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중간고사.
학생들에게 있어 중요한 이벤트이지만 동시에 일상이기도 한 이벤트다.
한데 숭무고 한정으로, 거기서 범위를 더 좁혀 1학년 첫 번째를 한정으로 중간고사는 유독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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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실화냐....
야... 평균 B- 받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면서 제일 못 받았던 점수가 B+였는데 내가 그거에 충격 먹고 이 악물고 노력해서 그 뒤로 A+ 말고는 받아본 점수가 없는데 B도 아니고 B-란다..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음밖에..ㅋㅋㅋㅋ 안낭놐ㅋㅋ닼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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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의 커뮤니티였다면 욕밖에 안 달릴 글이었다.
하지만 이 글이 올라온 곳이 다름 아닌 숭무고였기에 반응 또한 완전히 달랐다.
-야, 너두? 야! 나두..ㅋㅋㅋㅋㅋ
-나도 B받음 ㅋㅋㅋㅋㅋ 아니 B가 웬말이냐 ㅋㅋㅋㅋㅋ
숭무고.
각 학교의 압도적인 천재들만이 선별되어 입학하는 학교.
여기에 숭무영재고 또한 대한민국 전체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다.
그것은 학교의 평균이 '압도적인 천재'에 맞춰져 있다는 소리이고 곧 점수와도 직결된다.
압도적인 천재들 사이에서도 급이 나뉘고 그것이 점수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압도적인 천재들은 지금껏 1등, 정말로 못 해봐야 2등이었던 일상이 멀어지고 10등, 20등이라는 충격적인 등수 또한 경험하게 된다.
-야 ㅋㅋ 올해도 이 시기가 왔구나 ㅋㅋㅋㅋㅋㅋ
-후배들아, 정신챙겨 ㅋㅋㅋ 이제 일상이 될 거야..ㅋㅋㅋㅋㅋ
숭무고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받게 되는 성적표.
그 성적표의 충격적인 결과에 술렁이는 게시판을 구경하는, 이미 그 시기를 겪은 선배들의 댓글까지.
이 생소하면서도 멀리서 보면 희극인 광경이 바로 첫 번째 중간고사로 인해 탄생하기에 특별한 이벤트가 되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그러나 반대로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손꼽히는 천재들.
그런 천재들이 경쟁하여 그 사이에 '급'이 매겨지는 잔혹한 이벤트가 바로 중간고사였으니까.
누군가는 D라는 점수에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나 절망했고 또 누군가는 그토록 자신했던 시험에서 C밖에 받지 못해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소화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받아들이고 극복하여 더 나아간다면 위를 향하게 될 것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도피하거나, 혹은 포기하면 낙오한 천재가 되고 만다.
물론, 모두가 절망적인 성적표를 받아드는 건 아니었다.
D, C, B가 있다면 당연히 A도 있다.
천재들 중의 천재.
그리고 그 천재들 중의 천재 사이에 도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릉-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도진의 검, 백설이 새하얀 검신을 드러냈다.
일대의 공기마저 차갑고 날카롭게 바꿔 버리는 예기(銳氣)를 발산하는 백설.
그 기운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벼려내며 도진은 백설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검술의 가장 기초 중 하나인 종 베기.
허나 도진의 종 베기는 기초를 예술로 승화시킨 듯 아름답기까지 했다.
웬만해서는 날도 들어가지 않을 합금석을, 그 예술적인 종 베기가 갈랐다.
일반적으로 직선으로 바르게 내리긋는 이미지가 연상되는 종 베기.
허나 도진의 종 베기는 직선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곡선을 그리며 합금석을 그림처럼 둘로 나누어 놓았다.
직선이 아닌 곡선. 그러나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종 베기.
다름 아닌 이번 '검공 입문'에서 삼재인 정도수가 가르치고자 했던 결을 베는 종 베기를 더없이 완벽하게 해낸 것이었다.
저번과 달리 끄트머리에서 멈추지 않고 완벽하게.
그렇기에 당연히 도진이 받을 점수는.
"훌륭합니다, 김도진 학생. A 플러스입니다."
