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15화 (115/741)

115화

실전 무공의 기초 수업을 듣는 학생은 총 108명이었다.

그러니까 세 명으로 구성되는 팀이 36팀으로 맞아떨어진다.

그 팀을 둘로 나눠 각각 토너먼트를 진행하는데 오전의 3시간 내로 끝낼 예정으로 진행되는 게 이번 중간고사였다.

18팀씩 나눠 18강을 진행하고 다음은 수가 맞지 않으니 한 팀을 부전승으로 올린다.

그렇게 8강을 진행하여 4팀이 남으면 패자 부활전을 통해 한 팀을 선별하여 부전승 팀과 붙인다.

그리하여 세 팀이 남으면 여기서 또 패자 부활전을 진행하여 한 팀을 선별, 최후의 4강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개인전도 아니고 3:3 팀전, 그것도 기초 무공만을 사용하는 룰로 진행되는 만큼 패자 부활전까지 진행하면서 3시간 내로 끝내는 건 어렵지 않나 싶었지만 여러가지 대책이 강구되어 있었다.

일단 토너먼트를 둘로 나눈 것도 그랬고 여기서 몇 발이나 더 나아가 여러 대결을 '동시에' 진행했다.

그러니까 총 36팀이니 처음은 18 경기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걸 셋으로 나눠 6경기씩 동시에 진행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참관인들이 여유롭게 시험을 관람할 수 있는 큰 연무장을 빌린 건 본래 이런 목적이었다.

올라갈수록 경기의 수가 줄어드니 중반부터는 아예 모든 경기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학생들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경기를 하나씩 진행했다간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할지 모르는데 학생들의 시간을 그렇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어 이런 방식을 택했습니다."

오창명은 그렇게 말했고 합당한 논리였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논리는 어디까지나 겉의 논리였다.

진짜 목적은 최대한 간격 없이 토너먼트를 진행해 도진에게 쉴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도진의 약점은 얕은 내공.

그렇다면 그 내공을 회복할 여유를 주지 않고 끊임없이 몰아쳐 부담을 늘리고 소모를 가속하면 승산을 높일 수 있다.

그런 계산으로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한데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너먼트에서 도진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1차전.

선봉으로 나서 수많은 집중을 받은 도진은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3연승을 올려 버렸다.

첫 번째는 단 한 수, 두 번째와 세 번째도 두 수로 충분했다.

동시에 진행되는 다른 대결 중 가장 빨리 끝난 게 13분이어서 더욱 돋보이는 결과였다.

무림인의 대결에서 13분은 결코 빠른 게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인들의 대결은 '800m 중거리 달리기'에 비유된다.

신체에 가해지는 압박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단번에 끝나지 않으니 길게 끌리면 그야말로 정신력 싸움이 될 만큼 소모가 크다.

극도로 고도화된 무공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계산을 병행하며 구사해야 하니까.

그런 소모가 큰 '중거리 달리기'를 팀전이라고 하지만 13분이나 지속한 것이다.

물론 기초적인 무공만을 이용하는 룰이었기에 이만큼이나 시간이 걸렸다.

또한 그렇기에 이런 룰에서 한 수, 혹은 두 수로 상대를 제압해 버린 도진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2차전도 다르지 않았다.

1차전만큼 허무하진 않았으나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뿐 압도적인 그림은 달라지지 않았다.

3차전은 그나마 몇 수라도 받아치는 학생이 있었지만 역시 2분 이상을 버틴 학생이 없었다.

참관인들은 물론이요 학생들까지 도진에게 경이의 시선을 보냈다.

도진을 인정하지 않으려 기를 썼던 학생들, 심지어 에스포 사단의 학생들마저 예외가 아니었다.

그만큼, 이번 시험에서 도진이 보여주는 무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으니까.

저번 식당에서의 충돌이야 '무공빨'이라고 철판 깔고 억지로라도 깎아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은 그런 억지조차 통하지 않을 만큼 실력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대결이었다.

사용하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기초 무공.

