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벚꽃길을 걸어 두 사람은 식당에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혼자였다면 푸짐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겠지만 소담도 함께였기에 조금 담백한 식단이 되었다.
그러나 도진은 전혀 그 식단이 아쉽지 않았는데, 마주 앉은 소담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기 때문이다.
마치 자그마한 귀여운 초식 동물이 오물거리는 듯한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그래서 흐뭇하게 웃으며 샐러드를 음미하고 있는데 문득 소담이 물은 것이었다.
"어제 집에 갔었지? SNS에서 봤어."
"응. 영상 봤구나."
이래저래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업로드를 새벽에나 했었는데 소담이 벌써 그것을 본 모양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래서 여상스레 고개를 끄덕였는데 돌연 생각지 못한 것이 훅, 들어온 것이었다.
"근데 사진 찍어준 여자애는 누구야? 못 들어 본 목소리였는데."
"……어?"
저도 모르게 당황이 묻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순간 도진은 실수했음을 무인 특유의 위기감으로 캐치해낼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게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실수라고 본능이 강하게 경고했다.
"도진이 너는 삼남매라고 했잖아. 근데 유진이랑 호진이, 그리고 네가 영상에 나오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찍어줬다는 건데 집에서 함께 뭘 만들 정도면 친한 사이 같아서 궁금해서."
소담은 언제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듣기 좋은 목소리로 여상스레 말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다르다.
도진은 위기감을 경시하지 않고 마치 날뛰는 천마기를 다루듯 당황을 다스리며 평소처럼 말했다.
"아, 상미야. 윤상미. 알고보니까 근처에서 수련하는데 그러면서 동생들도 돌봐주고 있더라고."
"헤에, 그랬구나. 좋은 아이네."
"응. 정말 좋은 동생이라고 생각해."
도진의 대답에 소담이 웃었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답을 잘한 듯 소담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 맞은 위기를 역시 저도 모르는 사이 넘기고 대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봤어? 우리가 신청한 수업들 사람이 더 늘었더라."
"아, 그래?"
"응. 한 스무 명은 더 늘어난 거 같아."
"그 정도나?"
안 그래도 백 명 전후로 수강생이 많았던 수업에 스무 명이나 더 추가되다니.
숭무영재고의 학생들과 같이 듣는 걸 감안해도 상상 이상의 대인원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상위권 학생들이야."
심지어 그렇게 추가로 신청한 학생들을 포함하여 수강생 중 절반이 상위권 학생들이었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기초 과목들은 대부분이 절대 평가고 학점을 따기 쉽잖아. 그러니까 커리어 관리를 하려는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신청을 한대."
숭무고 입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인생 역전, 혹은 성공을 하게 된 학생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숭무고 졸업생 '타이틀'을 목적으로 하는 명문가의 자제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숭무고의 수업은 도움이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리 아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대기업 자제, 혹은 명문 무가(武家)의 자제에게 있어 숭무고에서 배울 수 있는 무공은 얼마든지 따로 배울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숭무고에 입학한 이유는 하나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림학교를 졸업했다는, 외부에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타이틀 그 자체다.
때문에 이들은 숭무고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그 타이틀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수 있는 학점 관리, 즉 '커리어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기초 과목들에 역으로 상위권의 학생들이 몰려 고학점을 따기가 힘들어진다.
소담의 설명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권의 학생들이 기초 과목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 얼굴에 부담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1등이랑 2등은 우리일 테니 아쉽게 됐네. 그지?"
"응, 그렇네."
장난스레 웃으며 묻는 도진에게 소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후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긴 뒤 자리에서 일어나 벚꽃길을 다시 걸었다.
월요일.
한 주의 시작이면서 정정 기간도 끝나 본격적인 수업의 시작이었다.
오늘부터는 무공 수업과 함께 필수인 학문 수업도 함께 들어야 하니 진짜 학교 생활이라는 느낌이다.
벚꽃길을 지나 도진은 소담과 함께 언제나처럼 집행부실에 들렀다.
똑똑.
"응, 들어와."
'오늘은 또 왜?'
문 너머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에 어째 또 퉁명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유아가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선배?"
한유아는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팔한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까지 써 줬는데 어째 한 번을 대답을 안 해 주고 있거든."
"어……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이."
까지 말한 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이 자신임을 말하는 사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유아의 사파이어빛 예쁜 눈동자가 도진을 담고 힐난했다.
"너 그러면 나중에 여자친구랑 크게 싸운다?"
"…지금이라도 확인해 볼게요."
이런 SNS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깊게 생각지 못했다.
서로가 소통하는 공간에서 한쪽만 일방적으로 댓글을 남긴 상황이었으니 아무래도 너무 무심했다고 도진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앱을 실행하니 몇 개나 되는 알림이 있었다.
다름 아닌 맞팔을 했던 한유아는 물론이요 소담과 오성아까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겼다는 알림이었다.
'아이고…….'
첫 번째 글부터 좋아요와 댓글을 빼먹지 않은 세 사람이었는데 정작 도진은 답글조차 남기질 않았었다.
-SNS 개설 축하해요!
이것은 첫 번째 글의 오성아.
감사합니다, 하고 담백하게 답글을 남겼다.
-칼 예쁘다.
조금은 어색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건 소담이다.
여기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좋아요를 눌러 주었다.
-나도 금나수 말고 칼 배울 걸 그랬어.
어제 새벽에 올린 글에 귀엽게 우는 이모티콘과 함께 댓글을 남긴 건 한유아다.
