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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16화 (116/741)
  • 116화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주정아가 소리쳤다.

    도진은, 공격을 피하지 못한 도진은 백설을 들어 대검을 막아냈다.

    왼팔을 백설의 검날에 받쳐 두 손으로 대검을 막아낸 모양새.

    그렇게 대검을 막아낸 도진의 아래, 연무장에 금이 가 있었다.

    쩌적!

    비죽-

    정중한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분명하게 들어갔다.

    손에 확실하게 반탄력이 퍼졌다.

    그것은 곧, 정중한의 내려치기에 담긴 힘이 고스란히 도진에게 때려박혔다는 뜻이었다.

    받아낸 도진의 발아래 연무장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이 말이다.

    설령 정중한이라 해도 받아냈다면 무사하기 힘들 만큼의 충격량이었다.

    내공은 물론이요 체력마저 고갈된 도진이 받고서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반응이 늦고 말았다.

    쿵!

    "……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도진의 왼발이 뒤로 빠지며 진각을 밟았다.

    몸이 측면으로 틀어지며 받치고 있던 왼손이 자연스럽게 백설과 함께 빠졌고 정중한의 균형이 무너졌다.

    미미하지만 몸이 앞으로 쏠린다.

    그리하여 훤히 드러난 옆구리에, 진각으로 발생한 힘을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증폭하여 고스란히 담은 오른 주먹이 박혔다.

    콰앙!

    "꺽."

    내공이 거의 실리지 않았으나 발경의 묘리가 담겨 있었기에 외공으로 단련된 강철 같은 몸을 뚫고 내부에 충격이 가해졌다.

    급소에 거대한 충격이 가해진 정중한의 상체가 급격히 꺾였다.

    그렇게 낮아진 정중한의 관자놀이에, 이번엔 도진의 점프하여 회전이 실린 발이 작렬했다.

    꽈앙!

    "……."

    텅그렁!!

    쿠웅!

    하얗게 눈이 뒤집어진 정중한이 대검을 놓치며 무너졌다.

    결국, 도진은 정중한마저 '두 수'로 제압해낸 것이었다.

    "……."

    장내가 조용해졌다.

    다른 경기를 치르는 학생들의 소음이 연신 발생했지만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무거운 침묵이었다.

    "설마 이걸 이기다니……."

    "저걸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움직였다고? 외공을 익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분명히 체력도 내공도 고갈된 상태였다.

    한데 그런 몸 상태로 정중한의, 그것도 대검의 내려치기를 정면에서 막아내고 틈을 노려 역공을 가했다.

    '…저 나이에 이 정도의 근성이라니, 놀랍군.'

    무림의 수많은 것들을 봐 온 참관인들은 물론이요 오군성마저 놀랄 만큼의 역전이었다.

    주르륵.

    연무장에 선 도진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제아무리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도진이라 해도 극한까지 소모된 지금 이 정도의 충격에 멀쩡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반대로 말해 연신극기공이었기에 내부가 진탕된 정도로 끝난 것이었고 역공을 가할 수 있었지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방금 공격에 바로 중환자실에 실려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도진이 여기서 리타이어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오버 페이스였지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니 도진은 충분히 후기지수, 잠룡의 이름에 걸맞는 활약을 했다.

    '됐다!'

    오창명 또한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간담이 서늘할 만큼 도진은 대단했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누가 보아도 도진은 한계였으니까.

    버텨봐야 패배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여기서 퇴장해야 지금껏 보여준 것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권민국의 팀이 오대용의 팀을 이기고 우승하는 그림이 완성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창명의 입꼬리가 올라가려 할 때였다.

    "……다음."

    "……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말이 도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 김도진 학생?"

    심판을 맡았던 무인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 무인에게, 도진이 말했다.

    "저는 아직 교대하지 않습니다. 계속 진행해 주세요."

    "그……."

    "괜찮습니다."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이제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도진은 소모되었고 한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교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판에게 다음 대결을 재촉했다.

    다시 한 번 내려앉는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오창명이었다.

    "계속 진행해 주십시오."

    "교, 교수님."

    "학생이 원하지 않습니까. 계속 진행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다음 학생 나오십시오."

    그렇게 속행되는 대결을 지켜보는 오창명의 입꼬리가 남몰래 올라갔다.

    '그래, 이게 더 괜찮지.'

    더 해봐야 패배할 뿐이다.

    그래, 패배한다.

    승리 후 퇴장하면 승리만이 남지만 여기서 고집을 부리면 그 끝이 패배가 되어 버린다.

