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105화 (105/741)
  • 105화

    스릉!

    백설이 완전히 뽑혀 나왔다.

    그 하얀 검신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일대를 가득 채운 시린 칼날의 기세가 더욱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도진의 의사를 반영하여 존재감을 온전히 뿜어낸 것이다.

    오오오오오-

    거기에 도진이 끌어올린 천마기의 압도적인 기세가 더해지니 대립하는 학생들은 정말로 괴물이 숨은 블리자드를 맨몸으로 마주한 듯 저절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허나 학생들은 이를 악물고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바로 에스포 사단의 누구이니까.

    이맘때의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존심이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걸 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물러서지 않는 학생들에게 도진은 망설임없이 앞을 향해 걸으며 검을 휘둘렀다.

    훅!

    일견 평범해 보이는 가로 베기.

    '뭐야. 견제인가?'

    그 간격 안에 있던 학생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고.

    빡!

    갈비뼈를 얻어맞아 끽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뭐, 뭐야?'

    "……!!"

    그 광경을 보았던 주변의 학생들의 몸이 일순 굳었다.

    분명히 평범한, 그리고 분명하게 보았던 가로 베기였는데 다음 순간 한 명이 반응조차 못하고 날아간 것이다.

    인지 부조화에라도 빠진 듯한 상황에 당황하여 굳은 학생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틈을 만들었다.

    훅!

    다시 한 번 휘둘러지는 백설.

    역시나 평범한 가로 베기였다.

    "……!!"

    반응이 아주 조금 늦었지만 궤적까지 분명히 보았기에 목표가 된 학생은 움직이려 했다.

    빡!

    그러나 역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결과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그 학생 또한 갈비뼈를 얻어맞고 구겨서 던진 듯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 뒤에 있던 학생이 준비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서 도진의 시선과 간격에 노출되었다.

    1 대 다수의 상황에서 다수에 속한 개인이 불리해지는 경우.

    아군에 의해 시선과 동선이 제약받고 있다 갑자기 적을 대면하는 경우다.

    빡!

    그 학생 또한 도진의 검을 보았으나 반응하지 못하고 일격에 무력화되었다.

    '이게, 무슨…….'

    눈 깜빡할 사이에 세 명이 당해 버렸다.

    마치 조작이라도 한 것만 같은 상황에 도진을 마주한 에스포 사단은 물론이요 구경하던 학생들까지도 경악했다.

    "…어떻게 한 거지?"

    "뭐야. 보고도 모를 고등 수법이라는 거야?"

    한 걸음에 한 수씩.

    그리고 그 한 수에 한 명씩.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도진의 신위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웅성거림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한유아와 민지서가 있었다.

    "…헤에. 봤어, 지서야?"

    "……예. 볼 수는 있었습니다."

    한유아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농밀한 꿀처럼 감미로웠지만 눈동자만큼은 진지했다.

    "입학했을 때랑은 비교도 되지 않아. 저런 성장이 가능한 걸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억지로 인연을 맺었고 시간이 갈수록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도진이 그러했듯 한유아 또한 도진을 강하게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시선을 떼지 않았고 나름은 도진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판단이 잘못되었던 모양이었다.

    원서를 제출하러 왔던 날 가볍게 손을 섞었을 때만 해도, 심지어 비무 결승에서 비장의 수를 보여 주었을 때까지도 김도진은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숨긴 것을 최대로 잡는다 해도 한유아에 미칠 정도는 결단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비무 결승 이후 처음으로 '실력 행사'를 하는 도진이 보여주는 경지는 한유아조차 진지하게 보아야만 할 정도로 진보해 있었다.

    단순한 베기.

    그러나 초월적인 속도와 힘, 그리고 무리(武理)가 담겨 있었다.

    검봉 유지은, 금봉 한유아, 폭룡 류대현과 함께 2학년 집행부의 일원인 민지서조차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말이다.

    빡!

    그러니 '에스포 사단'이라 불리며 위세를 자랑하던 상위권 학생 다섯 명이 한 수에 하나씩 나가떨어지는 경악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수밖에.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한계. 반응하여 움직일 틈도 없을 만큼 도진의 검은 차원이 달랐다.