그러니까 내공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동등한 조건인데 도진이 보여준 내공 수위는 다른 학생들을 압도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똑같은 기초 무공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도진의 기초가, 그 기초에 담긴 무리(武理)가, 그것을 구사하는 육체가 다른 학생을 압도할 만큼 높은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뻔히 아는 수를 막아내지 못하는 수준으로 구사할 만큼.

그리하여 3차전까지 단독으로 승리를 거둬낸 도진은 이대로 홀로 우승까지 차지해 버릴 것처럼 대단한 기세였지만 참관인들의 시선에는 의문이 서려 있었다.

'…괜찮아. 상정한 범위 내야.'

심지어, 권민국 팀의 승리를 바라는 오창명조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거 오버 페이스 맞죠?"

"예. 대단하긴 한데, 페이스 분배가 이래선 못 버틸 거 같은데……."

지금 도진의 페이스가 명백하게 '오버 페이스(Over pace)'였기 때문이다.

오군성만이 아니라 안목이 있는 참관인들, 그리고 실력만큼은 있는 엽랑 오창명까지도 확실하게 그것을 알아보았다.

도진의 기세와 실력은 분명하게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 또한 압도적이었다.

4성에 이른 천마기는 급격하게 덩치를 불려 여타 학생들의 내공 수위를 따라잡았다.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육체는 외공 면에서 여타 학생들을 압도하는 정중한마저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 심상세계에서의 수련으로 도진의 깨달음은 육체를 넘어설 정도로 높았다.

이 요소들에 힘입어 도진은 상대를 압도할 만큼의 '높은 출력'을 내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까 도진은 압도적인 무위에 다른 학생들이 운용할 수 있는 내공의 두 배가 넘는 내공을 순간적으로 실어 단숨에 승부를 결정지어 온 것이다.

이는 분명히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운용할 수 있는 내공의 양은 곧 무림인의 능력과 직결될 정도로 상징적인 부분이었으니까.

허나 반대로, 그렇기에 도진의 소모는 여타 학생들의 두 배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격렬히 체력과 내공을 소모하면서 교대조차 하지 않았다.

참관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도진이 왜 이렇게 오버 페이스로, 그것도 혼자 대결을 진행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모든 참관인이 그런 건 아니었다.

시야가 넓고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당연히 오군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 대용이를 만전의 상태로 권민국 앞에 세워 놓겠다는 것이냐.'

정확히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른다.

허나 엽랑 오창명과 권민국 일당이 어떤 생각으로 토너먼트를 진행했을지는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주정아나 오대용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잠룡 김도진은 결코 정정당당히 붙어선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소모시킨다.

이토록 빠른, 쉴 틈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는 토너먼트의 진행 방식에 그런 생각이 깔려 있음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도진은 매 대결에 전력을 다했다.

오래 끌면 더 큰 체력과 내공의 소모를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방 한 방에 전력을 실어서 빠르게 끝을 내는 게 더 낫다는 계산을 도진은 한 것이었다.

그 생각은 분명히 옳았고 상대가 움츠러들어 대결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부가 효과까지 가져다 주었다.

'허나, 이대로는 버티지 못할 텐데 무슨 생각이냐?'

지금 도진은 중거리 달리기를 100m 달리기마냥 전력으로 달리는 것과 같았다.

이래서야 끝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승부를 빠르게 결정 짓고 다음 대결까지 쉰다지만 그 휴식으로 전력 질주를 길게 했던 것이 다 회복될 리가 없으니까.

완주하기 전에 분명히 파탄이 날 것이었고 그것이 4차전, 정중한의 팀과의 준결승에서 결국 터졌다.

"후욱!"

상대를 압박하는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 참고 있던, 차오른 호흡이 터져 나왔고.

터억!

숙인 상체를 지탱하기 위해 손이 무릎을 짚었다.

숨길 수 없을 만큼 도진은 고갈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오창명이 비릿하게 웃었고 굳어 있던 권민국과 곽필섭 또한 도진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지금껏 도진이 '오버 페이스'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쿠웅!

그래서 상대팀의 선봉으로 정중한이 나오게 되었다.

