭐가?

    -이건 어디까지나 기초 무공만 써서 대결하는 거였잖아.

    -그랬지?

    -그러면 김도진이 진짜 무공, 그러니까 독문 무공 쓰면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해지지 않냐?

    -어? 그러네?

    -상상만 해도 소름이다;;

    기초 무공만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잠룡 김도진이었다.

    그렇다면, 기초를 넘어 진짜 무공을 쓰면 얼마나 대단해지는 걸까.

    사람들은 그런 상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근데 김도진 독문 무공이 뭐지?

    -...그렇네? 김도진 독문 무공 아는 사람?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잠룡 김도진은 독문 무공, 그러니까 배우고 있는 무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

    -검공 아님? 비무에서 보여준 거.

    -그건 초식 하나지 무공이 아니잖아;;

    -게다가 검공인데 검결지로 썼음. 제대로 쓴 것도 아니었음.

    주먹만 쓰다 결승에서야 비봉을 상대로 처음 검공을 보여 주었다.

    한데 그것도 정식으로 쓴 게 아니라 손을 이용해 펼쳤다.

    -와.. 그러면 지금껏 김도진은 독문 무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거네?

    -ㄹㅇ임. 내가 숭무영재고 다니는데, 첨에 식당에서 싸울 때도 이렇다 싶은 초식은 안 보여줬음.. 진짜 안 깐 양파임.

    -쩐다.. 이쯤 되니까 진짜 제대로 싸우는 거 보고 싶어지네.

    -좀 멀긴 한데 학기 말에 비무 대회 있으니까 그거 기대해 봐야겠다. 거기서 비봉이랑 유룡이랑 붙을 수도 있으니까 제대로 싸우는 거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네. 지금부터 알바해서 티켓 사야겠다.

    -나도 존버함.

    -연말 비무 대회 볼 이유가 하나 늘었네 ㅋㅋㅋ 이건 진짜 돈 안 아깝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관심은 학기 말에 진행되는 숭무고 학생 전체가 참가하는 비무 대회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관심은 무림 업계 또한 도진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작년에 유지은도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는데 그런 학생이 연달아 나오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무림이 또 한 번 크게 발전하려는 징조려나요.

    -그런데 잠룡이 오군성 회장님이랑 계약하진 않았다면서요?

    -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관계고 스폰서 계약은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흠, 이러면 우리도 찔러볼 만하지 않나요?

    -스폰서야 안 되겠지만 단순한 계약 정도는 노려볼 만하죠.

    -저희는 벌써 추친 중.

    잠룡.

    어디까지나 관례의 영역에서 머물던 그 별호가 현대 무림에 강하게 새겨진 것이었다.

    * * * *

    3:3 팀전으로 인해 폭풍 같았던 첫 중간고사가 다 지나갔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던 중간고사.

    거기서 도진은 후자의 입장에 있었다.

    '올 에이쁠…… 맞지?'

    검공 입문, 무공 개론, 십팔반무예의 이해, 그리고 실전 무공의 기초.

    도진은 모두 A+를 받았다.

    여기에 필수 과목인 학문 수업들의 필기 시험 또한 어렵지 않게 풀었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답안지를 작성하는데 모르는 게 없어 거침없이 답안지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어중간하게 알아서 불안한 문제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답을 볼 것도 없이 확신할 수 있는 문제들뿐이어서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였다.

    가채점 결과는 역시 만점.

    그러니까 다음주에 나오는 학문 과목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도진은 전과목 A+를 받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도진에게 있어 시험 결과란 항상 처참하고 비참한 것이었다.

    무공은 낙제.

    학문은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이 없어 중상위권이었지만, 반대로 제대로 보는 학생이 없다시피 했음에도 전교는커녕 겨우 중상위권이 한계였기에 역시 비참했다.

    노력하는 도진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들이 더 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한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전력을 다해 매진했다.

    그리고 그렇게 매진한 결과가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기에.

    천재들과 겨루어 이길 수 있었기에.

    도진에게 있어 이제 시험 결과는 노력이 맺은, 약속된 결실을 수확하는 듯한 기쁨이었다.

    그 결실을 확인할 수 있는 월요일을 앞둔 주말.

    도진은 본가의 거실에 늘어져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사실은 연신극기공으로 한계를 넘어선 뒤 육체를 쉬게 하고 있는 거지만 도진에게는 이게 여유로운 휴식이었다.

    원래는 호흡만 되돌리고 바로 정자세를 유지하며 운공을 했으니 말이다.