    "이익!"

    여전히 멈추지 않고, 너희 따윈 장애물조차 되지 못한다는 듯 걷는 도진의 위세에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한 명이 덤벼들었다.

    마찬가지로 검을 쓰는 학생. 그렇기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슉!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몸을 던지는 찌르기.

    그만큼 강하고 빠르지만 뒤가 없는 그 공격을 감행한 건 함께 덤빈 둘을 믿었기 때문이다.

    허나 미련한 짓이었다.

    스걱!

    "……!!"

    내리쳐진 백설에 나름 비싼 검이 거짓말처럼 잘려 버렸다.

    구사하는 검공은 물론이요 쥔 검의 수준까지 압도적이었다.

    잘린 검날과 함께 돌진하던 기세까지도 잘렸다.

    경악하여 커지는 눈.

    그 크게 뜬 눈으로 도진의 무릎이 고속으로 가까워졌다.

    쩌억!

    피를 뿜으며 허공에서 한 바퀴 도는 몸. 그 회전이 끝나기도 전에 좌우에서 두 명의 학생이 도진에게 쇄도했다.

    창을 쓰는 왼쪽 학생의 공격이 먼저 도진에게 도달했다.

    도진은 그 창의 창대를 왼손으로 너무나 간단히 잡아채 버렸다.

    그리고 당겼다.

    "……!!"

    피를 뿜으며 허공에서 돌고 있는 학생과 마찬가지로 창을 든 학생의 눈 또한 경악으로 커졌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거인이 잡아채 당기는 듯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그의 몸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내공을 끌어올려 저항할 틈조차 없이 그의 몸이 도진의 주먹의 간격 안에 들어왔다.

    쩌억!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주먹에 그 역시 피를 뿜으며 허공을 날았다.

    작용 반작용에 의해 도진의 주먹에도 그만큼의 반탄력이 가해졌다.

    도진은 그 반탄력을 고스란히 오른손에 든 백설로 인도해 휘둘렀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건 빈틈을 노려 접근했던 권공(拳功)을 사용하는 학생이다.

    시린 빛을 반사하는 백설의 칼날이 그의 정수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이미 간격 안에 들어왔고 먼저 주먹을 뻗었음에도 검날이 그보다 빠르게 정수에 닿을 것이라는 걸 본능의 영역에서 이해했다.

    빠악!

    그리고 닿아 버린 백설의 칼날은, 그러나 정수리를 가르는 대신 거대한 충격을 주어 그를 기절시켰다.

    도진의 백설이 다름 아닌 의사도(擬似刀), 펄스 엣지(False edge)였기에 나온 그림이었다.

    펄스 엣지란 칼 끝부분이 양날로 되어 있는 도검류를 뜻하는 말로 외날검인데 끝부분만 양날검인 형태다.

    그러니까 백설의 끝부분이 쇄도하면서 정수리가 갈릴 뻔 했던 학생은 도진이 반 걸음 더 내딛음으로써 날이 없는 부분에 정수리를 가격당한 것이다.

    지금껏 도진의 칼에 가격당한 학생들이 베이지 않고 얻어맞은 형태가 된 것도 백설이 의사도였기 때문이다.

    즉, 도진은 이렇게 압도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일부러 날이 없는 부분으로 가격할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르르-

    털썩!

    앞서 당한 두 명과 함께 엎어진 학생은 까무룩 기절하며 오줌을 지렸다.

    도진은 거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마지막으로 서 있는 학생을 마주했다.

    "으아아아아!!"

    거인. 고릴라. 떡대.

    그런 별명으로 불리지 않을까 싶은 2미터 가까운 키에 가로로도 도진의 두 배는 될 법한 덩치의 학생이 도진의 키만 한 대검을 내리쳤다.

    특별한 외공(外功)을 익힌 티가 역력한, 흉악한 근육으로 들어차 있는 학생의 그 대검을.

    콰앙!

    "……!"

    "헉!!"

    도진은 백설을 든 한 손으로 받아내 버렸다.

    일대에 경악이 쓰나미처럼 휩쓸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장 크게 경악한 건 물론 대검을 내리친 당사자였다.

