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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07화 (107/741)

107화

그날 점심시간의 일은 삽시간에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김도진이 에스포 새끼들을 그냥 발라 버렸다고?"

"김도진 실력이 이미 탈 1학년 급이더라."

회자되는 것 중 하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도진이 보여준 무위였다.

별다른 이슈 없이 조용히 저녁반 수업을 듣고 있는, 그러나 '소림 속가 제자'라는 이름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우정한.

그리고 그 우정한을 신묘한 검술로 이겼던 서소담.

그런 서소담을 이기고 수석을 차지했으며 오군성에게도 인정받아 '잠룡'이라는 별호까지 얻어 후기지수가 되었던 게 도진이었다.

허나 생각보다 그 별호가 가진 무게는 무겁지 않았다.

입학식에서, 그리고 수업 중에 보여준 것들이 있긴 했으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건 소수였고 대부분의 학생들, 그리고 관련자들이 접할 수 있었던 건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도진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결승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 에스포 같은 애들은 우정한이랑 서소담한테 졌던 거잖아."

"집안도 별볼일 없다면서. 장학금 받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을 텐데 결국 따라잡히겠지. 무공만큼 돈 들어가는 게 없으니 말야."

반쯤은 악의 섞인 비방이었으나 마냥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재능 있는 인재'는 숭무영재고에도 적지 않다.

허나 곽필섭의 시선에서 보자면 그들 대부분은 결국 이름을 떨치지 못하고 흔한 현대 무림의 '엘리트 사원' 중 하나로 끝나는데 누군가의 말처럼 무공이 지독하게도 환경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우선 최소한 이름 있는 고유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면 경쟁조차 할 수 없다.

설령 괜찮은 무공을 사사받는다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익힐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면 채 피지 못한다.

그리고 그 환경이 어느 정도나 되냐에 따라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돈이 있어도 없어서 못 산다는 영약부터가 그렇다.

무공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불리는 '내공'의 보유량에서부터 시간에 비례해 현격한 차이가 벌어지니 말이다.

도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효아'를 각인시켰지만 비방할 의도로 가득한 악의 섞인 소문들에, 그리고 도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들에 의해 그 빛이 바랬다.

이후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는 소문이 쌓이고 또 쌓이며 잠룡이란 이름의 가치 또한 빛이 바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평가가 이번 일로 완전히 뒤집혔다.

에스포 사단.

한 명 한 명이 상위권인 그들 무리를 도진이 압도적으로 때려눕혔다.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에스포 사단은 도진의 한 수조차 받아내질 못했으니까.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가는 것을 수많은 학생들이 목격했다.

도진이 얼마 못 가 따라잡힐 거라고, 뒤쳐질 거라던 수많은 목소리들.

비방, 의심, 적의.

도진은 그 모든 것을 오로지 실력 하나로 부숴 버렸다.

마음먹었던 대로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한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도진을, 잠룡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도진이었기에 그 선언이 더욱 크게 번졌다.

"3:3 팀전으로 해결하겠다고? 그게 뭔 소리야?"

"오대용이 에스포랑 갈라섰잖아. 그 오대용이랑 친한 주정아, 김도진까지 해서 세 명, 그리고 에스포 중 두 명이랑 금준혁까지 해서 3:3으로 붙어서 결론을 내자는 거야."

당사자들이 '실전 무공의 기초' 수업을 듣는데 그 중간 고사가 3:3 팀전이라더라.

그 팀전의 팀 구성이 김도진, 주정아, 오대용이랑 권민국, 곽필섭, 금준혁인데 이 3:3 팀전에서 이긴 쪽의 요구를 듣는 걸로 합의가 되었다고 하더라.

무림인이란 무공으로써 말한다.

이번에 그 무공으로 말할 무대가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로 정해졌다.

그런 소문이 마른 숲에 번지는 불처럼 퍼져 나간 것이었다.

허나 놀랍게도 그 소문이 기사화되거나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에스포의 집안 쪽에서 그것을 차단한 것이었다.

바깥에 알려져서 좋을 게 하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억지로 먼저 시비를 건 게 권민국이라는 걸 도진이 만천하에 밝힌 상황이다.

여기에 도진의 실력 행사에 압도당해 하자는 대로 하게 됐으니 퍼지면 당사자뿐 아니라 명문가의 이름에 똥칠을 하는 꼴이 된다.

심지어 권민국의 신분은 대한민국 명문 무가의 후계자.

그 후계자가 일개 서민에게 압도당했다고 소문이 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학교 내에 퍼지는 소문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최소한 외부에 퍼뜨리거나 기사화 되는 것만은 막았다.

기사화는 물론이요 소문까지 외부에 퍼져 나가지 않은 건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어떤 형태로든 에스포 본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머리까지 잘 돌아가니 은근한 압박을 굳이 거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대중에게 흐를 이야기는 막았지만 상류층의 '알 만한 사람들'의 귀에 사건이 들어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

현대 무림에는 그런 정보들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정보 취급 전문 회사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회사 중 하나가 바로 나지윤의 본가였다.

"예. 김도진 학생의 무력을 포함한 전반의 평가를 두 단계 상향했습니다."

통화를 하고 있는 건 40대 중반의 초췌한 인상의 남자였다.

양복을 깔끔하게 갖춰 입었고 무공을 배운 듯 기세 또한 범상치 않았지만 그 얼굴에 감출 수 없는 피로함이 묻어나고 있다.

답청문(踏聽門).

그러나 세간에 '웨이브 테크놀로지 시스템(Wave Technology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더 크게 알려진 문파이자 회사의 사장이 바로 그, 나문기였다.

