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사자천권(獅子穿拳).
거침없이, 강렬하게 내뻗어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는 기세의 정권.
사자군 오군성을 상징하는 정권을 오대용의 주먹은 닮아 있었다.
오롯이 스스로를 믿고 일말의 주저없이 내뻗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주먹.
"…드디어 입문했나. 미련한 녀석."
사자군 오군성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그러나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낮게 말했다.
그것은 무공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먹에 담기는 기세다.
허나 그 기세가 바로 사자군 오군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지금 오대용의 주먹에는, 사자의 기세가 담겨 있었다.
콰아아앙!
"이, 이게!!"
서슴없이 한 발 더 나아가 내뻗는 주먹을 권민국은 허겁지겁 받아냈다.
처음으로 오대용이 먼저 간격을 좁혀 뻗은 주먹. 그래서 권민국은 다급히 막아내야 했고 그래서 제대로 내공을 싣지 못했다.
콰아아앙!
"이이익!!"
한 번 기세를 잃고 손해를 보자 댐에 구멍이 뚫린 듯 권민국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권민국은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겪지 못했기에 대처 방법 또한 몰랐기 때문이다.
가문에서는 항상 압도적인 상대에게서 무공을 배웠고 학교에서는 제대로 대련을 할 만한 맞수가 없었다.
이기지 못하는 게 당연한 상대와의 대련, 그것이 아니면 일부러 한 수 접고 양보하거나 상대가 되지 않는 학생들과의 대련.
그것만을 겪었던 권민국에게 있어 백중세였던 상대에게 승기를 빼앗겨 무너지는 경험은 생소했던 것이다.
오대용 따위에게 맞고 있다. 그로 인한 분노가 차오르는데 풀 수가 없다.
열양지기가 들끓는데 그것을 어떻게 쏟아내야 할지 모르겠다.
"으아아아아!!"
그리하여 갈 곳을 잃은 열양지기를 그저 주먹에 담아 분풀이하듯 내뻗었고.
빠아아아악!!
오대용에게 카운터를 맞아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허공을 날다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성을 잃고 어딜 노릴지 고스란히 눈으로 드러내며, 심지어 내공까지 노골적으로 풀어냈으니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오대용은 그로 인해 드러난 틈에 커다란 한 방을 사자천권의 기세로 꽂아 넣은 것이었다.
"……."
그렇게 승부가 나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부분이 예상치 못했던 일.
그리고 경기가 진행되며 그 확률이 사라지다시피 했었던 일이.
지금 눈앞에 펼쳐졌다.
"오, 오대용 승!"
"으아아아아아아아!!"
절벽 아래 굴러 떨어져 매몰되어 가던 어린 사자가 세상을 향해 포효했다.
* * * *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 3:3 팀전이 끝이 났다.
1등을 차지한 팀은 첫 번째 그룹에서 김도진, 오대용, 주정아 팀, 두 번째 그룹에서 서소담의 팀이었다.
에스포 중 한 명, 무진혁이 두 번째 팀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아무런 수작을 부리지 않은 대결에서 무진혁은 서소담을 감당할 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했다.
결과만 보면 예상대로였다.
첫 번째 그룹에서는 도진의 팀이 아니면 권민국의 팀이 1등을 할 게 당연하다시피 했고 두 번째 팀에선 서소담의 팀이 강력한 우승후보였으니까.
다만 첫 번째 그룹에서 도진의 팀이 1등을 한 과정만큼은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선봉으로 도진이 나온 것부터가 작은 의외였다.
그리고 그 작은 의외에서 시작해 결승까지 혼자 결정지었던 모습은 길이 회자될 만큼 충격적이었고 경이적이었다.
그 활약 이후 마지막 승부에서 권민국을 이기고 1등을 차지하도록 만든 것이 오대용이었던 것 또한 예상조차 못했던 일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3:3 팀전 중간고사는 커다란 이슈가 되어 꽤 오래도록 타오를 것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채점 결과는 학사 정보 시스템을 통하여 이틀 내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파르르-
모인 학생들에게 선언한 오창명이 남몰래 주먹을 떨었다.
최악의 결과였다.
그렇게까지 준비했음에도 권민국의 팀은 김도진의 팀에 패배했다.
심지어 김도진도 아니고 오대용에게 권민국이 패배하고 말았다.
그로 인한 여파를, 오창명 또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창명은 도진에게, 오대용에게, 그리고 주정아에게 A+를 줘야만 했다.
