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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17화 (117/741)

117화

후욱, 후욱.

도진의 상태는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도진이 해 온 싸움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힘겨웠기 때문이다.

도진은 대련 상대인 학생하고만 싸운 게 아니었다.

내부의, 대련을 위해 사용해야 할 자신의 내공과도 싸워야 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강제로 4성에 이르러 통제를 벗어나려 드는 천마기였기에.

천마기는 4성에 이르면 급격히 덩치가 커지며 그 흉포성 또한 한 차원 높아진다.

그렇게 '탈피'한 천마기는 3성까지와는 격이 다른 힘으로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려 드는 것이다.

때문에 도진은 내공을 사용할 때마다 통제를 벗어나려고 날뛰는 천마기의 제어까지 이중으로 공을 들여야만 했다.

섬세한 작업일수록 어려운 일이었고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처음 합금석을 자를 때 마지막에 백설이 멈췄던 것이 바로 이 천마기의 통제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또 심상세계에서의 수련, 오대용과 주정아와의 대련을 통해 일상이나 어느 수준까지는 통제가 가능해졌다.

허나 그 '어느 수준'은 무리하지 않는 선이었다.

내공의 사용량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도진의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되면 소모될수록 천마기를 제어하는 '목줄'이 느슨해진다.

그것은 즉 제어가 느슨해진 천마기가 더욱 날뛰게 된다는 소리였다.

도진이 지치면 지칠수록 제어해야 하는 천마기의 기세가 강해지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도진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폭주하려는 천마기를 제어하기 위해 더욱 빠르게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었고, 이렇게 날뛰는 천마기를 소모해 주기 위해서라도 교대없이 대결을 계속해야 했다.

천마기를 소모해 주지 않으면 그것을 제어하느라 체력과 정신력이 더 빠르게 소모될 상황이었으니까.

도진이 교대없이 대결을 계속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것이었다.

체력과 내공 소모를 목적으로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소모당하지 않도록 차라리 전력을 다해 단번에 승부를 본다.

어느 쪽이든 소모를 피할 수 없다면 그 소모를 자신에게 국한하고 오히려 역이용 할 수 있도록 도진은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승까지 주정아와 오대용을 만전의 상태로 보내줄 생각이었다.

저쪽이 '만전에 가까운 상태'로 결승에 임할 계획이라면 이쪽은 그것을 넘어 아예 만전 상태로 올라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진은 어떤 계획을 세웠다면 그것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했다'로 만드는 무인이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천마기의 제어로 인한 소모가 컸다.

그래서 예상보다 빠르게 한계가 찾아왔고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날 정도가 되었지만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정중한의 대검을 체력과 정신력, 내공까지 고갈되어 가는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때문에 내부가 진탕되고 어마어마한 고통과 부담이 몸에 가해졌지만, 그럼에도 도진의 판단과 움직임에는 일말의 지체도 없었다.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이, 시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틈을 만들어내고 꽂아 넣은 주먹.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 온 회전을 실었던 발차기.

그 두 수를 도진은 생각했던 대로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 다음의 대결도 마찬가지였다.

한계가 가까웠지만 쓰러질 정도가 아니라 생각했고 그 생각대로 몸은 움직여 주었다.

도진이 쌓아 온 노력과 시간이란 항상 그러했으니까.

고통이 만들어내는 거짓 신호가 아닌 '진짜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었고 그를 위해 행했던 동작 또한 고통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심상세계에서의 수련은 더더욱 그러했다.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죽음에 이르지 않으니까 위지혁과의 대련은 '전투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 전투가 불가능해지는 순간까지 도진은 끊임없이 배움을 갈구했고 배우기 위해 계속 움직였었다.

그런 수련을 해 왔기에 결승에서 마주한 곽필섭과의 대결에서도 체력과 내공, 정신력까지 고갈되었지만 쓰러지지 않고 대결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출혈은 분명히 위험했다.

때문에 아주 약간 회복했던 것들이 대번에 소모되고 말았다.

진짜 한계가 찾아와 버렸다.

곽필섭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았기에 철저하게 마무리를 지을 생각으로 독하게 검을 내뻗었다.

그것은 분명 학생답지 않은 철저함이었지만, 또한 학생이었기에 계획을 뛰어넘은 변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떻게.

곽필섭은 쓰러지기 전 눈으로 물었고 거기에 대한 답 또한 간단했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 도진은 항상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니까.

도진이 쌓아 온 시간 속에서 한계란 항상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계에 다다랐던 도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계였던 몸을 움직여 끝을 내려 깊이 들어온 곽필섭의 검을 잡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만들어낸 빈틈.

바짝 말랐던 단전에서 한 줄기 천마기가 치솟았고 그것을 백설의 칼자루에 담아 움직였다.

후욱, 후욱.

그렇게 곽필섭까지 쓰러뜨리고도 도진은 여전히 연무장 위에 서 있었다.

후욱, 후욱.

거친 호흡을 감출 여력조차 없다.

두 팔은 늘어뜨렸고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진의 기세는 연무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자리를 채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잠룡 김도진은 드넓은 연무장 전체를 자신의 존재감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

그런 도진을 마주하게 된, 다음 순서였던 금준혁의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이건 기회야.'

억지로 주먹을 쥔다.

사자군 오군성의 참관 소식을 듣고 평소엔 얼굴 보기 힘든 귀하신 분들이 많이 모인 자리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는 거야.'

여기서 도진을 쓰러뜨리면 결코 지워지지 않을 깊은 인상을 남겨 줄 수 있다.

'넌 할 수 있다, 금준혁!'

이제 나는 더 이상 에스포 사단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오히려 에스포마저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근래 급성장하여 에스포 이상으로 좋은 점수마저 받았던 금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당당히 섰지만.

스윽.