    그 그림이 더 괜찮지 않은가하고 오창명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방금의 경악을 털어내고 다음 대결을 지켜보았다.

    후욱, 후욱.

    누가 봐도 더 이상 경기를 치를 수 없어 보이는 도진을 마주한 학생, 박종계 또한 여유를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솔직히 압도당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압도당했던 무인이 이런 꼴이라면 내가 여유롭게 이겨 버릴 수 있다.

    그 저열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박종계는 돌진하며 주먹을 내뻗었다.

    슈욱!

    묵직한 수투는 가죽이 아닌 통짜 쇠로 되어 있어 막아도 큰 충격을 가한다.

    그 주먹을, 도진은 위태롭게 받아냈다.

    퍽!

    손을 펼쳐 받아내며 몸을 휘청였다.

    최대한 충격을 줄이려는 몸놀림이다.

    극한까지 소모되지 않았다면 결코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에 박종계는 기세를 올렸다.

    '내가 이긴다!'

    퍽!

    퍼퍽!

    박종계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주먹을 도진은 연신 위태롭게 흔들리며 받아냈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지고 말 것처럼.

    반격 한 번 하지 못하며.

    누가 보아도 일방적으로 막아내다 힘이 다하고 말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무아지경으로 주먹을 쏘아내던 박종계는 어느 순간, 숨이 차오름을 느꼈다.

    '……어?'

    무언가, 이상했다.

    "뭐, 뭐야?"

    "왜, 왜 안 쓰러지지?"

    호흡을 골라야 할 필요를 느낀 박종계는 훌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도진은 그것을 쫓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호흡을 골랐다.

    후욱, 후욱.

    여전히 거칠기만 한 호흡.

    하지만 그 호흡에 박종계는 오소소, 소름이 돋고 말았다.

    '뭐야, 이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 놈을 상대로 도대체 몇 번이나, 얼마나 주먹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도진은 쓰러지지 않았다.

    모든 공격을 그토록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모두 막아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서 있다.

    '뭐냐고 도대체!!'

    저도 모르게 차오르는 공포에 박종계는 이를 악물고 다시 덤벼들었다.

    결코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해 주먹을 쏟아냈다.

    퍽!

    퍼퍽!

    도진은 그 주먹에 정확하게 반응해 막아냈다.

    흔들리면서도, 밀려나면서도 모든 주먹을 막아냈다.

    "이, 이게! 왜!"

    후욱, 후욱.

    쓰러질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은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도진은 쓰러지지 않는다.

    그 모습에 오히려 박종계의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도진의 주먹이 커다랗게 드러난 빈틈을 향해 처음으로 뻗어 나갔고.

    뻐억!

    "꺽."

    그 한 수로 박종계는 무너졌다.

    "기, 김도진…… 승."

    홀린 듯 심판을 보던 무인이 일어나지 못하는 박종계의 모습에 도진의 승리를 선언했다.

    "……."

    "……."

    무서우리만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후욱, 후욱.

    도진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게 선 도진이 말했다.

    "……다음."

    "……!!"

    침묵마저 뒤흔드는 그 말에 마지막 남은 상대 팀의 학생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으, 으으……."

    후욱, 후욱.

    그 끊어질 듯 거친 숨소리가, 그러면서도 서 있는 도진의 모습은 마치 괴물 같았다.

    도저히 마주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 괴물 같아서.

    "으아아아아아!!"

    그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소리치며 덤벼들었고.

    뻐억!!

    도진의 백설에, 한 수에 무너지고 말았다.

    "……."

    "기, 김도진. 승."

    도진은, 홀로 팀의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몇 분 후.

    도진은 다시 선봉에 서서 결승전 상대인 권민국 팀의 곽필섭을 마주하게 되었다.

    * * * *

    '……괴물 새끼.'

    곽필섭은 도진에게 공포를 느꼈음을 인정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단독으로 결승 진출을 확정지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지경이 되어서도 3연승을 했을 땐 닭살까지 돋고 말았다.

    후욱, 후욱.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야.'

    권민국의 팀은 결승을 확정 짓자마자 도진의 팀과 맞붙게 되었다.

    언뜻 보면 권민국의 팀이 불리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 팀은 철저하게 로테이션에 맞춰 대결했고 일부러 대결의 페이스를 조절하면서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까.

    그에 비해 도진은 몇 분을 쉬었음에도 호흡이 고르지 못하다.

