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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00화 (100/741)

100화

도진의 오전은 꽤 빡빡했다.

새벽 수련 후 소담과 함께 아침을 먹는 순간까지는 여유롭지만 첫 수업 시작부터 점심 시간까지는 빡빡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전에 있는 두 수업 사이의 여유 시간은 고작 15분인데 적당한 걸음으로 움직일 경우 다음 수업 강의실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이었다.

여기에 친구들은 물론 안면이 있는 레드슈 등의 학생들과 몇 마디라도 나누면 바로 수업이 시작해 버리니 시간이 빡빡할 수밖에.

때문에 도진은 오전 시간 동안 있었던, 열애설로 인해 벌어졌던 웹에서의 이슈를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슈의 시작이자 중심은 오대용이었다.

-?? 이게 무슨 소리지..?

오대용이 SNS에 도진과 오성아의 열애설 기사를 가져와 올린 글이 발단이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

-호적메이트의 열애설을 본 동생.gif ㅋㅋㅋㅋ

많은 댓글이 달리긴 했지만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오대용이 장작을 넣은 것이었다.

-와,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우리집 나무늘보가 연애도 하는구나.

-나무늘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낰ㅋㅋㅋ뭌ㅋㅋ늘ㅋㅋ봌ㅋㅋㅋㅋㅋㅋ

-오성의 여신, 종(種)이 나무늘보인 것으로 밝혀져…….

-...삭제해라^^

그 장작에 오성아가 직접 등장해 댓글을 닮으로써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점이랑 웃는 이모티콘에서 압축된 욕이 보이냐 ㅋㅋㅋㅋㅋ

-이거 SNS 아니었으면 이단옆차기 날랐다.

-이미 집에서 날렸을 듯. 내가 보고 옴.

그렇게 팝콘이 팡팡 터지는 가운데 오대용이 한 마디를 더 올렸다.

-잠깐만. 결혼하면 시집가는 거잖아. 집에 서식하던 나무늘보가 사라지면 좋은 거네. 나는 이 결혼 찬성일세!

-미쳤나 ㅋㅋㅋㅋㅋㅋㅋ

-찐동생 인정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까지 오니 캡처본이 만들어져 여기저기 퍼져 나갔고 또 터지는 한 방의 단초를 제공한 댓글이 있었으니.

-오대용님, 근데 김도진님이랑 오성아님이 결혼하면 김도진님이 오대용님의 매형이 되는데 괜찮으세요? 님이 아랫사람이 돼 버리는 거임 ㅇㅇ

-? 시**?

-ㅋㅋㅋㅋ 그러네. 김도진님이 오대용님 손윗사람이 되네 ㅋㅋㅋㅋ 앞으로는 친구가 아니라 매형이라 부르십쇼.

-???? 미친??

-앞으로 친구라 부르지 말고 매형으로 불러라. 그리고 결혼해도 우리집에서 살 거임. 니가 분가하면 거기까지 따라가서 합가할 거임.

-나는 이 결혼 반댈세 ㅡㅡ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태세 전환이 전설 리그의 챔피언보다 빠르네.

"꺄하하하하!!"

일련의 사건이 캡쳐본으로 한창 퍼져 나가는 중이었던 점심 시간.

주정아는 그 캡쳐본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함께 자리한 도진과 소담 또한 웃는 얼굴로 캡쳐본을 보았다.

웃으며 볼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유쾌한 일 덕분에 열애설은 정말로 '썰'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생애 첫 스캔들 감사합니다.

오성아의 대응은 물론이요 도진 또한 '열애설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라는 멘트로 스무스하게 대처했는데 오대용까지 가세한 덕분에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적인 동영상이 올라왔으니 다름 아닌 당시 오성아가 도진을 안아주었던 때의 것이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오성아가 도진의 등을 두드려주는 그 영상은 누가 봐도 누나가 동생의 등을 두드려주는 분위기였다.

