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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06화 (106/741)

106화

옳은 일을 행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는 많은 경우 용기만이 아니라 힘까지도 요구하곤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는 자들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웠으니 말이다.

하물며 그것이 무림의 일이라면 요구되는 힘의 수준은 아득할 만큼 올라가 버린다.

무인에게 간섭한다는 것은, 심지어 무인과 무인 사이의 일에 간섭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오게 될 몇 배나 커질지 모를 여파를 감당할 각오와 힘이 필요했으니까.

권민국과 주정아의 대결이 바로 그러했다.

계기는 둘째 문제다.

에스포 사단이 시야를 차단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1:1 대결'.

개입할 명분도 희미했지만 설령 명분이 있다 해도 개입할 만한 용기 이전에 힘이 없었기에 학생들은 그저 인의 장벽을 친 에스포 사단을 흘끔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리 높여 봐야 명분도 희미하고 힘마저 없는 목소리는 공허하다.

무림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선 그것을 받쳐줄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간섭할 수 있는, '에스포 사단'을 상대로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생각했기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

바로 그런 때에 조용히, 그러나 압도적인 기세를 흘리며 구경꾼들이 길을 열게 한 후기지수가 있었으니 바로 잠룡이라 불리는 도진이었다.

"대결 중이야. 방해하지 마."

한 명이 말했다.

도진도 말했다.

"억지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건 걸 봤어. 길 열어."

"억지 부리지 말고 가라."

도진은 길게 말을 끌고 가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도기로서의 말이 아니라 천마의 후계자로서의 힘이었으니까.

뻐억!

"……!!"

"이 새끼가!"

"무슨 짓이야!!"

그래서 힘을 행사했다.

비무 대회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무공을 발휘했고 그것은 계속해서 한계를 거듭 초월해 온 도진의 지금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그 경지는 곽필섭과 무진혁은 물론이요, 권민국의 끓고 있던 화마저 차갑게 식혀 버릴 정도로 경이적이며 충격적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록 '지금'은 조금 뒤쳐져 있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시기의 격차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숭무고 학생이라면 모두 압도적인 천재성과 자질을 검증받은 무인이다.

그러니까 잠시 앞선다 해도 환경과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그 우위는 뒤집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환경과 요인에서 가장 뒤쳐지는 것이 도진이요 다른 학생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이 태양권가와 군홍무가, 관현 그룹이라 생각했기에 에스포는 비무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가졌으며 도진과 대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긴 해서 요 근래 진지하게 마음 먹고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더더욱.

한데 이게 뭔가.

비무 이후 처음으로 무력을 행사한 도진의 경지는 그런 계산을 때려부술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건 2학년 이상이잖아…….'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소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곽필섭이지만 거기에서 파생된 '노력하는 천재'가 반칙이라 할 만한 존재라는 데엔 동의했다.

당장 숭무고에서도 그 노력하는 천재들 사이에 놓인 1년이 얼마나 대단한 격차인지를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1년 위의 선배들이었으니까.

한데 지금 짧게 펼쳐진, 그러나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도진의 무위는 그 2학년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압도적이었다.

'에스포 사단'은 곽필섭이 무리에 끼워줄 만한 배경과 실력을 지닌 학생들로만 선별해 구성한 집단이었다.

한데 그들이 마치 엑스트라처럼, 무명 잡졸처럼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심지어 정중한이다.

외공은 뒤로 갈수록 한계가 명확하다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취가 빠르고 직접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직 1학년인 지금 외공을 본격적으로 익히고 내공마저 보조로 익힌 정중한은 육체 능력과 완력에서만큼은 에스포를 '압도한다'고 해도 될 만큼의 성취를 자랑했다.

한데 그 정중한의 공격을, 내려치기를 도진은 경악스럽게도 한 손으로 일절 밀리지 않고 받아내 버렸다.

도무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선 것이 정말로 동급생이란 말인가.

별볼일 없는 천민이 맞단 말인가.

