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내가 너를 권민국이랑 일대일로 싸울 수 있도록 해 줄게."
도진은 그렇게 말했다.
"나도 한 손 거들어 줄게!"
거기에 주정아 또한 손을 번쩍 들고 보탰다.
둘은 약속을 지켰다.
도진이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결승까지 팀을 홀로 이끌어 주었다.
"널 때린 금준혁은 내가 때려 줄게. 약속."
그리고 다음으로 나선 주정아 또한 금준혁과의 대결에서 약속을 지키며 승리했다.
그리하여 오대용은 친구들의 도움에 힘입어 권민국의 앞에 만전의 상태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나는 권민국을 때려 줄게.'
'약속이다?'
'그래. 약속.'
소꿉친구와의 약속을 되새기며 오대용은 주먹을 쥐었다.
'오대용을 믿는 김도진을 믿어 봐.'
등을 밀어준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내가 해야 해.'
도진의 말대로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나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으니 내가 끝을 맺어야만 하는 일이다.
친구들의 도움에 힘입어 여기에 만전의 상태로 설 수 있었다.
그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이겨야 한다.
3:3 팀전의 마지막 싸움.
그리고 명예가 걸려 있는 싸움.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시작!"
다짐하며 불끈 쥔 주먹을 드는 오대용에게로 권민국이 쇄도했다.
콰앙!
주먹을 감싼 수투와 수투가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온다.
그 굉음에는 열기가 섞여 있어 폐를 데웠다.
태양권가 무인 특유의 열양지기로 인해 퍼지는 열기였다.
태양권가의 특징이자 상징인 열양지기는 경지에 이르면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열기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 열양지기가 집중된 주먹은 닿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워진다.
태양권가의 후계자인 권민국의 경지는 열양지기를 집중하여 상대에게 화상을 입힐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화상은 지극히 고통스러우면서도 두려운 것.
권민국은 그것을 적극 활용하여 상대의 운신을 제한하고 공포를 자극했다.
훅!
강하게 쏘아지는 주먹은 방어를 뚫고 얼굴을 노린다.
겁먹고 방어를 단단히 하면 그로 인해 비어 버린 틈을 다른 주먹이 파고든다.
주먹을 막아도 거기에 깃든 열양지기를 막아내지 못하면 화상을 입고 그 고통에 정신이 흐트러지면 더 큰 공격을 얻어맞게 된다.
권민국이 약자에게, 심지가 약한 무인에게 더 강한 이유였다.
콰앙!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선 오대용의 심지는 약하지 않았다.
아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허나 그를 받쳐주는 소꿉친구를, 믿어주는 친구를 알고 있기에 물러서지 않는다.
더 강해진 내공을 끌어올려 정면에서 주먹을 부딪치고 열기를 밀어낸다.
콰아앙!!
잔재주 없이 격돌하는 주먹 대 주먹.
그 싸움에서 오대용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할 수 있어!'
이를 악물고 쉼없이 몰아치는 뜨거운 주먹을 되받아쳤다.
'의심하지 마. 주먹을 꽉 쥐어.'
힘들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물러서면 안 된다.
물러서면 언제까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오대용은 자신을 부수기 위해 성난 황소처럼 들이치는 주먹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다.
한 걸음도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맞서는 오대용을 보며 살짝 공세를 늦춘 권민국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네."
"……!!"
쿠웅-!
별 거 아닌, 허세일지도 모를 한 마디.
한데 그 한 마디가, 오대용의 심장을 내려앉히고 말았다.
그것은.
오대용의 트라우마를 폭발시키는 한 마디였다.
'별로 대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만…….'
별다른 감정조차 실리지 않은 한 마디.
어린 시절 오대용을 테스트했던 무인의 그 한 마디로 인해.
'너에겐 기대할 것이 없구나.'
평생에 박혀 버린 말을 들어야 했으니까.
빠악!
그리고 느슨해진 방어를 뚫고 들어온 주먹에 얻어맞아 올라가 버린 시야에, 공교롭게도 친할아버지가 들어왔다.
"……."
평이한, 그래서 아무런 기대감도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의 얼굴.
그것이 다리의 힘을 풀어 놓았다.
쿠당탕!
바닥을 굴렀다.
버릇처럼 벌떡 일어났지만 시야는 극히 좁아져 있었다.
"허억, 허억."
숨이 가쁘다.
격렬히 움직이고 내공을 쏟아냈다지만 벌써 숨이 차오를 리가 없을 텐데.
어느새 온몸을 타고 오르는, 턱까지 차오른 시커먼 늪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뻗는 주먹이 무겁고 다리를 내딛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권민국의 공세를 막아내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벌써 지칠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갑자기 확 기울어 버린 전세에 참관인들이 작게 웅성거렸다.
오대용은 놀라우리만치 잘 싸웠다.
태양권가의 후계자, 후기지수가 아니고서야 적수가 없다고 평가받던 권민국을 상대로 백중지세를 유지했다.
한데 갑자기 방어가 느슨해져 한 방을 허용하더니 그때부터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못난 놈."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 오대용의 모습에 오군성이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
"……!"
그리고 수행 비서 오정우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못난 놈. 그 말에는 실망이 담겨 있었으니까.
실망을 했다는 건 그 전에 기대를 했다는 뜻. 지금껏 오군성이 오대용에게 가진 적 없던 감정이었다.
'…잠룡이 만들어 준 기대인가.'
오대용에게 영약을 복용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 잠룡이라 들었다.
요즘 세간에 떠들썩한 '내기' 또한 잠룡과 한 것.
허나 그와 별개로 오군성은 오대용에게도 일말의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권민국에게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던 것처럼 대용이에게도 마지막 기회란 건데…….'