    -사람이 가끔씩은 여유도 즐기고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

    -네, 그런 것 같네요.

    달리기만 하면 멈추는 법을, 쉬는 법을 모르게 된다.

    도진은 위지혁의 조언에 따라 수련 후 한 번 느긋이 누워 쉬어 보았고 과연 기분 좋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안락함을 느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 보냈다.

    '…권민국은 자퇴.'

    그날 화를 참지 못하고 덤벼들었다가 도진에게 단번에 제압당한 권민국은 다음날 자퇴서를 제출했다.

    무인으로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덤벼들었는데 그나마도 압도적으로 격파당하고 말았다.

    심지어 3:3 팀전의 룰이 아니었기에 전력을 다했음에도 말이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없던 명예가 진흙탕에 떨어졌으니 더 이상 얼굴 들고 학교에 다닐 수가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속보! 태양권가의 후계자 권민국, 폐관 수련에 든다!

    태양권가에서는 부족함을 통감한 권민국이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폐관 수련.

    외부와의 연결을 일체 차단하고 무공 수련에만 매진하는 것.

    그러니까 지금 느낌은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이 '도피성 입대'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마 자의든 타의든 적어도 1년 정도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될 터.

    그리고 그 사이 어쩌면 후계자 구도까지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이 무림에서, 그것도 정글보다 더 가혹한 태양권가에서 1년 이상 외부와 단절된다는 건 그만큼 치명적인 일이었으니까.

    -태양금속, 재개편에 들어간다.

    여기에 권민국의 큰 기반 중 하나였던 태양금속마저 그룹 차원에서 개편이 이루어질 것임이 발표되었다.

    티어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며 주가가 폭락했던 태양금속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배경에 권민국의 일 또한 연관되어 있음을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에스포의 리더가 '탈락'하고 남은 무리들은 숨을 죽였다.

    곽필섭과 무진혁, 금준혁, 그리고 에스포 사단으로 불리던 학생들은 이번 패배로 더 이상 활개치지 못하게 되어 조용해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리고 도진이 계속해서 정진하는 한 에스포가 다시 활개를 치는 모습은 볼 수 없을 듯했다.

    그리고 또 뉴스라 할 만한 게 있다면 오대용이 다시 할아버지, 오군성에게 무공을 사사받게 된 일이다.

    -드디어 다음 단계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구나.

    오군성은 무뚝뚝하게 그렇게 말했다.

    오대용은 그 무뚝뚝한 말에 주먹을 꽉 쥐고, 차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참는 모습이었다.

    오군성은 여전히 손자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를 보여준 손자에게 기대의 눈빛마저 숨기진 않았고 그것이 아직 어린 오대용의, 그러나 오랜 시간 응어리졌던 감정이 녹아내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분명히 오대용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오대용은 힘겹고 아파도 무너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 벽을 부술 방법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그 곁을 지켜주었던 주정아 또한 함께 나아가 줄 테니까.

    '오케이.'

    도진은 생각을 정리하며 씨익 웃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짚지 않고 몸의 탄력만을 이용해 좋은 기분을 표현하듯 힘차게 일어났다.

    그리고 오랜만의 여유로운 휴식까지 취했겠다 다시 한 번 수련에 들어가려던 그때.

    띵동-

    '응?'

    타이밍을 맞추듯 벨이 울렸다.

    수련을 위해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기에 확장된 감각이 대문 너머까지 닿았고, 도진은 벨을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성아 누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화려한 미모를 청량한 스타일로 꾸민 미녀, 오성아를 볼 수 있었다.

    새하얀 블라우스 셔츠의 소매를 반쯤 걷고 시원한 색감의 아이스 진에 스니커즈까지.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 아닌 활달한 대학생의 느낌을 주는 차림의 오성아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친근함과 청량함이 듬뿍 담긴 인사에 도진 또한 웃으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누나."

    "선물 주려고 왔어. 들어가도 돼?"

    소위 말하는 '여친 모드' 같은 분위기다.

    어쩐지 기분이 너무 좋아 그것을 주변에 발산하는 느낌 같기도 하다.

    "네, 들어오세요."

    도진은 오성아를 안으로 들였다.

    금요일 밤 본가에 와 또 한 번 싹 정리를 해 좁지만 답답하지 않고 깔끔해진 거실에 오성아가 앉았다.

    오성아를 앉힌 도진이 주방에서 보리차를 가져와 내주며 물었다.

    "선물 주려고 오셨다구요?"

    "응!"

    오성아가 씨익 웃으며 선물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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