"……!!"

느릿하게, 천천히 올라가는 도진의 손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이런 개……!'

뒤늦게 그것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이란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지만 그 또한 허망하게도 아무도 금준혁을 보고 있지 않아 더욱 얼굴이 시뻘개지고 말았다.

그렇게 금준혁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며 손을 올린 도진이 말했다.

"교대하겠습니다."

"예?"

"여기서 교대하겠습니다."

"아, 그. 예!"

작지만 힘 있는 도진의 목소리에 당황했던 심판 역의 무인, 오창명의 기명 제자는 두 번째에야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교대.

이것은 3:3 팀전이니 당연히 교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을 잊어 버리게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도진이 남겼던 탓에 순간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진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었다.

한계마저 넘었음에도 자리로 돌아가는 도진의 걸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도진과 교대하기 위하여 주정아가 걸어 나왔다.

"수고했어, 도진아."

"맡길게."

도진이 손바닥을 들었다.

"응!"

주정아가 당차게 웃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 그 손을 마주쳤다.

짝!

선봉이었던 도진의 뒤를 이어 주정아가 연무장으로 향한다.

도진은 그 모습을 턱을 당기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앉아 지켜보았다.

퇴장했음에도 도진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 그것이 지존의 모습이니라.

무리의 중심이 되는 자는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때라도 뿌리깊은 나무처럼 든든한 버팀목으로 존재해야 하니까.

그런 도진의 신뢰가 담긴 시선을 받으며 주정아는 연무장에 섰다.

주정아를 마주한 금준혁의 표정이 슬쩍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 잘 됐어.'

방금 전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한 분노를 억누르며 금준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힘이 다한 도진을 쓰러뜨려봐야 뒷맛이 씁쓸할 뿐이고 인정해 주는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정아다.

후기지수를 노려볼 만하다는 주정아, 그리고 에스포에 이름을 올렸던 오대용을 연달아 쓰러뜨려 버린다.

그러면 에스포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좋은 모습들을 보여줬으니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

"시작!"

그렇게 생각하며 불끈 주먹을 쥔 금준혁에게 주정아의 창이 쇄도했다.

'……어?'

그 창의 기세를 마주한 금준혁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말았다.

후웅!

"큭!"

평범한 '찰', 그러니까 찌르기였다.

한데 그 찌르기에 담긴 기세가 예상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강했다.

훅!

"윽!"

겨우 몸을 틀어 피하고 거리를 좁히려 했으나 창을 회수함과 동시에 '나', 창을 돌려 허리를 노리는 공격에 어쩔 수 없이 팔을 들어 방어를 해야 했다.

빠악!

수투, 권갑으로 보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강하게 울린다.

주정아 특유의 강맹한 기세가 담긴 창술이었다.

'이게!'

발끈하여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 해 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창과 주먹의 싸움은 말할 것도 없이 거리의 싸움이다.

한데 아무리 해도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창을 쥐는 위치를 다르게 하여 중거리와 원거리를 완벽하게 커버하며 거세게 공격하는 주정아를 금준혁은 도전히 사정거리 안에 넣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란, 나, 찰을 기반으로 한 기초 창술의 연계였다.

한데 그 연계를 도저히 뚫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금준혁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는 건 곧 금준혁이 주정아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으니까.

'김도진도 아니고 겨우 주정아 따위한테!!'

분명히 강해졌다.

중학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장족의 발전을 이뤘고 그 증거로 에스포 이상의 성적마저 얻지 않았던가.

그런 자신이 주정아에게 밀린다는 걸 금준혁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진은 그런 금준혁의 내심을 꿰뚫어 보곤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금준혁은 강해진 게 맞다.

상위권이긴 해도 고만고만하던 에스포 사단의 한 명에서 조금 더 분명한 강함을 뽐내게 되었다.

허나 금준혁이 성큼 한 걸음을 내딛을 동안 주정아 또한 멈춰 있지 않았다.

패배를 맛보았다.

정신적으로도 큰 시련이라 할 만한 일을 겪었다.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그것을 양분 삼아 주정아 또한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었다.

여전히 주대운이 추구했던 무도(武道)를 깨닫지는 못했다.

허나 자신만의 도(道)라 할 만한 것을 창에 실을 수는 있게 되었다.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연류창법에 어울리지 않던 강맹함.

그 강맹함이 부드러움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도가 담기게 된 것이다.

그 도는, 뒤를 쫓던 금준혁의 걸음보다 크게 주정아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퍼억!

"컥!"

화를 참지 못한 금준혁이 무리하게 간격을 좁히려다 드러낸 틈을 주정아는 놓치지 않았다.

휘둘러진 창대가 금준혁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렸고 그리하여 더 크게 드러난 틈을 폭풍같이 몰아쳤다.

퍼퍼퍼퍽!

"아아악!!"

창날로 베지 않았다.

오직 탄력 있는 창대로 연신 몰아쳐 비오는 날 먼지가 날 정도로 금준혁을 두드렸다.

그렇게 1분이 넘도록 얻어맞고서야 금준혁은 연무장에 널브러질 수 있었다.

"주정아 승!"

울려퍼지는 승리 선언.

그 선언을 들으며 주정아는 도진을 거쳐 오대용과 눈을 맞췄다.

'이번엔 약속 지켰다?'

주정아는 시험 전 약속을 했다.

'널 때린 금준혁은 내가 때려 줄게.'

그 약속을, 주정아는 이번엔 지켰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상대가 연무장 위에 올랐다.

후오오-

벌써부터 강렬한 열기를 발산하는, 뜨거운 열양지기를 한껏 끌어올린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권민국이었다.

그 권민국을 마주하며 주정아는 싱긋 웃었다.

'그럼 나는 권민국을 때려 줄게.'

"교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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