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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01화 (101/741)

101화

오대용이 퇴원하고 무난했던 금요일이 지나 주말이 되었다.

-너희 아버지가 입학식 영상을 나 몰래 휴대폰에 넣고 계속 돌려 보시더라. 안 들킨 줄 아시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호호.

"하하. 그랬었나요."

어머니의 말에 도진이 웃었다.

한유아에게 부탁하여 영상을 찍은 보람을 그득히 느끼도록 해 준 통화였다.

별일이 없었다면 본가에서 하룻밤을 보냈겠지만 실전 무공의 기초 수업의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위한 약속을 잡아두었기에 안부 전화만 드리고 기숙사에서 아침을 맞이한 도진이었다.

일상이 된 소담과의 아침 식사 후 정문으로 나가니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주정아가 새빨간 대형 SUV를 몰고 나타났다.

창문을 열고 얼굴을 쏙 내민 주정아가 말했다.

"오, 일찍 왔네?"

"시간 약속에는 조금 민감한 편이라서."

"와, 나 늦게 왔으면 혼났던 거야?"

"우리는 친구니까 아마 혼냈을지도?"

"…친구 아니면 안 혼냈을 거라는 뜻이니까 기뻐해야 되는 거 맞지?"

"응, 맞아."

이제는 편한 사이가 된 주정아와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수석에 올랐다.

"대용이는?"

"오는 중이래. 아마 우리랑 비슷하게 도착할걸?"

어제 약속을 잡을 때 오대용은 알아서 오기로 했고 도진은 주정아가 학교로 마중을 나오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도진이 주소만 주면 찾아가겠다고 했는데 주정아가 픽업하러 오겠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이렇게 된 것이다.

뭐 덕분에 도진은 편히 조수석에 앉아 오늘의 약속 장소인 주정아의 본가에 올 수 있었다.

"헤에, 예쁜 집이네."

"그렇지? 내가 태어난 곳이야."

주정아의 본가는 숭무고에서 20분 정도 도로를 따라 나가면 나타나는 외곽 지역에 있었다.

오성의 1차 협력사로 상당한 재력가인 주정아의 본가가 도시의 외곽에 자리잡은 건 작은 숲까지 품은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의 취미가 숲을 가꾸시는 거거든. 그래서 여기에 자리를 잡은 거야."

텃밭이나 화단을 넘어 아예 숲을 가꾸는 것.

그것이 오성의 1차 협력사 성운의 회장인 주대운의 통 큰 스케일의 취미였다.

덕분에 주정아의 본가는 기역자 형태의 고즈넉한 대저택이 숲 속에 자리를 잡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풍경을 자랑했다.

계획적으로 가꿔진 숲 가운데 난 잘 뻗은 길을 따라가니 저택의 입구로 연결되었다.

주정아는 능숙하게 좌측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는데, 그 옆에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정아와 도진이 내리자 스포츠카에서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사람이 내렸는데 말할 것도 없이 오대용이었다.

"방금 온 거야?"

"응."

"왜 먼저 들어가지 기다리고 있었어? 남의 집도 아니고."

"뭐, 그냥."

살갑게 다가가 묻는 주정아에게 오대용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가자!"

주정아가 오대용의 손을 잡고 이끌었고 도진도 웃으며 그 옆에 서서 함께 걸었다.

"어서오세요, 아가씨. 아가씨 친구분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네, 안녕하세요."

가정부 아주머니가 가장 먼저 도진 일행을 반겨주었다.

미소지으며 반겨주는 얼굴에 구김살이 없고 진심이 담겨 있다.

특히 주정아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과 상당한 나이로 볼 때 꽤 오래 이곳에서 일했으며 대우와 사이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실제로 주정아 역시 살가운 얼굴이었으며 오대용도 자연스레 인사를 했고 말이다.

도진 역시 인사를 하고 넓은 거실에 들어서니 이번엔 중후한, 그리고 동시에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어 멋스러움까지 느껴지는 풍채 좋은 노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180이 넘는 키에 흰 머리를 무색케 하는 홍안과 근육.

사자군 오군성을 연상케 하는, 그러나 좀 더 부드러운 기세의 이 남자가 바로 성운의 회장이자 사자군의 오랜 친우인 호군자(虎君子) 주대운이었다.