    100미터 전력 질주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고갈된 상황에서 몇 분을 쉰다고 온전히 회복될 리가 없다.

    그에 비해 곽필섭은 준결승에서 선봉으로 나섰고 간단히 승리, 결승까지 충분히 쉬었다.

    심지어 곽필섭은 에스포다. 격이 다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껏 도진이 상대한 적들 중 정중한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학생을 넘어선 실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심계 또한 얕지 않다.

    '침착하게 상대하기만 하면 돼.'

    공포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소모시키면서 승리를 확정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숙지하고 있으면 결코 지지 않는다.

    "시작!"

    그렇게 생각하며 곽필섭은 선공에 나섰다.

    슉!

    큰 힘이 담기지 않은 검.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그 검은 도진에게 얕은 상처만을 내고 바로 빠져 거리를 벌렸다.

    피륙의 얕은 상처에 만족하고 빠지는 그 움직임은 지나치게 경계심이 강하고 또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슉!

    슈슉!

    곽필섭의 검공은 속도와 날카로움이 특징이었다.

    이 속도와 날카로움을 이용해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철저하게 이득을 취해 승리하는 바둑 같은 검공이다.

    그 검공의 특징은 지금 상태의 도진에게 있어 최악의 상성이었다.

    극도로 소모된 도진은 상대가 무리를 해 줘야, 틈을 드러내 줘야 역공하여 역전을 노릴 수 있었다.

    한데 곽필섭은 결코 그런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경계하며 최소한의 이득만을 보며 장기전으로 끌고 갔다.

    이래서야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평범한 학생도 아니고 에스포의 곽필섭을 상대로 먼저 들어가 틈을 만들 여력이 도진에겐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곽필섭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결코 승부에 나서지 않았다.

    나서지 않으며, 도진의 출혈을 유도했다.

    후욱, 후욱.

    뚝. 뚝.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도진의 몸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체력에 내공, 거기에 출혈까지 곽필섭은 유도한 것이다.

    "…철저하군."

    "예. 지극히 이성적인 타입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겁하다고, 겁쟁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오군성은 그 철저함을 높이 샀다.

    저 나이에 치기보다 이성이 앞서는 건 분명한 장점이었고 무림은 그런 이성이 결코 흠이 되지 않는 세계였으니까.

    후욱, 후욱.

    결국 가랑비에 옷 젖듯 쌓인 피해에, 그리고 그 이상의 출혈에 잠시 쉬며 회복했던 미미했던 체력과 내공마저 완전히 고갈되고 도진은 한계에 이르렀다.

    얕은 공격에 제대로 반응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도진의 모습에, 그제서야 곽필섭이 공세로 전환했다.

    슉!

    캉!

    그대로 받아선 안 될 공격에 도진이 백설을 쥐었지만 허무하게 튕겨 나가 버렸다.

    검을 놓치지만 않았을 뿐 제대로 힘조차 실리지 않은 검에 곽필섭은 더욱 매섭게 검을 뻗었다.

    "자, 한계지?"

    "……."

    카카캉!

    칼이 부딪칠 때마다 도진이 연신 밀린다.

    이대로 몇 수 안에 도진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모두가, 곽필섭을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슉!

    백설이 튕겨나가고 곽필섭의 검이 도진의 배를 노리고 쏘아졌다.

    이대로 찔러서 끝을 내 버릴 생각이었다.

    대련인 만큼 급소는 피했지만 칼이 몸을 관통하는 것 자체가 전투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중등반이라면 생각도 못할, 날붙이를 들고 대련하는 고등반이기에 가능한 공격.

    그리고 그걸 실행할 수 있을 만큼 독한 성격의 곽필섭이기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그 공격이, 곽필섭의 검이 도진을 뚫었다.

    "……!!"

    …뚫은 것처럼 보였다.

    "헉!"

    허나 곽필섭의 검은 도진의 배를 뚫지 못했다.

    뚫지 못하고, 도진의 딱 붙인 왼팔과 옆구리 사이에 끼어 버렸다.

    주르륵.

    물론 명검의 날카로운 칼날에 피륙이 베였지만 그걸 신경 쓸 도진이 아니었다.

    빠악!

    그것을 신경 쓸 시간에, 백설의 칼자루로 곽필섭의 관자놀이를 찍어 버렸다.

    단 한 방에 곽필섭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 떻게……?'

    아득해지면서도 곽필섭은 강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힘을 낸 거지? 분명히 한계였는데?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후욱, 후욱.

    도진에게 있어 한계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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