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오성아가 오성의 직계라는 건 일전의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오성아가 다름 아닌 오대용의 친누나란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세상 참 좁다는 말이 나오는 일이었지만 또 다르게 보면 연결되어야 할 인연이 연결되었을 뿐이기도 했다.
오군성의 관심을 산 도진에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오성아가 방문하는 건 필연이었으며 무공을 배운 오대용이 또 숭무고에 입학하는 것도 필연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연관이 되어 있는 두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근황을 도진은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왜 오대용이 갑자기 입원한 거야?'
분명히 점심시간까지만 해도 밥 잘 먹고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헤어졌다.
이후 두 사람도 분명히 학문 수업을 들었을 텐데 몇 시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대용이 병원에 입원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오성아 컨설턴트님은 왜 굳이 이런 일을…….'
동생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좋지 않은 일을 '굳이 SNS에' 올릴 필요가 있는 걸까.
그것도 업무용의 공개 계정에 말이다.
몇 번 만나지 못했지만 그 만남을 통해 경험한 오성아의 성격이라면 업무용의 공개 계정에 굳이 이런 일을 올리지 않을 터였다.
만약 올린다 해도 '일신상의 사정'이라 적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저 도진의 생각이 과했을 수도.
허나 도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올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러모로 의아한 부분이 많은 게시글에 도진의 생각이 많아졌다.
오성의 도련님이자 어쨌든 숭무고에 합격했을 만큼의 무림인이 몇 시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입원을 하고 간호가 필요할 정도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생각 사이사이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병문안'이다.
오늘부로 안면이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못 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반대로 겨우 오늘 안면을 익힌 게 전부인데 찾아가는 것도 조금은 미묘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회귀하여 다시 살면서 많은 부분이 바뀐 도진이었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람을 사귐에 있어 보수적이면서 소극적인 면이었다.
인연이 이어진다면 거부하지 않는다.
저쪽에서 손을 내민다면 맞잡아 준다.
허나 그렇기에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굳이 이으려 들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대용의 병문안은 도진이 직접 나서서 인연을 잇는 행위였다.
전화번호도 어느 병원인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늦은 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문안을 가기 위해선 오성아의 SNS를 통해 병문안을 가고 싶다고 메시지를 넣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으니까.
'흐음…….'
위지혁과 장호는 도진이 온전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잠시 후. 도진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휴대폰을 내려 놓고 침대에 눕고 말았다.
아직 오대용은 도진이 인연을 잇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의 인연이 아니었다.
* * * *
다음날 오전.
첫 수업인 '십팔반무예의 이해'를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아 있던 도진은 직감적으로 오대용을 입원하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금준혁을 포함한 학생들이 마련한 자리에 앉는 권민국이 얼굴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것이 오대용의 입원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직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어제 권민국이랑 오대용이 크게 싸운 모양이야."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나지윤이 그 직감이 사실임을 알려준 것이었다.
"…싸웠다고?"
"응. 본 사람은 없지만 소문이란 게 그렇잖아. 결국은 퍼지는 법이지."
나지윤의 설명에 따르면 학교가 끝나고 에스포끼리 만남이 있었는데 거기서 권민국과 오대용이 싸운 모양이었다.
"어제 말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요즘 들어 에스포의 세 명이랑 오대용의 사이가 별로 좋질 않아. 숭무고 입학 시험 이후로 오대용이 좀 이상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 때문인 모양이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했던 오대용이 요즘 사사건건 에스포의 나머지에게 딴지를 넘어 시비조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잦다는 모양이야, 하고 나지윤은 어디서 들은 것처럼 말했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갔는데 그게 계속되니까 결국 주먹다짐이 되는 거지. 그런데 오대용의 실력이 나머지 셋보다 못하니까 결국 두들겨 맞고 끝나는 것 같아."
그 결과가 어제 보았던 것처럼 상처가 낫질 않는 모습이고 말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평범한 주먹다짐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어제는 조금 더 크게 싸웠고 일이 좀 커진 거 같아."
사회와 다르게 무림의 특성상 일정 수준의 폭력은 정당화된다.
때문에 평범한 주먹다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림학교의 폭력 문제가 만연함에도 고치기 힘든 이유인 악법(惡法)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의 구현'이 가능케하는 수단으로서의 순기능도 있기에 손대기 힘든 법이기도 했다.
애초에 지금까지는 무림인으로서의 투닥거림 수준이었기에 그동안 오대용의 상처는 문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입원까지 할 정도가 되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게 된 듯했다.
"사실 처벌 받을 정도까진 아냐. 무림인끼리 싸워서 입원하는 거야 일상이고 목숨에 지장이 가거나 장애가 남을 정도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게 오성의 3세랑 태양권가의 3세라서 관심을 산 게 문제인 거지."
그래서 권민국이 굳이 티가 나게 얼굴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였다, 고 나지윤은 설명했다.
오대용이 먼저 손을 썼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 권민국이 크게 화가 나 조금 과하게 손을 썼다는 정도로 기사가 난 듯했다.
나지윤이 말했듯 무림인끼리 싸워 병원에 입원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고 할 정도의 일이었기에 이슈는 딱 몇 시간으로 잦아들었고 말이다.