그렇게 혼란에 빠져 우두커니 선 곽필섭과 무진혁을 넘어 권민국까지 마주하며 도진은 말한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 자격을 행사해 볼까?"

증명이 되었냐는 말은 생략되었다.

할 필요도 없었다.

만천하에 자신의 뜻을 관철할 힘이 있음을 차고 넘치도록 증명했으니까.

거기에 대해 '감히' 꼬투리를 잡을 수도 없을 만큼 곽필섭과 무진혁은 압도되어 버렸다.

여기서 멈춰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억지로 외면하고 묻었다.

웃고 있지만 여전히 백설을 쥐고 있는, 숨막힐 듯 공포스러운 괴물의 기세를 낮게 흘리는 도진을 마주하며 곽필섭은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래, 뭐가 문제라서 집행부원이 1:1 대결에 개입한 건데?"

스스로를 책사라 자부하는 곽필섭은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 물음에 도진은 일말의 지체없이 답했다.

"억지로 시비를 걸고 다수가 소수를 핍박했잖아."

"어딜 봐서?"

그것은 '화법(話法)'이었다.

스스로의 논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스스로 허점을 드러내는 꼴이다.

그러니까 상대가 많이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물며 어떤 상황을 그 자리에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공은 몰라도 그런 화술을 이런 천민이 배우거나 익혔을 리 만무하다고 곽필섭은 계산했다.

하지만 그 또한 계산착오였다.

"그건 이걸 돌려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

"뭘……!!"

되물으려던 곽필섭의 두 눈이 커졌다.

거짓말처럼 소담이 도진의 곁에 선 것이었다.

그것도 녹화를 계속 중인 캠코더를 든 채 말이다.

집행부원의 활동을 위해 지원되는, 상황을 자료로 남기기 위한 캠코더의 성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비치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어, 언제……!!'

식은땀이 등을 축축이 적시는 것 같았다.

생각해 두었던 모든 것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는 듯 했다.

요 근래 신경질적이었으며 오늘은 아예 살기까지 흘린 권민국이었다.

그 권민국과 함께 했던 곽필섭과 무진혁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벌인 것이 오늘 일이었다.

머리가 반쯤 마비되었던 권민국과 달리 '책사' 곽필섭은 꽤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권민국이 억지로 시비를 건 그 순간 미리 말을 해 둔 대로 에스포 사단이 움직여 인의 장막을 쳤고 섭음술의 수법으로 소리마저 새 나가지 않도록 했다.

목격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순간이 촬영되지는 않도록 세심하게 체크했다.

그리하여 시비를 건 그 순간은 '진술' 이외엔 판별이 불가능해졌고 내부의 일을 목격한 자는 자신들뿐, 소리마저 차단되었다.

그러니까 죽이거나 불구로만 만들지 않으면 무마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거슬리는 오대용, 그리고 오대용과 붙어다니며 도진과도 어울리던 주정아를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한데 지금 소담이 캠코더를 들고 나타나 버렸다.

곽필섭은 캠코더를 든 소담을 놓쳤다.

하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저건 사건의 시작과 동시에 돌아가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애초에 도진이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것부터가 우연이 아니었다.

이곳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고 도진과 소담이 먼저 와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중에 사건이 터졌으니까.

품에 싸고돌아야 하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가능하면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는 게 좋았기에 도진은 바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고 그를 위하여 소담은 캠코더를 꺼내 존재감을 지우고 은밀히 촬영을 계속했다.

그 존재감을 지웠던 게 암살자들이나 쓸 법한 '은신술'이어서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묻어 두었다.

그리하여 지금.

계획이 근본부터 무너진 곽필섭의 멘탈 또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곽필섭은 나름 책사로서 일을 잘 진행했다 생각했지만 그 또한 아직 어설픈, 친구의 감정에 함께 휩쓸린 고 1 학생이었던 것이다.

"권민국이 일부러 부딪친 거잖아. 비디오 판독을 굳이 할 것도 없을 거 같은데. 그렇지?"