안타깝게도 오대용은 그 마지막 기회 또한 잡지 못할 것 같았다.
오대용의 문제가 무엇인지 오정우 또한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
자신 있게 내뻗는 주먹과 그렇지 못한 주먹의 차이는 명백하다.
근본이 되는 주먹이 그러할진데 무공은 더 말해서 무엇할까.
하물며 오대용의 무공의 근간이자 핵심이 거기에 있었기에 더더욱.
잘 하다가 갑자기 무너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이미 결론은 나왔다.
얼마 가지 못해 명백한 패배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오정우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결과가 확정된 일.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해도 좋다.
한데 그 운명을 바꾸는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힘내라, 오대용!"
"……?"
"어?"
연무장에 울려 퍼지는 그것은, 다름 아닌 응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잠룡 김도진이었다.
여전히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은 도진이 소리 높여 외쳤다.
"지지 마라!"
"뭐야, 저게?"
"그, 글쎄."
초등학교나 중학교 운동회도 아니고 갑자기 응원이라니.
상상도 못한 도진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저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단 두 명, 주정아와…… 그 응원을 받는 오대용을 제외하고.
-힘내라, 오대용!
'아…….'
그것은 절망의 늪에 매몰되어 가던 오대용을 깨우는 말이었다.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게 만들고, 허우적거리던 손이 다시 주먹을 쥘 수 있도록 해 주는 말이었다.
"지지 마, 대용아!"
그리고 응원의 의미를 바로 깨달았던 주정아가 이어서 외쳤다.
"소, 소리치면 안 됩니다. 주정아 학생!"
그 돌발 행동에 오창명이 당황하여 말렸다.
다 끝나 가던 대결의 흐름까지 끊겨 버려 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 오창명의 만류에 도진이 웃으며 물었다.
"응원하는 건 반칙이나 위반 사항이 아니지 않나요?"
"아, 그……."
그렇다. 그런 규칙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무림학교 고등반에서 설마 이런 원색적인 응원이 나올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으니까.
그래서 오창명은 식은땀을 흘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그렇게 나온 생각을 말했다.
"그, 그렇게 소리치시면 대결에 집중해야 할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떠올린 것치곤 그럴싸하다.
오창명은 스스로 그렇게 판단했고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자중하겠습니다."
"예, 예. 그렇게 해 주십시오."
어쩐지 위기를 넘긴 듯한 안도감에 오창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사이 도진의 외침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던 권민국 또한 승리를 확정짓기 위해 다시 오대용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대로 몇 수 안에 끝을 내 주겠다.
그렇게 생각한 권민국이었지만, 상황은 아까와 같지 않았다.
쾅!
"……!?"
무력하게 얻어터지던 오대용의 주먹이 마치 철벽처럼 권민국의 주먹을 받아친 것이었다.
'뭐, 뭐야?'
처음 이상으로 강해진 반탄력에 권민국은 저도 모르게 움찔 물러서고 말았다.
오대용은 굳이 그것을 쫓지 않고, 내뻗었던 주먹을 회수했다.
두 다리로 굳건히 선 오대용의 몸은 여기저기 열기에 눌어붙어 엉망이었지만 두 눈만큼은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야.
-왜.
-니가 왜 내 주먹을 막을 수 있는지 알아?
-왜 막을 수 있는데?
퍽!
-너는 이것보다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막을 수도 있는 거지.
-…….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넌 권민국을 이길 수 없어. 정식으로 싸우면 말야. 너는 상승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잖아.
-하지만 이번 3:3 팀전 룰에서만큼은 니가 유리해. 넌 권민국보다 훨씬 더 기초 권공(拳功)의 수준이 높으니까. 그 기초 권공을 십 년 넘도록 수련해 왔으니까.
-적어도 권공의 기본이 되는 정권 지르기만큼은 니가 권민국보다, 잠룡 김도진보다 낫다는 거야.
-정권 지르기만큼은 태양권가의 권민국보다, 잠룡 김도진보다 오대용이지. 그런 말을 들으면, 꽤 두근거리지 않을까?
콰악!
오대용이 주먹을 쥐었다.
후웅!
짓쳐들어오는 권민국의 주먹이 보였다.
열양지기에 감싸여 이글거리는 강렬한 주먹.
분명히 대단한 주먹이지만.
'내 주먹은, 저것보다 더 대단해.'
쿵!
강하게 한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내딛어 발생한 힘을 온몸의 근육과 내공을 이용해 증폭하여 꽉 쥔 주먹에 모아, 일말의 의심없이 내뻗었다.
콰아아앙!
"큭?!"
이번의 주먹은 아까보다도 더 강하다.
밀려난 권민국의 눈에 경악과 분노가 어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드드드드-!
열양지기가 권민국의 격동하는 감정에 반응하여 난폭하게 일렁였다.
하지만 그 기세에도 오대용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오대용을 믿어주는 김도진이 있음을 이제 의심하지 않는다.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준 주정아가 있었음을 이제 망각하지 않는다.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엔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아직 믿지 못하지만, 나를 믿어 주는 친구들이 있음을 외침을 통해 다시 깨달았고 되새겼다.
김도진이, 주정아가 권민국의 앞에 서서 망설이고 의심하고 뒷걸음질 칠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이 믿는 오대용 또한 물러설 리가 없다.
콱!
다시 주먹을 쥐었다.
"건방지게!!"
격앙한 권민국의 기세가 마치 폭발하는 용암처럼 느껴졌지만 오대용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지만, '신뢰받는 오대용의 주먹'을 그 이상으로 믿었으니까.
일말의 주저없이 내뻗었다.
콰앙!!
"……!!"
포효하는 사자의 기세를 담은 주먹이 권민국을 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