    일반적으로 육체를 단련하는 외공은 미래가 없다고 여겨지는, 여유가 되면 보조로나 익히는 게 좋다는 인식이었다.

    육체를 더 강하게 하고 외부를 단단하게 해주지만 그 한계가 빠르게 오고 내부는 지켜줄 수 없기에.

    멀리 보면 차라리 그 노력을 내공을 쌓는 데 집중하는 게 훨씬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경지에 오르기만 하면 외공으로 얻을 수 있는 육체 스펙의 상승보다 내공으로 얻을 수 있는 육체 스펙의 상승이 더 높으니까.

    하지만 마냥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외공의 수련은 당장 큰 무력의 상승을 가져온다.

    그러니까 아직 학생인 숭무고 학생이면서 내공을 보조로 하고 외공을 주력으로 익힌 정중한은 다른 건 몰라도 완력에서만큼은 에스포마저 넘어선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긍심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히 그의 완력은 에스포마저 넘어섰으며 대검을 내려치는 포지션이기까지 했기에 정면에서 상대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어디까지나 상식의 선에서는 그랬다는 말로, 상식을 넘어선 도진에게까지 적용되진 못했다.

    도진이 수련하는 것이 하늘마저 넘어서기 위한 육체를 만드는 연신극기공이었기에.

    매일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극한으로 단련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일말의 타협조차 하지 않았던 도진의 육체는 거듭 진화하였고 그것은 전문적인 외공조차 범접을 불허할 만큼의 효과를 가져왔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치러졌던 권민국과 도진의 짧은 수 교환에서 보여 주었던 건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도진의 천마신공이다.

    도진이 익히고 있는 천마신공은 주정아의 연류창법과 마찬가지로 무도를 추구하는 무공이다.

    그러나 마냥 무도를 추구하는 무공이 아니었다.

    하늘을 믿지 않고 스스로 심판하기 위한 자들의 지존이 구사하는 무공이기에 무도이면서 동시에 무공이다.

    그러니까 도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하늘을 대신하여 스스로 심판하기 위한 무(武) 또한 추구하는 것이다.

    편한 등산로를 두고 깎아지른 절벽을 오른다.

    극한의 환경에서 자아를 성찰하지만 동시에 육체를 단련한다.

    그리하여 등산로를 걷는 자들보다 더 빠르게 더 높은 곳에 도달한다.

    도진은 이미 다른 동기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파악!

    마치 기둥 같은 두터운 다리가 기습적으로 도진의 옆구리를 노리고 덮쳐들었다.

    정중한이 당황을 억누르며 각법을 발휘한 것이었다.

    무게 균형을 옮겨 대검의 무게를 도진에게 전가하며 동시에 다리에는 강렬한 힘을 싣는, 숭무고 학생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고등 수법.

    터억.

    그러나 지금의 도진에게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힘으로 억누른 것조차 아니었다.

    도진은 그 힘을 고스란히 받아 오른손의 백설을 거쳐 정중한의 대검으로 옮겨 버렸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깨달음의 수법.

    그렇기에 육체의 부담이 거의 없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고등 수법이었다.

    터엉!

    "……!!"

    한 다리로 버티고 있던 정중한은 갑작스런 반탄력, 자신의 힘에 상체가 휙 꺾여 버렸고 놀랍게도 그 거구가 허공에 일자로 떠 버리고 말았다.

    정중한이 대항하기엔 너무나도 아득한 경지의 수법이었기에 속수무책이었다.

    그 다음은 간단했다.

    콰앙!

    "꺽."

    도진의 주먹이 정중한의 강철같은 육체에 작렬했고 주먹에 깃들어 있던 천마기의 경력이 연약한 내부를 달리며 대번에 정중한의 정신을 날려 버렸다.

    쿠우웅!

    마치 일대를 내리누르는 도진의 기세를, 그리고 경악을 상징하는 것처럼 둔중한 소리가 조용해진 장내로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앞을 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을 처리한 도진은 여전한 걸음으로 거리를 좁혀 곽필섭과 무진혁, 그리고 권민국을 마주한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 자격을 행사해 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