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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92화 (92/741)

92화

한유아의 설명에 따르면 숭무고의 집행부는 크게 선도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합친 느낌의 조직이었다.

학교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잡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학생의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행사나 업무를 관할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지방자체단체'인 건 규모가 크고 중요한 일일 경우 '중앙 정부', 그러니까 어른들에게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고.

다만 그 학생의 선이 생각보다 컸기에 규모만큼이나 권한도 도진의 생각보다 크고 강력했다.

따라서 인수인계도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만큼 범위가 넓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별히 지원하고 싶은 분야가 있어?"

"아뇨. 맡겨주시는 걸 해 볼게요."

설명이 끝나고 묻는 한유아에게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행정적인 부분의 업무는 도진의 특기도 아니었고 아는 바도 없다시피 했다.

때문에 선도부 쪽이 맞겠지만 애초에 집행부에 들어온 이유가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배우고 또 체험해 보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굳이 가리지 않겠다 말한 것이었다.

한 무리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이런 부분을 알아야만 했다.

물론 '지존'이란 전문경영인이 아니기에 전문적으로 파고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알고 체험해 본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니 알면 알수록 좋다. 가장 좋은 건 그런 것이 특기인,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분야에서 도진이 본 사람들 중 가장 유능한 인재는 다름 아닌 한유아였다.

탐난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만큼 한유아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그 가능성에 대해선 조금 회의적이다.

금화의 영애로 금봉이란 별호까지 얻은,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유능하고 또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일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말이다.

'뭐, 모르는 일이지.'

도진의 목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금화마저 아래로 둘 만큼 높다.

그렇게 되면 또 모를 일이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한유아라는 인재를 얻게 될지도.

도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소담과 나지윤도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맡고 싶은 역할이 있다고 하진 않았다.

한유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좋아. 그럼 일단은 도진이랑 소담이가 선도부 쪽, 지윤이가 행정 쪽을 중심으로 맡아서 해 보자. 어차피 두루두루 맡을 거니까 칼 같이 구분 짓는 건 아니고 일단은 먼저 그쪽을 중점적으로 인수인계 하겠다는 거야."

"알겠습니다."

일이 광범위한 만큼 한 사람이 모든 걸 맡을 수도 없고 동시에 배우는 것도 비효율적이니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도진과 소담이 수석과 차석이니 힘 쓰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선도부 쪽이 좀 더 어울리는 게 사실이었다.

나지윤도 좋다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기에 일단은 그렇게 역할을 분담하게 됐다.

"좋아. 그럼 내일부터 차근차근 배우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해산!"

"어? 이렇게 해산이요?"

"응. 왜, 나랑 벌써 헤어지려니 아쉬운 거야?"

"뭐…… 그렇진 않은데요."

"와, 나를 이렇게 대하는 남잔 니가 처음이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날의 활동도 그렇게 간단히 끝나 버렸다.

나름 소득이 있긴 했으나 일부러 시간을 비워뒀던 탓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도진은 함께 나온 나지윤에게 시선이 간 것이었다.

나지윤은 그 시선에 씨익 웃으며 먼저 말했다.

"시간도 남는데 오전에 못 했던 오대용에 대한 이야기라도 마저 할까?"

"그러자."

듣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듣던 중에 끊긴 이야기였다.

하물며 오늘 점심 시간의 일로 인해 오대용에 대한 관심도 조금 더 늘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도진은 조용한 식당 한 켠에 같이하는 게 일상이 된 소담과 함께 나지윤을 맞은편에 두고 앉게 되었다.

"잘 먹을게."

도진이 이야기값이라며 사 준 메뉴를 즐기며 나지윤은 오전에 끊겼던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대용이 왜 에스포인가에 대해서부터 말하면 되려나?"

"응, 거기서부터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네."

"오케이. 그러니까 이건 오대용의 어린 시절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데……."

오대용.

사자군 오군성이 회장으로 있는 오성의 3세로 오군성의 아들 오주형의 3남이다.

어릴 적부터 무공에 재능을 보여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늘지 않는 실력에 오군성 회장님, 할아버지에게 외면당했다는 거지."

존경하는, 그리고 동경하는 할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대용은 열심히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그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오군성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도 못했던 것이다.

재능이 없지는 않았다.

허나 사자군이라 불리는 오군성을 만족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오성이란 회사가 딱 그런 분위기잖아."

오성이 단시간에 재계 서열 5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신상필벌과 능력주의 덕분이었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

여기에 오직 하나, 실력으로 사람을 평가했기에 무능력한 자는 누가 되었든 도태되고 떨어져 나갔다.

능력있는 자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기에 아낌없이 능력을 발휘했고 말이다.

오군성은 무엇보다 그 부분을 중요시했고 일탈을 용납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 가족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엇나가는 원인은 환경, 그것도 가정 환경인 경우가 많지."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말하는 나지윤의 분위기는 시니컬했다.

도진은 그렇게 묻어나는 분위기에서 이 속 모를 동기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것을 속에만 담아두고 이야기를 들었다.

"오군성 회장님은 이를테면 오성이란 제국의 절대권력을 쥔 황제란 말이야. 그 황제님의 눈밖에 났으니 제아무리 혈통이 좋아도 내놓은 자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오대용은 그래서 어긋나기 시작했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목표 앞에서 인간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그래도 해 나가는 타입, 또 다른 하나는 다른 목표를 찾는 타입.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타입이다.