그것과 별개로 에타 등의 게시판과 학교 내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건 알아서 학생들이 사린 것이고.
도진이 나지윤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일절 관련 이야기를 듣거나 볼 수 없었던 이유였다.
"…안녕."
"응, 안녕."
어제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주정아가 소담의 옆에 앉음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주정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굳이 괜찮냐고 묻기도 뭐한 얼굴이어서 인사만을 나눈 채 대화는 중단되었고 조용한 가운데 수업을 들었다.
"…그럼 다음 수업은 공지한 대로 실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권민국의 기분도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미묘하게 조용한 분위기에서 수업은 끝이 났다.
조용히 강의실을 나가는 에스포를 따라 그 무리들이 사라지고 도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수업은 뭐야?"
"나는 실전 무공의 기초."
"오, 우리랑 같네. 같이 가자."
힘없이 일어나 혼자 쓸쓸히 나가려는 주정아가 마음에 걸려 붙잡았던 도진은 마침 같은 수업이자 그렇게 제안했다.
"…응, 그러자."
주정아는 잠시 눈을 일렁이다 옅게 미소지으며 그 제안을 수락했다.
"지윤이 너는?"
"아, 나는 다른 수업. 오후에 보자."
그리하여 도진과 소담, 주정아 세 사람만이 다음 수업을 같이 들었다.
그리고 도진은 조금 후회했다.
"각자가 익힌 무공이 다르고 경지도 다른 만큼 '실전 무공의 기초'라 해서 경직되고 기본적인 기초를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겠지요. 그러므로 이 수업에서는 여러가지 실전을 가정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대처법을 익히는 형태로 진행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실전 무공의 기초를 맡은 교수는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한 인물이었다.
다만 명성이 있고 가르치는 것 자체는 잘한다는 평가여서 정정 기간에도 바꾸지 않았는데 그게 판단 미스였다고 도진은 뒤늦게 후회했다.
"이미 후기지수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를 고려하여 수업을 진행할 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미묘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교수의 표정과 시선을 같이 보면 그 느낌은 명백한 사실이 된다.
'후기지수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학생'이라 말하면서는 비굴함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에스포를 보았고 그 다음은 도진을 포함한 학생들을 보았으니 말이다.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물이다.
-이런 간신배가 없을 수가 없는 곳이지.
위지혁은 간단히 그렇게 평했다.
-정도수란 아이의 수업처럼 실수하면 대번에 꼬투리를 잡힐 게다.
이어지는 스승의 말에 도진은 속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정경 유착이 있듯 무경(武經) 유착도 있다.
스폰서 문화가 역겨운 형태로 발전하면 무경 유착이 된다.
어디에도 있는 그 무경 유착이 다른 곳도 아니고 숭무고에 없을 수가 없다.
실전 무공의 기초를 맡은 교수 엽랑(獵狼) 오창명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본래 '토랑(土狼. 하이에나)'이라 불리며 돈을 받고 무공을 쓰는 청부 싸움꾼이던 그는 운 좋게 명성을 얻어 숭무고의 교수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태양권가의 지원을 받았다.
이 수업에서 갑은 교수인 오창명이 아니라 바로 태양권가의 장남 권민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업에서 권민국과 대립하는 도진은 '아슬아슬하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도진에게 있어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기왕 배울 것 기분 좋게 배울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후회를 길게 끌고 갈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간단한 일이죠. 불법을 저지를 수 없다면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의 수작으로 뒤집힐 정도로 도진이 쌓아온 시간은 얕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하는 바다.
모든 장애물은 곧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줄 테니까.
도진은 다음 수업부터 있을 그 장애물을 기대하며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서 일어났다.
"같이 점심 먹을래?"
"응, 그러자."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들었던 주정아에게 제안해 어제와 마찬가지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대용이 없어 혼자인 주정아는 유독 쓸쓸했고 또 안타까워 보였다.
"사실은 나도 친구들처럼 숭무고에 안 와도 됐거든. 하지만 어쩌겠어. 대용이가 혼자 숭무고에 가겠다는데. 걱정돼서 나도 여기 온 거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번듯한 졸업장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이기에 두 사람을 배려해 일부러 즐거운 듯 이야기해서 더욱 그것이 크게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오대용 때문에 무공을 적극적으로 익히게 됐고, 그러다 무공에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단다.
그리고 오대용을 따라 숭무고에 입학하기까지.
…스스로도 모를 정도로 온통 오대용의 이야기만 하는 주정아였다.
"학문 수업은 뭐야?"
"나는 국사. 너희는?"
"와, 이 정도면 인연이네. 우리도 국사인데."
무공 수업과 달리 학문 수업은 정해진 소수의 과목 내에서 선택해 듣기에 모든 학생이 웬만해서는 몇 개가 겹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건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오늘 하루 종일 모든 수업이 겹쳤으니 도진은 이것이 인연이라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문 수업에서마저 집중하지 못하는 주정아를 보면서 명분까지 챙긴 도진의 도기(道器)로서의 오지랖이 발동한 것이었다.
"정아야."
"응?"
"대용이 병문안 같이 가지 않을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