A+ 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함께 지켜본 학생들 또한 일말의 이의조차 가질 수 없을 만큼 도진의 종 베기는 완벽했다.
함께 수업을 들었고 거기서 결을 배웠으니까.
알면 알수록 도진이 보여준 종 베기가 높은 경지에 있다는 걸 더 강하게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사실은, 도진의 종 베기는 삼재인 정도수의 심득인 '결'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단순히 '결을 따라' 벤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무리(武理), 바로 '중용(中庸)'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배운 그대로, 좁고 깊게 보아 결만 따라간 게 아니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自然)' 길을 따랐다.
거창하게 말하면 무협지 속에서나 말해지는 자연검(自然劍)의 경지를 도진의 검은 담아낸 것이다.
심상세계에서 배우고 있는, 바로 천마 위지혁이 전수하는 검리(劍理)였다.
결은 위지혁의 가르침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도진의 경지가 실제로 전설 같은 자연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 경지를 보고 걷고 있었기에 도진의 검이 특별한 것이었고 묻어난 편린만으로도 지켜보던 학생들은 물론 정도수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종 베기를 보여준 것이었다.
"서소담 학생, A 플러스입니다."
그렇게 압도적인 성장을, 그때보다 더 나은 종 베기를 보여준 도진의 뒤를 이어 소담 또한 A+를 받았다.
검공 입문의 중간고사 과제가 다름 아닌 그때보다 더 나은 종 베기를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끊임없이 노력하여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 소담이, 그리고 나지윤이 A+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대로 그런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학생들은 낮은 점수를 받았다.
"유혜진 학생, C+입니다."
"여은영 학생, C입니다."
"박소진 학생, B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대표적으로 걸그룹 레드슈의 멤버들이 그러했다.
필사적으로 헤엄치지 않으면 제자리조차 지킬 수 없는 숭무고의 환경에서 무공이 아닌 본업, 방송 활동에 집중했던 레드슈의 멤버들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아이돌 입장상 무공보다 방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리더인 박소진만이 B를 받았는데, 이것은 박소진이 정말로 필사적으로 잠까지 줄여가며 노력했기에 낸 성과였으니 유혜진이나 여은영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박소진이 대단하다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들 외에, 생각지 못했던 파란 또한 있었으니 첫 번째가 S4였다.
"권민국 학생, B+입니다."
"……."
권민국, 곽필섭, 무진혁은 A가 아닌 B를 받았다.
가장 잘 받은 권민국이 B+였으니 S4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3:3 팀전'을 위하여 무공 수련 그 자체는 전에 없이 열심이었으나 정작 삼재인 정도수의 가르침인 결에 대해선 소홀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 성과가 미미하여 A를 받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성적을 말해주는 정도수였기에 결과를 들은 셋은 표정 관리를 하긴 했으나 끓는 속내를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다름 아닌 도진과 대비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오대용 학생, A 플러스입니다."
같은 S4로 묶이던 오대용마저 A+를 받았다.
이쯤 되니 일그러지는 얼굴을 억지로 컨트롤하는 게 역력히 보일 지경이었다.
"금준혁 학생, A 플러스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높은 성취를 보고 있는, 무려 금준혁이 A+를 받은 순간에는 결국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한껏 일그러지고 말았다.
사실상 절대 평가인 과목에서 셋은 금준혁보다도 낮은 성적표를 받고 만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로 치렀던 검공 입문에 이어 무공 개론, 십팔반무예의 이해의 시험에서도 도진은 무난히 A+를 따냈다.
무섭도록 성장하고 있는 도진은 천재들 중의 천재들이 모인 숭무고 내에서도 돋보일 만큼의 성취를 이룩한 것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중간고사 기간의 막바지가 되었을 때, 드디어 이번 중간고사 전체의 '메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실전 무공의 기초 수업의 중간고사, 3:3 팀전 일정이 공지되었다.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 일정 떴다!!
-오오오!!
실전 무공의 기초 수업의 중간고사는 숭무고는 물론이요 숭무영재고 전체의 관심까지 받고 있었다.
숭무고 42기 태풍의 핵인 김도진과 오대용, 주정아, 그리고 S4가 격돌하는 일이었으니 폭발적인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헐. 이걸 하루만에 끝내네.