도진은 여기엔 일단 좋아요만 눌렀다.
막상 댓글을 달려 하니 좋은 멘트가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다.
"앞으로는 열심히 SNS 확인하고 방문도 하는 후배가 되겠습니다, 선배님."
은근히 장난을 담아 말하니 한유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주었다.
"좋아. 이번에만 용서해 주는 거야. 중요한 건 꾸준한 관심이야. 알겠지?"
"넵."
장난스레 말했지만 도진은 정말로 하나를 배운 느낌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의무적으로, 가볍게 SNS를 했던 면이 있었는데 기왕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팔로우를 했으니 소통의 공간으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상미한테도 SNS하냐고 물어봐야겠어.'
그리고 동생들까지.
'댓글 좀 볼까.'
기왕 SNS를 켠 김에 새벽에 올렸던 사진과 동영상의 댓글도 확인해 보았다.
-지금까지 이런 명검 활용은 없었다. 이것은 칼인가 톱인가.
-뭐야 왜 칼을 톱으로 써요;;
-아.. 스슥스슥 asmr 중독된다..
-와! 빌딩이 나무를 썰고 있어!
-엌ㅋㅋㅋㅋㅋ
댓글이 놀랍게도 천 개를 넘어 있었다.
오성아와 소담, 한유아의 맞팔 버프도 있었지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우벽진의 검을 도진이 수석 특혜로 받았음이 알려진 게 더욱 컸다.
대부분의 댓글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걸로 유명한 우벽진의 검을 DIY 상품의 나무를 자르는 데, 그것도 너무 고퀄리티로 자르는 도진의 영상에 대한 반응들이었다.
워낙 반응이 좋았던지 심지어 인기 동영상으로 채택되었는데, 그 때문에 쪽지까지 와 있었다.
'엥? 광고 수익금 지급 계좌 입력?'
따로 수익과 관련된 신청을 한 적이 없었기에 뭔가 싶었는데 SNS 플랫폼의 자체 정책으로 인한 광고 삽입 때문에 수익이 창출됐다는 설명이었다.
'이건 생각 못 했는데.'
생각을 못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마치 작년에 입었던 옷에서 지폐가 나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공식 인증 마크까지 달려 있었기에 사기도 아니었고 절차를 따라 계좌를 입력하니 앞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이 계좌로 입금될 거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고 예상 소득까지 표시되었다.
'5만원? 괜찮네.'
많은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지만 도진에게 있어선 마치 길가다 주운 돈과 마찬가지여서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이걸로 성공하거나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굳이 의식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작은 행운처럼 대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계좌 입력까지 끝내고 맞팔한 사람들의 SNS 공간에 들러 보았다.
오성아는 그야말로 전문적으로 SNS를 운영하는 사람처럼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이쪽은 공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네.'
개인의 소통 공간으로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일과 연관되어 운영하는 듯했다.
그래서 도진은 따로 댓글을 남기지 않고 좋아요만 누르고 나왔다.
소담은 오성아와 달리 황무지 같았다.
SNS를 만들긴 했는데 전혀 꾸미질 않았던 것이다.
글도 도진과 함께 찍어 올린 게 전부였다.
-글 좀 올려 주세요..
-여기가 포스트 아포칼립스인가요?
덕분에 이런 댓글만 보였다.
한유아는 깔끔담백한 느낌이었다.
도진과 비슷하게, 아니 도진 이상으로 의무적으로 관리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봐서는 몰랐을 텐데 도진이 SNS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래서인지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도진은 오늘 올라온, 집행부실의 통창을 배경으로 자리에 앉아 찍은 한유아의 셀카에 좋아요를 누르고 '선배님 오늘도 수고하십니다'라는 멘트를 남기고 앱을 종료했다.
"숙제 다 했어?"
"아, 응."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니 함께 걷던 소담이 묻는다.
도진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담과 함께 걷는데 너무 오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따로 개인적인 시간에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함께 걸어 강의실에 도착했다.
월요일의 첫 수업은 삼재인 정도수의 검공 입문이다.
저번주와 마찬가지로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번주 이상으로 수강생이 많아졌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데 유독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는데, 우측 중간의 두 줄이 텅 비어 있는 광경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기피되는 앞자리를 제외하면 수강생이 많은 과목 특성상 비어있기 힘든 위치였기에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자연스럽지 않은 풍경을 만든 몇몇 학생들을 도진은 바로 알아챘다.
'금준혁.'
도진에게 이미 두 번이나 당했던 금준혁을 포함한 일부 학생들이 자리를 '통제'하고 있었다.
말로 여기 앉아서는 안 된다는 등의 행동을 취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은근히, 기세를 풍겨 다른 학생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무공이든 집안이든 쉽게 대할 수 없는, 소담과 이야기했던 '상위권'의 학생들이 그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들이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이상했다.
'무슨 똘마니 같이 행동하네.'
숭무고의 상위권이면 어딜 가도 꿀릴 게 없을 텐데 마치 윗사람의 자리를 맡으려 드는 것 같이 행동하니 말이다.
그런 도진의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강의실의 앞문이 열리고 그 자리의 주인들을 포함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척 봐도 남다른 기세를 지닌 세 명의 학생을 중심으로 한 무리였다.
마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양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으로 들어오는 그 학생들을 보는 도진의 귀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흘러들었다.
"에, 에스포다……!"
'……뭐?'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
거기서 나온 '에스포(S4)'라는 단어가 지금 들어온 학생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도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뭔…….'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도진은 갑자기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