-호오, 제법이구나.

-무공이요?

-아니. 무공은 그리 대단치 않다. 하지만 무도(武道)를 논한다면 오군성이라는 아이보다 낫구나.

위지혁의 평가에 도진은 내심 놀랐다.

지금껏 도진이 얼굴이라도 보았던 무림인 중 최고는 단연 오군성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무림세가 출신이 아니면서도 절대고수로 꼽히는 사자군 오군성.

한데 지금 도진의 스승 위지혁은 그런 오군성보다도 깨달음의 영역에서만큼은 주대운이 더 낫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부드럽지만 강한 기세의 주대운이 더욱 특별하게 보이는 도진이었다.

"할아버지!"

"금방 왔구나. 그래, 새로 사귀었다는 친구. 요즘 잠룡이라면서 유명한 후기지수가 자네로군."

"예. 안녕하세요."

"그래, 만나서 반갑네. 정아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야."

주대운은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고 도진이 그 손을 마주잡았다.

힘있지만 결코 억압하지 않고 부드럽게 쥐는 커다란 손은 그 기세를 닮아 사람에게 단단한 호감을 선사한다.

과연.

도진은 스승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공과 무도.

같은 맥락이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차이는 무력과 깨달음이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깨달음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파괴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깨달음이 살인병기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도진의 깨달음과 무공 수위가 일치하지 않는 것도 심상세계의 깨달음을 아직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온전히 파괴력에 치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군성이 순수하게 무공의 길을 걸었다면 눈앞에 있는 주대운은 깨달음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오군성은 흉포한 사자의 기세를 품은 무림인이었고 주대운은 강하지만 부드러운 군자의 기세를 품은 무도인이었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고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성향이 그렇다는 말이다.

"대용이는 오랜만에 왔구나. 몸은 괜찮으냐?"

"네, 할아버지."

웃으며 묻는 주대운의 눈을 슬쩍 피하며 오대용은 답했다.

그 모습이 도진의 눈에 들어왔다.

'…어색해하네.'

오군성과 주대운이 오랜 친우라 두 집안의 교류가 깊다고 들었다.

여기에 오늘 본 주대운의 성격이라면 오대용이 어려워 할 이유가 없는데 눈을 피한다.

그러고보면 먼저 도착해 놓고 굳이 차 안에서 기다린 것도 마음에 걸린다.

"손녀에게 좋은 친구가 생겨서 기쁘군. 잘 어울려 놀다 가게."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도진은 주정아, 오대용과 함께 넓은 부지의 한 켠에 지어진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걸으며 생각했다.

'대용이 녀석, 주대운 회장님은 대하기 껄끄럽다는 건데…….'

놓아서는 안 될 것을 놓아 버리며 오대용은 허허로워졌다.

으르렁거리던, 자존심을 세우던 도진과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만큼.

그런데 주대운에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사이가 나쁘다거나 부정적인 이유 때문은 분명히 아니었다.

당장 도진에게도 우리 손녀에게 좋은 친구가 생겨서 기쁘다며 잘 부탁한다 말하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 이유를 알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정아한테 좀 물어봐야겠어.'

생각하며 숲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가니 수련장에 도착했다.

부지가 넓은 만큼, 그리고 돈을 들여 신경써서 지은 만큼 수련장은 넓고 호화로웠다.

샤워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어 수련이 끝나면 기분 좋게 샤워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좋아! 그럼 옷 갈아입고 모이자."

"오케이."

탈의실에서 준비해 온 무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모였다.

주정아는 머리를 질끈 묶고 나타났고 오대용 또한 정갈하게 무복을 차려입었다.

"그럼 일단 나랑 도진이 너부터 해볼까?"

"그래."

"그럼 나는 심판 봐야겠네."

"정아 편만 들면 안 된다, 너."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능글능글한 거 보소."

도진이 주정아와 수련장의 중앙에서 마주 섰다.

오늘 할 것은 서로 돌아가며 오직 기초 무공만 가지고 대련을 하는 것이다.

3:3 팀전을 준비하기 위해 우선은 서로에 대해 알고 또 기초 무공만을 이용한 수련에 익숙해져야 했다.