-와, 이건 개빡센데.
그렇게 공개된 3:3 팀전의 일정은 놀랍게도 단 하루로 예정되어 있었다.
실전 무공의 기초 수업을 듣는 학생은 백 명이 넘는다.
3:3 팀전이라 해도 서른 팀이 넘는데 심지어 토너먼트 방식을 취했으면서도 하루 안에 모든 경기를 진행하겠다고 공지한 것이다.
-아, 대진표를 둘로 나눴구나. 이러면 할 만하지.
다만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긴 했는데 바로 대진표를 둘로 나눈 것이었다.
그러니까 삼십여 팀을 둘로 나누어서 토너먼트 또한 둘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면 우승이 두 팀 나오는데 어차피 정식 비무 대회도 아니고 중간고사였으니 그 또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일정이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마치 쓰나미와도 같은 빅 뉴스가 숭무고를 강타했다.
-속보!!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에 사자군 오군성 회장님 참관 예정!!
-네?
-뭐요??
-예?;;;
다름 아닌 3:3 팀전에 오군성이 참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뉴스로, '팩트'로 나온 것이었다.
숭무고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동의할 경우 자격을 갖춘 외부 인사, 이를테면 명망 있는 무림 고수가 참관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그 제도로 인해 유명 인사들이 수업이나 시험을 참관하는 경우가 간간이 있긴 했는데 설마, 무려 사자군 오군성이 올 거라곤 누구도 상상치 못했으니 이토록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심지어 참관하는 시험이 다른 것도 아닌 손자 오대용과 잠룡 김도진이 얽혀 있는 실전 무공의 기초 3:3 팀전이었으니 의미심장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의문에 오군성은 이렇게 답했다.
"내기를 하나 했거든. 꽤 큰 걸 걸었지. 그러니까 직접 가서 봐야하지 않겠나."
-내기?
-그것도 큰 걸 걸었다고?
-뭐야. 큰 게 도대체 뭐냐고;;
-제발 알려주세요 제발;;
안 그래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던 3:3 팀전은 오군성의 발언으로 인해 아예 용광로처럼 끓어 올랐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관심 속에서 드디어 공지되었던 시험날이 찾아왔다.
축제 등의 행사가 아니었기에 방송 촬영 등은 없었으나 그 이상으로 뜨거운 관심이 시험이 진행되는 연무장에 집중되었다.
참관을 허용한 시험이었기에 학생들은 물론이요 오군성의 참관 소식을 듣고 모인 각계의 인사들까지 자리를 채운 것이다.
그 뜨거운 관심의 중심인 연무장에 선 오동관은 남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오동관은 졸업 후 엽랑 오창명의 기명 제자가 되기로 약속받은 학생이었다.
그렇게 갑의 입장에 있는 오창명에게 오동관은 한 가지 지령을 받았으니.
-최선을 다해라. 죽기 직전까지 지독하게 물고 늘어져.
다름 아닌 죽기 직전까지 열심히 해 맞은편에 선, 김도진의 체력을 최대한 빼 놓으라는 것이었다.
알려진다 해서 딱히 문제될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오동관 또한 숭무고의 학생이었기에 그 지령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어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된 것이다.
'권민국한테 가기 전까지 힘을 빼 놓으라는 거지.'
정정당당하게 싸워선 힘들다.
그러니까 최대한 권민국의 팀이 유리하도록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돼라는 게 오창명의 뜻이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오동관은 김도진에게 딱히 유감이 없었으니까.
숭무고도 아니고 숭무영재고의 학생으로 '그들만의 리그'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
허나 그런 감정과 달리 기명 제자 자리가 걸려 있는 오동관은 오창명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했다.
어차피 오동관에게도 중간고사 점수가 걸린 일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건 결코 미안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날 원망하진 마라.'
"시작!"
"하아아아아!!"
그렇게 생각하며 오동관은 힘찬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고.
후욱!
'……어?'
마치 거짓말처럼 김도진이 사라진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빡!
"기, 김도진 승!"
단 한 수만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앞으로 수없이 회자될, 잠룡 김도진의 무용담 중 하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