"……."

네 사람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 만한 길이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무인이, 그것도 숭무고의 학생이 어깨를 부딪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어깨가 부딪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의도적이었다.

그리고 그 의도를 가진 건 권민국이다.

"그리고 시비를 걸면서 동시에 섭음술을 썼지. 이 정도면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고 개입하기에도 충분하잖아?"

"……."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가열차게 도는 것 같기는 한데 의미있는 생각을 생산해내지 못하니 차라리 공회전이라고 해야 할까.

곽필섭은 도진에게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힘으로 무마한다? 그것이 지금 불가능하다는 건 굳이 재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사면초가.

그 단어로 곽필섭의 머리가 꽉 차고 말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결국 침묵한 곽필섭 대신 권민국이 나섰다.

다시 이글거리기 시작한 두 눈은 도진마저 들이받아 버릴 듯 했다.

그런 권민국의 기세에도 도진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사과해야지. 뭘 물어? 머리가 안 돌아가?"

쿵!

"……!"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얼얼하니 열이 올라와 다시 이성이 마비되는 듯 했다.

"사과를…… 하라고."

"그러면? 시비 걸어서 억지로 싸움을 걸어 놓고 그냥 끝내려고 했어?"

지켜보던 학생들이 오히려 조마조마해져 손이 땀으로 젖을 만큼 긴장감이 가득한, 폭발하기 직전의 분위기였다.

그 폭발하기 직전의 분위기를 억누른 건 겨우 정신을 차린 곽필섭이었다.

"잠깐만."

도진과 권민국의 시선이 곽필섭에게로 향했다.

곽필섭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부딪치면 안 돼.'

싸우면 처참하게 지고 말 것이다.

그랬다간 '에스포'라는 이름은 끝이다.

그런 생각을 곽필섭은 억지로 외면하며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다른 이유를 생각했다.

'이미 명분에서 밀렸어. 싸워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무마해야 해.'

그리고 머리를 짜내 말했다.

"어찌됐든 당사자는 오대용이랑 주정아, 그리고 권민국이었어. 여기에 집행부원의 자격으로 네가 나선 건 뭐라할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 건 선을 넘은 거 아냐?"

도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더 해보라는 듯 입꼬리를 슬쩍 올릴 뿐이었다.

그것이 또 패배감이 들게 했으나 곽필섭은 티내지 않고 계속 말했다.

"넌 어디까지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여했으면서 이젠 아예 직접 당사자로 개입하려 들고 있잖아. 이건 아니지."

그럴싸한 소리였다.

언뜻 허술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파고들면 판단이 모호해진다.

너희가 잘못했으니 사과하라는 도진의 말을 권민국은 거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집행부원의 자격으로 나선 도진이 권민국을 포함한 에스포마저 무력으로 징치한다?

이건 선을 넘는 일이었다.

곽필섭은 도진이 이것을 이해하길 바랐다.

그러지 않는다면, 싸워야 했으니까.

그건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으니까.

그런 곽필섭의 간절한 바람이 닿았던 것일까.

피식-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난 집행부원이면서 동시에 대용이랑 정아랑 친구이기도 하니까. 친구로써 너희들에게 칼을 드는 게 선을 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데?"

"……."

친구.

그렇다.

집행부원으로서야 제삼자였지만 친구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우가 당한 불합리에 분노하는 건 무림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곽필섭이 다시 눈을 굴리며 이야기를 짜맞추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도진이 먼저 말했다.

"그렇네. 어려운 일이네. 집행부원이면서 동시에 친구이기도 하니까 뭐 하나 선택하기가 어렵네."

"……."

'무슨 소릴 하려는 거지.'

혼란스러운 곽필섭이었다.

저건 고민하는 게 아니라 의도를 담아 고민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건지, 불안이 점점 커지는 곽필섭이었다.

그런 곽필섭의 커진 불안이 이윽고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을 때, 도진이 결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그리고 나온 말은 곽필섭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3:3 팀전. 그걸로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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