영상에서 보이는 분위기가 결코 사귀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기사를 올린 곳이 소위 말하는 '찌라시'였으며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았음이 알려지면서 원본 기사는 아예 신고를 먹고 내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도진과 오성아의 생애 첫 스캔들은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허나 그 영향은 남았는데 다름 아닌 도진이 올린 '숙제', 정련단에 관한 게시글의 댓글들이었다.

-아니 도대체 왜 님 주위로 여신님들이 몰리는 거임?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했↗↗냐!!

-이 정도면 별호를 잠룡이 아니라 화화공자(花花公子)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님?

-화화공자는 꽃미남이란 뜻도 있잖아. 그건 좀 아닌듯.

'…와, 팩트로 때리네.'

-흠. 그러면 후기지수는 별호에 '용(龍)'을 넣어 주는 게 관례니까 절충해서 화화공룡으로 합시다.

-화화공룡ㅋㅋㅋㅋㅋ

-화화공룡 도랏낰ㅋㅋㅋㅋㅋㅋ

-갑분공룡ㅋㅋㅋㅋㅋㅋㅋ

"큽."

화화공룡. 여기엔 도진도 슬쩍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터진 것 때문에 함께 점심을 먹던 소담과 주정아도 그 댓글을 보고 말았다.

"꺄하하하하!! 공룡이래, 공룡!! 꺄하하!"

주정아는 아예 테이블을 치며 웃었고 소담도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그래, 너희들이 웃어서 나도 기뻐."

내친 김에 웃는 두 사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화화공룡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SNS에 업로드까지 해 주었다.

그리하여 도진의 별호는 비공식적으로 화화공룡이 되어 버렸다.

이 화화공룡이 또 이슈가 된 덕분에 도진은 큰 덕을 보았는데, 다름 아닌 그 정련단 관련의 계약 때문이었다.

정련단 광고 계약에는 조회수나 성과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 '화화공룡' 덕분에 예상을 아득히 초과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그에 따라 뜬금없이 정련단까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덕분에 오성아가 계약금보다 훨씬 많은 인센티브가 떨어질 것 같으며 원할 때 언제든지 차를 증여받을 수도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뭐 의도야 나빴겠지만 덕분에 잘 됐네.'

팩트 체크 한 번 없이 멋대로 기사를 올린 건 사실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이렇게 끝이 좋으니 도진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 이해하기로 했다.

어차피 문제가 생겼으면 오성아와 그 뒤에 있는 오성이 먼저 나서서 '처리'를 해 버렸을 테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지윤이 걔는 같이 밥 안 먹어?"

SNS 앱을 닫고 점심을 먹고 있자니 주정아가 그렇게 물었다.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지윤이는 따로 하는 일이 있나 봐."

나지윤은 2교시에 다른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무언가 따로 하는 게 있는 듯 함께 점심을 먹지 않았다.

점심 시간마저 아껴 다른 일을 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기에 도진은 캐묻지 않고 알겠다고 메시지를 보냈었다.

"헤에, 그렇구나. 그러고보면 걔도 열심이네."

알려지기로 나지윤의 본가는 '정보 단체'였다.

그러니까 무림의 등장과 함께 뜨기 시작한 '정보 취급 전문 회사'란 말이다.

보통 이런 집안에서 다루는 무공은 솔직하게 말해 숭무고의 천재들과 겨루기에 아쉬운 수준인데 나지윤은 그런 무공을 가지고 비무에서 12강까지 올랐었다.

우정한을 만나지 않았다면 준결승까지 노릴 수도 있었을 테고.

주정아는 그런 나지윤이 노력파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응, 그런 거 같아."

도진 또한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지윤이 노력파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대용이 오늘 퇴원한대."

"벌써?"

입원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오대용이 벌써 퇴원한다는 말에 되물으니 주정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대. 내상이야 어차피 자연 치유에 맡기는 게 가장 좋으니까 집에서 정양하면 돼서 오늘 퇴원하기로 했대."

"헤에, 그렇구나."

하긴. 도진이 보기에도 오대용의 육체적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내상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이었지 만약 겉의 상처만 있었다면 입원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주부턴 또 같이 수업 들을 수 있겠네."