단순히 1등만 한 게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실전 무공의 기초'를 학생들 중 가장 훌륭하게 보여 주었으니까.
그것을 수많은 참관인들이 지켜보았다.
합당한 점수, A+를 주지 않으면 대번에 말이 나올 정도로 주어야 할 점수는 명백했다.
'…속이 아프군.'
이 뒤에 있을 일에 대한 감당을 어찌해야 할지, 태양권가에서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럴 리가 없는데 위염이 생긴 듯 속이 쓰려온다.
오창명은 속쓰림을 느끼며 뒷일을 대비하기 위해 시험의 끝을 선언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한데, 일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야, 권민국, 곽필섭, 무진혁, 금준혁. 어디 가냐?"
시험의 끝을 선언하고 모두가 흩어지려던 그때.
조금은 어수선했던 분위기 속에서 대번에 시선을 모으는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도진의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여유가 있는 도진의 목소리에 이름을 불린 권민국과 곽필섭, 무진혁과 금준혁은 물론이요 모두의 걸음이 멈췄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에스포의 셋과 금준혁의 시선을 마주하며 도진은 씨익 웃었다.
"그냥 가면 안 되지. 약속대로, 사과하고 가야지?"
"……!!"
권민국은 눈에서 불이 튄 것만 같았다.
화가 차올라 어질어질해졌다.
그것은 곽필섭 또한 마찬가지였다.
행동에 앞서 생각을.
그런 좌우명마저 깡그리 타 버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과를…… 하라고?"
겨우 내뱉은 곽필섭의 말에도 도진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했잖아? 3:3 팀전으로 결정하자고. 내 요구는 너희가 대용이랑 정아에게 사과를 하라는 거였지. 그리고 이긴 건 우리고. 더 말이 필요할 거 같진 않은데."
부들부들.
꽉 쥔 주먹이 통제를 벗어나 부들부들 떨렸다.
수많은 참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 소릴 듣고 있자니 정말로, 도대체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맘 같아선 발작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지금껏 배워 온 교육으로 인해 다져진 이성의 마지막 한줄기가 그것을 막고 있었다.
그렇게 넷이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는 게 한계였기에 참관했던 집안의 무인들이 대신 나섰다.
"조금 어폐가 있군."
가장 먼서 나선 것은 무복 대신 양복을 차려입은, 그래서 정치권과 특히 끈끈한 관계라는 걸 상징하는 듯한 군홍무가의 무인이었다.
"뭐가 어폐가 있죠?"
"3:3 팀전으로 결정한다고 했는데 그 안에 진혁이는 없었지 않나."
"그래서요? 다 같이 동의한 일이었는데 이견이 있었으면 그때 말했어야죠?"
"…내가 알기로 진혁이는 동의를 표시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하물며 대결도 하지 못했지."
도진은 무인의 말에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요? 그럼 지금 대결해도 충분한데. 할까요?"
"……."
말장난으로 억지를 부려봐야 결국 무림인은 무공으로 말하는 법이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만 군홍무가의 무인 대신 태양권가의 무인이 나섰다.
드드드드드-
기세를 잔뜩 피워 올리며 말이다.
"…네 말은 지금 이 자리에서 수치를 느끼며 사과를 하라는 그 말이냐?"
상대를, 학생을 겁박하기 위한 강렬한 기세.
그러나 물론 도진을 겁박하기엔 하찮으리만치 부족했다.
도진은 여유 있는 미소를 고스란히 유지하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사과하는 게 수치스러운가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언제부터 수치가 되었죠?"
"……뭐라?"
"오히려 무인 대 무인으로 한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고, 미루려 하는 게 더 수치스러운 게 아니던가요?"
"감히……!!"
안 되면 버럭 소리치는 건 못난 인간의 모습이다.
그 못난 모습을 태양권가의 무인이 보이려던 순간, 그것을 짓누르는 기세가 있었다.
"여전히 말솜씨가 대단하구나."
"사, 사자군!"
아무렇지 않게,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온 건 다름 아닌 사자군 오군성이었다.
일상적인 걸음. 그러나 그 걸음에는 절대강자의 여유가 깃들어 있었고 그 여유에는 다혈질인 태양권가의 무인을 침묵케 하는 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기세를 일으키지 않아도 사자는 존재만으로 사위를 압도한다.
사자군 오군성. 그 무위는 태양권가의 가주보다 윗줄로 여겨진다.