오대용은 세 번째였다.

"아마 어린 나이에 정말 모든 걸 걸고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니까 동경했던 할아버지에게 외면받고 실패했던 일에 완전히 멘탈이 나가 버린 거지."

그래서 목표를 잃고 방황했으며 에스포 같은 무리와 어울렸다는 것이다.

흔히 있는 이야기다.

그 흔히 있는 이야기에 도진은 조금 안타까워졌다.

온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마는 이야기를 도진은 좋아하지 않았다.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대용의 이야기에 도진은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

"사족을 달자면 에스포의 리더는 권민국이잖아. 오성의 오대용이 아니라 태양권가의 권민국이 리더인 것도 그런 배경이야. 권민국은 집안의 후계자인 장남이지만 오대용은 오성의 내다 놓은 자식이니까. 오대용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거지."

배경은 오대용이 더 대단하지만 그 배경을 활용할 수 있는 힘은 권민국이 더 크다는 말이다.

여기에 오대용은 의욕을 잃고 대충 사는 인생이었으니 야망이 커 보였던 권민국에 밀리기도 했을 테고.

"뭐 더 궁금한 거 있어?"

나지윤의 물음에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면 될 거 같아."

솔직히 이런 조금은 개인적이고도 민감한 내용일 줄은 몰랐다.

그러니 더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가진 자라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진 않다는 거겠지.'

가지지 못한 자보다야 당연히 가진 자가 더 행복할 수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가진 자가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다.

가진 자라고 해서 모든 걸 가진 건 아니니까.

그리고 오대용은 아무래도 가족의 행복이라는 걸 가지지 못한 듯했다.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

도진의 인사에 나지윤은 씨익 웃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앞으로도 셋이서 열심히 해야 할 거 같은데 잘 부탁해."

"응? 셋이서?"

"응. 아마도 집행부에는 더 이상 인원이 보충될 거 같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확신이 담겨 있는 말에 물으니 그런 답이 돌아왔다.

보통 집행부는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이라고 에타에서 본 것 같았는데 세 명에서 더 늘어나지 않을 것 같다니, 여기에도 무슨 이유가 있을 듯했다.

"간단한 이야기야. 지금의 집행부는 안 그래도 빡빡한데 너까지 있으니까."

이유는 한유아의 세대까지 올라가야 했다.

본래 집행부는 한유아에게 들었듯 주먹구구식에 널널한 곳이었다.

어차피 실무야 전문가들이 하니까 일반 학교의 소위 말하는 반장, 학생회장 개념의 타이틀을 추가로 달려는 학생들이 입부했다.

한데 그것이 한유아가 입부하면서 확 달라지고 말았다.

-체계를 좀 세워야겠네요.

입부하면서부터 한유아는 그런 집행부의 규율을 완전히 뜯어 고쳤다.

권한만큼이나 의무를 행사해야 하도록.

일반 학생이었다면 선배들이, 그리고 동기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이 다름 아닌 금화의 영애이자 이미 금봉으로 불리던 한유아였기에 어쩔 수 없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은 탈퇴했고 말이다.

"그래서 집행부 2학년 선배들이 단 네 명뿐인 거야."

한유아와 그녀의 심복처럼 행동하는 민지서, 선도를 도맡은 검봉 유지은과 폭룡 류대현까지 네 명이다.

"그리고 여기에 신입생으로 떡하니 너랑 소담이가 입부했으니 웬만한 신입생은 입부할 생각을 못하는 거지."

대부분은 도진을 못마땅해 한다. 여기에 에스포마저 도진을 적대하니 숭무고 학생들 중 간 크게 도진에 합류하는 듯한 그림이 되는 집행부에 입부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집행부에 더 이상 인원은 보충되지 않을 거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말이지."

"그렇구나."

딱딱 이해가 되는 설명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에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았기에 상황은 상황으로만 이해하고 그저 설명 요정 나지윤이 있어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내일 보자."

"응. 잘 가."

"나도 수련하러 가볼게."

"그래. 내일 보자."

식사도 끝났고 이야기도 끝났기에 나지윤이 손을 흔들며 떠났고 소담과도 헤어졌다.

도진은 방으로 돌아와 오늘도 어김없이 연신극기공으로 정상을 향해, 한계를 넘어서는 한 걸음을 내딛은 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몸을 쉬게 하며 어머니, 아버지와 통화를 한 뒤 SNS 앱을 열었다.

한유아와의 대화 이후로 도진은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SNS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려 했다.

의무로 하는 일이 아니라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SNS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그만큼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맞팔이 몇 명 더 늘어 그 안에 상미와 유진이, 그리고 호진이까지 포함되었다.

우선은 방문한 지인들의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하려 했던 도진은 그러나, 새글 알림에서 무시하기 힘든 문장을 발견하고선 멈칫해야만 했다.

-동생의 간호 때문에 며칠간 저녁 업무는 쉬어야 할 것 같아요.(52분 전, 오성아 님의 업로드)

'뭐야?'

작성자는 도진이 SNS를 시작한 계기가 된 오성아다.

그리고 업로드된 글에 포함되어 있는 사진은.

'오성아 컨설턴트님의 동생이면 오대용이잖아?'

다름 아닌 오대용이 병원에 입원했음을 암시하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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