기초 무공이란 주정아의 특기인 창술로 예를 들면 란, 나, 찰이다.

'란'이란 안에서 밖으로 창을 돌려 상대의 무기를 막는 것이며 '나'는 밖에서 안으로 창을 돌려 상대의 무기를 막는 것.

그리고 마지막 '찰' 이 앞으로 창을 찌르는 것이다.

무공이라기엔, 그 무공의 초식이라기엔 너무나 단순하고도 뻔한 자세.

그러나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기초를 다지고 숙달하여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무공의 토대가 되고 뿌리가 되기에 평생을 궁구하여야 하는 '기초 무공'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3:3 팀전의 근본을 게임에 비유하자면 이거다.

누구나 효과를 다 아는 스킬들 중 자신 있는 것들을 추려 더 능숙하게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것.

수 싸움이며 '컨트롤 싸움'이다.

그렇기에 심하면 자존심을 건 대결로까지 번질 수도 있는 게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였다.

그래서 주정아는 진지하게 대련에 임했고 도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팟!

주정아의 연습용 창이 거침없는 기세로 도진을 연속해서 찌른다.

창술이 특기인 주정아는 '찰'의 수법으로 거리를 허용하지 않으며 일방적인 공격을 가한다.

도진이 그것을 검으로 빗겨내며 간격을 파고들면 단숨에 '나'를 응용하여 등 뒤를 회수하는 창날로 공격한다.

도진의 검이 닿는 것보다 창날이 닿는 것이 더 빠르기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면 다시 한 번 창날이 찰의 수법으로 뻗어와 공격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단순하고 또 뻔한 투로.

그러나 그 뻔한 수법과 투로를 10년 이상 고련해 왔기에 기초는 무공의 영역에 이른다.

직선으로 찔러 오는 창날은 수십 만번의 수련 끝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무리(武理)가 담겼다.

대처하는 창과 몸은 일체가 되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 흐르듯 움직이고 그것이 곧 무공이다.

-좋은 창술이구나.

-그렇네요.

위지혁이 흐뭇하게 말했고 도진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수법이다.

무흔잠영의 시선으로도 명확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허투루 대처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 주정아가 고련으로 갈고닦은 무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수법. 그러나 그렇기에 수십 만번 고련함으로써 이치의 영역에 이를 수 있다.

거기에 맞서기 위해선 도진 역시 정면에서 쌓아온 시간으로 부딪쳐야 했다.

찌르는 창을 검날로 흘려내며 전진한다.

힘에 맞서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쳐가 다시 등을 노리려는 것을 변주를 주어 흐름을 바꿨다.

무리에 맞서는 무리.

날것 그대로의 동작이기에 쌓아온 노력과 시간의 싸움이 된다.

창의 궤적을 비틀면 거리를 좁혀 검날을 뻗을 수 있는 도진의 승리, 비틀지 못하면 등에 창날을 댈 수 있는 주정아의 승리였다.

터억.

"아, 졌네."

그리고 그 싸움의 승자는 도진이었다.

"미안. 튼튼해서."

"풉. 튼튼은 뭐야."

승부를 가른 건 무리 이전에 또 다른 기초, 다름 아닌 '육체의 성능'이었다.

서로가 내공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남녀의 육체적 차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공만 따지면 주정아가 앞선다.

하지만 그것을 떠나 육체의 성능이었다.

연신극기공으로 한계를 넘어 진화를 거듭하는,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 정련하는 도진의 육체는 무리의 싸움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분명한 힘의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주정아의 창을 흔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주정아는 그로 인하여 난 승부에서 역시 쿨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웃었다.

과연 '대인배'였다.

"자, 그럼 내가 이겼으니까 한 번 더 할게. 오대용, 준비 됐어?"

"언제든지 시작해도 돼."

간단하지만 그래서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승부였다.

살짝 흥이 올랐던 도진은 이어서 오대용과 대련했고.

터억.

"아. 도진이가 또 이겼네."

웃으며 두 손을 든 오대용을 보며 살짝 표정이 굳고 말았다.

대련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오대용은…… 숭무영재고의 하위권 학생이라 해도 이길 수 없을 만큼 중대한 문제를 품고 있었다.

'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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