무림 세력으로서의 이름은 태양권가가 높지만 무인으로서의 이름은 오군성이 더 높은 것이다.
그 사자군의 등장으로 태양권가의 무인이 내뿜던 기세는 산들바람만도 못한 것이 되었다.
"그래, 내기를 이긴 기분은 어떠하냐?"
"당연히 이길 것이었으니까 뭐 특별한 느낌은 없네요. 아, 물론 기분은 좋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죄송한데 말씀할 게 있으시면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볼일이 아직 덜 끝나서요."
"……!!"
"헉!"
지켜보던 사람들이 헛숨을 삼켰다.
'뭐지?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다른 사람도 아닌 사자군이다.
바로 그 사자군에게, 그것도 학생이 볼일이 덜 끝났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블랙 조크도 이 정돈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오군성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조금 기다리도록 하지."
"……!!"
몇몇의 턱이 아예 빠질 듯 벌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도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 권민국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기다리는 분이 계시거든. 그러니까 시간 끌지 말고 깔끔하게 끝내지 않을래?"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것보다도 무거운 압박이었다.
명분도, 분위기도, 사람들의 시선까지도 모두 도진의 것이었다.
"야, 사과 받아야 할 사람이 거깄으면 좀 그렇잖아. 사과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데 일일이 찾아가서 하게 만들면 좀 미안해지잖아? 한 번에 하게 해주자."
도진은 오대용과 주정아까지 데려와 앞에 세운다.
더 끌어봐야 수치심이 늘어날 뿐이고 추해질 뿐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사과를 기다리는 도진을 사자군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곽필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 하다."
야, 곽필섭!!
권민국은 소리치려 했으나 다급히 태양권가의 무인이 억눌렀다.
그 사이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금준혁과 무진혁 또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금준혁은 주정아에게 무참히 깨짐으로써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아서, 무진혁은 군홍무가 특유의 정치권에서 배운 처세법에 따라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그렇게 단 한 사람, 권민국만이 남았다.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차마 고개 숙이지 못하는 권민국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도진이 말했다.
"친구들 언제까지 고개 숙이게 만들 거야? 사과하는 법, 못 배웠어?"
가벼운 자극.
허나 그것은 한계까지 차 있던 권민국의 화를 터뜨리기에 충분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 새끼가아아아아아아아!!"
"……!!"
머리 끝까지 치솟은 열양지기가 판단력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렸다.
태양금속의 일, 학교에서의 일, 그리고 이 자리에서의 일로 증발되었던 인내심이 채 다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이성마저 날아간 것이다.
"어어?"
"저거?!"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곁에 있던 태양권가의 무인은 그런 권민국을 말리지 않았다.
찰나에 어떤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진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화악!!
뒤를 생각지 않는, 열양지기를 모조리 끌어 모아 내지르는 주먹은 정말로 불덩이 같다.
하지만 그것이 감히 천마기에 댈 수준은 아니었다.
도진은 그 주먹에 천마기가 깃든 주먹을 마주 내뻗었다.
꽈앙!
"……!!"
권민국의 눈이 쩌억 벌어지는 입과 짝을 맞추듯 크게 떠졌다.
단 한 번의 격돌.
그 격돌로 으스러진 주먹의 격통이 녹아 버린 이성을 관통한 것이었다.
"꺽!"
그리고 도진은 곧 터져 나올 비명을 틀어막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권민국의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
촤아아아아악!!
권민국은 도진의 발차기에 실려 있던 경력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마냥 발로 바닥을 끌며 몸을 날렸던 그 자리까지 주욱 밀려났다.
"헉!"
"궈, 권민국까지 저렇게?"
쿵!
그리고 소란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끄으으으으……."
무릎을 꿇고, 상체를 무너뜨리며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그 모습에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자세를 바로하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면 사과로 받아줄 만하네.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너희는 어때?"
"나도 저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
"나도."
파르르르-
사과하기 위해 고개 숙였던 몸들이 떨린다.
특히 권민국의 수치와 고통으로 숙인 등이 미친듯이 떨렸다.
그렇게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 사과를 마친 에스포와 금준혁 무리는 권민국을 챙겨 도망치듯 연무장을 나갔다.
볼일이 끝난 도진이 몸을 돌렸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 내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네. 아, 그런데 방금 일은 카운트 안 해 드릴 겁니다."
"물론 나도 그걸 도움으로 인정해 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
"……."
사자군과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고등학생.
마지막까지 도진은 인상 깊은 장면을 남기며 연무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