외공을 전문으로 익힌 정중한.

이번 3:3 팀전에 한해서는 에스포만큼이나 강력한 우승 후보.

'이번엔 지지 않는다.'

도진을 마주한 정중한의 눈은 거칠게 일렁이고 있었다.

인정할 건 인정했다.

잠룡 김도진은 나를 압도할 만큼 강한 무림인이다.

하지만 이 3:3 팀전에서 만큼은, 그리고 지금만큼은 내가 더 강하다.

정중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와 같은 '신묘한 초식'은 쓸 수 없다.

심지어 눈앞의 도진은 체력은 물론이요 내공마저 고갈된 상태다.

그렇다면 만전에 가까운 체력을 유지하고 보조로 익힌 내공마저 아직 여유가 있는 내가 밀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계산을 했으니 정중한은 승리를 자신한 것이다.

그 자신이, 대결의 시작과 동시에 터져 나왔다.

"시작!"

"우아아아아아아!!"

거친 포효와 함께 정중한의 대검이 도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도진은 그것을 호흡을 고르며 크게 물러나 피했다.

처음으로 상대의 공격을 맞상대하거나 역공하지 않고 순수하게 회피한 것이었다.

그 모습에 정중한은 자신에 확신을 더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후욱!"

회피의 연속에서 발생한 찰나의 틈에 도진은 역공을 가하는 대신 호흡을 골랐다.

그러지 않고선 더 움직이기가 어려웠으니까.

그 여유의 부족을 정중한은 캐치했고 더욱 과감하게 공세에 나섰다.

콰앙!

콰아앙!!

대검이 마치 수수깡처럼 휘둘러지며 연무장 바닥을 엎어 놓았다.

맞으면 최소한이 중상, 리타이어 확정인 그 공격을 도진은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음, 이러면 좀 실망인데……."

"그러게요. 정말로 오버 페이스로 무너지는 거면 기본이 안 돼 있는 건데……."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이는 도진의 모습에 참관인들이 실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도진은 분명히 강하고 또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오버 페이스로 무너진다면 그 압도적인 강함을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하지 못했다는 뜻이니 무림인으로선 치명적인 과오가 되는 것이다.

팀전에서 굳이 혼자서, 그것도 이렇게 무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언가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반전없이 오버 페이스로 무너진다면 도진의 가치는 평가 절하될 수밖에 없었다.

급격하게 강해진 건 대단하지만 그래서 스스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무인으로.

반면 기세를 올리고 있는 정중한은 돋보이고 있었다.

"과연. 외공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외공의 고수가 될 것처럼 보이네요."

외공이 외면받는 건 내공에 비해 성장 기대치가 낮기 때문이다.

똑같이 수련한다면 초반에는 앞설 수 있지만 빠르게 한계에 부딪치니까.

허나 정중한은 다르게 생각했다.

'외공이든 내공이든 익히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한계치는 달라.'

그리고 정중한은 자신의 육체가 웬만큼 내공을 익힌 무인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타고났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했다.

그래서 외공을 익혔다.

그리고 보조로 내공까지 익혔다.

덕분에 정중한의 성취는 숭무고에 입학할 만큼 대단했으며 내공을 익힌 또래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여기에 보조로 익힌 내공이 외공으로 단련한 육체의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까지 만들었다.

배운 무공의 초식 자체는 그 육체의 신력(神力)에 기댈 만큼 투박하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3:3 팀전의 룰에서 정중한은 에스포마저 이길 수 있다 자신할 만큼 강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 있던 초식의 우위가 사라지니까!

그 정중한이 만전에 가까운 상태로 도진을 몰아치는 기세를 올렸다.

콰아아앙!

대검을 몰아친다.

일견 마구잡이로 내려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정중한 또한 숭무고에 입학할 만큼의 천재. 두 수 이상을 앞서 보며 철저하게 경로를 계산했다.

그리하여 결국, 원하는 순간에 정중한은 도진이 회피할 수 없는 타이밍의 내려치기를 성공시켰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왔다.

"…도진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