그리고 미중년이란 말이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 초췌함마저 매력으로 승화하는 이 남자가 다름 아닌 나지윤의 아버지다.

누가 봐도 나지윤에게 외모를 물려준 게 분명한 나문기.

중요한 손님과 통화 중인 듯 진중한 인상의 그를 보는 나지윤의 얼굴은 그러나, 차가운 적의를 띠고 있었다.

나문기가 클라이언트, 의뢰인과 통화하며 쓰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였다.

그러니까 지금 통화하는 의뢰인은 일본인이란 소리다.

그리고 그 의뢰인은 단순한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에 진출하려는 일본의 흑도, 야쿠자였다.

거대한 세력과 그 세력을 지탱하는 자본을 이용하여 이 바닥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는 W.T.S의 정보를 사들이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가 아닌 한국을 '침략'하기 위한 정보.

나지윤은 그러니까 그것을 '매국 행위'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관계를 끊으라 꾸준히,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지윤을 외면했다.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지윤은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부터 미친듯이 무공을 수련했고 또 회사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잠을 줄였다.

동시에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정 과장님."

"네, 실장님."

나지윤의 부름에 안경을 쓴 지적인 인상의 50대 남성이 대답했다.

W.T.S의, 답청문의 장로라 할 수 있는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문주이자 사장인 나문기에게 실망하고 나지윤을 가장 먼저 지지한 사람이었다.

"어떤가요?"

일부러 짧게 말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 과장은 나지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 주었다.

"저번의 회의 이후 우리의 뜻을 지지하는 문도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실장님의 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은 건 그 '행동'이 다름 아닌 아버지를 문주의 자리에서 강제로 끌어내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지윤은 행동을 위한 뜻을 굳혀가고 있었다.

그 계기 중 하나는 김도진이었다.

김도진에게 호감을 가졌던 건, 먼저 다가갔던 건 그 모습과 행동이 정의로웠기 때문에.

자신에게 향하는 불합리한 적의에 움츠러들지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깨부수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본래는 정의로웠던, 그러나 이제는 돈과 힘에 굴복한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되어 도진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이었다.

한데 이제는 그 도진에 대한 정보마저 그들의 요구에 서슴없이 넘겨주고 있었다.

왜 일개 학생의 정보를 그들이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나지윤의 아버지가 더 이상 존경하던 무인이자 문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지윤은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반 년. 그 안에 움직이겠어.'

그것은, 도진으로 인해 일어난 나비의 날갯짓 중 하나였다.

* * * *

"3:3 팀전. 그걸로 결정하자."

도진의 그 제안을 곽필섭이 받아들인 건 어떻게든 당장의 상황을 모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안이 마냥 불리하거나 불합리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 새끼의 무공 수위는 높아. 하지만 3:3 팀전은 우리에게 유리해."

도진이 보여준 경지는 1학년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러나 곽필섭이 보았을 때 그것이 '불합리할 정도의 강함'은 아니었다.

"내공은 우리가 압도적이야."

흔히 알려진 대로 도진의 내공 수위는 무공에 비래 초라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무서울 정도로 성장한 무위에 비해 내공 수위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영약 하나 먹지 못했고 은거 기인을 만나고서야 제대로 무공을 배웠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곽필섭은 생각했고 판단했다.

"그리고 3:3 팀전에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초식을 쓸 수 없어."

내공의 부족을 초식으로 메꿨을 것이다.

정중한의 공격을 받아내고 무력화한 것도 배운 무공의 초식을 사용한 것일 터.

하지만 3:3 팀전에서는 오늘 보여준, 지금의 도진을 있게 한 그 무공의 '말도 안 되는 초식'들을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기에 속전속결 또한 불가능해진다.

"물론 계산이 있으니까 그런 제안을 했겠지. 하지만 그것까지 상정해서 준비하면 우리가 이겨. 우리는 대진표를 만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

3:3 팀전에서 기필코 이겨야 한다.

-우리가 이기면 너희는 오늘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거야. 반대로 너희가 이기면 오늘의 일을 불문에 부치겠어.

이겨야만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며 끔찍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지면 끝장이다.

단순히 에스포의 명예만 땅에 떨어지는 게 아니다.

바로 그들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일이었으니까.

이 승부에서 이겨야만 실책을 만회할 수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번 승부가 아니고서는 결코 김도진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곽필섭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했고, 그 시작이 바로 태양권가의 스폰을 받아 교수가 된 엽랑 오창명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김도진을 소모시키는 쪽으로, 하지만 외부의 항의가 들어오지 않도록 대진표를 짜야 합니다. 오 교수님.

"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만일을 대비하여 비공개 채널로 태양권가, 관현그룹의 무인들이 오창명과 영상을 이용해 회동하여 대진표를 짰다.

가문의 명예가 걸려 있었기에 본가의 무인들이 개입한 것이었다.

최대한 회복할 여유를 주지 않고 연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도진의 팀이 승리하는 건 저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체력과 내공을 소모할 수 있도록 대진표를 짠다.

부족한 내공이 바닥을 드러낼 수 있도록.

그렇게 최대한으로 소모하게 만든 뒤에야 권민국의 팀과 붙도록 만든다.

이렇게 하면,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3:3 팀전이라는 환경에서는 김도진을 꺾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에스포가 김도진을 꺾는 그림을 만들기만 하면 이번 일의 여론은 물론 떨어진 체면까지 세울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이 초점을 오직 도진에게만 맞추고 있을 때, 도진은 오대용과 마주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오대용."

"……왜."

"니가 하는 거야."

"뭘."

"3:3 팀전. 니가 권민국을 이기라고. 내가 그 앞에 널 세워줄 테니까."

오대용의 눈이 거세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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