"응!"

"아, 맞다. 우리는 같은 조니까 내친 김에 오늘 한 번 모일까?"

"오, 그거 좋다!"

주정아가 도진의 제안에 손뼉을 짝 치며 찬성했다.

유쾌한 모습을 보여준 오대용이었지만 여전히 정신은 위태위태하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과 부대끼며 멘탈을 다잡을 필요가 있으니 주정아로서는 도진의 제안이 고맙기까지 했다.

"아, 그러고보니 소담이 너는? 아까 같은 조 애들이 번호 물어보는 거 같던데."

주정아의 시선에 소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주말에 한 번 모이기로 했어."

"그렇구나. 좀 아쉽겠네. 도진이랑 같은 팀이 아니어서."

"소담이가 너무 잘나서 어쩔 수 없지."

도진의 말에 소담이 옅게 웃었다.

매일 얼굴을 보고 무엇이든 함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냥 아쉬워하지 않을 만큼의 유대를 쌓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조금 아쉽지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는 소담이었다.

"그럼 오늘은 도진이 좀 빌릴게.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이해해 줘, 소담아."

"나는 완전 소담이 거네."

"뭘 새삼스럽게 당연한 소릴."

화기애애한 점심 시간이 끝났다.

똑똑.

"응, 들어와. 화화공룡."

"네, 공룡입니다. 그런데 그 별명 벌써 여기까지 퍼졌어요?"

"응. 지윤이가 말해 주던데?"

사실은 SNS로 실시간으로 봤지만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한유아였다.

먼저 와 있던 나지윤도 그것을 알면서 씨익 웃는다.

"야이."

학문 수업을 받고 슬슬 면면이 익숙해진 집행부실에서의 일과까지 끝내고 오후가 되어 주정아의 빨간 SUV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퇴원 수속을 마친 오대용과 곁에 선 오성아를 로비에서 만났다.

"오, 너희 왔구나."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오대용.

그 곁에 있는 것이 오직 오성아뿐인 것과 허허로운 분위기가 맞물려 씁쓸한 맛을 더한다.

주정아는 그 씁쓸함을 티내지 않으며 웃는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었다.

퇴원 축하 기념이란 명목으로 넷이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근데 너는 왜 혼자야?"

대부분 소담과 함께 있던 도진이 혼자인 것을 오대용이 물었다.

도진은 실전 무공의 기초 중간고사 과제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 그러니까 3:3 팀전이 중간고사 과제인데 정아랑 너랑 내가 한 팀이라는 거네."

"맞아. 그러니까 오늘 한 번 모이기로 하고 같이 온 거지."

"흐음, 그렇구나."

과제 특성상 개인적인 수련도 중요했지만 함께 모여 서로의 수준과 특성을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엔트리를 짜는 것 또한 필요했다.

오대용 또한 숭무고에 입학할 만큼의 머리가 있었기에 그 부분을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뭐 얼굴 보러 온 거고 시간 되면 주말부터 시작했으면 싶어서. 내상 때문에 내공을 쓰긴 힘들겠지만 오히려 그러니까 몸을 좀 움직여 주는 게 좋잖아."

내상을 입었다고 해서 마냥 약 먹고 누워만 있는 건 좋지 않았다.

일정 정도까지는 오히려 몸을 움직이면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육체의 자연치유력을 자극해 주는 게 좋다.

도진의 제안에 오대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뭐 남는 게 시간이잖아. 언제든 괜찮아."

시원시원하다.

SNS에서의 일도 그렇지만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오대용은 아집이 보이지 않는 유쾌한 녀석이었다.

아마 엇나가기 전 어린 시절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고 도진은 생각했다.

'의욕이, 목표가 있으면 딱 좋을 텐데 말이지.'

저놈의 세상 다 산 것 같은 분위기만 아니면 정말 친구 먹어도 괜찮을 녀석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한 번 그 목표를 가져보자. 도와줄 테니까.'

그리고.

'너, 내 동료가 돼라.'

갱생한다면 오대용은 충분히 도진이 탐을 낼 만한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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